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장한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 요시다 쇼인의 초상화. ⓒphoto 야마구치현 문서관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을 주장한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 요시다 쇼인의 초상화. ⓒphoto 야마구치현 문서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입만 열면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인물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이다. 요시다는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을 주창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상가다. 하급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난 요시다는 해외 열강들의 개항 압박을 목격하면서 제국주의에 눈을 떴다. 요시다는 1854년 미국 함대의 압박으로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되자 해외 유학을 위해 미국 군함을 타고 밀항하려다 붙잡혀 옥살이를 했다. 요시다는 감옥에서 집필한 저서 ‘유수록(幽囚錄)’을 통해 조선과 만주, 대만, 오키나와, 캄차카 등 주변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요시다는 조슈번(長州藩·야마구치현의 옛 이름)에 있는 사설학원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3년간 90여명의 후학을 양성했다. 당시 제자들을 보면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무라이 출신인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1839~1867)를 비롯해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조선의 초대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 고로,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 제2대 조선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실상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 가쓰라 다로 전 총리 등이 있다. 쇼카손주쿠는 2015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아베 총리가 두 번째로 존경해온 인물은 요시다의 수제자인 다카스기 신사쿠다. 다카스기는 조슈번에서 군사 1000여명으로 기병대를 만들어 막부군 2만여명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며 메이지유신의 초석을 다졌다. 메이지유신은 1868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국왕 친정 형태의 통일 국가를 형성시킨 근대 일본의 정치·사회적 변혁을 말한다. 당시 ‘막부(幕府)’체제를 무너뜨린 일등 공신은 다카스기였다. 막부는 12세기에서 19세기까지 쇼군(將軍)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사무라이 정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후 일본은 중앙집권 체제 강화와 산업 육성, 군비 확충을 위한 부국강병정책을 폈으며, 헌법이 제정되고 의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시 제정된 헌법은 국왕을 신성불가침으로 규정해 의회는 왕권을 견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일본의 근대화는 국수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로 치달았다. 아베 총리의 이름 중 ‘신(晋)’ 자는 다카스기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이름에도 ‘신(晋)’ 자가 들어 있다. 요시다와 다카스기는 1869년 야스쿠니(靖國) 신사가 세워진 후 처음으로 합사된 인물이기도 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중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제2차 세계대전 등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숨진 군인과 민간인 등 총 246만여명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 A급 전범 14명의 위패를 1978년 10월 비밀리에 합사한 이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도 A급 전범이었다. 기시는 아베 총리가 세 번째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기시는 도조 전 총리 밑에서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냈다. A급 전범으로 복역하다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된 기시 전 총리는 1955년 자민당 초대 간사장을 거쳐 1957년부터 1960년까지 총리를 역임하는 등 전후 일본 정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극우 정치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베의 피와 머릿속에는 ‘군국주의’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카손주쿠에 걸려 있는 이토 히로부미 등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 사진. ⓒphoto 쇼인닷컴
쇼카손주쿠에 걸려 있는 이토 히로부미 등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 사진. ⓒphoto 쇼인닷컴

내년 대대적 기념행사 개최

2018년은 메이지유신이 단행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의 복심이라는 말을 들어온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미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행사 계획을 위해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150주년 기념행사는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계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지난해 10월 26일 열린 당·정치제도개혁실행본부 총회에서 당 총재 임기를 현행 ‘2기 6년’(3년 임기 총재를 1차례만 연임할 수 있음)에서 ‘3기 9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당칙(黨則) 개정안을 확정했다. 자민당은 오는 3월 15일 당 대회를 열어 이를 공식 추인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총리를 다시 맡을 길이 열렸다. 무엇보다 자민당에서 아베에 도전할 인물도 거의 없다. 때문에 아베는 지지율이 심각하게 떨어지지 않고 한 차례씩 중간에 걸려 있는 중의원 및 참의원 선거를 참패하지 않는 한 메이지유신 이후 최장수 총리가 될 전망이다. 1964년부터 7년8개월간 집권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기록도 넘어선다. 역대 일본 총리 62명 중에서 4년 넘게 버틴 경우는 8명에 불과하다. 2006년 9월부터 1년간 재임한 뒤 물러났다가 2012년 12월 다시 집권한 아베 총리가 3차례 연속 총재를 맡게 되면 최장수 총리가 된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집권 여당의 총재는 총리로 선출된다. 메이지유신 100주년이던 1968년 10월 사토 당시 총리가 기념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한 뒤 11월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속셈도 사토 전 총리처럼 내년 메이지유신 15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한 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해 승리한 뒤 총리가 된다는 것이다.

사토 전 총리도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다. 사토 전 총리는 기시 전 총리의 동생이다. 기시는 사토 가문 출신이지만 기시라는 성을 가진 아버지 쪽 친척의 양자로 들어갔다. 기시는 야마구치 현청 직원인 사토 히데스기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증조부 사토 신칸은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 등과 폭넓게 교유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지유신의 주역들 가운데 한 명이자 일본 정부의 초대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 메이지유신 50주년이던 1918년 총리를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메이지유신 100주년인 1968년의 사토 전 총리, 그리고 아베 총리는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아베 총리가 메이지유신 150주년인 2018년 총리에 재임한다면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기 신사쿠로부터 시작된 메이지유신의 정신이 그대로 이어지는 셈이다. 아베 총리도 “메이지유신 50주년과 100주년 때 총리가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들은 이들 외에도 야마가타 아리도모, 가쓰라 타로, 다나카 기이치 등 총 8명이나 된다.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아베 총리의 목표는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기점으로 ‘제2의 유신’을 통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위해 개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20일 국회 새해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추진 의사를 공식화했다. 아베 총리는 “올해로 헌법 시행 70년이라는 한 단락을 맞이했다”면서 “우리 아들, 손자, 미래를 살아갈 세대를 위해 다음의 70년을 위해, 일본을 어떤 나라로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개헌안을 국민에게 보여달라”고 강조했다. 개헌을 지지하고 있는 자민당은 물론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민진당 등 야당에 대해 앞으로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복안은 평화헌법 제9조를 바꾸는 것이다. 평화헌법의 제9조를 보면 1항에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항은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내용 때문에 일본 헌법은 그동안 평화헌법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평화헌법은 2차대전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1946년 11월 3일 공포됐다. 특히 아베 총리는 “현행 헌법이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당시 일본이 패전국이라는 약자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통해 ‘자주헌법’을 만들어야 일본이 전후체제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본다. 평화헌법 제9조 전체를 뜯어고쳐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표현대로 하자면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통국가란 정치·외교·군사·경제 주권을 확립하고 국력에 걸맞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를 뜻한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의도하는 보통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을 의미한다. 전전(戰前) 일본은 주변국들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는 등 패권만 추구한 군국주의 국가였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개헌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까.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9월 이전에 개헌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제9조를 바꾸는 개헌을 그대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제9조 개정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 민진당 등 야권이 제9조의 개정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민당에서 제기한 2단계 개헌론이 유력한 카드가 될 듯하다. 2단계 개헌론은 민진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제9조 개정은 뒤로 미루고 일단 긴급사태 조항 등 여야 간 이견이 적은 항목을 개헌하자는 것이다. 긴급사태는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 내란 등에 의한 사회질서 혼란, 지진 등에 의한 대규모 자연재해 등을 말한다. 아베 총리는 현재의 총리 임기 중에는 1단계로 긴급사태, 환경권 등을 평화헌법에 추가하는 등 국민의 거부감을 낮추는 방향으로 개헌하고, 이어 차기 총리 임기 중 2단계로 제9조를 개정하는 개헌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아베 총리의 이런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 이유는 동북아 정세가 아베 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개발 가속화, 주한미군의 사드배치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갈등 증폭,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안보 불안 요소들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빌미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가 지난 2월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photo 트럼프 페이스북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가 지난 2월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photo 트럼프 페이스북

“미국에서 일자리 70만개 만들겠다”

특히 아베 총리는 지난 2월 10~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및 골프 회동과 만찬 등에서 미·일 동맹의 틀을 다시 확인받고 군사력 강화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미·일 동맹은 아·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주춧돌(cornerstone)”이라면서 “일본은 동맹의 역할과 책임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맞서기 위해 일본이 자위대 역할을 확대해 미국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아베 총리의 논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대로 먹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중국을 미·일 동맹 강화로 대응하되, 중·장기적으로는 개헌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나아가려는 아베 총리의 행보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에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국에서 일자리 70만개를 만들고 향후 10년간 4500억달러(511조7850억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내용의 ‘미·일 성장·고용 이니셔티브’라는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아베 총리는 기시 전 총리가 1957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과 골프를 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과 라운딩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 미·일 정상이 함께 골프를 친 것은 50년 만에 처음이다.

아베 총리는 또 2020년 개막될 도쿄올림픽에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도쿄올림픽이 활기를 잃은 경제를 부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또 전직이 아닌 현직 총리로 개막식에 앉아 있기를 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베 총리가 지난해 8월 2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 도쿄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슈퍼마리오 복장으로 등장한 것은 상당한 함의가 있다. 슈퍼마리오로 변신한 것은 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경제를 부활시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1964년에도 도쿄올림픽을 개최했었다. 당시 도쿄올림픽은 기시 전 총리가 유치했지만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둘러싼 혼란으로 1960년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때문에 아베 총리에게 외조부가 주관하지 못한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독일을 제치고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때문에 2020년 도쿄올림픽은 일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열강의 반열에 오른 뒤 2차 대전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했다. 아베 총리는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제2의 유신을 꿈꾸고 있다. 아베 총리가 고향인 야마구치현 출신의 선조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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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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