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생존한 한 노병이 희생자 명단을 보고 있다. ⓒphoto 미 해군 사이트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생존한 한 노병이 희생자 명단을 보고 있다. ⓒphoto 미 해군 사이트

“미국은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지난 12월 7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75주년을 맞아 생존 미군 병사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레이 산체스(104) 수병이 한 말이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55분 항공모함 6척에 탑재한 전투기와 폭격기 등 항공기 353대를 동원해 미국 태평양함대의 모항인 하와이주 오아후섬의 진주만(Pearl Harbor)을 기습 공격했다. 선전포고도 없이 감행한 일본군의 공격으로 미군은 순식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전함 애리조나호를 비롯해 함정 16척이 침몰하거나 파손됐으며, 전투기 등 항공기 188대가 파괴됐고, 2403명이 사망하고 1178명이 부상했다. 반면 일본군의 피해는 미미했다. 항공기 29대가 격추됐고 잠수정 5척이 침몰했고, 조종사 등 65명이 전사했다.

당시 진주만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불지옥이 됐다.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의 무차별 공격으로 미 해군 병사들은 반격도 못한 채 침몰하는 함정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산체스 수병은 지금도 당시의 무시무시한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있다. 생존자인 체스터 크로스(94) 수병은 치를 떨었다. “일본인들은 잔인했다. 너무나 잔인했다.”

생존자들은 지난 12월 7일 진주만에서 거행된 당시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해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들을 추모했다. 진주만 공습 생존자들의 나이는 최소 90대로, 이 행사가 아마도 이들이 참석할 수 있는 대규모 추도식으로는 마지막이 될 듯하다. 생존자들은 9000여명이나 됐지만 대부분 고령으로 사망하고 이제는 300명도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비열한 기습’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의 일본에 대한 반감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일본이 선전포고 없이 공격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제대로 사죄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 해군 전함 애리조나호가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침몰하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미 해군 전함 애리조나호가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침몰하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생존자 300명도 안 남아

미국 50개주 중 하나인 하와이주는 북태평양의 동쪽에 있는 하와이제도로 구성된다. 하와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다. 1778년 1월 카우아이섬에 상륙한 쿡 선장은 하와이제도를 ‘샌드위치섬’이라고 불렀다. 하와이제도에는 니하우·카우아이·오아후·몰로카이·라나이·마우이·카호올라웨·하와이 등 8개의 큰 섬과 100여개의 작은 섬이 있다.

인구가 1400만인 하와이주에서 가장 큰 곳은 하와이섬이지만, 주민들은 대부분 오아후섬에 살고 있다. 주도인 호놀룰루도 이곳에 있다. 진주만은 호놀룰루 서쪽 10㎞ 지점에 있는 항구다. 진주만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19세기까지 원주민인 폴리네시아인들이 진주조개를 잡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이곳을 와이모이(Wai Moi·진주의 바다)라고 불렀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1908년 이곳에 해군기지를 만들었다. 이후 진주만은 준설과 확장을 거듭하면서 태평양 함대의 모항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와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태평양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이다. 하와이는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중간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석유 등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은 동남아와 인도차이나반도까지 침략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미국은 석유금수 조치 등 일본에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궁지에 몰린 일본은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다음 날 상·하 양원 합동연설에서 12월 7일을 ‘치욕의 날(the day of infamy)’로 명명하고 일본에 보복하겠다고 밝혔다. 상원은 82 대 0, 하원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도 반대했던 저넷 랭킨 의원만이 부(否)표를 던져 388 대 1로 일본에 전쟁을 선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을 계기로 중립을 지켜왔던 미국은 2차 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에 미국 국민들은 격앙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당시 관련 기사에서 진주만 공습을 접한 젊은이들이 각지에서 군에 입대하겠다는 뜨거운 애국심을 보였다면서 뉴욕의 모병소엔 1차 대전 때보다 두 배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참전하겠다며 모여들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미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해 결국 2차 대전에서 승리했다.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 것은 도조 히데키 총리 등 당시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진주만 기습 공격을 지휘한 일본의 총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도 “잠자는 거인을 깨웠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야마모토 제독은 진주만 공습이 결정되기 이전만 해도 미국과의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미국 유학과 주미 일본대사관 근무를 통해 미국의 실체를 알게 된 야마모토 제독은 미국을 적국으로 둘 경우 일본의 존립이 위태롭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도조 총리 등 2차 대전 후 처형된 일본 전범들은 자국이 승리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위령탑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사이트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위령탑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사이트

진주만을 찾는 아베의 속셈

도조와 같은 전범이었지만 처벌을 면한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 총리가 되면서 기사회생했다. 기시 전 총리의 필생의 숙원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숙원을 해결하려는 인물이 바로 외손자인 아베 신조 총리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2차 대전을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싸운 ‘정의의 전쟁’이었고, A급 전범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등 전후 체제를 부인해왔다. 기시 전 총리의 정치적 DNA를 그대로 계승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다. 아베는 개헌을 가장 실현하고 싶은 정치적 목표라고 말해왔다.

아베는 1993년 38세의 나이로 중의원 의원으로 첫 당선됐을 당시에도 “국회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평화헌법 개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베는 2006년 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연합군이 일본을 두 번 다시 열강이 되지 못하도록 평화헌법을 통해 손발을 묶어 놓았다”면서 “일본이 스스로 헌법을 제정해야 진짜로 독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손(祖孫)의 신념과 판박이인 셈이다.

아베가 자신과 외조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오는 12월 26∼27일 하와이의 진주만을 방문한다. 현직 일본 총리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서 진주만을 방문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아베는 지금까지 전후 체제를 탈피하기 위해 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에 찍힌 ‘전범국가’라는 낙인을 지우려고 역사교과서 왜곡, 안보법 제정, 자위대의 집단 자위권 행사 등 각종 조치들을 추진해왔다. 아베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과거사에 대한 미국과의 화해이다.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진주만을 방문함으로써 미국에 과거사에 대한 화해 제스처를 보내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월 27일 미국이 1945년 원자폭탄을 최초로 투하한 피폭지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사상 처음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연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상기하면서 희생자를 애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71년 전 히로시마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졌다”며 “인류는 스스로를 파괴할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으며, 그날의 고통을 말로는 다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원폭을 투하한 것에 대해 사죄한다는 단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자국이 핵 피해국이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전범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면죄부로 활용해왔다.

진주만의 애리조나호 기념관. ⓒphoto 미 해군 사이트
진주만의 애리조나호 기념관. ⓒphoto 미 해군 사이트

아베의 진주만 방문도 일종의 면죄부를 받아내려는 ‘고도의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다. 아베의 진주만 방문 계획은 올해 중순부터 비밀리에 진행됐다. 아베는 모리 다케오 외무성 북미국장을 통해 비밀리에 진주만 방문을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심지어 아베는 부인 아키에를 지난 8월 미국 여론을 떠보기 위해 하와이의 진주만에 보냈다. 아키에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사망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애리조나호 기념관(USS Arizona Memorial)’을 찾아 헌화하고 추도했다. 아키에는 “내 눈으로 둘러보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면서 “진주만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건 알지만, 증오를 넘어 전쟁이 비참하다는 기억을 다음 세대에 물려줘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아키에의 진주만 방문을 사적인 여행이라고 둘러댔지만 아키에는 생존자들을 만나는 등 사실상 남편 대신 사전답사의 행보를 보였다.

아베는 하와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함께 진주만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도할 예정이다. 아베는 또 애리조나호 기념관에 헌화하고 희생자들을 위령(慰靈)한다. 아베는 “진주만 방문은 전쟁 희생자 추도를 위한 것”이라며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특히 아베는 진주만 기습 공격에 사죄를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진주만 방문은 전쟁 희생자의 위령을 위한 것”이라며 “사죄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을 계기로 미·일 동맹이 ‘희망의 동맹’으로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한다는 것을 세계에 강력하게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는 지난해 4월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지난 전쟁에 대해 ‘깊은 회오(悔悟)’라는 반성의 표현을 사용하며 미·일 간 역사적 갈등을 해결하고 희망의 동맹을 맺자고 주장했었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때 생존한 노병들이 추도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photo 미 해군 사이트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때 생존한 노병들이 추도식에서 경례하고 있다. ⓒphoto 미 해군 사이트

트럼프가 등 떠민 진주만 방문

아베의 진주만 방문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당시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수천 명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진주만 공습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트럼프는 이후에도 일본의 주일 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해야 한다는 등 일본에 대한 강경 발언을 계속해왔다. 아베로선 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선 트럼프 차기 정부와의 관계를 밀접하게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베의 입장에선 오바마 정부 때 구축했던 미·일 관계를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이어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베가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지난 11월 17일 뉴욕으로 달려가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회담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아베의 진주만 방문은 트럼프 차기 정부에 양국의 과거사 문제는 종식됐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동맹 관계를 강화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고스게 노부코 가쿠인대 교수는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과거사 문제에 매듭을 지으려는 것이 아베의 속셈”이라면서 “퍼포먼스 측면이 강하지만,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아베의 진주만 방문으로 미국과 일본이 과거사를 청산하고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 나혼게이자이신문은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히로시마와 진주만을 교차 방문하게 되면, 미국과 일본이 승전국과 패전국의 구도를 넘어 더욱 공고한 동맹 관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언론의 이런 긍정적 전망은 아베의 속셈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화해는 진정한 사과에 따른 용서와 포용이다. 아베는 지금까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일 양국의 과거사에 대한 화해는 아직 멀었다. 특히 공화당의 주요 지지세력인 재향군인들은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비판했듯이 아베의 진주만 방문을 떨떠름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조지 패튼 장군이다. 맥아더는 2차 대전 때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 평화헌법을 만들었다. 생존한 노병들은 그날의 참혹함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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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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