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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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이나 지금이나 새누리당은 변한 게 없다.”

2003년 7월, 김영춘 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김 의원과 동반 탈당한 이우재·이부영·김부겸·안영근 의원을 당시 정치권에선 ‘독수리 5형제’로 불렀다. 이들은 그해 11월 민주당에서 이탈한 세력과 힘을 모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4월 총선에서 탄핵 후폭풍에 힘입어 152석을 확보하며 원내 1당이 됐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벌어진 탈당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소재는 13년 전 정치상황과 상당 부분 오버랩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새누리당을 처음으로 박차고 나온 남경필 지사와 김용태 의원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 김영춘(54) 의원의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12월 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실에서 만난 김영춘 의원은 “보수정당 소속의 정치인들은 풍찬노숙(風餐露宿)이나 고난한 행군을 자초하는 데 익숙지 않다”면서 “원내에서 유일하게 탈당을 선언한 김용태 의원의 결단은 옳았다”고 평가했다.

김영춘 의원은 2003년 한나라당 내 국회의원 10여명과 당 혁신운동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탈당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연달아 패배한 데다,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좌초 위기에 놓였다. 김 의원 등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보수정당을 외곽에서 흔들어 타율적 개혁의 길로 몰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5명의 탈당만으로는 정치구조를 깨기가 쉽지 않았다. 김 의원은 “김용태 의원 등 단지 몇 사람의 탈당만으로는 (새누리당이) 압박을 받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행히 지금은 거대한 국민의 압력이 형성되어 있고 보수당의 위기감이 팽배해 개혁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 새누리당은 어떻게 되나.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기준으로 갈라져 그동안 불화와 반목이 깊어졌다. 감정의 문제를 넘어 일부는 원한관계라는 오해를 살 정도로 대립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깨지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나중에 다시 합쳐질망정 현재로서는 각자 개혁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 혁신 없이 권력만 좇는 체질을 가진 정당은 더 이상 높아진 국민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 정당은 수명이 끝났다.”

- 2003년 당시 탈당은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하나. “절반은 성공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열린우리당 실험을 통해 보수정당과 지역주의 정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열린우리당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국민적 지지를 유지했어야 했다. 그러나 4년 뒤인 2008년 열린우리당은 해산하고 말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변화를 유인하긴 했지만 이를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어떤 측면에서는 과거로 회귀했다. 나는 그 책임을 지고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했다.”

김 의원은 2007년 10월 열린우리당을 흡수·통합한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다시 탈당하고 17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 새누리당 탈당파는 정치적 성공을 꾀할 수 있을까. “세대교체, 인적교체를 이룰 수 있다면 이들의 탈당이 새누리당의 발전적 해체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수구적 논리와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는 미래가 없다. 정치적 자유민주주의로 무장한 신세대 보수가 나와야 한다. 어쩌면, 보수 후보로 거론되는 반기문을 버려야 그 싹이 제대로 자라날지도 모르겠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얘기다.”

김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보수 정당에 가깝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 바라보는 민주당의 평가와는 사뭇 다른 분석이다.

- 그럼에도 민주당을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새누리당, 보수언론, 재계 등 기득권에서 우리를 진보라고 하는데, 그건 우리나라에 진보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가 그쪽을 대변하면서 생긴 편견이 아닐까 싶다. 본질적으로는 보수에 가깝다. 어떤 사안에서는 진보를, 또 다른 사안에서 보수적 입장을 낸다. 이게 당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나 싶다. 이념적 잣대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게 힘들어진 세상이다.”

김 의원은 민주당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국민주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스캔들이 없었다 해도, 대한민국은 중대 위기에 놓여 있었다. 경제발전의 동력을 잃었고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국민 행복지수는 바닥이다. 안보위기까지 겹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선진통일국가를 지향하는 국민주의 정당으로 거듭나 비전과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기이다.”

-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내용은 번번이 민심과 괴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임제 대통령의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임기 5년은 채우겠다는 욕심 때문에 민심을 수용하기보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정치적·법적 꼼수로 일관했다. 대통령이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하면 국민 목소리나 요구와 멀어진다. 4년 중임제였다면 재평가를 의식해 국민 목소리를 경청했을 것이다.”

김 의원은 개헌론자다. 정치·경제·사회체제 전반을 손질하는 ‘종합 개헌’을 주장한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법률적 위반사항을 따질 경우 예상보다 심리가 길어질 거고, 민심의 흐름을 의식한다면 60일 이내에 인용 결정이 날 수 있다”고 했다.

- 내년 대선에서 야당의 후보 간 단일화 필요성은. “합당하지 않더라도 후보단일화는 해야 한다.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안철수 전 대표도 후보단일화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주당 후보에 유리한 것도 아닐 뿐더러 앞으로 정치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김 의원은 지난 12월 3일 새벽 국회에서 있었던 2017년도 예산안 표결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 중 한 명이다. 그는 정치적 고비마다 철학과 소신을 지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 왜 예산안 처리에 반대표를 던졌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쌀생산조정제 실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한 해 1조4000억원이나 되는 예산을 쌀 가격 보전을 위해 쓴다. 창고에 쌓여 있는 쌀을 관리하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농민에게 다른 수익성 작물을 권장하고 쌀값을 안정화할 근본적 노력은 하지 않고 돈으로 때우는 건 말이 안 된다. 두 번째 이유는 법인세 인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 대기업은 법인세 등의 감세효과로 지난 8년간 100조원가량의 수익을 더 냈다. 이게 투자활성화로 이어져 내수경제를 살려야만 세금 인하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업 곳간을 채우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등 투자진작 효과가 없었다. 차라리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둬 고용을 확대하는 데 써야 한다. 마지막은 누리과정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다. 박 대통령 공약사항임에도 정부는 3~5세 보육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김영춘의 꿈은 정치인의 일반적 목표와는 조금 달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꿈은 대통령이 아니다. 그렇게 드러내고 하는 정치는 내 스타일과 맞지 않다. 그보다 국가를 제대로 개혁하고 디자인하고 싶다. 사람을 아우르고 타협과 상생의 길을 열어가는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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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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