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저우언라이·키신저 비밀회담
1971년 저우언라이·키신저 비밀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첫 정상회담이 오는 4월 6~7일 이뤄질 전망이다.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3월 13일(미국 시각)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 일정 조정이 진행 중”이라고 말하고 “현재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준비 작업을 위해 일본, 한국, 중국을 방문 중이다”고 확인해주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6~7일 플로리다 마라라고(Mar-a-Lago) 별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를 확인해달라”는 기자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공식방문이 아니라 실무방문(working visit)이 될 그 회담을 통해 무엇을 논의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북한과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긴장을 완화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말하고 “늘 그렇듯이 미국 대통령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간의 회담에서는 광범위한 상호 관심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주재 미 대사도 파견돼 있지 않고, 동아시아 담당 차관보도 결정이 돼 있지 않은 형편에 관련 회담에 대해 어떻게 대통령에게 설명할 것이며 어떻게 미 대통령이 강력한 입장에 설 수 있게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틸러슨 국무장관이 해당 지역을 방문 중”이라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중국 매체들이 ‘시터후이(習特會)’라고 부르는 시진핑·트럼프 정상회담에 대해 확인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3월 14일 “중국과 미국 쌍방은 양국 간의 고위층 교류를 중시하고 강화하고 있으며, 현재 쌍방은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중이고, 진일보한 소식이 있으면 때에 맞추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악관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을 비교해 보면 틸러슨 국무장관이 17~18일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시진핑 주석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만나 시터후이의 구체적 일정과 안건을 확정할 예정인 것으로 관측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유세를 통해 중국에 대해 “미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 “내가 당선되면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 상품에 45%의 고율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험악한 말을 했었다. 뿐만 아니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1971년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를 성공시킨 헨리 키신저 박사에게 “하나의 중국 정책은 꼭 지켜야 하는 거냐”라고 묻기도 했다. 키신저는 트럼프의 질문에 대해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두 개의 중국이면 어떻고, 세 개의 중국이면 어떠냐”라는 대답을 했다는 사실이 베이징에 알려져 중국 지도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트럼프는 당선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에게 전화를 걸어 대만에 대한 계속적 지지를 약속해 중국 지도자들을 화나게 했다. 그러나 당선된 이후에는 시진핑 주석의 당선 축하 전화를 받았고, 이에 대한 답례로 중국의 정월 대보름날인 2월 8일 시진핑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시진핑 주석과 중국 인민들이 즐거운 명절을 맞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하면서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해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 따뜻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시진핑을 초청할 것으로 알려진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는 트럼프 소유의 골프장이다. 트럼프는 지난 2월 이 골프장으로 외국 국가원수 가운데 제일 처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초청해서 18홀 풀코스 골프를 치면서 환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골프를 칠 줄 모르기 때문에 마라라고 골프장을 트럼프와 산책하면서 북한의 핵실험과 한국 사드 배치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듣고, 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할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물론 미·중 무역 문제와 환율 문제도 이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정상은 마라라고 골t프장을 산책하면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시진핑의 ‘중국의 꿈(中國夢·China Dream)’이 어떤 목표를 가진 구상인지에 대해 서로 확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우리다. 지난 3월 6일 이미 사드 발사대 2기가 오산 미군기지에 도착함으로써 배치가 이미 기정사실화됐는데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정한 사드 배치를 중단하라”느니 “사드 문제는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하는 문제이니,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 야당의 주장이 마라라고 골프장에서 이루어질 트럼프·시진핑 회담에서 언급된다면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진핑 국가주석의 입을 통해서 트럼프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내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주장이 상당히 퍼져 있으며,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바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사드의 한국 배치를 반대하는 논리를 전개할 때 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로서는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많은 인물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다는 시진핑의 이야기에 어떻게 멋진 답을 할 수 있을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971년에 이루어진 닉슨 미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키신저와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 사이의 세기의 비밀회담 당시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 정부에 사전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반면 저우언라이 총리는 사전에 김일성에게 “미국과 비밀회담이 진행될 것이니 요청사항이 있으면 메모로 보내달라”고 알려주었다. 당시 김일성은 주한미군 완전 철수, 미국의 남한에 대한 핵우산 제공 중단,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비롯한 8개항의 메모를 보냈고, 저우언라이는 이 메모를 키신저에게 전달했다.

우리로서는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해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경제 제재와 한류 제재가 부당한 것임을 트럼프를 통해 시진핑에게 전달해야 할 입장인데 과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런 뜻을 전했는지, 아니면 전할 예정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미·중 정상회담은 결코 우리가 강 건너에서 구경만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활용해야 하는 회담인데 우리 외교당국도 과연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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