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김정은. (우)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좌) 김정은. (우)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시리아 북동부 제2 도시인 알레포 인근 알 사피라라는 곳에는 시리아과학연구센터(SSRC)가 운영하고 있는 비밀군사시설이 있다. 시리아 정부는 민간연구기관으로 위장한 이곳에서 화학무기와 미사일을 은밀하게 개발해왔다. 지난 2007년 7월 28일 이곳에서 의문의 폭발 사고가 발생해 시리아와 이란의 화학무기와 미사일 전문가 수십 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다. 당시 시리아 정부는 섭씨 50도를 넘은 폭염 때문에 비료의 원료가 되는 화학물질이 폭발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발표했으나 폭발사고는 기온이 오르기 훨씬 전인 새벽 4시30분에 발생했다. 시리아 정부는 사상자의 숫자나 신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사고로 북한 기술자 3명이 숨진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영국의 군사잡지인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 후인 같은 해 9월 26일 시리아 군 소식통을 인용해 폭발사고로 VX, 사린가스, 머스터드가스를 포함한 화학물질이 이 시설 내로 퍼지면서 대량의 인명 피해를 냈다고 보도했었다. 이 잡지는 미국 정부가 북한 기술자들이 사망자들 중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잡지는 북한 기술자들이 이곳에서 단거리 탄도 미사일인 스커드 C(사거리 500㎞)의 탄두에 머스터드가스를 탑재하는 실험을 해왔다면서 폭발이 일어난 곳은 화학무기용 물질이 보관돼 있는 저장소였다고 밝혔다.

당시 폭발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의 특수 요원들이 비밀리에 화학무기 저장소에 폭탄을 설치해 파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탐사전문 언론인이자 작가인 로넨 베르그만은 정보기관의 고위 관리가 “시리아의 알 사피라 폭발은 훌륭한 사고(wonderful accident)였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베르그만은 아랍 국가들은 물론 세계 각국을 상대로 벌여온 모사드의 각종 비밀 공작활동을 파헤친 ‘이스라엘의 은밀한 작전(By Any Means Necessary: Israel’s Covert War)’이라는 저서를 펴냈다.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24일 시리아과학연구센터 소속 연구원과 직원 등 271명을 무더기 제재하는 조치를 내렸다. 미국 정부는 이들의 미국 내 모든 재산을 동결하고 자국 기업들과의 거래도 전면 금지시켰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단일 제재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4월 7일 화학무기 사용에 격분한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공군기지를 공습하는 등 미국이 시리아 화학무기를 본격적으로 겨냥하면서 시리아 화학무기의 기원(起源)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시리아가 함께 화학무기를 개발해온 파트너는 다름 아닌 북한이다. 북한과 시리아의 오랜 화학무기 커넥션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북한에서도 알 사피라 폭발과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2004년 4월 22일 북한 평안남도 남포로 향하는 화물열차가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폭발사고로 파괴되면서 최소 160여명이 사망하고 1300여명이 부상했다. 용천역은 신의주에서 50㎞ 떨어진 곳이다. 당시 폭발 사고로 용천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는 완전 폐허로 변했다. 사고 현장의 구덩이 크기만 150m에 달했고, 수천여 채의 가옥이 무너져 내리는 등 폭발 규모는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은 용천역 일대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희생자들을 수습하고 사고 원인을 조사했다. 북한 당국은 폭발 사고는 다이너마이트 등 폭약을 실은 화물 차량 2대를 측선으로 빼는 작업 도중 전선을 건드리면서 스파크로 인해 폭발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은 화물 차량들 중에서 질산암모늄이 적재돼 있었는데, 이 화학물질이 누출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용천역 폭발로 시리아 과학자 12명 숨져

폭발 사고 원인은 지금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 북한 당국의 발표에는 상당한 의문이 제기돼왔다. 무엇보다 당시 사망자들 중에는 시리아 과학자와 기술자 12명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이들은 한 객차에 별도로 탑승해 있었는데, 폭발로 전원 사망했다. 이들은 시리아과학연구센터의 연구원들이었다. 또 당시 사고를 수습하러 온 북한 군인들이 모두 화생방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는 점도 수상했다. 게다가 시리아 정부는 이례적으로 자국인 12명의 시신을 운송하기 위해 군용기를 북한에 파견했다. 시리아 군용기는 구호물품을 싣고 북한에 도착한 뒤 이들의 시신을 자국으로 운송했다. 그런데 이들의 시신을 운구할 때 시리아와 북한 군인들이 역시 화생방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국제탐사보도 전문기자인 네이트 타이어에 따르면 시리아과학연구센터의 연구원들은 열차에 미사일과 각종 부품을 비롯해 ‘비밀스러운 물질’을 싣고 남포로 가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열차의 화물들은 남포에서 화물선으로 시리아까지 운송될 예정이었다. 시리아과학연구센터는 시리아 정부가 운영하는 비밀군사기관이다. 민간 연구를 하는 곳으로 위장해온 시리아과학연구센터는 화학무기를 비롯해 생물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제조해왔다. 비밀스러운 물질이 화학무기 또는 핵무기의 원료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산케이신문(産經新聞)은 같은 해 5월 7일자에서 당시 사고가 북한과 시리아 간의 비밀 물질 수송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비밀 물자의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비밀 물질을 실은 화차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용천역 폭발 사고는 우연히 발생한 것일까. 북한 당국은 용천역 폭발 사고 이후 휴대전화 서비스를 중단했고 1만여대 규모의 휴대전화기도 모두 회수했다. 그 이유는 용천역 폭발 현장 인근에서 테이프로 감은 휴대전화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북한 당국은 휴대전화기를 기폭 장치로 이용했다고 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당국이 휴대전화 서비스 재개를 허용한 것은 5년이나 지난 후인 2009년이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용천역 폭발 사고는 특수요원의 공작일 가능성이 높다. 영국 언론인 고든 토머스는 모사드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모사드는 시리아 군 장교와 과학자들의 평양행을 추적해왔다”면서 용천역 폭발은 사고가 아니라 사실상 모사드의 소행이라고 추정했다.

모사드가 시리아 과학자들의 평양행을 알게 된 것은 미국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2004년 초 시리아 북동부의 사막지대와 평양 간에 수상한 통신이 자주 오가고 있는 것을 탐지했다. NSA는 이런 정보를 이스라엘 군 정보국과 유닛 8200이라는 사이버 정보 부대에 제공했다. 유닛 8200은 비밀정보 수집과 암호 해독 등을 주로 담당하는 부대다. 유닛 8200은 컴퓨터 웜바이러스인 스턱스 넷을 개발해 2010년 9월 이란의 부셰르 원자력발전소 시스템에 침투시켜 원심분리기의 가동을 중지시킨 사건을 포함해 다수의 사이버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바 있다. 시리아 북동부 사막지대는 바로 알 사피라 비밀군사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옛 소련 외교문서가 밝힌 커넥션

북한은 1990년대 말부터 시리아 정부의 알 사피라의 비밀 화학무기 개발 및 제조시설 건설을 지원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70년대 초부터 시리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의 아버지)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각종 무기를 수출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뉴스사이트인 NK뉴스는 ‘최근 기밀해제된 옛 소련 외교문서를 보면 1973년 평양에서 북한 관리가 시리아 정부 관리를 만나 무기 수출에 관해 논의한 대목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이때 김일성이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에게 개인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시리아가 원하는 무기를 공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후 북한은 시리아에 탱크를 비롯해 각종 무기와 전투 장비를 수출해왔다. 특히 북한은 1991년부터 스커드 C 미사일을 시리아에 대거 공급해왔다. 북한은 1981년 이집트로부터 스커드 B를 도입해 해체한 뒤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확보했으며 이후 이를 개량해 스커드 C를 개발했다. 심지어 북한은 시리아에 스커드 C와 스커드 D 미사일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어주었으며 기술자들을 파견해 탄도미사일 성능 개량과 발사 실험까지 지원해왔다. 특히 북한은 시리아의 미사일에 화학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기술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알 사피라 비밀군사시설에서 북한 기술자가 사망한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국방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이 화학무기 개발 과정에서 시리아와 긴밀하게 협력해온 구체적 정황과 증거들이 있다고 밝혔다. 베넷 연구원은 2005년 터키에 떨어진 시리아의 스커드 미사일이 북한의 기술을 이용해 공중폭파용 화학무기를 운반하는 미사일이었다고 지적했다. 베넷 연구원은 또 2009년 10월과 11월 북한에서 시리아로 향하던 수만 벌의 화생방 방호복과 화학무기 시약이 적발된 것도 이런 협력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리스는 2009년 9월 시리아 라타키아로 가던 북한 선박에서 화학무기 방호복 1만4000여벌을 압수한 바 있다. 그리스는 또 같은 해 11월 북한으로부터 시리아로 향하던 라이베리아 선적 화물선의 화물 컨테이너를 압수했는데, 이 속에서 화학무기와 관련된 시약이 든 다수의 앰플을 발견했다. 터키도 2013년 4월 북한에서 시리아로 가던 리비아 선적 화물선에서 가스마스크를 적발하기도 했다. 대니얼 러셀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불행하게도 북한과 시리아 간에는 확실히 길고 불미스러운 군사협력의 역사가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시리아의 화학무기 등 은밀한 군사협력 커넥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온 국가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1967년과 1973년 전쟁을 포함해 수차례 군사적으로 충돌해왔다. 특히 이스라엘은 1967년 이른바 ‘6일 전쟁’에서 승리해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차지한 이후 현재까지도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비롯해 대량살상무기(WMD)의 개발·제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이스라엘로선 시리아가 스커드미사일은 물론 공중 투하 폭탄에 화학무기를 장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2007년 9월 시리아가 북한과 이란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건설 중이던 핵 시설을 이스라엘이 공군 전폭기를 동원해 공습해 파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모사드는 2007년 2월 서방 국가로 망명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역임한 알리 레자 아스가리 국방차관으로부터 시리아의 핵시설 정보를 들었다. 아스가리는 이란의 자금과 북한의 기술 지원으로 시리아가 북한 영변의 5㎿급 원자로와 비슷한 원자로를 건설한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실제로 시리아는 매년 핵무기 1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20~25㎿급 흑연 감속로를 건설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당시 북한 과학자 10명이 핵시설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습을 단행했다. 북한 과학자들의 시신은 같은 해 10월 시리아에서 북한으로 운구되기도 했다.

시리아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하페즈와 김일성의 모습. 현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가 1974년 북한 방문 때 찍은 사진이다.
시리아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하페즈와 김일성의 모습. 현 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가 1974년 북한 방문 때 찍은 사진이다.

이스라엘, 北-시리아 커넥션 총책도 암살

이스라엘은 2008년 2월 북한과의 화학무기 거래 등 비밀 군사협력 책임자이자 아사드 대통령의 측근인 모하메드 슐레이만 장군을 암살했다. 슐레이만 장군은 시리아의 WMD개발 총책이었다. 또 시리아과학연구센터의 미사일 분야 책임자인 나빌 주하이브 박사도 2012년 7월 암살됐다. 주하이브 박사는 미사일에 화학무기를 장착하는 기술을 지원해온 북한 과학자들을 관리해온 인물이다. 그는 수차례 평양을 방문했었다.

북한과 시리아의 군사협력은 이스라엘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져왔다. 북한 화학무기 전문가들이 시리아를 방문해 화학무기를 탑재한 탄도 미사일과 폭탄의 실험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실제로 시리아 정부군은 2012년 8월 알 사피라 비밀시설 인근에 있는 디라이함 사막에서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화학무기가 장착된 폭탄을 투하하는 실험을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 실험에는 북한과 이란의 기술자들이 참여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보도했다. 시리아 정부와 아사드 정권은 화학무기를 실전에도 사용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2013년 8월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반군 장악 지역에 사린가스 공격을 감행해 주민 1429명을 숨지게 한 것을 들 수 있다.

당시 아사드 정권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자 화학무기금지협정에 서명하고 모든 화학무기를 제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 4월에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북부 이들리브주의 칸셰이칸 지역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해 주민 87명이 사망했다. 아사드 정권에서 장군을 지내다 2013년 탈주해 유럽에 체류 중인 시리아 정부군 전직 장성인 자헤르 알 사캇은 아사드가 화학무기 비축량을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유엔 조사단을 속였다며 최소 수백t의 화학무기를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북한과 시리아의 비밀 커넥션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시리아는 2015년부터 2016년 사이 북한에 축전을 가장 많이 보낸 나라이다. 김정은과 아사드는 올 들어서만 15차례나 축전·위로전문을 주고받았다. 아사드는 지난 4월 11일 김일성의 105돌 생일과 김정은의 노동당 제1비서 추대 및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추대 5주년 등을 축하하는 2건의 전문을 보냈다. 아사드는 “양국이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복종시키고 자결권을 빼앗으려는 열강들의 야욕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자찬했다. 김정은도 지난 4월 17일 아사드에게 보낸 시리아 독립 71주년 기념 축전에서 “양국의 친선이 반제자주를 위한 공동투쟁 속에서 맺어졌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공적(公敵)인 두 독재자는 아마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면서 반미연대로 의기투합하는 듯하다.

이복형인 김정남을 화학무기 테러로 죽인 김정은과 자국민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자행해온 아사드의 말로(末路)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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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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