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조금 다른 인류사]  고천문학 지도 한 장에서 출발한 ‘가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사회/르포
[2668호] 2021.07.26
관련 연재물

[조금 다른 인류사]고천문학 지도 한 장에서 출발한 ‘가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21-07-27 오전 8:55:45

▲ 가야의 고총고분 중 가장 큰 규모로, 일본과의 교류 등 금관가야 후기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김해 원지리 고분은 2017년 발굴이 시작됐고, 2020년 추가 발굴도 있었다. 계속되는 유물 출토는 기존의 역사 해석에 큰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끊임없이 진행되는 대규모 개발로 인해 유물들이 속속 출토되고 있고, 또한 이들의 연대 및 특성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들이 일취월장 발달하고 있다. 그에 따라 고고학계에는 종전까지의 분석틀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연구성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잃어버렸던 역사의 퍼즐 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새로운 발견들은 기존 역사 설명의 프레임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없어진 퍼즐 조각이 많이 발견된다면 점차 원래의 그림이 전체적인 모습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퍼즐 맞추는 사람이 처음부터 틀린 그림을 머릿속에 갖고 있었다면, 없어졌던 퍼즐 조각이 새로 나올 때마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질 테다. 사라졌던 가야 역사의 모습을 되찾는 작업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기원전 4세기 중반 정도에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쪽에서 한반도 쪽으로 대규모 유민의 물결이 있었고, 그 가운데 일단이 한반도 동남 해안 낙동강 하류에 정착하여 ‘가야’라는 이름이 붙은 소국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없어졌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찾아 제 자리에 맞추어 넣는 작업의 결과 나온 추정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퍼즐 조각을 맞추며 새로운 그림을 찾고 있던 필자 자신조차 당황스러워질 정도로 뜬금없다는 것이다.
   
   기록보다 400년이나 앞선 출범 연대, 한반도 남서쪽 해양을 통한 기원―딱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리기 좋은 이 설명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당연히 이 추정은 고고학적‧과학적으로 견고한 다수의 근거들을 종합한 결과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많은 근거를 일일이 들자니 오히려 산만해질 우려가 있다.
   
   필자는 결국 이렇게 추정하게 된 과정을 따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면 필자가 납득하게 된 부분을 독자들과 공유하기가 좀 더 쉬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출발점은 한 장의 지도에서였다. 그냥 지도가 아니라, 2000년 전 우리 조상이 천문 관측을 한 지점이 구체적으로 어딘가를 보여주는 지도다. 요즘은 역사서에 나온 천문 현상에 대한 기록을, 과거와 현재의 우주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컴퓨터 알고리듬에 넣어 돌리면 이런 지도가 나온다. 세계적인 고천문학 권위자 박창범교수가 그런 알고리듬을 개발해서 고려의 역사서 ‘삼국사기’에 실린 일식에 대한 기록을 분석했다.
   
   
▲ 삼국사기 일식 기록을 관련 데이터 맥락에서 컴퓨터로 분석, 관측된 지점을 표시한 박창범 교수의 지도. 빨간 화살표가 가야 천문 관측 중심지로 추정되는 위치. 출처: 박창범(2002),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이 중에서 중국 양쯔강 중류에서 기원전 47년부터 서기 202년까지 약 260년 동안 관측한 자료는 가야의 것으로 추정된다(기사 ‘가야 건국시기는 기원전 1세기(이전)’ 참고) 여기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 ‘가야 건국 시기는 기원전 1세기 이전 중 언제일까?’에서 가야사 출발점 찾기가 시작된다.
   
   우선 인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지역을 개척해서 국가를 세우는 것 같은 큰 변화는 극심한 기후변화 및 자연재해로 먹고 살기 힘들어질 때 생긴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환경역사학의 여러 연구들이 입증하고 있는 이 사실은 생물학적으로도 이치에 맞는 얘기다.
   
   모든 생물은 내부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살아간다. 내면이 어느 정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한, 특별히 새로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변화가 심해져서 그대로 있다간 내부적 항상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 그때는 전략을 바꾼다. 좀 더 안정이 확보될 수 있는 길을 찾아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환경악화로 살던 터전이 피폐해지면, 먹고 사는 게 극도로 힘들어지면서 내부에서 생존 경쟁이 일어난다. 거기서 밀린 사람들 중 주로 기동력이 있는 젊은 남자들을 중심으로 다른 곳에 가서 살 만한 땅을 개척한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지 못했던 거친 땅으로 들어가 개척할 수도 있겠지만, 싸움이나 계략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어쨌든 목숨을 건 노력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에, 정말 못 견디게 살기 힘들어져야 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일이 대규모로 일어나는 때는 대개 기후변화 한랭기 가운데서도 화산‧지진‧가뭄‧이상기후 등 자연재해가 극심해지는 때다. 기온이 낮은데다가 환경 악화가 심해지면 흉년으로 이어지며 지극히 살기 힘든 세상이 된다.
   
   
▲ 기원전 2500년에서 서기 2000년까지의 기후변화‧자연재해 상황과 세계사의 주요 흐름. 작은 삼각형 두 개가 포개어진 것처럼 표시된 곳은 대규모 화산 폭발 등 지각활동이 활발했던 시기를 가리킨다. 동그라미 A는 가야 건국기, B는 부여인의 남하로 가야 철기문명이 업그레이드되는 시기로 추정되는 시점이다. 출처: Randy Mann & Richard Cliff(2017)의 기후변화 그래프를 바탕으로 이진아 작성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에 걸친 시기에도 그런 환경변화가 있었다. 위 그래프에서 동그라미 B로 표시된 부분이다. 이때 백두산이 크게 폭발했고, 그래서 백두산의 서북부 접경, 지금의 만주지방에 있던 부여국에서 흑룡강을 타고 연해주로 나와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일단이 낙동강 하구에 정착하게 됐다.
   
   일단 이 부분은 박창범 교수의 고대 천문관측지 지도가 보여주는 사실과 어긋나지는 않는다. 중국 양쯔강 중류에서 안정적으로 천문 관측이 시작된 기원전 1세기 중반 이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는 느낌이 있다. 부여인에 의한 가야의 시작을 아주 이른 시기로 잡아서 기원전 1세기 초, 혹은 2세기 말에 건국됐다고 치자. 그럼 불과 수십 년 만에 한반도 동남단에서 남해안과 서해안을 모두 훑고 중국에까지 건너가서 안정적인 경제 및 문화 활동 기지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어디서든 이방인으로 들어간 입장에서 원주민을 끌어안으며 새로운 국가의 기틀을 세운다는 게 그리 간단한 작업은 아닐 테다. 후세에 전해지는 신화야 카드무스 왕자의 테베 건국이든 수로왕의 가야 건국이든 단 몇 십 줄의 상징으로 축약하지만, 현실에서 그건 최소 몇 년에서 몇 십 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다. 건국 후 안정되기까지가 그런데, 거기서 도약을 해서 해외진출까지 하려면, 사회 변화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던 고대에 몇 십 년으로는 태부족일 것이다.
   
   
▲ 다양한 형태로 가락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의 위치. 그 중 2번 양쯔강 중류 우한 일대에서는 가락국이 260년 간 안정적으로 천문 관측을 했던 곳으로 추정할 근거가 있다. 지도 출처: Wikimedia Commons 백지도 위에 이진아 표기

   그럼 가야의 탄생 시점은 언제였을까?
   
   힌트가 될 만한 논문이 있다. 2010년 일본 총합연구대학원대학 이창희 박사가 업그레이드된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 측정법(AMS dating)으로 한반도 남해안의 철기 유물 1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다. 한반도 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기원전 4세기의 것임을 밝혀냈다. (종전에는 기원전 2세기 중국으로부터의 전래설이 대세였다.)
   
   마침 위 그래프 A로 표시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에 철기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기원전 4세기 중엽은 정확히 한랭기에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가 극심한 때였다. 동남아시아 등 지각활동에 취약한 지역에 살던 이들이 안정된 땅을 찾아,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한반도 남해안으로 왔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동남아시아 원주민이 왔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야사와 관련해서는 특히 의미심장한 사실이 밝혀졌다. 남해안 중에서도 낙동강 하구 유역에서는 기원전 4세기부터 남방식 주조 철기가 나타나는데, 기원전 2세기에는 북방식 단조 철기가 나타나 두 가지 유형이 혼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북방식 단조 철기는 부여인이 전파한 것이다. 그 전파 시기보다 약 200년 전부터, 이 지역에선 다른 유형의 철기를 만들어 쓰고 있다는 얘기다.
   
   그 200년 앞선 철기 제작인들이 ‘가야’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유를 다음 기사에서 이어 보기로 하자.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트업 프론티어
나는 체인지메이커다
할리우드통신
우리들병원
6대 온라인 커뮤니티
과학연구의 최전선
신협 어부바 콘텐츠 공모전
마감을 하며
아무도 못 가본 ‘위드코로나’ 정장열 편집장

사람들의 인내를 시험이나 하듯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이미 사상 최대치를 기록...

주간조선 대학생 기사 공모
주간조선 칼럼마당
기업소식
네이버 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