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차간호 ⓒphoto 위키피디아
카자흐스탄 차간호 ⓒphoto 위키피디아

지난 9월 23일 오후 5시30분쯤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폭발 실험장 부근 지하에서 발생한 진도 3.5 정도의 지진은 어쩌면 북한 핵문제의 귀결을 김정은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희망의 뉴스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지난 9월 25일 인터뷰한 미 컬럼비아대 라몬트-도허티 지구관측소 김원영 박사에 따르면, 9월 23일의 지진은 지진파형 분석 결과 자연지진일 가능성이 크며, 풍계리 지하 핵실험장 갱도 부근의 암반이 깨지면서 발생한 지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김원영 박사에 따르면, 지난 9월 3일의 수소폭탄 폭발 실험 며칠 후의 인공위성 사진에도 풍계리 핵실험장 부근의 돌무더기들이 많이 떨어져 내려와 있는 것이 관측됐다. 김 박사는 “지난해 9월 9일의 5차 핵실험 이틀 후에도 규모 2.0 정도의 지진이 관측됐다”며 “이 지진 역시 풍계리 지하갱도 부근의 암반들이 깨지면서 발생한 자연지진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5차와 6차 핵실험 직후에 발생한 자연지진들이 우리에게 ‘굿 뉴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풍계리 지하갱도의 내부 붕괴는 곧바로 앞으로 장기간 암반의 균열 틈새와 지하수 맥 등을 통해 방사능 오염물질들이 풍계리 지표로 노출될 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김원영 박사에 따르면 미국 네바다 사막이나 구소련의 카자흐스탄 핵실험장의 경우 지표에서 지하로 수직으로 파고들어가서 폭발실험을 해도 결국 핵실험장 부근이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한다. 보다 쉬운 방식으로 산을 파고들어간 풍계리의 경우에는 갱도 붕괴가 네바다나 카자흐스탄 경우보다 쉽게 일어나 풍계리 일대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지난해 11월 17일 “조선(북한)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로 국가의 안전을 모색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 국가인 카자흐스탄은 올해로 ‘세계 4대 핵강대국’ 지위를 포기한 지 20주년이 된 것을 경축했다”고 보도했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서 최초 핵실험이 실시된 것은 1949년 8월 29일 오전 7시였다. 당시 구소련이 터뜨린 최초의 원폭이 카자흐스탄 동(東) 카자흐스탄주(州)의 현 쿠르차토프(비밀도시명 세미팔라틴스크)에서 폭발했다. 이후 소련이 실시한 715회의 핵폭발 실험 가운데 64%에 해당하는 456회가 이 쿠르차토프에서 실시됐다. 카자흐스탄의 핵실험장 부근에는 지반 함몰로 차간(Chagan)이라는 인공호수도 만들어졌는데, 지난 2006년에 측정한 수치로도 고농도의 방사능으로 오염돼 있었다. 최초의 핵실험은 카자흐스탄 국민에게 “국가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희소식”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이후 456회의 핵폭발 실험을 거치는 동안 1957년에서 1960년까지 불과 3년간 모두 160만명의 방사능 오염 환자와 이후 5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핵실험에 대한 카자흐스탄 국민의 생각은 달라졌다.

구소련은 카자흐스탄에 전략미사일 부대와 전략폭격기 발진 기지를 만들고, 수백 개의 핵탄두를 배치했다. 그러는 동안 핵실험장 반경 150㎞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구소련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아프간전쟁에서 실패하자 공산당의 국내 정치에 대한 장악력도 떨어졌다. 그런 흐름을 읽은 카자흐스탄의 반핵 조직과 미국의 반핵주의자들은 ‘네바다·세미팔라틴스크 선언’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핵실험장의 폐기와 카자흐스탄 독립 운동을 벌였다.

이미 경직화된 소련 지도부는 그런 카자흐스탄 내부의 변화를 무시하고 1989년 2월 12일과 17일 또다시 두 차례의 핵폭발 실험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사능 기체가 핵실험장 부근에 확산된 사실이 밀반입된 방사능 측정 장비에 검출됐다. 그 소식은 핵실험장 부근의 주민들을 격분시켰다. 마침내 1989년 10월 19일 카자흐스탄에서 실시된 최후의 핵폭발 실험 결과 나타난 것은 환호의 꽃술과 붉은 깃발이 아니라 수십만의 남녀노소로 이루어진 카자흐스탄 국민들의 반핵 시위였다.

구소련의 붕괴로 카자흐스탄은 1991년 독립을 선포했다. 독립을 선포하고 보니 카자흐스탄은 무려 141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4위의 핵대국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이은 제4위 핵대국이었다. 모두 52기의 SS18 대륙간 탄도탄과 40기의 TU(투폴레프)95 전략폭격기와 370기의 이동식 핵탄두 장착 순항미사일 등이 붕괴한 구소련의 유산으로 카자흐스탄에 남았다. 일부 군인들은 “핵무기로 영구히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자”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현 대통령이 이끄는 카자흐스탄 지도자들은 “핵무기를 끌어안고 방사능 오염으로 죽어가는 나라 대신 핵무기를 포기하고 방사능이 없는 잘사는 나라”의 길을 선택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3년 동안 카자흐스탄은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 탄도탄과 전략폭격기 등을 러시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1996년 9월 24일 유엔에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에 서명했다. CTBT에는 2011년 12월까지 모두 182개국이 서명하고 이 가운데 156개국이 국내 비준절차를 마쳤다. 중국은 협약에 서명은 했으나 아직 국내 비준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다음 날인 지난 9월 4일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 나와 “중국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으로 방사능 오염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중국 정부는 공민들의 인신 안전과 환경 안전을 고도로 중시하고 있으며, 관련 부처가 이번 조선 핵실험이 중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앞으로 전면적인 상황 파악을 할 것이며, 중국 경내 공민들의 인신 안전과 환경 안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혀둔다.”

만약 풍계리의 지난 9월 23일 지진이 핵실험 갱도 내의 붕괴 때문이고 이 붕괴로 방사능이 기체나 지하수를 통해 중국 동북부 지방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중국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말이다. 안 그래도 북한의 핵실험을 혐오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험악한 댓글들은 중국 정부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카자흐스탄의 길을 걷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때마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9월 21일 뉴욕에서 카자흐스탄 외교장관과 회담을 하고 북한에 대한 공조를 다짐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인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이 카자흐스탄의 모델을 따르도록 전방위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