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8·9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 왼쪽부터 정병국(5선)·이주영(5선)·김용태(3선)·이정현(3선).
새누리당 8·9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 왼쪽부터 정병국(5선)·이주영(5선)·김용태(3선)·이정현(3선).

4·13 총선 패배로 흔들거리는 새누리당을 이끌 새 당대표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의 막이 올랐다. 차기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8·9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해온 후보들이 속속 출마 선언을 하면서 집권 여당의 당권(黨權)의 향방을 놓고 한판 싸움이 시작됐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박근혜 정권 임기 후반 집권당의 역학 구도는 물론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도 크게 요동칠 수 있다. 특히 여권 주류인 친박(親朴)계를 대표해온 최경환 의원이 지난 7월 6일 당대표 경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새누리당 대표 경선 레이스가 시작부터 출렁거리고 있다.

‘진박(眞朴)’과 ‘비(非)진박’의 분화?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 뽑는다. 또 당대표의 권한도 이전보다 한층 강화해 ‘주요 당직자 임명권과 당무 통할권’을 주기로 했다. 이른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현행 집단지도체제에서 당대표는 당직자 임명이나 당무 처리에서 다른 최고위원과 마찬가지로 1표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었다. 과거 한나라당 시절 ‘제왕적 총재’라 불릴 정도로 권한이 강했던 총재 체제가 사당화(私黨化) 논란을 가져오자 새누리당은 2004년 이 같은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었다. 하지만 이런 집단지도체제는 20대 총선 공천 파동에서 보듯 당대표와, 그와 반대 계파에 속한 다른 최고위원들이 반목할 경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반성이 일면서 당대표의 권한을 강화한 새 지도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당대표의 권한이 한층 강화된 만큼 오는 8월 9일 치러지는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친박(親朴) 대 비박(非朴)’ 대결 구도가 더 격화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박근혜 정권 창출 세력이 임기 후반 여당을 책임져야 한다”는 친박계의 주장과, 이에 맞선 비박계의 “차기 대선에서 재집권하려면 당의 체질과 주류 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논리가 맞부딪치는 치열한 ‘계파 투쟁’이 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특히 이번에 뽑히는 당대표는 내년 대선 후보 경선 등 여권의 대선 구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까지 친박계에선 5선의 이주영 의원(경남 창원마산합포)과 3선의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이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비박계에선 강성 비박으로 꼽히는 3선의 김용태 의원(서울 양천을)이 출마를 선언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5선의 정병국 의원(경기 여주양평)이 7월 10일 출마를 선언한다.

이런 가운데 당내의 관심은 다수파인 친박계의 당권 장악 여부에 쏠리고 있다. 친박계는 박근혜 정권의 주류 세력임에도 2014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김무성 전 대표에게 넘겨줬다. 그런 친박계로선 총선 전부터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 탈환을 목표로 세워놓았고, 총선 공천도 이런 전략 아래 이뤄졌다는 얘기가 많았다.

당내에서 거론되는 친박계의 ‘당권 탈환 시나리오’의 핵심은 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최경환 의원(4선·경북 경산)의 당대표 출마였다. 친박계 핵심인 최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진박(眞朴) 마케팅’을 주도하는 등 사실상 공천을 막후에서 조정했다는 의혹을 비박계로부터 받아왔다. 숱한 논란에도 최 의원이 진박 마케팅을 벌인 것은 친박계 인사 중심으로 당을 재정비해 총선 이후 당권을 장악해 집권 후반기 여당을 친박 중심으로 끌고 가겠다는 전략 때문이란 분석이 많았다. 친박계 일각에서 거론되는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면서 내년 대선 국면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해 차기 대선을 친박계 주도로 치른다’는 구상의 첫 단추가 최 의원의 당권 장악이란 것이다.

하지만 당대표 출마가 유력시되던 최 의원은 결국 장고(長考) 끝에 불출마를 선택했다. 그는 여러 이유를 내세웠지만 총선 패배 책임 공세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상황에서 애초의 구상을 밀어붙이기엔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그러자 당내에선 그의 불출마로 여당 내의 지루한 ‘친박 대 비박’ 대립 구도가 청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최 의원이 빠지면서 친박계로 분류되긴 하지만 계파색이 옅은 이주영·이정현 의원이 비박계의 정병국·김용태 의원 등과 경쟁하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박계 의원들이 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친박계의 큰형’으로 통하는 서청원 의원의 출마를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나오면서 경선 구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당의 분란을 봉합하고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국회 최다선(最多選)인 서 의원(8선)의 경륜이 절실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친박이 당권을 놓칠 수 없다”는 속내도 작동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8선 서청원 의원의 선택은

이와 관련해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은 “친박계가 당권을 놓치면 계파의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친박계가 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친박계로선 고민”이라며 “당권 경쟁이 친박 핵심부가 배제된 구도로 흘러가는 건 용인할 수 없다”라고 했다. 친박계가 전당대회를 계기로 ‘진박’과 ‘비진박’으로 분화하면서 세(勢)가 위축되고, 나아가 내년 대선 국면에서 와해의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친박계가 ‘최경환의 대안으로 서청원’을 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범박계로 분류돼온 이주영 의원은 출마 선언에서 사실상 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책임론을 제기했고, 이정현 의원도 ‘계파 타파’를 내걸었다.

친박계 의원들의 강력한 출마 요청을 받고 있는 서청원 의원은 일단 “내가 지금 당대표를 맡을 상황은 아니다”며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고수했다. 현역 최다선인 서 의원은 20대 국회 원(院) 구성 협상 과정에서 의장직 포기를 선언해 여야 간 협상의 물꼬를 터줬다. 또 유승민 의원 복당 결정을 놓고 친박·비박계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 “당이 단합과 화합의 장이 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혀 수습의 가닥을 잡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새누리당의 맏형’ 이미지를 쌓아온 그로선 친박계 좌장 자격으로 당대표 경선에 나서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서 의원은 2014년 전당대회 때 2위를 했고, 지난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할 때까지 최고위원을 했다. 그런 그가 당대표 경선에 나설 경우 친박 책임론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 만에 하나 젊은 후보에게 패할 경우 정치적으로도 큰 상처를 입게 된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선 “주류 세력에 당권을 포기하자고 하기도 쉽지 않아 고민”이란 말도 나온다.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70여명에 이른다. 또 지난 총선 공천을 통해 원외(院外) 당협위원장 절대 다수도 친박계가 장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친박계가 뭉치면 당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친박계 의원들의 요구를 서 의원이 단박에 거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애초 최 의원이 당대표 경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청와대 역시 최 의원이 불출마한 만큼 서 의원을 대안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총선 이후 당과 소통을 강화해 화합을 도모하는 기조로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친박 패권주의 논란을 부를 수도 있는 서 의원 출마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라고 했다. 만약 서 의원이 출마 쪽으로 생각을 바꾼다면 여기에는 계파 해체나 화합보단 여전히 친박계를 중심으로 당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며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다른 친박계 의원은 “과거 같았으면 박 대통령이 당 비대위의 유승민 의원 복당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유 의원 복당에 대해 친박계가 수습 수순으로 가닥을 잡고 최경환 의원의 당대표 불출마까지 용인한 걸 보면 깊이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무성·유승민의 선택도 관전 포인트

현재까지 새누리당 당대표 경선은 다자(多者) 구도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특히 친박계 주자가 난립하고 있다. 서 의원 출마 여부와는 별도로 친박계에선 이주영·이정현 의원이 이미 출마 선언을 했고 홍문종(4선·경기 의정부을)·한선교(4선·경기 용인병) 의원도 출마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영·이정현 의원은 서 의원 출마 여부에 관계없이 ‘경선 완주’를 공언하고 있다. 반면 비박계의 정병국·김용태 의원은 친박계에 맞서 막판 단일화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서 의원이 출마를 결심할 경우 ‘친박계 다수 후보 대(對) 비박계 단일후보’ 구도로 경선이 치러질 공산이 크다. 비박계는 대의원 세력 분포에선 친박계에 밀리지만 총선 패배로 인해 친박계에 대한 당원·국민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 또 친박계 후보들이 난립해 친박 성향 대의원 표가 분산될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다만 비박계의 나경원 의원(4선·서울 동작을)이 “서 의원이 출마할 경우 고민하겠다”며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점이 변수다.

이런 가운데 김무성 전 대표 측의 움직임도 관심이다. 김 의원은 2014년 전당대회에서 친박계 대표주자로 나선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대표가 됐다. 차기 대선을 준비해온 만큼 당내 세력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는 평이다. 그런 김 의원으로선 친박계가 당권을 잡는 게 그리 달가울 리 없다. 친박계에선 차기 대선주자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꼽는 사람이 많다. 김 의원이 비박 단일후보 조율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유승민 의원의 움직임도 변수다. 유 의원은 비박계 일각에서 당대표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전당대회보단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박계의 한 의원은 “유 의원이 어떤 식으로든 비박계 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새누리당 당대표 경선은 사실상 내년 대선 레이스와 직결된 셈”이라며 “남경필 경기지사나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각자의 정치적 셈법에 따라 당대표 후보로 누굴 지지할지 고민 중일 것”이라고 했다.

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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