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가장 큰 약점은 국가관과 안보관이다. 2016년 10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처리와 관련 “일단 남북경로로 확인해 보자”고 했다는 그의 말이 송민순 회고록에 등장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문 전 대표가 대선주자로서 안보관과 국가관을 의심받는 것은 본인이 자초했다. 지난 1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는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부터 먼저 가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다시금 대북관이 의심받자 “그런 뜻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월 22일 경기도 안성에서 가진 농민 간담회에서 문 전 대표는 쌀 재고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쌀과 북한이 보유한 지하광물 희토류를 맞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에 결의한 대북제재 결의안에서 북한산 금·희토류 등 광물의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은 유엔 결의안을 전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날 벌어진 논란은 또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군 출신 인사 180여명으로 이뤄진 ‘더불어국방안보포럼’ 발족식을 열었는데, 행사에서 게양된 태극기가 거꾸로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같은 날 문 전 대표의 국정자문단 공동위원장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한 발언이 다시 논란이 됐다. 정씨는 김정남 피살 사태를 “우리가 비난만 할 처지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해 역시 논란을 일으켰다.

이날 논란들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는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일부 오해가 있다”는 등의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권은 물론 야권에서도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문재인 전 대표 역시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 사드 배치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고 했는데 정세현 전 장관과 안보관을 같이하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정병국 바른정당 대표는 “그러지 않아도 문 전 대표의 왜곡된 대북 인식에 국민이 불안한 상황에서 정책을 보좌하는 주변 인사까지 이 모양이니 문 전 대표가 집권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될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주사파(主思派)의 탄생

문재인 전 대표는 왜 끊임없이 ‘불안한 모습’을 스스로 노출하는 것일까. 갈짓자 행보를 보이는 그의 안보관의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그가 운동권 주사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죽산조봉암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인 주대환씨는 자신의 책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 현대사’(나무나무)를 통해 “문재인은 얼굴마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대학 시절을 거쳐 현재는 한국 정치의 주류로 떠오른 주사파들이 그의 곁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안보관을 주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주사파가 어떻게 탄생해 성장했는지에 대한 주씨의 설명을 들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주씨의 책 228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는 ‘통합진보당이라는 괴물은 전두환이라는 악마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누구하고도 손을 잡아도 좋다는 심정이 바로 통합진보당의 뿌리다’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어요.”

“이제 누구하고 손을 잡아야 하지? 누가 우리 편이지? 없는 거야? 마침내 북한이라는 ‘우군(友軍)’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른바 ‘주사파’가 탄생한 것입니다. 1980년대 초·중반 당시 대학교 1·2학년 어린 학생들은 자기들만이 홀로 전두환이라는 악마와 맞짱을 뜨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 저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선배들 말을 지독하게 듣지 않았습니다.… 기성세대가 그렇게 그저 열심히 일하는 사이에 전두환이라는 악마를 죽이는 거창한 일을 스무 살 어린 학생들이 한 겁니다.”

주씨의 설명대로 1980년대 초 혈기왕성하게 나타난 주사파는 이제 한국 야당의 주류가 되었다. 설명을 더 들어보자.

“세월은 흘러 1980년대 초, 당시 스물한두 살 청년들이 50대 초반의 장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야권의 핵심, 야권의 중추세력이 되어 있고, 야권의 모든 잘못과 허물의 책임이 있는 집단으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 요컨대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씨 같은 사람들이 대표를 하고 있지만, 모두 얼굴마담일 뿐이지요. 정치 안 하려고 하는 문재인을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하면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당 내 486, 전대협 세대의 힘입니다. 말하자면 택군(擇君)을 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집단입니다. 강화도령이든 누구든 데리고 와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조직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십 년 동안 다져진 인간관계로 뭉친 하나의 커다란 인간 집단이지요. 그들이 이른바 ‘진보’라고 불렸던 골목, ‘민주’라고 불렸던 골목을 다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쪽 야당의 중앙당 실무진, 도당 사무처, 국회의원 보좌관,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 야권 성향의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 심지어 여의도 주변의 정치 건달들까지 모두가 다 친구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고급 정보가 하룻밤 사이에 다 교환되고, 내부에서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기술자들이에요. 어릴 때부터 학생회 선거를 해서 권력 잡는 데는 도사들이지요. 그때부터 훈련이 되어 있어요. 또 그게 적성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매우 권력지향적이지만, 무식하고 건방집니다. 1980년대에도 이미 한국 사회를 연구한 논문들이 나오고 있었어요. 대단한 수준이나 내용이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들어온 사회과학 이론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값진 노력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전혀 읽지를 않고 북한에서 온 방송만 듣더라고요. 대화가 안 되는 거지요. 또 어떤 패거리는 소련 과학아카데미에서, 그것도 주로 일본 사람들 번역을 통해서 들어온 것만 읽더라고요. 그게 바로 NL과 PD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세대가, 그런 반지성적인 태도, 역사는 우리가 처음 만든다는 그런 건방진 태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지금 한국 사회의, 특히 야권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큰 불행이고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도 쉽게 반성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이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고, 자신들이 그동안 세상을 주무르고 흔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주사파는 계속해서 한국 사회의 안보를 불안하게 하는 정치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주대환씨의 답은 의외로 낙관적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을 ‘꼰대’라고 느끼는 청년 세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간만큼 무서운 힘은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도 시간이 다 부숴버립니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시간이 다 해결합니다.”

주대환은

주대환은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마산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며 여러 차례 투옥됐던 경험이 있다. 1987년을 전후해 김철순이라는 가명으로 혁명을 선동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2008년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주씨는 ‘민족주의 사관’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관으로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썼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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