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투어’ 중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photo 뉴시스
‘민생투어’ 중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6일, 전북 무주군 반딧불장터에 ‘민생 투어’ 중인 김무성(65) 전 새누리당 대표가 나타났다. TV에서 익히 보던 그 모습 그대로다. 덥수룩한 수염에 팔뚝까지 걷어올린 남방셔츠와 면바지. 신발을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맨발에 등산용 샌들 차림이다. 손에는 밀짚모자가 들려 있다. 6선 국회의원으로 집권당 대표까지 지냈지만 겉모습은 본인의 표현대로 ‘거지’꼴이다. 김 의원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재래시장 곳곳을 돌며 폭염 속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인사말을 건넸다. 어리둥절해 하는 상인들에게는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김무성”이라고 수행원들이 소개를 했다. 먼저 알아보고 기념사진을 찍자는 상인들도 있었다. 황정수 무주군수가 곁에서 안내를 했다. 김 의원은 “당대표 하다 쫓겨난 놈이 거지처럼 해가지고 돌아다녀도 소속 당은 다르지만 호남 군수들이 안내도 하고 도와준다. 그런데 중앙에만 올라가면 국회의원들이 사생결단으로 서로 싸운다”고 했다.

김 의원은 집권당의 차기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그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단 그에게는 지난 4·13총선의 패장이라는 멍에가 씌워져 있다. 공천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친박(親朴)들은 지난 8·9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당을 접수하다시피 했다. 친박들이 차기주자로 옹립하려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는 지지율 격차도 크다. 리얼미터가 지난 8월 15일 발표한 차기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김무성 의원은 5.3%를 기록한 반면 반기문 총장은 23.8%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두 사람 외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9.2%,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8.5%, 박원순 서울시장이 6.4% 순이었다.

김무성 의원과의 인터뷰는 그가 지난 8월 1일부터 이어가고 있는 민생 투어에 동행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그는 당초 정식 인터뷰를 꺼렸지만 결국 기자와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했다. 무주 반딧불장터 한편에 차려진 보리비빔밥 점심을 앞에 놓고 대화를 하다가 미진한 이야기는 무주에서 완주로 이동하는 카니발 승합차 안에서 이어갔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불화(不和)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고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하기도 했다.

- ‘민생 투어’를 하면서 잠은 잘 자나. “숙소에 들어가면 바로 곯아떨어진다. 마을회관 같은 데서 담요 하나 깔고 자는데 처음에는 바닥이 딱딱해 힘들었지만 그런 대로 적응이 됐다.”

보좌진들은 마을회관, 폐(廢)학교 등이 김 의원의 숙소라고 했다. 갖고 다니는 짐도 남방셔츠 두 개와 면바지가 전부라고 한다. 최근 페이스북에 빨래하는 사진이 올라와서 “남사스럽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빨래하지 않으면 입고 다닐 옷도 없다”는 게 보좌진의 말이다.

- 민생 투어가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판도 없지 않은데. “40도를 넘나드는 이 폭염에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는 게 쇼 같냐. 뭐를 하든 비비 꽈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마음의 고행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많은 국민과 만나 대화하는 게 좋다. 나도 본격적인 민생 투어는 처음 하는데 정치인이라면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이 뭐라든 상관 안 한다.”

김 의원은 전남, 경남에 이어 이날로 전북을 완주한 후 충청도를 도는 일정이 잡혀 있다고 소개했다. 그후 연변대의 조선반도연구원이 주최하는 통일 세미나 참석 등의 이유로 중국으로 잠시 출국했다가 귀국해 나머지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김 의원은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군을 다 도는 게 목표”라고 했다.

“상향식 공천은 미완의 성공”

- 지난 총선에서 승리했으면 지금쯤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총선 패배가 아쉽나. “정말 한이 남는다. 패배보다는 여당 대표로 있으면서 법과 제도까지 만들어놓고 완성을 못 했다는 점이 아쉽다. 그걸 방해한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려는 자들 아니냐? 당대표가 공천을 안 하겠다고 하는데도 그걸 막았다.”

- 최근 인터뷰에서 친박을 겨냥해 ‘나쁜 놈들’이라는 격한 표현을 썼는데, 구체적으로 누굴 지칭한 거냐. “놈들이니까 여럿이겠지. 내가 지난 대통령선거 때 총괄본부장을 지냈는데 그런 나를 비박(非朴) 수장이라고 밀어놓고 자기들만 친박이라는 인간들이 있지 않느냐. 그게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나쁜 놈들이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 일이 안 풀린다.”

김 의원은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친박 의원들의 ‘인간적 배신’에 대해 토로했다. 대통령에게 자신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를 입력시킨 사례도 거론했다. 자신을 겨냥한 욕설 파문을 일으켰던 친박 윤상현 의원과 관련해서는 “그 일 이후 윤상현에 대해 내가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나보고 인사해도 침묵만 지켰다”며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 그렇게 원하던 상향식 공천을 관철시키려 했다면 총선 전 스스로 불출마 선언을 하는 등 자기 희생적 배수진을 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쓸데없는 소리다. 나는 의회주의자인데 의회주의자가 선거에 출마 안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정치는 현실이다. 의회민주주의에서 의회에 들어가 일하는 게 현실정치인데 그걸 안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다 남의 얘기하듯이 하는 소리다.”

김 의원은 “나는 70살이 넘어 현실정치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은 하지 않았느냐”며 “지난 총선 때도 그 긴 선거운동 기간 내 지역구에는 딱 세 시간만 내려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그래도 당대표였는데 공천 과정에서 더 세게 나갈 수 없었나. “상향식 공천을 제대로 하려면 선거법과 당헌당규를 바꿔야 하고 안심번호 추천 등 새로운 제도도 마련해야 했는데 여기에 최소 34일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싸움을 걸어왔다. 만약 내가 맞붙어서 싸움하느라 시간을 낭비했으면 물리적으로 상향식 공천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랬으면 친박들이 ‘결국 안 되지 않느냐. 전략 공천하겠다’고 나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최소 34일을 벌기 위해 그 모욕을 참으면서 넘긴 것이다.”

김 의원은 “상향식 공천은 미완의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국 선거구를 기준으로 하면 87.57%에서 상향식 공천을 관철시켰다. 다만 유승민 의원 지역구 등 관심이 집중된 지역구들이 난리를 치면서 다 뒤집어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다음 선거에서는 아마 상향식 공천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 왜 총선에서 졌다고 보나. “사실 공천 파동을 떠나 민심이 들끓고 있었다. 수퍼볼케이노같이 들끓는 민심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 왜 민심이 이반했다고 보나. “그 부분은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

김무성 의원이 지난 8월 16일 전북 무주 반딧불장터에서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정장열
김무성 의원이 지난 8월 16일 전북 무주 반딧불장터에서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정장열

“전당대회는 진정한 민심의 반영 아니다”

-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박이 다시 당을 접수하다시피 했다. 이게 민심의 반영이라고 보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 총선에서 참패한 지 불과 3달 반이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 민심이 바뀔 수가 있나. 이번 전당대회는 투표율이 너무 낮았다. 상대적으로 여론조사 비율이 높아져 인지도 싸움이 됐다. 또 저쪽은 위기감을 느끼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민 주호영 후보가 대표가 되지 못했지만 결과에는 깨끗이 승복한다. 이정현 대표가 잘해주길 바란다.”

- 이정현 대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나. “이 대표가 당선 후 바로 전화를 걸어와 ‘도와달라’고 했다. ‘이전처럼 그냥 정현이라고 불러달라’고 해서 ‘대표가 됐는데 그럴 수 있느냐’고도 했다. 사실 이 대표와는 각별한 사이다. 어려울 때 같이 친박 캠프를 꾸려왔다. 이 대표는 소통 능력도 있고 기발한 생각과 집요함, 저돌성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도 민주적 사고를 해야 한다. 나는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인데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충성 일변도로 가면 실패한다. 민심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 이 대표한테 조언한 게 있나. “대통령과 정례회동을 하라고 말해줬다. 나는 정례회동을 하지 못한 유일한 여당 대표였다. 당대표가 된 후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에게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같이 네 차례 만난 게 전부였다.”

- 대표 때 대통령과 전화통화도 안 했나. “못했다.”

- 이정현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최고위원 회의를 비공개로 바꿨는데 이건 어떻게 보나. “아이고, 그건 차라리 잘했다. 내가 대표할 때 회의만 열면 (친박들이) 그렇게 나를 모욕하고 공격을 해대지 않았나. 최고위원 회의 하면 방송 카메라가 10여대, 기자가 100여명이 들어와 숨소리까지 적는데 그 자리에서 그랬다. ‘나를 조지더라도 비공개 회의에 들어가면 하라’고 하소연도 했는데 소용없었다. 그런 모습이 쌓여서 결국 선거 참패 원인이 되지 않았겠나.”

- 이정현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 선출을 ‘슈퍼스타 K’ 방식으로 하는 걸 고려해보겠다는 얘기도 했는데, 이건 어떤가. “내가 당대표 때 비례대표 한 명도 내 손으로 뽑지 않겠다고 하면서 새로운 비례대표 선출 방식으로 말한 게 ‘슈퍼스타 K’ 방식이다. 물론 이것도 실현시키지 못했지만. 대통령 후보를 그렇게 뽑는 게 옳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 지난 전당대회 때 당대표에 도전한 후보들이 재집권에 대한 명확한 의지와 비전을 보이질 않았다는 우려와 비판이 적지 않았다. 당이 이대로 가면 재집권할 수 있다고 보나.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나는 정례회동 못 한 유일한 여당 대표”

- 아직 모셔오지는 않았지만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이 차기주자 중 가장 높고 새누리당 지지율도 야당보다는 높지 않나. “현재의 지지율은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지금 그대로 가는 게 아니다. 경제도 그렇고 상황이 안 좋다. 비상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 비상한 방법이라니? 정권 재창출의 길이 뭐라고 보나.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단, YS 때부터 죽 보면 연대 세력이 집권했다는 점만 말하고 싶다. YS는 3당 합당을 했고 DJ는 DJT를 이뤘다. 나는 DJ가 박태준(TJ)을 끌어안은 것도 중요하다고 보고 DJT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노무현은 막판에 깨지긴 했지만 정몽준 의원과 함께 갔었다. MB는 흙수저 출신으로 대중의 영웅인 데다 우파가 세를 보탰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야말로 우파의 총출동이었다. 좌파 출동보다 사이즈가 더 커서 승리할 수 있었다. 결국 연대 세력이라야 정권을 잡는다는 얘기다. 이른바 덧셈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권력을 나누는 연정 체제로 가야 한다.”

- 친박 강경파들은 이런 생각을 별로 안 하는 것 같은데. “그들은 충성만 생각한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충성이 어디 있나.”

- 연정을 얘기했는데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무조건 개헌해야 한다. 지금 여야 의원들이 원수처럼 싸우는데 나라가 제대로 되겠나. 그렇게 싸우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나는 그걸 승자 독식의 이 권력 시스템 때문이라고 본다. 대선에서 이기면 만세고, 지면 죽었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나누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도 없다. 급변하는 세상에 국민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선도적으로 도와주는 게 정치이고 국회에서 만드는 법인데 정치인들이 싸우기만 하고 법을 통과시키지 못하니 뭐가 되겠는가.”

그는 “지금처럼 여야가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건 정치가 아니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치는 흑백이 아니라 회색이다. 정치는 원칙도 아니다. 사회에 매듭이 꼬여 풀리지 않은 사각지대가 생기고 거기에 오물이 쌓이면 그걸 손으로 헤쳐 풀어내는 게 정치다. 나보고 야당에 바보처럼 밀리기만 하는데 약점이 잡혔느냐, 대통령한테도 계속 진다며 ‘30시간 원칙’ 어쩌고 비판하는데 싸워서 이기는 게 정치가 아니다. 싸워서 이기는 건 군인들의 몫이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이 기본이다.”

-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명확한 생각이 있나. “국민 선호도가 높은 4년 중임제 대통령제도와 이원집정제, 그리고 내각제 세 가지 길이 있는데 어디로 갈 건지는 개헌 세력들이 합의를 해야 한다. 사실 내각제면 어떻고 이원집정제면 어떤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만 나누면 된다. 지금은 거의 왕을 뽑는 선거 아니냐.”

- 보수우파 진영 일각에서는 원칙 없이 야당과 좌파 진영에 영합하는 정치인이라고 김 의원을 비판하는데 알고 있나. “지금 보수와 진보가 어디 있나. 흑백논리에 빠져서 세상 변화를 못 보고 쓸데없는 논란만 벌이고 있다. 나는 국방은 보수우파의 관점을 견지하더라도 경제는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다. 지금 중산층은 계속 없어지고 못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이래서는 통합이 안 된다. 과거에는 정직하게 저축하고 살면 미래가 있고 신분이 한 단계 상승하고 내 자식은 나보다 잘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다. 희망의 사다리가 없어지면 좌절이고, 좌절이 쌓이면 분노가 폭발한다. 지난 총선 때 일종의 그런 폭발이 있었다고 본다.”

- 그런 입장이라면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무방하다는 생각인가. “안보·대북 문제 때문에 그건 안 된다. 지난해 7월 당대표에 당선된 후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얘기했지만 지금 북한은 불이 꺼져가고 있다. 막연한 얘기인지 모르지만, 레닌이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해서 만든 소비에트연방이 73년 만에 망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은 71년째다. 공산주의 종주국보다 가면 얼마나 더 가겠느냐. 그렇다고 중국처럼 개혁개방의 길로 갈 기미도 없다. 박 대통령이 대북 정책은 잘하고 있다고 본다. 핵심이 국제적 공조인데 힘들여서 쌓아놓은 걸 (야당이 집권해서) 풀어버리면 안 된다. 카다피, 후세인 같은 독재자들도 다 그렇게 말라죽지 않았나.”

김무성 의원이 지난 8월 17일 충북 보은의 한 축산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고 있다. ⓒphoto 연합
김무성 의원이 지난 8월 17일 충북 보은의 한 축산농가를 찾아 일손을 돕고 있다. ⓒphoto 연합

“야당의 집권은 대북 정책 때문에 안 된다”

- 야당의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인간적으로는 꽤 친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람은 괜찮은데 좀…. 문 전 대표는 친노한테 둘러싸여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친노 패권주의가 장악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표가 결국 후보가 될 것으로 보나. “거의 그렇게 될 것이다. 그걸 하려고 당을 깨지 않았나. 내가 문재인한테 ‘당신은 가만히 있어도 후보가 되니까 여야 대선 후보 선출을 오픈프라이머리식으로 하자’고 권유했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자신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었는데 결국 문 전 대표가 안 한다고 했다. 그걸 받았으면 문 전 대표도 민주적 절차에 의한 후보가 됐을 테고 우리 정치 발전도 이뤘을 것이다.”

- 손학규 전 대표는 어떻게 할 것으로 보나. “정치 재개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싶다.”

- 그럼 본인은 어떤가. 이번 민생 투어를 마친 후 공식적인 대권 도전 선언을 할 생각인가. “글쎄….”

- 지금 본인이 가장 힘든 정치적 시련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친박들에 의해 두 번째로 공천 학살을 당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18대 때 첫 번째로 공천 탈락했을 때는 분해서 바로 탈당해 무소속으로 붙었지만 두 번째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총선을 치를 때여서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는 내가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탈당해서 당이라도 차렸으면 박근혜 후보는 무조건 대선에서 졌을 것이다. 고민 고민하다가 나라를 생각해서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안경률 등 다른 공천 탈락자들도 출마 못 하게 막았다. 그리고 전국을 다니면서 지원 유세를 했다.”

- 어찌 보면 자기 희생인데 당시의 그런 고민과 결단을 박 대통령이 알아주지 않나. “안다면 나한테 그렇게 했겠나.”

- 김대중 전 대통령 하의도 생가를 방문해 방명록에 장문의 글을 남긴 것을 두고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 일부가 이런저런 비판을 하기도 했는데. “사실 나는 호남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내 선친은 DJ처럼 과거 민주당 신파 소속으로 DJ에게 정치자금을 오랜 기간 대주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 대목에서 자신의 집안이 어떻게 호남과 인연을 맺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조상들은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지내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휩싸여 식솔들을 데리고 전북 임실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200년이 지나 1709년 복권이 돼 다시 한양으로 올라왔지만 재산이 다 없어져 다시 전북 남원으로 내려왔고 거기서 몰락한 선비 집안으로 150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시대 흔하게 벌어졌던 묫자리 다툼 여파로 세도가 집안에 쫓겨 야반도주한 곳이 그의 고향인 경남 함양이라고 한다. “선친(전남방직 창업주 김용주 회장)이 함양에서 부산상고로 유학가 포항에서 많은 돈을 번 후 사업체를 차린 곳도 전남 광주였다. 당시 광주에는 전남방직 외에는 이렇다 할 공장이 없어서 전남방직을 젖줄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아버지는 민주당 신파 소속으로 정치를 했고, 장면 내각 당시 실력자였던 오위영씨와 부산상고 동기로 절친했다. 그런데 DJ가 정치 초년병 시절 오위영씨 밑에서 비서를 지냈다. 민주당 구파였던 YS가 장택상씨 밑에서 비서를 하던 것과 비슷했다. 그 인연으로 아버지는 DJ를 눈여겨봤고 오랜 기간 정치자금을 대줬다. 나는 우리 정치권이 경상도·전라도로 대립하면서 YS 밑으로 들어갔지만, 나중에 ‘김용주 회장 아들이 YS 밑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들은 DJ가 ‘당장 데려오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내가 상도동계지만 정치를 DJ 밑에서 시작할 뻔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그는 하의도 DJ 생가를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오랜 독재정권하에서 고통받던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찾아주시고, 한민족 중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시니 큰 영웅이셨습니다…’라는 장문의 글을 자필로 남겼다. 그는 “호남의 관록 있는 정치인들은 이런 내 집안과 호남의 인연을 대부분 알고 있다”며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등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친분 있는 호남 정치인들도 많다”고 했다.

김 의원은 차기주자로서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지만 ‘민생 투어’에 나선 모습에서는 별다른 조바심이 느껴지질 않았다. 느긋한 걸음에서 오히려 여유로움마저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내년 12월 대선까지 예상되는 적지 않은 정치적 변화가 그려지고 있는 듯도 했다. “우리 대선 시계로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그의 말이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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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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