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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65호] 2021.07.05

단독 재중 교민사회 발칵 뒤집은 한인회장 비밀합의서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 2021-07-05 오후 4:53:01

▲ 지난 1월 홍성욱 전 광저우총영사로부터 당선기를 수여받고 있는 하정수 신임 중국한국인회 회장(오른쪽). photo 중국한국인회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재중(在中) 교민사회가 감투싸움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중국한국인회는 약 80만명으로 추산되는 재중 교민사회를 이끄는 단체다. 지난 1월 중국 남부 선전(深圳)한국인회 회장을 지낸 하정수 회장이 제11대 중국한국인회 총연합회장에 취임했다. 한데 지난해 12월 신임 회장 선거 과정에서 경쟁자로 부상했던 신동환 톈진(天津)한국인회 회장이 입후보 전 중도사퇴하는 조건으로, 하정수 회장과 총연합회장직을 1년씩 돌아가며 맡는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한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하정수 중국한국인회 회장과 신동환 톈진한국인회 회장이 작성한 합의서에는 ‘하정수는 2021년 1월 1일 중국한국인회 총연합회 회장에 취임하고 2021년 12월 31일 회장직을 사임한다’ ‘신동환은 2022년 1월 1일부터 회장에 취임하고 2022년 12월 31일 회장직을 사임한다’는 문구와 함께 양자의 자필서명이 들어갔다. 그 아래에는 하정수 회장의 전임자였던 박원우 전 중국한국인회 회장(전 정저우(鄭州)한국인회 회장)이 확인자 자격으로 역시 자필서명을 했다. 이 자필 합의서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광둥성 후이저우(惠州)의 한 호텔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합의서가 사실이라면, 재중 교민사회를 대표하는 중국한국인회 회장이 사실상 전임 회장 입회 아래 현 회장과 차기 회장 간 밀실담합으로 결정된 것이다. 실제로 합의서 내용처럼 지난해 12월 치러진 11대 중국한국인회 회장 선거는 신동환 톈진한국인회 회장이 입후보 등록 직전 중도사퇴하면서, 단독 입후보한 하정수 회장이 11대 회장으로 당선됐다. 하정수 회장은 지난 1월 신임 회장에 취임했고, 신동환 회장은 수석부회장단에 선임됐다.
   
   
   전임 한인회장 회계 문제 징계
   
   관련 당사자들은 합의서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비밀합의는 아니다”란 입장이다. 중국한국인회 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전임 회장이 제대로 선거 준비를 하지 않았고 선거가 과열되다 보니 67개 지방 회장단에서 선거를 하지 말고 가급적 단일화해서 추대하라는 연대서명이 있었다”며 “한국인회 홈페이지에도 해당 내용을 공개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상당수 회원들이 회비를 미납한 상태에서 단일화를 통한 추대가 불가피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합의서는 한국인회 내 선거관리위원회 결정으로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정관(7조4항)은 ‘회장 임기는 2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1년씩 나누어 맡을 수 없다는 것이 선관위의 해석이었다. 후보 등록을 하기 전이라서 예비후보 간 단일화는 합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선관위의 입장이다. 무효화 결정은 신임 회장이 취임한 직후 내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임 집행부가 지난 4월 정관 개정을 단행한 것도 합의 당사자 간 갈등을 촉발했다. 신임 집행부가 ‘회장 궐위 시 수석부회장이 ‘연장자’ 순으로 직무를 대행한다’는 규정을 정관에 삽입한 것. 이 경우 한국인회 내 3명의 수석부회장 가운데 나이가 비교적 젊은 신동환 부회장은 하정수 회장이 중도사퇴하더라도 연장자 우선 규정에 가로막혀 신임 회장(대행)이 될 수 없다. 단일화를 조건으로 1년 뒤 회장직을 넘겨받는다는 합의서에 반하는 규정이 삽입된 것이다.
   
   결국 “합의서를 무효화하기 위한 꼼수”라며 격분한 신동환 부회장 측에서 지난 4월부터 ‘양심선언’ 형태로 주변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태가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양자 간 단일화를 중재한 것으로 알려진 박원우 전 회장은 회계상 문제까지 불거져 지난 4월 상벌위원회에서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정지되고 대의원 자격을 박탈당하는 징계를 받기에 이르렀다. 1999년 설립된 중국한국인회 내 최악의 내부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신동환 부회장은 “당초 4명이 출마의사를 밝혔다가 2명이 사퇴하고 최종적으로 양자 대결로 갔다”며 “선거까지 가면 후유증도 크다고 하정수 회장 측에서 먼저 단일화 제안을 해와서 양보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신 부회장은 “만일 하정수 회장이 회장직을 1년 더 하고 싶었다면, 먼저 나하고 얘기를 했어야 했다”며 “그러면 내가 양보할 수도 있는 것인데 왜 정치에서나 쓰는 정관 개정이란 꼼수를 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지난해 12월 박원우 전 회장 입회하에 하정수 회장과 신동환 부회장이 자필서명한 합의서. photo 독자 제보

   교민사회 “터질 것이 터졌다”
   
   재중 교민사회에서는 중국한국인회 회장 선출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잡음이 불거져나오자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간 중국한국인회 회장을 비롯해 지역 한국인회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는 과도한 경쟁으로 교민사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한 재중 교민은 “하나로 단합돼 코로나19 난국을 헤쳐나가도 부족할 판에 사분오열돼 재중 한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며 “회장직을 담합한 사람들이 한인사회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지적했다.
   
   중국한국인회 회장은 중국 내 한국 교민을 대표한다는 대외 직함은 물론 사업상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노리는 인사들이 많았다. 외교부에 따르면 중국에 상주하는 재외국민은 미국(106만명), 일본(44만명)에 이어 3위인 30만명가량이지만, 한국인회 측은 각종 형태로 머물고 있는 재중 교민을 80만명가량으로 추산해 왔다. 외국국적동포(시민권자)까지 포함하면 246만명으로, 미국(254만명) 다음으로 큰 동포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자연히 중국한국인회 회장은 주중 한국대사를 위시한 각급 공관장들과 직접 연락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중소기업 대표’ 명함으로는 만나기 힘든 중국 측 고위인사도 ‘중국한국인회 회장’ 명함을 앞세워 만날 수 있어 사업상 도움 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주중 한국공관의 전직 고위 외교관은 “한국인회 회장은 공관 추천으로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대사나 총영사 관저에서 만찬도 할 수 있어 개인적 명예를 노리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특히 대선과 총선에서 재외국민 선거를 실시한 직후부터는 중국한국인회 회장이 차지하는 정치적 위상도 커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태 직후 치러진 2017년 대선 때 재중 교민들의 투표율은 재외공관 가운데 최고인 80.5%를 기록한 바 있다. 자연히 코로나19 전만 해도 중국을 찾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지난 1월 하정수 회장 취임식 때는 정세균 당시 총리를 비롯해, 장하성 주중대사,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전 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영상축사를 보냈다.
   
   특히 한·중 수교 30년과 베이징동계올림픽,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줄줄이 예정된 오는 2022년까지 교민사회를 대표할 한인회장에게는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단일화 합의 때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지원단장’직을 누가 맡느냐도 논의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한국인회 사무국 측은 “하정수 회장은 정관 개정에 일절 관여한 바 없다”라며 “정관을 개정한 것은 기존 정관이 미비해 보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하정수 회장이 취임한 지 아직 1년도 안 됐으니 약속을 안 지켰다고 할 수 없다”며 “몇몇 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임 (지역) 회장들은 원만한 방향으로 가길 바라고 또 힘을 합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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