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항모 로널드레이건호가 환태평양 군사훈련(림팩)에서 각국 함정들을 이끌고 있다. ⓒphoto 미 해군
미 해군 항모 로널드레이건호가 환태평양 군사훈련(림팩)에서 각국 함정들을 이끌고 있다. ⓒphoto 미 해군

1986년 10월 12일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간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두 사람이 논의한 것은 전략무기 감축 문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폭격기를 5년 내 절반으로 줄이고 10년 후 ICBM 전부를 없애자고 제의했다.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은 아예 10년 내 모든 전략 핵무기를 폐기하자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른바 ‘스타워즈(Star Wars)’로 불리는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의 실전배치를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SDI는 핵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는 방어체계를 말한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런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고,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역사적 합의가 될 뻔했던 레이캬비크 미·소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것은 이처럼 SDI 때문이었다.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SDI 실전배치 포기를 조건으로 제시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소련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추진해온 SDI가 냉전시대를 유지해온 ‘공포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3년 3월 23일 우주배치 탄도탄 요격시스템을 만들어 소련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겠다면서 SDI를 발표했다. SDI는 400개의 위성레이더를 지구 정지궤도에 배치해 우주정거장에서 발사되는 수백 개의 요격미사일로 3500개의 표적을 방어할 수 있는 다층적 우주배치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였지만 레이건 전 대통령은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 SDI를 밀어붙였다. 소련은 SDI로 촉발된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뛰어들 수 없었다.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한계에 달해 있던 소련은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20%를 국방예산으로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SDI에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건이 밀어붙인 군비 경쟁

레이건(1981~1989 재임)은 1981년 1월 20일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강력한 반소(反蘇) 정책을 추진했다. 레이건이 앞세운 독트린은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였다. 그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선 협상도 할 것이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그걸 위해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행동이 요구된다면 우리는 행동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승리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유지할 것”이라면서 “그렇게 하면 그 힘을 결코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말 그대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적을 굴복시켜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레이건이 이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 개인적 경험 때문이었다. 일리노이주의 유레카대학을 졸업한 레이건은 지방 방송국에서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로 일하다 할리우드에서 배우생활을 했다. 당시 영화계는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좌파의 영향력이 강력했다. 1947년 영화배우노동조합(Screen Actors Guild) 위원장 선거에 나섰던 레이건은 좌파들과 맞섰다. 얼굴에 염산을 뿌려버리겠다는 좌파의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레이건은 당당히 당선됐다. 레이건이 회고록에서 “스탈린이 할리우드를 적화시키려고 했다”고 술회했을 정도로 좌파의 방해는 집요했다. 이때의 경험이 레이건의 정치노선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후 1952년까지 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영화계의 좌파 척결에 나서는 등 철저한 반공투사로 활동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무력함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미국에 1970년대는 ‘흑역사’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하면서 베트남의 공산화를 용인해야만 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 직전에 사퇴했고, 부통령으로서 바통을 넘겨받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불황으로 고전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소련과의 데탕트 정책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고 오히려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게다가 이란의 이슬람혁명으로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태가 벌어졌지만, 미국은 인질구출작전의 실패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외에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던 레이건은 1980년 대선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현직 대통령인 카터에게 압승했다. 그는 소득세율 30% 인하, 사회복지비용 감소, 국방예산 증액, 불필요한 정부규제 철폐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특히 그는 소련과의 데탕트를 끝내고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하는 위대한 미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월 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군 수뇌부들이 백악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지난 10월 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군 수뇌부들이 백악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스타워즈 계획에만 700억달러

레이건은 1982년 5월 9일 모교인 유레카대학 졸업식 연설을 통해 소련에 평화 공존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소련 지도부는 공격적 정책이 서방세계의 단호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란 점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무력 점령 추구보다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법을 택한다면 서방세계는 교역 확대와 여러 형태의 협력으로 화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면서 소련 지도부의 행동 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소련이 자신의 제의를 거부하자 그는 소련을 붕괴시키기 위해 국가안보팀이 마련한 일련의 ‘국가안보 정책 결정지침들(NSDD)’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 내용을 보면 NSDD-32는 폴란드의 반소·반공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비밀공작, NSDD-66은 소련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방법, NSDD-75는 소련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하는 방법 등이었다. 레이건은 1983년 3월 8월 전국복음주의협회 연설에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지칭하면서 소련의 위협을 막지 못하면 자유세계가 멸절할 수 있다는 선악(善惡)의 대결구도를 강조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레이건이 군비 경쟁을 통해 소련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레이건은 전략무기 증강 등 대대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했다. 카터 정부 마지막 해인 1980년 1340억달러였던 미국 국방예산은 레이건 정부 최종 연도인 1989년 2530억달러에 달했다. SDI에만 무려 700억달러를 투입했다. 소련은 국방예산 증액을 통해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소련은 소비재 생산 동결 등 일반 경제의 희생을 감수해야 했고 그 결과 경제 붕괴로 국민들의 원성만 높아졌다.

레이건은 힘의 사용도 주저하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로 1983년 10월 25일 그레나다 침공을 들 수 있다. 당시 그레나다에서 군부 쿠데타로 친소 좌파정권이 수립되자 레이건은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6개국의 요청을 명분 삼아 병력 7000여명을 투입했다. 그레나다 침공은 40여년 계속된 냉전기간 중 미국이 군사력으로 친소 좌파정권을 전복시키고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미국은 또 CIA(중앙정보국)의 특수활동부대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배치해 무자헤딘에 훈련과 장비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소련군에 대한 무장 항전을 지원했다. 레이건은 1986년 4월 15일 당시 서독의 미군 장교클럽 테러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공습명령을 내렸다. 미군의 폭격으로 카다피의 수양딸 등 200여명이 숨졌고 이후 카다피는 숙소를 계속 옮겨다녀야만 했다.

소련 체제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레이건은 1987년 6월 12일 베를린을 방문해 브란덴부르크 문 앞 연설을 통해 “고르바초프 서기장, 진실로 평화를 바란다면, 소련과 동구권의 번영을 바란다면, 자유화를 원한다면,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베를린장벽은 2년 뒤 무너졌고, 다시 2년 뒤 소련도 해체됐다.

트럼프의 롤모델 레이건

이 같은 레이건은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롤모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운동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그대로 사용했을 정도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레이건을 가장 존경해왔다. 트럼프는 “레이건 시절의 미국은 존경받는 나라였다”며 “내가 당선된다면 미국은 다시 존경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자신을 ‘제2의 레이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경선 참여를 최초로 고려한 시점은 1987년이다. 레이건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대통령 출마를 생각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1981년과 2017년 36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 백악관을 접수한 아웃사이더 대통령들이다. 레이건은 영화배우 출신이고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이지만 두 사람은 방송에서 활동해왔고, 방송을 가장 잘 이용하는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백인 남성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트럼프가 지난 9월 27일 발표한 대규모 감세를 내용으로 하는 세제개편안도 레이건의 정책과 유사하다. 세제개편안은 법인세를 현행 35%에서 20%로 크게 낮추고 개인소득세의 과세 구간을 기존 7단계에서 12%, 25%, 35% 3단계로 단순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세제개편안은 1986년 레이건 정부 31년 만에 최대 규모의 감세안이다. 트럼프는 “세제개편안의 혁명적 변화로, 기업의 설비투자와 고용확대를 촉진해 지난 몇 년 동안 없었던 임금인상을 가져오게 할 것”이라면서 “부유층이 아니라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가장 많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이건도 법인세율을 46%에서 34%로 12%포인트 인하했었다. 탈세 등을 방지하기 위해 1110억달러 규모의 비과세·감면을 축소했었다. 부자들의 세금만 깎아준다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 결과 레이건이 재임한 동안 평균 물가상승률은 3.8%로 안정을 찾고 경제성장률은 3.5%로 견실해졌다. 집권 초기 물가상승률은 10%를 오르내리고 성장률은 2% 안팎에 그쳤었다.

특히 트럼프는 레이건처럼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을 추진할 것을 천명해왔다. 트럼프는 이를 위해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국방예산을 올해보다 10% 증액하는 등 앞으로 군사력을 대폭 증강할 계획이다. 미국 상원은 한술 더 떠 지난 9월 18일 2018회계연도에 무려 7000억달러의 국방예산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89 대 8이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요청했던 6400억달러에 상원이 600억달러를 추가한 규모다. 이 같은 국방예산 증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트럼프 정부는 핵 항공모함을 10척에서 12척으로 늘리는 것을 비롯해 해군 군함을 현재 272척에서 350척으로 대폭 증강할 계획이다. 2020년까지 해군력의 60%를 아태지역에 집중 배치하기로 했다. 또 육군 병력을 현재 49만명에서 54만명으로 5만명 증원하고 해병대는 23개 대대를 36개 대대로 1만2500명을 늘리기로 했다. 공군 전투기는 100대를 늘려 1200대를 보유할 계획이다. 게다가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비롯한 최신예 전략폭격기 등 각종 전략 자산도 아태지역에 배치할 방침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와 함께 2024년까지 3550억달러를 투입해 핵무기 현대화 10개년 계획도 완료할 예정이다.

1987년 6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레이건도서관
1987년 6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레이건도서관

소련을 대체한 또 다른 악 북한

트럼프의 대북정책도 레이건의 대소 전략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특히 트럼프는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지칭했듯이 북한 정권을 ‘악(惡)’으로 규정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19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김정은을 ‘로켓맨’, 북한 정권을 ‘타락한 정권’으로 지칭하면서 “만약 올바른 다수가 사악한 소수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악이 승리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을 비호해온 중국을 사실상 겨냥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제2차 제재) 조치도 시행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7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북한과의 오랜 협상이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단 한 가지 수단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 지난 10월 5일 군 수뇌부와의 회의에서 “독재정권의 위협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군사 옵션을 거론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군사 옵션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군사 옵션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트럼프는 이미 북한에 힘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가 지난 9월 23일 북방한계선(NLL) 북쪽의 동해 국제공역 최북단에서 대북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미군 전략폭격기가 이 지역에서 작전 비행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이건의 이름을 딴 세계 최강인 미국의 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이끄는 제5 항모강습타격전단이 10월 15일부터 동해에서 실전훈련에 돌입한다. 로널드 레이건호의 모토(motto)는 ‘힘에 의한 평화’이다. 모토는 군함의 임무를 상징한다. 이 항모를 투입함으로써 트럼프의 의도는 국제사회에 자신이 레이건과 같은 길을 선택을 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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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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