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 ⓒphoto 위키백과
페리클레스 ⓒphoto 위키백과

이 연재 첫머리에서 강조했지만 리더는 ‘앞서가는 사람’이다. 그는 남들이 가본 적이 없는 길을 발견하여 첫발을 내딛는 사람이다. 그는 갈 길을 몰라 실의에 빠져 있는 대중의 고통을 직시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아직 가지 않은 길’이 최선 혹은 차선의 길이라고 이성적으로 감동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다.

리더는 대중이 원하는 길에 영합하는 자가 아니다. 그들보다 탁월한 안목으로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길을 제시하는 자가 영웅이다. 그는 자신의 비전이 담긴 말로써 대중의 마음에 신뢰의 씨앗을 심어놓는 농부다. 이 씨앗은 대중의 마음속에서 싹이 튼다. 대중은 리더가 자신의 가슴에 던진 희망의 씨앗을 깊이 숙고하는 주체다. 그들은 숙고를 통해 리더의 말이 옳다고 깨닫고 기꺼이 그를 리더로 선택한다.

우리는 리더 고갈 시대에 살고 있다. 리더에 대한 왜곡되고 파편적인 이미지를 미디어를 통해 힐끗 볼 뿐이다. 우리는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단계의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자기 스스로 어떤 정신적·육체적인 수련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지 도무지 배운 적이 없다. 우리는 초·중·고 시절을 입시에 매달려 몇 문제 더 맞히려고 육체적·정신적 소양을 고갈시켰다. 대학 시절에는 불확실한 미래의 대안을 찾기 위해 일부는 사회운동에 투신하기도 했고, 일부는 자신과 가문의 성공을 위해 비정상적으로 고시 공부에 매진하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런 부류다. 선진국에서 강조하는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심하게 말하면 사회부적합자들이다. 이들이 권력을 잡으니 나라가 편할 날이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는 리더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역설적으로 중국 때문이다. 중국이 1970년대까지는 마오쩌둥의 ‘자력갱생론’을 국가정책으로 삼아 국제화를 하지 않은 덕분에 대한민국은 중국과의 경쟁 없이 국제화와 산업화를 달성하여 이만큼 살게 되었다. 그런 행운도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개방화 정책을 펴면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산업 분야를 따라잡았다. 대한민국은 한두 분야를 제외하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완패하였다. 경제적으로 암울하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대한민국을 이끌 리더는 누가 될 것인가?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어떤 인물을 리더로 뽑을 것인가?

투키디데스의 페리클레스론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의 근간에는 ‘의사결정’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주의를 태동시킨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의사결정은 투표를 하는 대중 앞에서의 연설에 의존하였다. 오늘날처럼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리더를 볼 수 없던 아테네에서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설은 대중의 의사결정과 민주주의의 핵심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 두 집단은 자신의 제안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펼 수 있는 공적인 연설가, 즉 정치가와 그들의 제안을 듣고 의사를 결정하는 대중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 발현과 쇠퇴를 본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기원전 460~기원전 400)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책을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대중의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정치 지망생들의 대중연설과 대중의 반응을 남겼다. 정교한 정치사상가였던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정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아테네 민주주의의 장점과 약점을 적나라하게 분석하였다. 그는 정치가들의 연설을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로 여겼다. 그는 대중의 의사결정은 정치가들의 많은 정치적 행위보다 그들의 연설에 의존한다고 결론지었다.

투키디데스는 그리스 정치인들 중 연설을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대중을 가장 성공적으로 설득하고 교육한 인물로 페리클레스(기원전 495~기원전 429)를 뽑았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페리클레스라는 정치가를 통해 완성되었지만, 그 후 다른 정치가들이 등장하여 민주주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쇠퇴하였다고 분석하였다. 투키디데스는 민주주의의 흥망성쇠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물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페리클레스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는 대중을 자유자재로 조절하였다. 그는 대중에 의해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을 이끄는 사람이다. 이것이 이론적으로 민주주의다. 그러나 실제로 (민주주의는) ‘첫 번째 인간의 통치를 통해(hypo tou protou andros arxe)’ 이루어진다.”

이 문장은 도발적이다. 거의 독재자를 찬양하는 글처럼 보인다. 투키디데스는 대중을 자유자재로 조절한 페리클레스의 통치를 민주주의라고 정의하였다. 대중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페리클레스의 의견에 승복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대중은 기꺼이 페리클레스의 철학을 자율적으로 배우고 따랐을까? 이유는 한 가지다. 페리클레스가 지혜롭게 책임지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이 보지 못하는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위험에 미리 대비하게 대중을 설득하였다. 투키디데스가 사용한 ‘첫 번째 인간의 통치’라는 문구가 충격적이다.

페리클레스의 네 가지 자질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 페리클레스가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른 최고의 정치가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페리클레스의 입을 빌려 전한다. “나는 다음 네 가지 분야에서 세상의 어느 정치인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납니다. 첫째, 나는 가장 시급한 정책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둘째, 나는 이 정책을 누구보다도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나는 아테네를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합니다. 넷째, 나는 비리가 없고 부패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페리클레스가 아테네 민주주의의 리더가 된 자신의 자질을 위 네 가지로 나열한 것이다.

나는 2017년 대한민국의 대권에 도전하는 리더에게도 페리클레스의 자질론과 같은 맥락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첫째, 2017년 대한민국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가? 둘째, 당신은 한시가 급한 이 문제를 어떻게 효과적이면서 감동적으로, 분열을 초래하지 않고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도록 설명하겠는가? 셋째, 당신은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당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그 비전이 과거 지향적이거나 분열을 초래하지는 않는가? 당신은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넷째, 당신은 부패하지 않았나? 남들이 보기에 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거울을 보고 정직한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가 최고의 리더인 이유는 위의 네 가지 자질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는 페리클레스의 자기관리, 포부, 심성에 관한 내용으로 대중들이 그를 보았을 때 느끼는 아우라나 카리스마다. 카리스마는 오랜 수련을 통해, 수련자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힘이다. 사실 투키디데스는 세 번째와 네 번째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자질을 강조한다. 페리클레스의 성공은 그 시점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를 감지하고 그 시급한 사항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능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리더와 대중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두 번째 특징이다. 페리클레스는 시급한 문제를 설명하고, 현명한 해결점을 대중들로 하여금 숙고하도록 설득한다.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와는 달리 대중의 뜻을 무조건 따르는 또 다른 아테네 장군 클레온도 소개한다. 클레온은 페리클레스와 한 가지 점에서 다르다. “클레온은 대중선동가로 대중을 누구보다도 잘 설득한다.” 페리클레스는 대중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의 선견지명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설득하고 교육하여 그 뜻을 관철시키는 자이다. 그러나 클레온은 다르다. 권력을 잡기 위해 광장에서 들은 대중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클레온은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착각한다. 클레온은 대중의 뜻에 영합하여 그 인기로 리더가 되고자 한다. 반면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를 저 높이 날아가는 독수리의 눈으로 깨닫고, 그것을 감동적으로 설명하고 교육한다.

대중을 숙고하게 만드는 연설

페리클레스의 수사학적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연설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전사한 전몰자를 위한 추도사다. 그는 이 연설을 통해 아테네 민주시민에게 자신을 숙고하도록 교육한다. 그에게 연설은 대중 스스로 이기적인 다양한 의견을 극복하고 아테네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련의 방법이었다. 대중은 정책을 만드는 주체가 아니다. 실제로 법을 상정하고 제정하는 자들은 그들이 선출한 리더들이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최선의 해결책을 ‘가르친다’. 리더는 중요한 정책을 대중과는 별도로 대중을 위해 결정하는 사람이다. 리더의 연설은 대중이 스스로 자신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특징은 리더와 대중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대중적인 숙고라고 말한다. 그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집단으로 숙고한다는 점에서 뛰어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도모할 때, 용감할 뿐만 아니라 사색적입니다.”

아테네인이 자신들이 결정한 사항을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이유는 그들이 리더의 연설을 통해 충분히 숙고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시급한 문제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숙고했기 때문에 결정한 사항을 강력하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숙고에는 지적인 능력과 이성적인 소통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숙고의 힘이 강화된다. 아테네의 숙고, 의사결정, 확신, 행동, 그리고 용기는 바로 이 과정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대중을 숙고하게 만드는 페리클레스의 연설과는 대조적으로 대중의 정제되지 않은 의견에 영합하는 대중선동가들의 연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앞서 얘기한 클레온과 스파르타의 장군 아테나고라스다. 이 두 명은 국가의 시급한 정책과 해결책을 대중이 결정하도록 ‘방관한’ 자들이다. 그들은 리더의 연설을 통해 대중이 숙고하게 만드는 훈련을 생략한다. 그럼으로써 정제된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없앤 자들이다. 페리클레스가 생각하는 성숙한 대중은 적절한 숙고와 교육을 통해 지혜롭고 책임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클레온과 아테네고라스는 “민심은 천심이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아테네고라스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인들 구분한다. “부자는 재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며, 똑똑한 자는 충고를 잘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대중)은 들은 후에 의사결정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는 시라큐스를 점령하기 위해 전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아테나고라스는 아테네인들이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이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시라큐스를 분열시켰다. 아테나고라스는 대중이 리더들이 토론하는 것을 ‘들었다(아쿠산타스)’고 표현한 반면 페리클레스는 대중이 리더의 주장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디닥스센타스)’고 표현한다. ‘들었다’라는 표현은 자기 의견의 변화 없이 단순히 듣는 행위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았다’라는 표현은 리더의 연설을 듣고 도시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가를 숙고하여 리더의 의견에 동의하는 행위다. 리더는 단순히 자신의 고상한 의견을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거기엔 깨달음을 포함해야 한다.

리더는 대중 선동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페리클레스의 ‘숙고하게 만드는 연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중 선동연설과 무엇이 다른가? 투키디데스는 리더의 숙고적인 수사(修辭) 능력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대중의 의사결정의 핵심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페리클레스 연설은 아테네 시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테네 군비와 재정 상황과 같은 객관적인 정보를 상세히 소개한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다른 정치인들의 연설과 다르다. 첫 번째는 정직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성에 근거해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정직성’이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대중의 입맛에 맞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절제의 힘”이다. 당시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라면 국가의 중요한 결정에 반대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대중의 지지를 얻어 리더가 되기 위해 국가의 장래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는 서슴지 않는 리더들이 많았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중의 눈을 보면서 대중을 설득했다. 반면에 클레온은 대중의 이익을 위해 무책임하게 말하고 심지어 대중의 눈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았다.

정직성은 리더가 오랫동안 도덕적·윤리적으로 수련해왔다는 증거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말한 ‘에토스(ethos)’와도 연관이 있다. 보통 ‘인격’ 혹은 ‘도덕’ ‘윤리’로 번역되는 그리스 단어다. ‘에토스’는 리더의 생각, 말, 행동에 밴 그 사람의 인격이다. 정직성은 바로 이 인격의 표현일 뿐이다. 자신의 양심에 정직한 것이 인기 영합을 통해 권력을 쥐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성’이란 다양한 의견을 가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공식이다. 리더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성적인 언어’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 이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말한 ‘로고스(logos)’와 연관이 있다. 리더는 로고스라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통계와 같은 숫자를 동원해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리더의 연설은 대중이 스스로 숙고할 수 있도록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대중은 이성을 통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국가에 무엇이 최선인가를 깊이 고민한다. 이를 통해 대중은 즉흥적이며 자신의 이익에 관련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의도적이며 사려가 깊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럼 다시 묻는다. 2017년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대선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리더를 선택해야 하나? 지금 대한민국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일본의 군사적 야심 한가운데서 갈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와 같다. 그런 우리에게 막강한 권력을 쥘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가 닥친 것이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을 전략적으로 위치시켜 정치적·경제적으로 안정시킬 리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그런 인물이 선뜻 생각나지 않아 답답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대선에 출마한 이들이 말하는 내용을 귀담아듣고 이들의 말에 카리스마가 있는지, 이들의 연설이 우리의 생각을 재고하게 하고 숙고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지, 이들의 말이 우리를 더욱 분열하게 만드는지 판단해야 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마지막 단락이 생각난다. “오랜 세월이 지나, 어디에선가 한숨지으며 말할 것이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간 길을 택했다.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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