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 ⓒphoto AP·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 ⓒphoto AP·뉴시스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세 나라는 중국과 인도, 일본이다. 아시아의 운명은 이 세 나라에 의해 결정된다. 중국의 굴기(崛起·Rising)가 계속되고 있는 현재 인도와 일본의 관계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현재 중국과 인도,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는 분쟁이 빚어지고 있다.”

인도 자와할랄네루대학의 국제문제연구소 스와란 싱 교수는 지난 5월 28일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에서 열린 ‘2017 상하이포럼’의 한 세션에 나와 중국 측 참석자들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KFAS)과 푸단대학이 5월 27일부터 사흘간 공동주최한 이번 상하이포럼은 주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학술회의였는데, 이 포럼에 참가한 싱 교수가 중국 측 참가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경고를 한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에 글로벌 지정학적으로 맞서 보기 위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을 잇는 과거의 실크로드 주변에 있는 국가들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미국 대 중국·중앙아시아·중동·유럽을 연결하는 국제정치학적 연대의 벨트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2012년 말 중국공산당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권좌에 앉은 시진핑(習近平)이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십 년간의 중국의 운명을 걸고 펼치고 있는 거대한 세기의 프로젝트가 바로 일대일로 사업이다. 중국은 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위해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를 설립하고, 한국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을 부행장에 앉혔으나 홍씨가 부인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다 잠적함으로써 한국인 몫의 부행장 자리가 없어져 버리는 해괴한 사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권 말기에 벌어졌다. 이후 중국은 자신들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서 한국을 배제시키겠다는 태도를 굳혀가고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진전에 따라 아시아를 중국이 지배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을 우리 인도와 일본은 경계하고 있다. 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중국과 인도, 일본 3개국 간의 관계가 안정되어야 하며 그 균형이 깨어지는 것은 곧 아시아의 불안정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와 일본은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아프리카를 위한 자유의 회랑(Freedom Corridor)’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같은 말과 함께 싱 교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5월 23일 뉴델리에서 만나 합의한 자유의 회랑 프로젝트 내용을 소개했다. 모디와 아베 두 총리가 합의한 ‘자유의 회랑’ 프로젝트는 인도와 일본이 중심이 돼 아시아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지원하는 커넥션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이 구상의 실현을 위해 우선 인도는 스리랑카의 트린코말리항구 건설을 지원하고, 일본은 현재 인도가 주도하고 있는 이란의 차바하르항구 건설에 공동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싱 교수에 따르면 인도와 일본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에 있는 다웨이항구 건설에도 공동 참여하기로 했다. 일본은 또 아베 총리의 제의로 중국의 중앙아시아·중동·유럽 연결 사회간접자본 건설 프로젝트에 맞서기 위해 ‘질 높은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한 파트너십(Partnership for Quality Infrastructure)’ 프로젝트도 인도와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인도 자와할랄네루대학 싱 교수의 발표가 있기 전에 발표자로 나선 일본 국제문제연구소의 다카기 세이치로(高木誠一郞) 교수도 싱 교수 못지않은 자극적인 발표를 해서 중국 학자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현재 일본과 인도의 관계는 아주 좋은 반면 중국과 인도, 중국과 일본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일본과 인도는 중국을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 우리 일본은 중국이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거부하면서, 중국 자신은 국제사회에서 보다 큰 역할을 맡으려 나서고 있고, 중국의 굴기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싱 교수와 다카기 교수의 발표를 듣는 동안 ‘아, 인도와 일본은 중국의 몸집이 빠른 속도로 커지는 것을 앉아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구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또 실현에 옮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육지와 바다로 중국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중국의 국력과 군사력이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어 가고 있지만 우리는 중국과 BOP(Balance of Power·힘의 균형)를 맞추기 위한 아무런 전략적 구상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또 우리와 주한 미군의 보호를 위해 사드(THAAD) 시스템의 한국 배치를 미국이 추진하는 데 대해 중국이 “반대한다”고 외치는 말만 듣고도 온갖 위협을 느끼면서 쩔쩔매기만 하는 우리 지도자들의 모습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더 나아가 사드의 한국 배치를 박근혜 정부가 이미 결정을 내렸는데도, 확정된 사드 배치 과정의 하나로 4기의 발사대가 반입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사에 많은 국민들이 충격을 받는 모습은 딱하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군사기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상세하게 공개하는 우리 정부 최고위층들의 모습은 더욱 충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 인도 자와할랄네루대학의 싱 교수가 상하이포럼 중국 측 참가자들을 향해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인도가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중국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잘 보호되고 있다. 인도와 일본, 그리고 중국 세 나라의 관계가 안정되어야 아시아 전체가 안정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으로 중국의 굴기가 계속될수록 인도와 일본의 공조 체제인 ‘자유의 회랑’도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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