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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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서 여성 정치인의 요람은 야당이었다. 한명숙 전 총리,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등 눈에 띄는 여성 정치인은 주로 야당에서 배출됐다. 현재 최다선인 5선 여성 의원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순천 전 민주당 총재(5선)가 있다.

현역 여성 의원 중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성북갑·3선)은 그 컬러가 조금 독특하다. 얼핏 얌전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야당 내 ‘파이터’ 역할을 해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전에도 없는 ‘진정성’이라는 말이 꽤 여러 번 쓰였다. 누가 더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냐 대결이 붙었을 정도다. 유승희 의원만큼 진정성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정치인은 찾기 힘들다. 당 안팎의 평가다. 구로공단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해 ‘싸움닭’이라는 얘길 들어가며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반대에 앞장서고 여성 의무 공천 비율을 법제화하는 데 앞장서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기정사실처럼 된 게 알려지자 한 발엔 슬리퍼, 다른 쪽 발엔 운동화를 신고 회의장에 헐레벌떡 달려나온 유승희 의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2015년에는 당 최고위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여성 후보 가산점 없이 당선된 터라 의미가 더 컸다.

지난 2월 22일 국회에서 유 의원을 만났다. 유 의원은 2월 초 공식적으로 이재명 성남시장 지지를 선언했다. 왜 이재명인가 물었다. “지난해 말 당내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에서 대선주자 토론회를 열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시장을 유심히 봤다. 그에게서 전태일 열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이 동시에 보였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서민들의 삶을 모르려야 모를 수 있겠나. 성남시는 소득의 양극화가 심한 곳이다. 시민운동 하면서 쌓은 역량으로 성남시를 잘 운영하고 있지 않나.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이라는 구상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 시장이 과연 본선 후보가 될 수 있을까 반문했다.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나는 광명시 의원에서 시작해 당에 공채로 들어왔다. 특정 계파에 발탁되거나 하지 않고 바닥서부터 올라왔다는 얘기다. 될 것 같은 사람만 골라 줄서지 않는다. 되어야만 하는 사람에게 간다.”

유 의원은 지난 2월 14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좌장으로 하는 이른바 ‘비문(非文) 모임’에도 참석했다. 이 모임은 “안희정 지사에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기 정치인 시절의 모습이 보이고, 문재인 전 대표에게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부분이 자꾸 생각이 난다는 젊은이들의 얘기가 있다더라”는 김종인 전 대표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유 의원에게 문재인 대세론에 대해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대세론에 휩쓸리는 것은 당을 위해서도 안 좋을 뿐더러 비정상적이다. 대세론이 커지면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없다. 결국 당의 힘이 약해진다. 정권 재창출 에너지를 상실하는 거다. 박 대통령도 당을 사당화해서 이렇게 된 것 아니냐. 문 전 대표가 이번에 꾸린 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를 봐라. 3분의 1이 재벌 관련 인사다. 이런 식이면 재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나.”

지난 2월 14일 1차 공개된 명단을 보면 37명 중 15명이 삼성이나 LG 계열사 사외이사 출신이다.

“하루 빨리 예비주자 토론회 열자”

사실 민주당 비문 진영에서는 문 전 대표에게 더 비판적인 발언도 나온다. 비문 쪽 한 인사는 “안 지사나 이 시장은 행정력을 검증받았다. 문 전 대표가 본인의 실력을 검증받은 적이 있나. 어떤 실적이 있나. 문 전 대표 치세 10년 동안 당만 쪼개졌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문 전 대표와 함께 청와대에서 일했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국민대 교수)은 최근 “문재인이 집권해도 개혁에 실패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런 문재인 비판론과 관련해 유 의원은 “후보자 검증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대선 예비주자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안희정 양 캠프는 예비주자 토론회를 열자고 거듭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문 전 대표 측은 묵묵부답이다.

- 여성 다선의원 중에선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것 같다. “스타 국회의원만 모여선 정치를 할 수 없다. 조직에 대한 이해도와 정책에 대한 전문성, 지구력 등이 현실정치에서 정말 필요한 것들이다. 여기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아야 정당정치가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요즘 국회의원들은 외부에 비치는 모습을 유독 의식해 초조하게 구는 경향이 있다.”

- 여성 최초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보나. 일각에서는 ‘어느 대통령이나 비선은 있었다. 최순실이 여자라서 문제가 된 것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보기 힘들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결정적 후광이 있지 않았나. 어느 정권이나 측근들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 청와대의 감찰 시스템은 작동했다. 하지만 이번엔 시스템이 무력화됐다. 이것이 문제다.”

- 김문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은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 ‘리스트는 행정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비춰 보라 말하고 싶다. 민주화 이후 리스트가 있었던 정권이 있었나? 박정희 정권 땐 있었겠지.”

- 여성 정치인으로 표창원 의원의 대통령 누드화 전시 논란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미 당에서 당직 6개월 정직처분을 내리지 않았나. 저는 표 의원과 관련해 정작 문제 있는 건 ‘선거에 65세 이상은 출마하지 말라’고 발언한 것이 아닌가 싶다. 피선거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나이로 차별하는 건 부당하다.”

-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가짜 뉴스가 선거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가 있다. 우리도 조기대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폐지는 위험한 것 아닌가. “김해호씨 사례를 봐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9년 전에 폭로했다가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로 실형을 살았다. 최순실이 김씨에게 20억원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가만히 지켜보면 허위사실공표죄는 강자들이 자신에 대한 공격을 막으려는 방패로 쓰고 있다. 기소되는 사람은 거의 약자다.”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 논란은 한번 따져볼 만하다. 관련 선거법의 모호한 규정은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헌재의 위헌심판 대상이 된 것도 여러 번이다. 2011년 SNS상의 선거운동 금지에 대해 한정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해 6월에는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유종성 호주국립대 교수와 박경신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및 후보자비방죄 관련 판례를 전수 조사한 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연구 결과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에서 총 기소건수 중 85% 이상이 이명박 당시 후보나 박근혜 당시 후보를 비판한 건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검찰의 총 기소 건수 중 86.4%가 박근혜 후보 비판이었다. 때문에 제대로 된 검증을 막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왔다. 유 의원은 “허위사실공표죄를 폐지하는 대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후보자 검증을 확실히 해야 한다”며 “후보자검증위원회 설치를 곧 건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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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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