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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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 안에 컨트롤타워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된다.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도 특정 방향으로 쏠림이 생긴다면 균형감과 복합적 사고를 가로막는 편향(Bias)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 전문가인 윤창현(57)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9월 26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윤 교수는 임금 위주의 단기부양 기조와 성장을 도외시한 정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진전된 정책을 제시할 새 인물이 필요해 보인다고도 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각각의 정책은 정체성 측면에서 일사불란하다. 그러나 모두 모아놓고 보면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귀결된다. 한마디로 기업을 옥죄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법인세·최저임금 인상·정규직 전환·탈원전 정책 등은 고비용을 낳는다. 기업이 조직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하려면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현 정부에는 기업 입장을 고려한 산업정책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고비용 구조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윤 교수는 현 정부의 핵심 의제인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홍장표 경제수석이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나온 임금주도성장론(Wage-led Growth)을 소득주도성장(Income-led Growth)으로 이름을 바꿨고, 현 정부 어젠다 1번이 됐다. 그런데 정부는 이름만 소득주도성장이지, 실제로는 임금주도성장 정책을 펴고 있다. 소득이라는 것은 임금을 포함 이윤, 지대(地代), 이자 등을 통칭한다. 이윤과 지대 그리고 이자를 쏙 빼고 근로자 임금만 올리는 게 현 정부 경제정책이다. 게다가 인상된 임금은 성장을 통해 얻는 게 아니라 정부가 지원한다. 세금으로 임금을 주겠다는 발상은 아주 나쁜 창의성이다.”

- 소득주도성장론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말인가. “성장(Growth)은 소득의 증가를 의미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소득 주도의 소득 증가’라는 동어 반복인 셈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임금주도성장이라고 하면 그나마 말은 된다. 정부는 임금을 확실하게 올려주면 수요증가를 유도하고 그게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케인스식의 단기 재정정책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영구적으로 돈을 투입할 수는 없다. 이대로 가면 최저임금 인상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매년 4조~7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얘기다.”

- 그럼에도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고 있지 않나. “솔직히 말하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건 경제학계에서 아주 마이너(Minor)한 주장이다. 홍장표 수석이 관련 논문을 몇 개 쓴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현실에 반영될 이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임금인상만 갖고 한 나라 경제가 잘될 수 있다면 어느 나라나 잘살아야 한다. 여기서 놓치는 부분이 있다. 생산의 세 축인 노동·자본·기술에서 자본과 기술 얘기가 빠졌다. 원래 없는 것은 아닐진대, 노동을 중심에 두는 현 청와대에서 자본과 기술 얘기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 홍장표 경제수석의 소득주도성장론이 반쪽만 구현되고 있다는 얘긴가. “임금주도 또는 소득주도 성장이 가진 장점이 있음에도 그런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투자를 통한 기업 활성화 등이 그런 것이다. 현 정부에 노동과 반기업에 편향된 인사들이 많아 가려져 있지 않나 싶다. 청와대는 전투사령부와 같은 곳이라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현안이 강조되게 마련이다. 그런 쪽에서 홍 수석은 경험이 부족해 보인다. 내가 아는 홍 수석은 선비 스타일의 학자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국장이 2~3차례에 걸친 청와대의 제안을 끝내 고사했다고 한다. 이후 국내파 경제학자인 홍장표 부경대 교수가 경제수석에 임명됐다. 참고로, 서울대 물리학과 79학번인 윤 교수는 경제학을 전공한 홍 수석과 서울대 입학 동기다. 나중에 윤 교수는 홍 수석이 있는 경제학과로 학사편입했다.

- 정부 경제정책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을 한번 살펴보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은 최저임금과 무관하다. 그들은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 그럼 누가 최저임금 문제에 민감할까. 자영업자가 대표적이다. 영세한 편의점 주인, 식당 운영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분들은 사용자라고는 하지만 사실 ‘을’에 가깝다. 대부분 어렵게 먹고산다.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올리라는 건 ‘을’이 ‘을’에게 돈을 더 주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 정책을 펴는 건 사용자 숫자보다 피고용자 숫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수가 적은 을을 힘들게 하지만, 더 많은 을의 소득을 올려주는 것이다. 이게 포퓰리즘이다.”

윤 교수는 지난 9월 21일 고용노동부가 제과업체인 파리바게뜨를 상대로 “제빵기사 5378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오버 액션”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부가 멋지게 보이려고 너무 강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가맹점법, 상법, 고용법 등이 충돌하는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다. 이들을 본사 소속으로 고용한다 해도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다시 보내게 되면 이 또한 불법파견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처벌만 할 게 아니고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한다. ‘어쨌든 불법을 저질렀으니 직접 고용하고 앞으로 조심해’라고 하면 그만인가. 정부가 ‘친노동자이고 을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것 같다.”

- 현 정부 핵심 인사들은 친노동 성향인가. “경제사령탑이나 운동권 출신의 임종석 비서실장은 중요한 자리에 있다. 그분들 생각이 중요하다. 올 초 경제학 통합 학술대회가 열렸을 때 장하성 교수가 분배를 강조하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 패널로 참가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0여명의 경제학자가 앉아 있는 곳에서 ‘경제학은 자본의 편에 선 거 아니냐’고 말하는 걸 보고 놀랐다. 아직도 노동과 자본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본인이 TV에 출연해 광고로 벌어들인 수익 중 일부를 출연료로 받아가는 건 노동의 대가인지, 아니면 자본의 논리인지 묻고 싶다. 노동과 자본에 바이어스된 얘기를 듣는 게 불편했다.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은 ‘근로’라는 표현 대신 ‘노동’이라는 표현을 쓰자는 법안을 낸 적도 있다.”

윤 교수는 ‘노사(勞使)’라는 표현보다 ‘경사(經使)’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시절이라고도 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전문경영인(CEO) 체제를 두고 있다. 특히 공기업은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경영인이 대표를 맡는다. 모두 월급쟁이인데, 이들을 노사로 부르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여기에는 오너적 관점, 즉 기업은 지배하고 노동자는 착취받는다는 게 녹아 있다.”

- 최근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언급한 이유는 뭔가. “현 경제정책 기조가 뭔가 불안하고 불완전하다는 걸 느낀 것 같다. 외국 나가면 국내서 욕먹는 기업이 칭찬의 대상이라는 걸 알게 된다. 변양균식 슘페터리안, 즉 혁신경제를 말하는 이들이 현재 설 땅을 잃었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이다. 현 경제사령탑이 이런 주문을 100% 수용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정권 초 이미 정부의 정체성과 방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이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단계로 가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반도체 이외에 대안이 없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힘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선이 굵고 배짱이 두둑한 공무원이었다. 청와대 경제사령탑을 상대로 ‘내 철학을 굽히라고 요구하면 그만두겠다’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여러 정부에서 두루 기용됐던 김동연 부총리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청와대 정책 컨트롤타워와 손발을 맞춰 조화를 이루길 원했을 거다. 그런데 청와대 힘이 세다 보니 ‘시키는 대로 실행하고 성과를 내라’는 식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70%의 인기를 가진 문 대통령과 그를 보좌하는 이들에게 힘이 실리는 구도에서는 김 부총리의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다.”

- 현 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편에서는 일자리를 늘리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정규직화를 말한다. 고용에서 양과 질을 모두 갖겠다고 하면 비용 부담 때문에 버틸 기업이 없다. 기업을 운영해 본 사람들은 인건비 부담이 크다는 걸 자주 얘기한다. 양을 늘리면 질은 다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요즘 정규직 전환 요구가 커지면서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윤 교수는 “문 대통령이 집무실에 일자리상황판을 만들 당시 기업상황판도 함께 만들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그럼 기업 상황을 알아야 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때 우리가 부러워했던 대만은 요즘 경제가 좋지 않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인해 자기 브랜드를 갖지 못하고 글로벌 하청국이 됐다. 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들이 ‘왜 이렇게 몰아붙이냐’ ‘우리가 무얼 잘못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 현 정부에서 시민단체 입김이 커졌다고 생각하나. “시민단체 간부와 일하는 간사들은 보이는데, 어느 시민이 이들과 함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 전 중앙부처 국장이 시민단체를 만나 정책 설명을 할 때 과장들은 국회의원실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제는 시민단체가 견제와 비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시민단체가 입법·사법·행정에 모두 영향을 주고 있다. 어느 집단이 국가의 삼권(三權)을 모두 장악하듯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디나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 그럼에도 정부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고 있지 않나. “촛불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획득한 어떤 세력이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장악한다면 그건 일종의 민중독재 또는 촛불독재다. 문 대통령이 이런 과잉을 제어하거나 집단 스스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 적폐라는 틀을 씌우고 방송사 이사들의 사생활을 간섭하고 망신을 주는 식은 도를 넘은 행동이다. 화이트리스트 수사도 반대 세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가 갖고 있던 ‘도편추방제’가 연상된다.”

-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적절한 처방인가. “노무현 시즌2라는 느낌이 강하다. 당시 실패의 기억 때문인지, 청와대는 마치 부동산시장에 복수를 하려는 것 같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급을 늘려 제공하면 된다. 우리 국민의 자산 중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나 된다.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가계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금리와 유동성 측면에서 세계적 추세를 보고 이에 맞는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김수현 사회수석도 글로벌한 트렌드를 읽었으면 좋겠다.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10%(4조4000억원)가 삭제된 상태에서 건축과 토목이 모두 위축될 것으로 보여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윤 교수는 오는 10월 말 2년 임기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직에서 물러난다. 지난 2년 동안 국가가 투입했던 공적자금 가운데 4조3000억원을 거둬들였고 우리은행 민영화에 성공하는 등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분열된 야당이 하루빨리 통합의 프레임을 모색해야 정부에 대한 견제가 힘을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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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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