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1월 9일(한국시각) 승리 확정 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photo 연합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1월 9일(한국시각) 승리 확정 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photo 연합

“우리는 한국·일본·독일·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하는데, 그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9월 26일 대선 후보 1차 토론에서 했던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주장 내용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유세 때마다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국의 경제를 희생하면서 더 이상 동맹국들의 안보를 지켜줄 수 없다고 밝혀왔다.

트럼프가 주장하고 있는 논리의 핵심은 지금까지는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방위공약을 충실히 이행해왔지만 이제는 미국도 재정이 어려운 만큼 동맹이 방위비 부담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나빠진 이유는 중국과 멕시코가 일자리와 제조업을 빼앗아간 데다가, 미국이 각종 국제 분쟁에 개입하면서 동맹의 방위를 위해 국방예산을 너무 많이 지출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주장은 지난 11월 8일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승리하는 대이변의 원동력이 됐다.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해온 저학력·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이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사업가 관점에 선 ‘안보무임승차론’

트럼프의 ‘안보무임승차론’은 철저하게 사업가적 마인드에서 나온 발상이다.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 사업가답게 모든 문제를 사업가적으로 생각해왔다. 역대 미국 정부가 그동안 주창해온 글로벌 질서 유지나 동맹의 가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트럼프는 ‘비즈니스 관계’에 따른 손익만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나토 회원국들을 비롯해 동맹국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지 않으면 주둔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는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트럼프가 과거부터 이런 주장을 해왔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1987년 9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등 3대 신문에 10만달러를 내고 전면광고를 실었다. 당시 그는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형식의 광고에서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수십 년간 미국을 이용해왔다. 전 세계가 미국 정치인들을 비웃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지도 않은 배를 보호하고, 우리가 필요하지도 않은 기름을 운반한다. 그런데 왜 이들 나라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감수하고 있는 막대한 비용과 인명피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느냐?”

당시 트럼프는 뉴욕시장, 주지사, 상원의원 등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이후 트럼프는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국가들이 비용을 부담하게 해서 그 돈으로 경제를 살리고 어려운 미국인들을 돕자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1987년의 광고 내용은 현재 트럼프가 대선 운동 과정에서 강조한 것과 판에 박은 듯 똑같다.

트럼프는 그동안 뛰어난 ‘비즈니스맨(businessman·사업가)’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40대 초반에 억만장자가 된 것은 과감하면서도 치밀한 사업 수완 덕분이었다. 대학 시절 그는 부친과 함께 오하이오주의 파산한 아파트 단지 1200채를 600만달러(현재 기준 68억원)에 구입해 리모델링한 후 1년 반 만에 1200만달러(136억원)에 재판매하는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보였다.

트럼프家 1930년대부터 슈퍼마켓 운영

트럼프는 1946년 뉴욕주 퀸스에서 독일계 이민 3세로 태어났다. 독일 서부 팔츠 지역에 있는 칼슈타트 출신인 조부는 1885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와 식당과 호텔 등을 운영하면서 많은 재산을 모았다. 부친은 조부가 남긴 재산을 바탕으로 부동산 개발과 건설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특히 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대 뉴욕주에 당시로선 획기적인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군함을 건설하는 조선소 인근에서 군인과 군무원을 위한 주택건설 사업을 벌였다. 또 전쟁 이후에는 뉴욕시에 아파트 붐이 불자 2만7000가구의 아파트를 건설했다.

부친의 영향을 받은 트럼프는 명문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로 편입해 경제와 비즈니스를 배웠다. 1971년부터 뉴욕의 심장부인 맨해튼에서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3년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 타워(Trump Tower)를 준공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68층인 트럼프 타워는 당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주상복합 건물이자 고급스러운 외형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트럼프는 사업을 확장해 지금은 전 세계의 호텔과 고급 콘도미니엄을 운영하는 ‘트럼프그룹’을 이끄는 최고 경영자가 됐다. 트럼프의 재산은 경제전문지 포브스 추산 기준으로 37억달러(4조2000억원)나 된다. 연방 선거관리위원회(FEC)에 따르면 트럼프는 미국 이외에도 중국, 카타르를 비롯한 전 세계 각지에 법인을 두고 있으며, 그의 수입원은 168개나 된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내내 무슬림 입국 금지와 불법 체류자 즉각 추방 등 무수한 막말과 인종차별 및 여성비하 발언들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마약과 범죄를 가져오는 ‘성폭행범’으로 부른 것을 들 수 있다.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분노했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 언론들은 트럼프의 자질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막말 덕분에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광고에 따로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특히 기득권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은 ‘아웃사이더(outsider·비주류)’인 트럼프에 열광했다. 그를 혐오하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지지자들도 결집했다. 겉으로 표출하지 못했던 유색인종·이민자·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트럼프를 통해 분출된 것이다.

고도로 계산된 ‘트럼피즘’

주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트럼프를 평가절하했으나 선거 결과는 트럼프의 선거방법이 효과를 봤다는 것을 입증했다. 세계화 속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든 백인 저소득 노동자들은 트럼프의 달콤한 선동적 포퓰리즘에 호응했다.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트럼피즘은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극적인 언행을 통해 유권자들의 기성정치에 대한 반감을 조장,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이런 언행은 고도의 전략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부동산 개발과 투기로 재력을 쌓은 비즈니스맨이다. 부동산 투자는 다른 사업에 비해 두둑한 배짱을 필요로 한다.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떼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줘야 한다. 때론 사기꾼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과장된 허풍도 부려야 한다. 막말도 당연히 사용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불법 체류자 전원 추방,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모든 무슬림 입국 금지 등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면 정치권과 언론은 ‘트럼프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비판했지만 이런 것이 바로 트럼프의 미디어 전략이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1987년 출간한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란 저서에서 “미디어는 특이하거나 도발적인 논란거리를 좋아한다”면서 “언론의 비판이 개인적으론 아프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유명하게 만들어 비즈니스엔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책에는 그의 변칙적인 행동 뒤에 숨은 동기들이 나와 있다”면서 “그는 이 책을 선거 전략의 청사진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을 보면 트럼프가 대단히 치밀하고 집요한 ‘협상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사업가로서의 성공 방식을 정치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의 비즈니스 성공 5계(計)는 ‘무슨 일이든 승자가 되라’ ‘뻔뻔하라’ ‘과장법을 즐겨 사용하라’ ‘모든 일을 홍보 수단으로 삼아라’ ‘결과에 상관없이 이겼다고 외쳐라’다.

트럼프는 사업을 하면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었고 4차례나 파산했으면서도 살아남았다. 정치판에서는 초보지만 사업에서는 백전노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5개 이상의 신문과 10여권의 잡지를 훑어보고, 저녁에는 3시간 정도 명상과 독서로 보낸다고 했다. 특히 그는 심리학의 대가인 칼 구스타프 융에게서 배운 바가 많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하루아침에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았다. 2000년 개혁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포기했고, 2012년엔 공화당 경선을 저울질하다가 불출마했다. 하지만 2013년 100만달러를 들여 은밀히 대선 성공 가능성을 조사했다. 정치적 야망을 오랜 기간 숙성시켜온 셈이다. 개발 구상-건설-홍보-매매라는 부동산 프로젝트 순서와 다르지 않았다. 클린턴 후보에 역전승을 거둔 비결도 이런 비즈니스 전략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백악관의 주인이 된 트럼프는 앞으로도 미국을 비즈니스맨 방식으로 통치할 것이 분명하다. 또 각국과의 외교·안보 및 경제 관계도 비즈니스 거래처럼 다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0월 22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스버그 유세에서 ‘취임 100일 구상’을 밝히면서 “집권 첫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철수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을 선언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또 보호무역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상품에는 45%, 멕시코 상품에는 35%의 관세를 물려 미국 기업들을 육성하고 경제를 다시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해왔다. 그는 한·미 FTA는 일자리를 죽이는 재앙(disaster)을 초래하는 협정이라고 비난했다. 각국이 트럼프의 당선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은 이런 공약 때문이다. 미국이 무역장벽을 높이 세우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의 교역으로 먹고사는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공약들은 앞으로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 협상할 때 유리한 카드가 될 수 있다.

“협상 테이블에 올릴 최대치를 제시한 것”

동맹국들과의 관계 구축도 마찬가지다. 그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려는 동맹국들에 대해 “미군을 외국에 주둔시키는 대신 필요하면 미국 본토에 배치하는 방안이 더 경제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이런 발언도 바로 상대방에게 최악의 카드를 내보이면서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려는 협상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외교 담당 보좌역인 왈리드 파레스 미국 BAU 국제대학 부총장은 “트럼프의 발언은 협상 테이블에 올릴 최대치를 제시한 것”이라며 “트럼프는 탁월한 협상가로서 일단 최대치를 보여주고 난 뒤 현실적인 협상에 나서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선거캠프 외교·안보팀의 수장인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앨라배마)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보호무역주의와 동맹 압박 등에 기댄 ‘신(新)고립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국익 중심의 ‘현실주의’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지난 11월 9일 새벽 뉴욕 맨해튼의 힐튼미드타운호텔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승리 연설을 통해 “우리가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지만 모든 국가를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적대감보다는 공통점을, 갈등보다는 파트너십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협상을 염두에 둔 비즈니스맨의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과 신냉전구도를 견지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도 협상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클린턴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악마로 묘사했는데 만약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협상을 하겠나”면서 시리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기 위해서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미·러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건설적인 대화를 기대한다”면서 신속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협상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미국에 대한 ‘강간’에 비유하며 중국을 원색적으로 공격한 바 있다. 그는 유세에서 자신이 중국 사업가들을 다뤘던 경험을 자랑하기도 했다. 협상 상대국을 강력하게 공격하는 것은 그의 전형적인 비즈니스적 방법이다. 그가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 무역 문제 등에서 실리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도 트럼프와의 협상을 기대하는 듯하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학 교수는 “힐러리는 변호사 출신이라 법대로를 고집하겠지만 트럼프는 사업가라서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비즈니스맨 리더십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그의 대선 슬로건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저서 ‘국가는 회사가 아니다(A Country Is Not a Company)’에서 국가를 회사처럼 경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듯이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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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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