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44호] 2017.02.13

김문수가 말하는 ‘태극기 집회’

“블랙리스트? 나도 숱하게 만들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지지율 14%. 한때 그는 유력 대선주자였다. 김문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최고위원) 이야기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그는 19대 대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의원의 뒤를 이어 2위를 달렸다. 6년이 흐른 지금 그의 직함은 대구 수성구 당협위원장이다. 지난 2월 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6층에서 김 위원을 만났다. 그의 전화기는 쉴 틈도 없이 울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기각되어야 한다”고 한 전날의 발언 때문이었다. 앉자마자 태극기 집회에 왜 나갔는지 물었다.
   
   “몇 주 전부터 서경석 목사가 나와 보라고 강권을 했다. 노년층만 참석하는 집회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다양한 연령층이 참석했더라. 행진하는데 눈물이 났다. 경기도지사 시절 알던 분들, 더 거슬러 올라가 과거 제 지역구였던 부천 소사에서 오신 분들을 행렬에서 마주쳤다. 당 사람들에게 나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얼마 전까진 탄핵에 찬성하지 않았나. “탄핵에 찬성한 게 아니다. 즉각 하야, 즉각 퇴진 요구가 옳지 않다고 말한 거다. 절차가 있다면 따라야 하지 않는가 하는 뜻이었다. 탄핵 투표 전날 비례대표 의원 한 명이 찾아왔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묻기에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의원이 됐습니까. 누가 그 자리에 앉혀준 겁니까. 그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 탄핵이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물었다. “박 대통령한테 개인적으로 은혜를 입은 것 하나 없다. 노동운동하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박해만 받았다. 나는 법치주의자다. 정국을 지켜보며 명경지수의 자세로 양심에 기대어 사태를 들여다봤다. 최순실이 잘못했다고 대통령이 탄핵되어야 하나? 어떤 지도자나 비선은 있다. 공식 라인 외의 참모들에게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엔 인민재판이 횡행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대통령의 상여와 단두대가 돌아다닌다. 아이들과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의원회관엔 대통령을 속옷까지 벗겨서 전시한다. 이게 시대정신인가? 프랑스혁명 당시 자코뱅이 한 짓보다 더하다. 여기에 분노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 박 대통령의 잘못이 없다는 말씀인가. “물론 있다. ‘불통’이다. 여당 의원들과도 불화했다. 새누리당 의원 60명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금도 봐라. 대통령은 이 판국에도 누구에게 연락해 조언 한 번 안 구한다. 저도 전화 한 통 받은 적 없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김무성·유승민 의원도 우군으로 두지 못했다. 남자가 싫으면 여성 의원이라도 곁에 뒀어야지. 전여옥 전 의원, 이혜훈 의원을 봐라. 부모님에 대한 향수 때문에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은 있지만 정치적인 우군은 없다. 그런데 비리는 없다. 탄핵은 법적 절차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무능하다는 이유로 탄핵할 순 없다.”
   
   서울 새문안로를 경계로 북쪽은 촛불 집회가, 남쪽은 태극기 집회가 매주 토요일마다 벌어진다. 이번 주면 15주째다. 국회도 올스톱이다. 대선 정국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상황에서 주요 현안은 논의도 못 하고 공회전 중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과연 직시하고 있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 대통령은 본인의 일신만 생각할 수 있다. 잡혀가지 않는 것만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그게 왜 비난받아야 하나? 지금 그는 대통령이기 전에 단두대 앞에서 발가벗겨지고 능멸받는 한 인간이다.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잔인한 국회와 폭도 앞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생명을 지키길 원한다.”
   
   -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 임명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도지사 할 때 8년 동안 1만명의 인사를 했다. 말이 안 나오게 인사를 하려면 공무원밖에 임명할 사람이 없다. 그 외에는 시비를 걸자면 다 걸린다. 시험으로 뽑아도 ‘왜 시험문제를 그걸 냈냐’고 말이 나오더라. 그런 비판이 화석 같은 관료주의를 더 화석화하는 거다. 관료주의를 타파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와 창조도 불가능하다.”
   
   - 문체부에서 작성했다는 블랙리스트도 공분을 샀다. “리스트라면 나도 만들었다. 도지사 시절 보니 행정의 기본이 리스트 작성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교도소 행정의 핵심이 분류 심사다. 초범이냐 재범이냐, 공안사범이냐 잡범이냐. 소방 행정도 같더라. 이 건물이 취약시설이냐, 양호하냐 분류한다. 금융도 그렇지 않나. 행정에서 분류를 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문체부 리스트에 이름이 들어가서 피해를 봤다는 게 결국 ‘지원의 차등’ 아닌가. 지원할 때 차등을 주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도 분류를 하지 않나. 영웅 작가, 인민 예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볼 때 이건 문젯거리도 아니다.”
   
   - 문화예술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있나. “우리 문화계가 이념적으로 불균형한 건 사실 아닌가. 이번 누드화 사건을 봐라. 이념으로 구분하는 데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정부 비판이라는 필터로 분류하는 건 쉽다. 시위 횟수 등을 세면 된다.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분류해 놓은 것 자체를 범죄라고 하는 건 행정부 문 닫으라는 얘기다. 물론 분류해 놓고 불이익을 주는 건 다른 얘기다. 지사 시절 나는 그러지 않았다. 리스트 자체에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여서 장관이나 관계자들을 잡아넣는 것은 전형적인 홍위병식 인민재판이다.”
   
▲ 지난 2월 8일 대구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김문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photo 뉴시스

   식물대통령 아래 국회는 선거 한 번 없이 여소야대 형국으로 바뀌었다.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헌납한 새누리당 지도부와 친박 인사들은 신당(바른정당)과 리모델링(당명 개정) 등 각자도생의 길로 흩어졌다. 김 위원은 새누리당 지도부를 “영혼 없는 웰빙족들”이라 일축했다.
   
   “정치는 혼(魂)으로 하는 거다. 지금 당 지도부는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의 정신이 없다. 현 정국에서 돌아보니 대한민국의 보수는 군과 기독교에만 남아 있더라. 대학과 언론도 상업주의에 물들었다. 특검도 마찬가지다. 특검은 태생부터 잘못됐다. 야당이 인정하는 인사로 구성된 특검만 특검이다? 지금이 혁명 상태인가? 특검 자체가 공정성을 담보해야지 신뢰할 수 있지 않나. 새누리당은 이런 무책임하고 편파적인 특검에 정권의 명운(命運)을 건 거다.”
   
   -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대선후보를 내는 게 옳은가 의문도 제기한다. “새누리당은 지금도 여전히 95석을 보유하고 있는 정당이다. 이런 정당이 어떻게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나. 당연히 내야 한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질수록 후보를 내서 국민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김 위원은 인터뷰 내내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말을 했다. 현 정국이 단순히 누가 구속되고, 당명을 바꾸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현 사태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붕괴다. 갈등이 극단화돼서 몰락 중이다. 신화는 끝나고 구조적 장기침체로 들어서고 있다. 성장통이 아니라 침체의 늪으로 들어서는 신호탄이다. 이걸 다들 알면서 제자리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개헌? 물 건너간 것 아닌가. 과거 탁월한 리더십을 보인 지도자가 이승만과 박정희다. 한국을 늪에서 끌어올리지 않았나. 이런 얘기를 하면 주위 참모들은 지지율 떨어진다고 말린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요즘 그리스 상황을 자주 살펴본다. 2500년 전부터 민주주의를 했다는 나라가 어떻게 저렇게 됐을까. 민주주의가 최종적 답은 아닌 거다. 하나의 절차인 것이다. 중우정치,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돈을 나눠준다고 하고, 자식은 삼성에 입사시키고 싶어하면서 입으로는 삼성 해체를 외친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현실이다.”
   
   경기도지사 시절까지 정치인 김문수는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호감 순위에서 수위를 달렸다. 민중당 출신의 정통 노동운동가라는 이력이 후광처럼 그의 진정성에 빛을 더했다. 3선 의원에 재선 도지사까지, 화려한 경력에 비해 현 입지는 좁다. 19대 대선후보 경선 탈락과 20대 총선(대구 수성구 갑) 패배가 원인이었다. 지사직에서 물러난 후 좁은 길로만 골라간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낙선은 무서운 형벌이더라. 나는 그전까지 살면서 한 번도 어디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대학도 한 번에 붙었고, 총선에서도 항상 승리했다. 실패라는 형벌을 겪으며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였다. 당시 내가 대구로 간 건 그곳이 나가기만 하면 당선되는 곳이라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김부겸 의원은 새누리당 출신으로 새누리당을 무너뜨리려고 나온 사람 아니었나. 대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 정치인 김문수가 이 정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선에 출마할 것이다. 새누리당 당명 개정 작업이 끝나면 발표하겠다. 저의 메시지는 이렇다. 핵을 갖춰야 한다. 사드는 방어용이다. 북한과 맞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핵을 갖춰야 한다. 경제의 핵심은 일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지금 야권 후보들은 일 안 해도 공짜로 돈을 나눠주겠다는 망국의 바이러스, 아편주사를 뿌리고 있다. 창업을 활성화하고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 위원은 헌재가 탄핵을 인용해도 문제, 기각해도 문제라고 말했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끝이 안 날 거다. 이 나라의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다. 국가를 위대하게 하는 것은 위대한 정신이다. 영웅들이 만든 정신이 허물어지고 있다. 돈을 나눠주겠다는 공약이나 내걸고, 다른 사람을 비난만 하는 자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나치의 선동꾼 괴벨스나 다름없다. 똑똑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우리 젊은이들이 거짓말에 속고 있다.”
   
   인터뷰 내내 당사 밖에서 시위대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당사가 있는 한양빌딩을 뺑 둘러서 있는 경찰들의 숫자는 평소보다 늘었다. 새누리당 사무처는 옮겨갈 새 보금자리를 찾고 있다. 월세가 비싼 여의도를 떠나 마포나 영등포로 가자는 의견과 왜 하필 대선 직전에 여의도를 떠나냐는 의견이 내부에서 맞서고 있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는 사실상 3월 중 혹은 그 이후로 미뤄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여의도에 때이른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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