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제작된, 아르메니아 예베란 소재 아르기쉬티 석상. 아르기쉬티는 고대 제철왕국 우라르투의 왕이었는데, 현재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이라크에 걸쳐 있는 방대한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우라르투는 초기 제철사회 중 하나로 거의 전설처럼 전해지다가, 최근 철기 유물이 많이 출토됨에 따라 부쩍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CC License, Eupater 작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gishti_monument.JPG
2000년대에 제작된, 아르메니아 예베란 소재 아르기쉬티 석상. 아르기쉬티는 고대 제철왕국 우라르투의 왕이었는데, 현재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 이라크에 걸쳐 있는 방대한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우라르투는 초기 제철사회 중 하나로 거의 전설처럼 전해지다가, 최근 철기 유물이 많이 출토됨에 따라 부쩍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CC License, Eupater 작품,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gishti_monument.JPG

아래 지도는 ‘가야’라는 명칭과 철기 유물이 발견되는 곳과 관련해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표시한 것이다. 검은 화살표는 가야라는 명칭과 철기 유물이 한 지역에서 보이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정확히 철기문명 전파의 해양 루트를 따라 이어져 있다. 한반도에 있는 두 개의 화살표 중 오른쪽 것은 김해 및 부산 등 옛 가야 지역이며, 왼쪽 것은 현재 전남 광양시 가야로의 위치로, 역시 인근에서 철기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 곳이다.

기원전 350년 무렵으로부터 2400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남쪽 아시아 해양부 지역에서 가야의 흔적이 상당히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상고대 철기 문명 교류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가야’와 ‘철기문명의 흐름’은 상당히 높은 연관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들은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 있어서 화산, 지진, 해일 등 지각활동이 없는 안정된 지형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인도 북부 가야에서 한반도 동남부 가야에 이르기까지, 철기 유물 출토지와 가야 명칭이 남아 있는 곳의 위치. (오른쪽)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화산 폭발이 잦은 지역. 왼쪽 지도의 검은 화살표 표시와 오른쪽 지도의 붉은 화살표 표시는 같은 곳이다. 따라서 가야라는 지명 및 상호명은 동남아시아 해안가 중 화산이나 지진 등이 없는 안전한 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가야들은 해로를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며, 일본과 중국 본토 쪽은 거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백지도 위에 Hsiao-chun Hung 호주국립대학교 교수의 논문(2016)에 게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재. ) Eric Gaba 작품, Wikimedia Commons License, file:///C:/Users/user/Desktop/Spreading_ridges_volcanoes_map-en.svg 중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부분
(왼쪽) 인도 북부 가야에서 한반도 동남부 가야에 이르기까지, 철기 유물 출토지와 가야 명칭이 남아 있는 곳의 위치. (오른쪽)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화산 폭발이 잦은 지역. 왼쪽 지도의 검은 화살표 표시와 오른쪽 지도의 붉은 화살표 표시는 같은 곳이다. 따라서 가야라는 지명 및 상호명은 동남아시아 해안가 중 화산이나 지진 등이 없는 안전한 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가야들은 해로를 따라 동남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 이어지며, 일본과 중국 본토 쪽은 거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백지도 위에 Hsiao-chun Hung 호주국립대학교 교수의 논문(2016)에 게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재. ) Eric Gaba 작품, Wikimedia Commons License, file:///C:/Users/user/Desktop/Spreading_ridges_volcanoes_map-en.svg 중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부분

지금까지는 인도 비하르주 가야시에서 출발해서 동쪽으로 가면서 가야라는 명칭을 더듬어 왔다. 거기서 서쪽으로 가면 어떨까?

구글에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인도 서쪽으로, 가야라는 지명으로 검색을 하면 딱 한 곳이 나온다. 인도 북부에서 터키로 가는 길목에 있는, 현재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국경 근처에 위치한 ‘가라 가야’(Gara Gaya)라는 소도시다. 구글 지도에서 사진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개발이 많이 되어 있는 곳 같진 않았다. 한적하고 황폐한 산지에 자리한 작은 농촌 읍내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뒤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바로 옆을 하천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지도와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이곳이 지금처럼 황폐해지기 이전, 상고대 철기시대였다면 제철기지로 적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추가적인 자료 검색 결과, 이곳은 기원전 13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제철 왕국으로 이름을 떨쳤던 고대 ‘우라르투’(Urartu) 왕국의 중심지에서 아주 가까웠다. 이 일대의 철기 유물 연대는 기원전 12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전 900년대에 전성기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라르투는 ‘불의 나라’라는 의미라고 한다. 예로부터 이곳은 그 별칭으로 불려왔다고 하며, 현재 이 지역에 위치한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국가 상징도 흰 별 가운데 타오르는 불길이 그려진 모양의 것이다.

이 이름은 기원전 13세기, 남서쪽으로부터 이곳을 침공했던 아시리아의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아시리아는 농경지대였던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있어서 초기 철기 문명 전파 경로에선 조금 비껴 있는 위치에 있었고, 따라서 13세기 침공 당시엔 제철 사회가 아니었다. 당시 아시리아인들은 이곳에 있었던 다수의 제철 작업장에서 밤낮 없이 환히 불이 피어 있는 광경을 처음 봤을 테니 ‘불의 나라’라는 인상을 충분히 받았을 만하다.

특히 가라 가야가 있는 우라르투 동부 지역은 고대로부터 질 좋은 철광석과 동광석의 생산지였다. 이 지역에서는 아래 지도 옆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대단히 정교하게 가공된 철기 및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고 있어 그 옛날 이곳의 철기문명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왼쪽) 고대 중동지방의 대표적 광물 생산지와 우라르투 및 가라 가야의 위치. 아시리아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 상류에 위치해 있는 비옥한 평야였지만, 우라르투는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산지에 위치해 있어, 거리는 가까워 보이나 전혀 다른 생태계에 속해 있었다. (오른쪽 위) 우라르투의 역사적 유산을 승계하는 대표적 현대 국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국가 상징. (오른쪽 아래) 우라르투 철기문명의 유물인 철제 벨트. 질 높은 철 소재와 정교한 만듦새가 눈에 띈다.
(왼쪽) 고대 중동지방의 대표적 광물 생산지와 우라르투 및 가라 가야의 위치. 아시리아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 상류에 위치해 있는 비옥한 평야였지만, 우라르투는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산지에 위치해 있어, 거리는 가까워 보이나 전혀 다른 생태계에 속해 있었다. (오른쪽 위) 우라르투의 역사적 유산을 승계하는 대표적 현대 국가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국가 상징. (오른쪽 아래) 우라르투 철기문명의 유물인 철제 벨트. 질 높은 철 소재와 정교한 만듦새가 눈에 띈다.

그런데 우라르투, 즉 현재의 아르메니아 고원 북동쪽 저지대에서 출토되는 철기 유물의 연대는 인도보다 1000년 이상 뒤쳐진다. 지도에서 거리만으로 보기엔, 이곳이 터키의 인접지역이며, 인도는 거기서 한참 멀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거리가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당연히 철기문명이 우라르투의 가라 가야를 거쳐서 더 동쪽에 있는 인도에 전해졌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왜 인도에서 훨씬 더 빠른 시기의 유물이 나타날까?

역사에서 움직임을 판단할 때, 지형지리와 환경, 그리고 인간 사회의 기술 수준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도 보인다.

철기 문명 발상지인 아나톨리아에서 가라 가야까지가 거리는 훨씬 짧지만, 이 길은 높고 험한 산이 연이어 있는 육로다. 굳이 가려면, 아나톨리아에서 가까운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페르시아만으로 나와서 다시 거기서 티그리스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는 편이 그래도 낫다. 즉 아나톨리아와 가라 가야는 연결성이 아주 좋지 않은 것이다.

반면 아나톨리아에서 인도에 접근하는 것은 의외로 무난하다. 유프라테스 강의 최상류 지역은 철기문명 발상지로 이어진다. 기원전 3000년 무렵, 유프라테스 강 유역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항해술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철기문명이 초기부터 페르시아만으로 나와 인도 해안을 끼고 동인도 쪽으로 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도의 서쪽에도 가라 가야라는 지명과 상고대 제철제국의 역사를 갖춘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철기 문명의 전파 흐름과 지형적 접근성을 놓고 보면, 터키에서 인도와 가라 가야에 각각 별개의 루트로서 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좀 터키 쪽으로 가까운 곳에는 가야라는 지명이 없을까?

가라 가야는 터키 인접 지역이다. 터키엔 가야(Gaya)라는 지명이 없지만, ‘카야’(Kaya)라는 지명은 두 군데 있었다. 둘 다 철기문명의 발상지로 추정되는 아나톨리아 산지 인접 바닷가의 도시다. 카야라는 지명은 가야와 동일한 어원에서 출발한 것일까?

그렇게 볼 근거가 없지는 않다. 터키의 카야 두 곳의 위치는 상당히 다르지만, 모두 철광석 산지에 인접해 있는 항구다. 또한 ‘카야’라는 단어가 현재는 주로 ‘바위’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고대어에서는 ‘바위가 많은 산’을 뜻했다고 한다. 이곳의 철기 문명 발상지 인근은 그렇게 철광 암석을 품은 산지 지형을 하고 있다. 따라서 제철 기지가 있는 곳 자체를 ‘카야’라고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카야(Kaya)까지 검색어로 확대하면 일이 복잡해진다. 터키 외에도 아프리카에서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그런 지명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의 관심을 아시아에 한정시키자. 다만 ‘가야’라는 명칭이 인도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못 박을 게 아니라 지구상 최초의 철기집단이 활동했던 소아시아(아나톨리아)에서부터 전해져 온 것일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철기문명의 육로 및 해로 이용 확산 경로. 파란 선으로 그려진 해로 쪽은 최근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서, 그 상황 및 지형, 해류 등으로 고려하여 비교적 견고한 근거 위에 추정할 수 있었다. 반면 갈색 선으로 그려진 육로 쪽은 유물 출토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최신 연구도 거의 없어서, 20세기에 주로 추정했던 단순한 동진 경로에 지형만 고려하여 표시했다. 단, 부여국에서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낙동강 하류에 이르는 노선은 최근 충분한 유물 출토에 의해 고증되어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세계 지형도 일부에 최근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합하여 표시.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철기문명의 육로 및 해로 이용 확산 경로. 파란 선으로 그려진 해로 쪽은 최근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서, 그 상황 및 지형, 해류 등으로 고려하여 비교적 견고한 근거 위에 추정할 수 있었다. 반면 갈색 선으로 그려진 육로 쪽은 유물 출토 상황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최신 연구도 거의 없어서, 20세기에 주로 추정했던 단순한 동진 경로에 지형만 고려하여 표시했다. 단, 부여국에서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낙동강 하류에 이르는 노선은 최근 충분한 유물 출토에 의해 고증되어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세계 지형도 일부에 최근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합하여 표시.

이 바닷길 철기문명의 흐름은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을 따라 페르시아만으로 나와 인도 서부 해안에서 남단을 돌아 다시 동부 해안으로 북상하면서, 북부에서 베다 문명의 꽃을 피웠다. 이어서 갠지스강을 따라 바다로 나와 동남아시아에서 사후인 문명도 번창시켰다. 여기서 환경 격변의 시기를 맞아, 빠른 속도로 적합한 곳을 찾아 이동한 결과 한반도 남단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아시아에서 출발, 주로 바닷길을 이용해서 전파되었던 남부 유라시아 철기문명의 경로가 완성됐다.

철기문명 전파에는 또 하나의 경로가 있다. 20세기까지 많이 연구되었던 육로 경로, 즉 소아시아에서 흑해 쪽으로 올라가 유라시아 대륙 북부를 가로질렀던 길이다. 이 두 가지 경로는 필연적으로, 유라시아 대륙 동남단에 위치한 한반도, 그 중에서도 동남단인 낙동강 하구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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