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9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찰에서 이군의 가족들이 49재를 진행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9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찰에서 이군의 가족들이 49재를 진행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9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한 사찰에선 이모(19)군의 명복을 비는 49재가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이날 이군의 영정 옆엔 빨대 꽂힌 바나나우유가 놓였다. 30분 일찍 사찰에 모인 이군의 가족들이 준비한 것인데, 이들은 매 제사마다 이군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하나둘 올린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날도 여느 때처럼 이군이 다음 생에 더 좋은 곳에 태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사찰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1시간가량 염불을 외웠다. 종무원 지시에 따라 중간중간 영정 앞에 술잔을 올리는 가족들의 모습은 담담했다.

이군이 세상을 떠난 건 지난 7월 27일로 벌써 2주일이 지났다. 가족들은 이군이 연기처럼 사라진 지금의 세상이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이군의 아버지 이동현(59)씨는 “아들이 평소 캠핑이나 산 같은 곳을 좋아해 집 근처 사찰에서 49재를 진행하는 것인데, 영정을 보고 있노라면 아들을 이렇게 죽인 게 ‘부산시교육청’이란 것이 머리에서 가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매사에 적극적, 모범이 되는 아이”

이들 가족에게 이군은 ‘똑’ 부러지는 아들이었다. 이군은 중학생 때부터 공무원을 꿈꿨다. 고등학교 진학 당시 일반고가 아닌 특성화고에 다니기로 결심한 것도 필요 기술을 익힌 후 공무원 시험에 하루빨리 응시하고 싶어서였다. 이군의 어머니 김모씨는 “고교생 신분으로 시험을 일찍 볼 수 있는 제도를 알고는 이 길을 택했다”며 “대학 공부는 이후에 하겠다는 계획이었다”라고 말했다. 이군은 학교에서 건축토목을 전공했다. 1학년 때 캐드(CAD) 자격증 중 하나인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를 취득했고 2·3학년 때는 실내디자인 관련 NCS 등을 이수했다. 1·2학년 당시 학업우수상을 수여한 과목도 적지 않았다.

이군은 재학 기간 3년 내내 반장을 도맡았고, 항상 제일 일찍 등교해 교실 문을 열 정도로 성실했다. 친구들은 이런 이군을 좋아했고 반장으로서도 잘 따랐다. 생활기록부엔 이군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적혀 있다.

‘본인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끝내고 목표가 뚜렷하며 매사에 적극적’ ‘학습 계획을 자기주도적으로 수립하고 추진’ ‘반장으로서 학우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면학 분위기 조성에 힘씀’ ‘갈등 상황에서 학우 간의 중재 및 협력을 이끌어 냄’ ‘용모가 단정하여 급우들에게 모범이 됨’….

이런 이군이 돌연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건, 부산시교육청 기술직군 지방공무원 경력경쟁 임용시험 최종결과가 발표된 다음날인 7월 27일이었다. 이 임용시험에는 부산시 소재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졸업자 및 졸업예정자 중 일정 수준의 성적, 관련 자격증 보유로 학교장 추천을 받은 학생들만 응시할 수 있었다. 평소 이 시험을 염두에 뒀던 이군은 최종 합격 인원 3명을 뽑는 시설(건축) 직렬에 응시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군은 올 6월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7월 17일 최종면접까지 마쳤다.

최종합격자 발표 예정일인 7월 26일 오전 10시. 이군은 부산시교육청 나이스 교직원 온라인채용 사이트에서 ‘최종합격’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합격 문구는 한 시간 뒤쯤 ‘불합격’으로 번복됐고, 시교육청 사이트 고시·공고란에 올라온 최종합격자 명단엔 이군의 수험번호가 빠져 있었다. 당시 교육청은 이군에게 “전산상에 오류가 있었다”며 “공고 게시판에 오른 수험번호가 최종합격자 명단”이라고 전했다.

이군은 당초 교육청 설명대로 행정상의 착오라 생각했지만 이날 오후 함께 시험을 치렀던 같은 반 친구의 필기 점수가 자신보다 낮음에도 최종합격한 사실을 알곤 면접 과정에 의구심을 느꼈다. 어머니 김씨는 “학교 담임 선생님도 그렇고 취업지원부 담당자도 그렇고 최종합격을 가르는 건 필기 점수이지 면접이 아니라는 설명을 줄곧 내놓았다. 아들이 면접학원에 다니는 것을 장려하지 않을 정도였다. 면접에선 응시자가 결격사유가 있는지 정도만 본다고 다들 알았다”라고 말했다.

부산교육청 공정성 논란

이날 이군과 그의 어머니, 이모는 교육청을 직접 방문해 설명을 듣기로 결정했다. 교육청 담당자는 가족들에게 이군이 속해 있던 면접조 15조 응시자 16명의 면접시험 평정표를 모두 보여줬는데, 여기엔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면접은 3명의 시험위원이 지원자들의 5개 평정 요소(공무원으로서의 정신자세, 전문지식과 응용능력,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예의·품행 및 성실성, 창의력·의지력 및 발전가능성)를 상·중·하로 평정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면접시간은 개인당 10분이었다.

당시 16명 중 13명의 평정표에서 A면접관과 B면접관의 평정 결과는 동일하게 나타났다. 13명의 평정 요소를 모두 ‘중’으로 평가했고, 일부 지원자에게 ‘하’를 준 항목 등도 일치했다. 변별력을 부여하고자 상중하를 고루 매긴 흔적이 엿보인 건 C면접관뿐이었다. 이군의 이모는 “모든 평정 요소를 올(All) ‘중’으로 매기는 게 말이 되나”라며 “성의 없이 채점했다는 느낌이 컸다”라고 말했다.

이군은 필기시험 점수로는 3등으로 합격선에 들었다. 교육청 담당자는 그런 이군이 불합격한 이유에 대해 “동일 직군에 응시한 응시자 중 일부가 3명의 면접관 중 2명의 면접관으로부터 올(All) 상을 받아서다”라고 설명했다. 지방공무원 임용령 제50조의 3에 따르면 시험위원의 과반수가 평정 요소 5개 항목에서 모두 ‘상’으로 평정할 경우 해당 응시자에겐 ‘우수’ 등급이 부여된다. 이 우수 등급을 받으면 필기 점수가 낮더라도 최종합격할 수 있다. 면접조 15조에서 이렇게 우수 등급을 받아 최종합격한 응시자는 이군의 친구를 포함해 3명이었다.

면접관들은 이 3명에게 우수 등급을 부여한 이유를 따로 기재하진 않았다. 통상적으로 여타 시도교육청에선 면접 과정에서 우수 등급을 부여해 최종합격 명단에 올릴 경우 그에 따른 사유를 기록하도록 하는데, 부산시교육청은 달랐다. 당시 ‘상’과 ‘중’을 가르는 기준이 뭐였냐는 가족들 질문에 교육청 담당자는 “면접관의 권한이기에 따로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그날따라 이 학생이 컨디션이 너무 좋았겠죠”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군의 가족들은 고의적인 특정 지원자 밀어주기가 없었다 해도 시험 공정성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 김씨는 “고작 10분 동안 지원자의 창의력, 성실성 등을 어떻게 상, 중으로 갈라 합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평가기준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도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지방공무원 면접 평정표가 외부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군의 가족들이 평일 오전마다 부산시교육청 정문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photo 이동현
이군의 가족들이 평일 오전마다 부산시교육청 정문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photo 이동현

죽기 전 “계란으로 바위 치기…”

이군은 평정표를 받아든 이후 가슴을 손으로 쥐어뜯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합격 번복보다도 ‘자신이 왜 면접에서 중을 받았는지’ ‘상을 못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듣지 못해서였다. 이군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교육청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진 못했다. 교육청 담당자와 이군의 통화 녹취에 따르면 이군은 “이걸 어떻게 납득하고 어떻게 다음 시험을 준비하겠습니까. 다음에 또 치면 된다고 하시는데 내년에 또 뽑으리란 보장이 있나요. 다음 시험에도 필기시험 잘 봐도 면접에서 또 이러면 어떡하나요”라고 재차 물었다. 이군은 그날 가족들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이날 저녁 이군은 자살기도를 하는 등 심신불안의 모습을 보였다. 호흡은 가빠지고 체온이 갑자기 올라 새벽 중엔 응급실로 향하기도 했다. 이군은 병원에서 진정제를 맞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아버지 이씨는 “공부를 아무리 해도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들에게 절망으로 다가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이군이 교육청 담당자에게 전화상으로 남긴 마지막 목소리는 차분했다. “지금 제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묻자, 담당자는 “안내해 드릴 수는 없고, 해드릴 수 있는 설명은 정말 다 드린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날 오후 이군은 자신의 동생이 장염으로 가족들과 입원 절차를 밟는 사이, 자신의 방 안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사인은 ‘외인사’. 이군이 그전까지 부산시교육청에 전화한 건수는 총 30여건, 녹취된 통화는 17개였다. 여기에 평가기준 등과 관련한 교육청 회신은 없었다.

가족들은 이군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안 한 교육청이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이 자살 기도를 하려 한다고 말해도 묵묵부답이었다”며 “내년 시험부터는 타 시도교육청처럼 필기서부터 1배수로 뽑겠다든지 혹은 면접관에게 알아보고 연락주겠다고만 그냥 말했어도 이런 극단의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수사, 경찰청 반부패수사대로 이관

이군의 동생이 형의 죽음을 인지한 건 그가 세상을 떠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였다. 당시 극심한 장염을 앓던 터라 퇴원이 쉽지 않았다. 이군의 부모는 형의 부고 소식을 차라리 나중에 알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어머니 김씨는 “큰 아들이 일부러 자기 (하늘로) 가는 모습을 동생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아프게 했나 보다”라고 말했다. 장례식 당일 이군의 친구들은 동생을 대신해 영정 사진 등을 들며 일을 도왔다. 친구들은 “단순히 시험에 떨어졌다고 자살할 친구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군의 죽음은 가족들의 일상을 뒤바꿔 놓았다. 이군의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 두 명은 매일 아침 7시30분부터 9시까지 부산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2시간 가까이 들고 있는 피켓엔 ‘공무원 합격 프리패스권 우수제도 폐지하라’ ‘공시생들 무시하나 상상상상상 중중중중중’ ‘민원 묵살해 하늘나라 가게 한 공무원 징계하라’ 등이 적혀 있다. 공정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면접으로 합격생을 배출하는 ‘지방공무원 임용령 50조의 3’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가족들의 주된 지적이다. 이군의 사촌 누나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관련 글은 지난 8월 11일 기준 7000명이 조금 넘는 동의 수를 얻었다. 이군의 이모는 “조카가 세상을 떴지만 그의 죽음으로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뀌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하려 한다”며 “그걸로 우리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이씨는 지난 7월 30일 해당 시험 관계 공무원들을 부산진경찰서에 직무유기 및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부산지방경찰청 측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해당 사건을 경찰청 산하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로 이관했다.

부산시교육청은 김석준 교육감의 지시로 임용시험 전반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지만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교육청 측은 “최종합격 발표 과정에서 전산상의 오류가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공무원 시험은 모두 규정 절차대로 진행했다”며 “면접 과정에서 최종합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이나 ‘하’는 보통 안 주려는 경우가 많아서 ‘중’으로 줄 세우기 한 듯한 모습이 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향후 경찰청 조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는 것이 교육청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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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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