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465호]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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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장진호 기념비 헌화 뒤에 숨은 문 대통령과 현봉학 박사의 인연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후(현지시각)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photo 연합
▲ 서울 남대문 세브란스빌딩 앞에 있는 현봉학 박사의 동상. photo 세브란스병원
“미 해병들이 한국 대통령의 부모님을 구했다.” 미국 온라인 사이트 밀리터리닷컴 화면을 장식한 글의 제목이다. 장진호전투 기념비와 흥남철수에 얽힌 문 대통령의 가정사를 소개한 내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방미 기간 동안 올라와 있었다. 밀리터리닷컴은 온라인 최대 규모의 미군 관련자들(현역군인, 퇴역군인 등)의 모임이다. 회원 수는 1000만명에 달한다. 6월 29일에는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폭스뉴스에도 올라왔다.
   
   문 대통령의 방미 기간 행적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단연 장진호전투 기념비 헌화였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준 최대 성과였다고 평가될 정도다. 조선일보가 보도했듯 장진호전투 기념비의 건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과정은 이렇다.
   
   2014년 박승춘 당시 보훈처장은 미국 방문 중에 장진호전투 기념비(이하 기념비) 모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해병대 박물관에 세우려 하는데 건립 비용이 모자란다.” 총 60만달러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부지조성 기초공사 비용으로 25만달러, 기념비 건축에 35만달러가 필요했다. 박 처장은 절반인 30만달러를 한국 쪽에서 대겠다고 약속했다. 보훈처는 관련 예산을 다음해인 2015년도 예산안에 포함해서 기획재정부에 올렸다.
   
   2014년 11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정무위 위원장은 정우택 당시 새누리당 의원. 보훈처는 정무위원회의 소관부처다. 이날 회의에는 박승춘 처장이 직접 참석했다. 박 처장은 “장진호전투는 이오지마전투, 오키나와전투와 함께 미 해병대 3대 전투 중 하나로 적게는 4000명에서 많게는 7000명의 미군이 전사한 전투”라고 소개했다. 이 자리에선 기념비 건립을 두고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당시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김정훈 의원과 신동우 의원의 의견 발표뿐이었다. 두 의원은 기념비 예산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꼭 예산에 반영해달라고 동료 의원들에게 읍소하다시피 발언했다.
   
   
   ‘기념비 예산’ 관철한 박승춘
   
   5일 후인 11월 18일 정무위 회의가 다시 열렸다. 박 처장도 참석했다. 분위기는 지난 회의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김기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서울신문 사설을 줄줄 읽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또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예산심사소위에서 보훈처 예산을 삭감한 것을 두고 정무위원장을 찾아가 서류를 던지고 탁자를 내리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 김 의원은 박 처장에게 사퇴할 생각이 없냐고도 물었다. 끝이 아니었다. 새정치 의원들의 융단폭격이 이어졌다.
   
   발단은 11월 13일이었다. 정무위 회의가 열리기 전 박 처장이 정우택 정무위원장을 찾아갔다. 보훈처 예산이 대폭 삭감된 데 대해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예산을 삭감하면 어떡하나.” 이 자리에 있었던 인사는 “박 처장이 강하게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급기야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박 처장이 책상을 손으로 짚는 등 관점에 따라선 ‘소란’이라고 볼 수도 있는 행동이 이어졌다. 부근에 있던 보좌진들이 무슨 일인가 달려와 들여다볼 정도였다.
   
   박 처장은 이전부터 여야 의원 모두에게 ‘괘씸죄’로 이미 찍혀 있는 상태였다. 당시 야당 쪽에서는 5·18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금지한 것과 보훈처 교육 프로그램인 나라사랑교육을 하며 ‘사드 배치 찬성’ 등을 주장한 것을 지목했다. 여당 의원들은 박 처장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국정감사를 받으며 보인 태도가 그 예다. 2014년도 국감 당시 정우택 위원장은 박 처장에게 “나라사랑교육 관련해 서면 보고로 대체하라”고 요구했고 박 처장은 “국감장에서 직접 설명하겠다”고 주장했다. 피감기관장이 국회의원의 요구를 무시한다는 비난이 여야 양측에서 나왔다. 2015년도 보훈처 예산이 국회를 거치며 대폭 삭감된 배경엔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언쟁이 오간 뒤 박 처장은 “장진호전투를 생각하며 감정에 북받쳐서 흥분했다”고 정 위원장에게 사과했다.
   
   11월 18일 정무위 회의. 김기준 의원의 박 처장 규탄 발언 뒤 같은 당 강기정 의원이 이어 발언했다. 한겨레 사설을 인용하며 박 처장이 ‘오만방자’하다고 비난했다. 김태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상황을 수습하려 나섰다. “원래대로 3억원이 다 통과되었을 수 있는데, 야당 위원들이 박 처장의 태도가 괘씸해서 삭감한 거다. 대가 없이 희생한 분들 위해 우리가 추모비 하나 건립 못 해주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과시켜야 하는 예산이다.”
   
   김용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중요한 사업이다. 올해 1억5000만원을 지원하고 내년도에 나머지 1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식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장진호전투 관련 4개의 기념비가 미국에 이미 있다.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기념비 예산을 삭감했다.”
   
▲ 1950년 12월 12일 흥남철수작전. 흥남항에서 미군 상륙정(LST)이 탈출하는 피란민들을 태우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기식 의원의 발언은 반쯤은 틀린 말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파악한 바로는 당시 기준으로 적어도 6개 이상의 장진호전투 기념비가 미국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조사를 더하면 더 있을 수도 있다. 주로 텍사스, 일리노이, 테네시 같은 주의 퇴역군인 추모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기념비보다는 표지석 정도가 어울리는 작은 비석도 있다.
   
   미국은 퇴역군인을 존중하는 나라다. 참전군인에게 무한한 존경을 보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각급 학교는 참전군인을 초대해 강연을 듣는다. 연방정부 공무원 채용 시 제대군인과 상이군인에게 각각 5%, 10%의 가산점을 준다. 이런 문화를 알면, 각 주별로 자율적으로 작은 표지석이라도 세우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장진호전투는 미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전투였다. 콴티코의 해병대 박물관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우여곡절 끝에 예산은 통과됐다. 그 다음 달인 2014년 12월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한 것. 1000만 관객이 들었다. 마침 보훈처가 선정하는 ‘이달의 6·25 전쟁영웅’이 바로 현봉학 박사였다. 세브란스의전 출신으로 미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돌아와 6·25에 참전한 분이다. 6·25 당시 흥남철수 작전을 지휘한 김백일 장군과 알몬드 장군 곁에서 통역을 해주며 흥남철수를 도왔다. 원래 보훈처 선정 전쟁영웅엔 보통 정통 군인만 선정됐다. 2013년 말 박승춘 처장이 ‘민간인 중에서도 전쟁영웅을 발굴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듬해 현 박사가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마침 연세대는 현 박사의 동상을 세우려 계획 중이었다. 기금 모금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2016년 12월 19일 남대문 세브란스빌딩에서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의외의 인물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당시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한 명이었다. 원래 문 대통령은 참석 예정 인사가 아니었다. 뒤늦게 참석하기로 했다. 기념식 축사에서 그가 참석한 이유가 드러났다. “특별한 감회가 있어 참석했다. 저희 집안은 원래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이다. 비슷한 시기에 저의 아버지는 함흥농업학교, 현 박사님은 함흥고보를 다녔다. 현 박사님과 저희 아버지가 서로 알지 않았을까, 서로 만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흥남부두에 모였던 10만명의 피란민 가운데 저의 부모님과 제 누님도 계셨다. 그때 현봉학 박사님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북한 공산치하를 탈출하고 싶어했던 피란민들이 내려오지 못했을 거다. 저도 못 태어났을 거다. 현봉학 박사님은 10만명의 피란민들 그리고 피란 후에 태어난 2세들에게는 생명의 은인과 같다.”
   
   이로부터 다섯 달 뒤인 지난 5월 4일 장진호전투 기념비 제막식이 콴티코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도 의외의 인사가 참석했다. 바로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 던포드 합참의장이 참석하겠다는 통보에 보훈처는 의아해했다. 합참의장은 미군 내 서열 1위다. 참석하겠다고 한 이유는 당일 던포드 의장의 연설에서 드러났다. “아버지를 제일 존경한다. 해병대에 지원한 것도 아버지 때문이다. 군인이 되겠다고 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장진호전투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 하지 않았다. 떠올리기도 힘든 전투였다. 군사대학에 간다고 하니 얘기를 해주시더라. 기념비 건립을 위해 한국 정부가 지원해줘서 정말 고맙다. 한·미동맹의 상징이다.”
   
   던포드 의장은 이 자리에서 특별히 박승춘 처장을 지목하며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기념비는 8각형 모양이다. 각 면에는 장진호전투 초기, 지도와 지명 그리고 장진호전투 진행 과정을 새겼다. 상단에는 빛나는 별 모양의 조형물이 붙어 있다. ‘고토리의 별’이다. 당시 미군들이 장진호 부근 고토리에서 황초령으로 빠져나갈 때 별이 하나 떠 있었다고 한다. 사지를 건너는 전우들을 지키는 ‘수호성’으로 생각했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일까지 계속됐다. 미 해병 1사단 1만5000명이 참전했다. 중공군 7개 사단 12만명과 맞서 싸웠다. 약 4500여명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부상을 입었다.
   
   기념비에는 원래 ‘초신(장진)’으로 전투명이 기록될 뻔했다. 6·25 당시 미군은 일본이 작성한 지도를 사용했다. 장진의 일본식 발음인 초신이 통용되는 이유다. 미국 내 장진호전투 참전용사 모임의 이름도 ‘초신 퓨(Chosin Few)’다. 의역하면 ‘장진호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전우들’이라는 뜻이다. 박승춘 처장은 장진(초신)으로 표기하자고 미국 측을 설득했다. 두 번이나 직접 미국을 찾았다고 한다.
   
   
▲ 중공군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장진호 서안의 유담리에서 장진호 남단의 하갈우리로 철수하는 미 해병 1사단 5연대, 7연대 병사들. photo 뉴시스

   보훈처의 ‘콴티코’ 작전
   
   문재인 대통령의 세브란스 연설과 던포드 의장의 콴티코 연설을 모두 들은 보훈처 측 관계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만약 문재인 대선 후보가 당선된다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할 테고, 콴티코의 장진호전투 기념비가 한·미 동맹의 상징물이 될 수 있겠다.’ 진짜 문 대통령이 당선되고 방미가 확정됐다. 보훈처는 청와대에 ‘대통령의 장진호전투 기념비 방문’을 건의했다고 한다. ‘장진호 참전 영웅의 아들은 미군 서열 1위의 군인이 됐고, 그 영웅이 살린 또 다른 아들은 한국의 대통령이 돼 미국을 찾았다.’ 보훈처가 구상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 결과가 6월 28일 문 대통령의 콴티코 방문이다. 기념비 앞에서 문 대통령이 연설을 하자 노병들은 눈물을 흘렸다. 미군 사령부는 행사를 생중계했고, 미국 내 일반 시민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한·미동맹 역사에 새로운 장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세워진 기념비가 미국에 또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전 참전기념비다. 지난해 8월 완공됐다. 프리시디오국립공원 내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 맞은편에 세워졌다. 모금액 360만달러(41억원) 중 250만달러(28억원)는 비영리재단과 개인·기업의 기부금으로, 11만달러(1억2500만원)는 샌프란시스코 시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했다. 한국 국가보훈처는 100만달러(11억원)를 보탰다.
   
   워싱턴 DC 6·25 참전 기념공원에는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이 들어선다. 지난해 10월 관련 법안이 최종 통과됐다. 6·25 참전용사인 샘 존슨 의원(공화·텍사스)과 찰스 랭글(뉴욕)·존 코니어스(민주·미시간)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이다. 대형 유리벽을 세우고 3만7000여명에 이르는 미군 전사자 명단과 함께 6·25에 참전했던 미군과 한국군, 카투사, 연합군 사망자 수 같은 정보들을 담는 것을 골자로 한다. 6·25 참전 기념공원은 1995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 42주년에 문을 열었다. 공원에는 19명의 병사 동상이 서 있다. 사망(미군 5만4246명, 유엔군 62만8833명), 부상(미군 10만3284명, 유엔군 106만4453명), 실종(미군 8177명, 유엔군 47만267명), 포로(미군 7140명, 유엔군 9만2970명) 등의 숫자가 적혀 있다. 바로 부근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관과 대조된다. 베트남전 기념관에는 내부 검은 벽에 전사하거나 실종된 5만8196명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다. 참전용사 가족들이 공원을 찾아 가족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6·25 참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 건립이 미국 6·25참전용사협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이유다. 건립엔 총 200여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여기에 국가보훈처는 올해 10억원, 2018년과 2019년 각각 20억원씩 총 50억원을 지원한다.
   
   전 세계 국가 중 ‘보훈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6·25전쟁은 유엔군이 공식 참전한 유일한 전쟁이다. 21개국과 혈맹을 맺었다. 혈맹은 이번처럼 예기치 않은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 보훈처는 매년 참전용사들과 그 자녀들을 한국으로 초청한다. 참전용사의 생전 기록을 보존하고 이들의 후손인 2세, 3세와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카이브 사업도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은 첫 정상외교에서 이 ‘보훈외교’의 덕을 톡톡히 봤다.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수리한 사표는 바로 박승춘 보훈처장의 사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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