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는 김무성이 잘하고 있는데 문재인, 안철수는 저거(두 사람의) 할배가 와도 안 될 끼다.” “경남중·고등학교 나온 문재인이 부산의 ‘성골’ 아이가?” “낡은 정치에 신물이 난 부산 사람들은 부산 출신 중 안철수가 젤 참신하다고 보지예.”

부산 민심(民心)이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3명의 정치인을 두고 벌써부터 끓어 오르고 있다. 기존 여야(與野) 두 축인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과 여기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안철수신당’의 대표 선수들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의원 등 3명 모두가 부산과 연고가 아주 깊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다.

김무성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중동고와 한양대를 나왔다. 이후 고 김영삼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뒤 청와대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거쳐 부산에서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경남 거제 출신이지만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모두 부산에서 마친 뒤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동안 알게 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민정수석을 지낸 뒤 2012년 부산에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안철수 의원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중앙중학교와 부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하고 서울대 교수 등을 지내다 2012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후보직을 사퇴한 후 2014년 서울에서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photo 연합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photo 연합

그래도 새누리

3명 모두 부산을,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거나 정치적 고향 또는 삶과 정치적 터전으로 삼고 있다. 지역정서가 여전한 우리나라 정치지형상 소위 말하는 ‘텃밭’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한 서로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부산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 3명이 동시에 상위 지지율을 보이면서 대결 구도를 형성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에 대한 부산 민심도 복잡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김무성 대표는 부산에서만 4선을 지낸 지역의 대표 중진 정치인으로, 새누리당이라는 간판에 넉넉한 풍채의 외모 등 여러 장점을 지녀 부산 시민들에게는 안정적 이미지와 결합돼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김 대표는 여기에 전통적인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이라는 확실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 부산에서 평생을 산 김성자(70)씨는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을 지지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문재인이 김무성과 정면으로 붙지 못하는 것은 부산에서는 김무성과 붙으면 자기가 안 되는 걸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 지역지인 국제신문이 지난해 12월 21~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대표와 문 대표의 부산 영도구의 가상 대결에서 김 대표는 51.4%를, 문 대표는 21.4%를 기록했다. 최근 문 대표가 당 내에서 보여준 리더십의 공백 등도 이 같은 하향세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말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같은 지지의 근간에는 지역감정을 배제할 수 없다.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최모(65)씨는 “김무성과 문재인은 사실상 경상도와 전라도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대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부산 시민들이 문재인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전라도 쪽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부산 지역에 소홀히 해도 새누리당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맹목적 지역정서에서 ‘미워도 새누리’라는 등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교직원 정모(43)씨는 “부산 민심이 김 대표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라고 봐야 한다”면서 “만약에 반기문 유엔총장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나선다면 많은 부산 사람들이 반 총장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photo 연합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photo 연합

문재인 사람은 좋은데…

문재인 대표는 우선 사람 됨됨이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민정수석을 하던 시절이나 사망 이후 보여준 게 조용하지만 강단 있고 청렴하다는 것이다. 소위 ‘나대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부산 민심에 파고들고 있는 편이다. 당선되기 쉬운 지역을 골랐다는 지적도 있지만 문 대표는 이런 이미지 덕분에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텃밭인 부산 사상구에 출마, 가볍게 당선됐다. 회사원 김모(50)씨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숨어 있는 부산의 야도(野都) 기질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대 총선에서 부산의 정당 지지율이 새누리 5,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4의 구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부산의 새누리당 정당 득표율은 51.3%, 야권연대는 40.2%(민주당 31.78%, 통합진보당 8.42%)로 11.1%포인트 차에 불과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지역주의에 바탕한 대립적 정치 구도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고, 이런 사정 때문에 문재인 대표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부산 서면에서 장사를 하는 이모(64)씨는 “문재인은 사람은 좋은데 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설업을 하고 있는 김모(45)씨는 “문 대표 주변에 있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모종의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듯한 노무현 사람들의 성향이 부산 사람과 맞지 않는 것 때문에 문 대표 자신이 인정을 못 받는 면도 크다”고 말했다. 거기에 안철수 의원이라는 변수까지 가세해 문 대표가 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부산 연제구 직장인 임영주(40)씨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고 확실한 존재감에 대한 이미지도 다소 약한 것 같다”면서 “지역 민심 중 보수층은 김 대표를, 변화를 원하는 층은 안 의원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 가운데 낀 문 대표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은 부산이 고향이지만 지역 기반이 가장 약하다. 고등학교까지 나온 것 외에는 정치를 포함해 부산에서의 활동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기존의 타성이나 구태를 대신한 정치적 역할을 지역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건설 자재업을 하고 있는 이모(46)씨는 “지역 구도도 탈피하고 당도 바꾸려면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데 마침 안 의원이 그 대안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식상한 그동안의 정치 행태를 바꾸고 싶은 부산 시민이 많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 ⓒphoto 뉴시스
안철수 의원 ⓒphoto 뉴시스

안철수? 부산에서 뭐했나?

그렇지만 안 의원의 등장에 대해서 부산 민심은 지금까지는 대체로 차갑다. 해운대에 사는 강모(38)씨는 “전국적 지지율이나 인지도는 높을지 모르지만 안철수가 부산에서 뭘 했냐?”면서 “안 의원이 부산의 대표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택시기사(57)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지더라도 소신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 부산에서는 먹힌다”면서 “부산에서 당선 안 될 것 같아 서울에서 출마한 것이나 지난 대선에서 물러난 것, 이번 탈당도 부산 시민에게는 명분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부산은 물론이거니와 확실한 지지층이 없으니까 호남 표에 기대려고 하는 것 아니냐?”면서 “여러모로 부산 민심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까지 시일이 촉박해 지역 인물 영입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지역 민심이 움직이기엔 안 의원의 자체 역량과 조직 기반이 너무 약해 자신의 고향이지만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냉혹하게 평가받게 될 곳이 부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여론은 지난해 말 부산 지역 신문사인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이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돼 나타나고 있다. 부산일보가 20대 총선 100일을 앞두고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부산 시민의 지지율이 김 대표 32.2%, 문 대표 14.5%, 안 의원 10.2%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가 문 대표와 안 의원을 더블 스코어 이상 따돌리며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창당이 예상되는 안철수신당을 포함한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새누리당이 58.1%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더민주 14.8%, 안철수신당 8.9%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낙동강 벨트’라고 불리는 서부산의 사상, 사하갑·을, 북강서갑·을과 경남 김해·양산 지역에서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등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율을 보여 지난 총선에 이어 야당 바람이 이번 총선에서 또다시 불어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며, 지난 19대 총선 당시 민주당은 민홍철(김해 갑), 김경수(김해 을), 문성근(부산 북·강서 을), 문재인(사상), 조경태(사하 을) 라인을 내세워 이 중 3명을 당선시켰다. 지역의 한 정당 관계자는 “하지만 최근 민주당의 분열 사태 등을 감안할 경우 부산 민심이 지난 총선 때처럼 움직여줄지는 알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신문의 부산·울산·경남(PK) 지역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도 김 대표가 25.2%, 문 대표 13.8%, 안 의원 11.0% 순으로 나타나 김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압도적이었다. 부산을 비롯한 울산과 경남에서도 김 대표와 새누리당이 압도적인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요즘 부산 지역 정치권에서는 ‘18’ ‘2’ ‘1’이라는 숫자로 3명이 오는 총선 결과에 따라 맞이하게 될 희비를 묘사하기도 한다. 부산에는 모두 18곳의 선거구가 있는데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6곳, 민주당이 2곳을 차지했다. 오는 총선에서 새누리당 김 대표는 모든 선거구를 석권하는 압승을 해야 “역시 김무성”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18’로, 문 대표는 민주당이 부산의 선거구 2곳마저 지키지 못할 경우 ‘부산마저 무너진다’는 치명적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에 ‘2’, 안 의원은 최소한 한 석이라도 얻어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1’로 대변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쉬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또 앞으로 총선까지 남아 있는 기간에 어떻게 정치적 상황이 달라지고,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 등이 발생해 지역의 여론과 민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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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권경훈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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