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2일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를 방문해 병사들과 만나고 있는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22일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를 방문해 병사들과 만나고 있는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한반도에 폭풍우 구름(storm clouds)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12월 22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 포트브래그에 있는 제82 공수사단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준비돼 있는 강력한 군대가 뒷받침해줘야 외교를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며 “우리 외교관들이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이야기하려면 여러분들이 나아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전날인 12월 21일엔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 사령관이 노르웨이 트론하임 인근의 군기지를 방문해 현지에 배치돼 있는 미군 병사들에게 “내가 틀리기를 바라지만,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중대한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러시아와 태평양 지역을 꼽았다.

최근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는 미군 수뇌부 발언이 잇따르면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예방타격)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영국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작전 명칭까지 거론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행정부가 ‘블러디 노즈(Bloody Nose·코피)’라는 이름의 대북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의 코에 코피가 터지게 할 정도로 주먹을 날려 정신을 차리게 만들겠다는 의미다.

텔레그래프는 “현재 검토 중인 군사옵션 중 하나는 북한이 추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하기 전에 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하거나, 미사일 보관 무기고를 타격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일반의 예측보다 군사 옵션을 더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외과수술식 정밀 타격을 통해 북한을 강제로 협상 테이블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미군이 시리아 공군기지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수십 발로 폭격한 것처럼 하겠다는 얘기다.

매티스 장관이 이례적으로 미 야전부대와 ICBM·폭격기 부대들을 잇따라 방문하면서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들을 선제타격 임박 징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제한적 선제타격 작전 ‘블러디 노즈’

하지만 아직은 선제타격 등 초고강도 군사옵션 실행이 임박했다는 t실제 징후는 별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영국 언론이 보도한 ‘블러디 노즈’ 작전은 북한 핵·미사일 능력을 무력화하거나 김정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에게 겁을 줘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이 작전이 효과가 있으려면 선제타격을 받은 북한과 김정은이 장사정포 공격 등 보복을 하지 않고 굴복해야 한다. 실제로 김정은이 겁을 내 보복을 못 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실행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한 전문가는 “‘블러디 노즈’ 같은 제한적 선제타격 작전이 한반도에서 쓸 수 있는 옵션이었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벌써 사용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미국이 실제로 북한을 타격하려 한다면 북한의 보복에 따른 확전에 대비해 전면전 수준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3개 이상의 항모전단 등이 한반도 해역에 배치되고 주일 미군 기지 및 괌 기지 등에도 전투기·폭격기 등이 추가배치돼야 한다. 20여만명에 달하는 한국 내 미국 민간인 중 일부라도 대피시키는 소개작전도 필요하다. 아직까지 이런 징후는 없는 상태다.

매티스 장관도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장병들에게 “1963년 출간된 T. R. 페렌바크의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이란 한국전쟁 역사서를 다시 읽고 있다”고 했다. 이 책은 미군이 준비되지 않은 채 전쟁에 뛰어들어 많은 희생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등 초고강도 군사옵션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는 실행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초고강도 군사옵션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같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북한의 ICBM 완성 시한이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미 CIA(중앙정보국)의 보고 내용은 미국의 다급함을 보여준다.

정부의 한 고위 소식통은 “(초고강도 군사옵션 전에) 미국이 쓸 수 있는 수가 거의 바닥난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마지막 수단인 초고강도 군사옵션 실행 전에 외교·경제적 제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런 수단의 한계가 속속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북·중 유류 해상 밀거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 선박들이 지난 10월 이후 30여차례에 걸쳐 서해 공해상에서 중국 선박들로부터 유류 등을 해상에서 넘겨받아 밀수한 현장을 정찰위성을 통해 포착, 한·일 정부 및 군 당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이 새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추진하면서 강력한 해상차단 방안을 포함시키려 했던 것은 북·중 간의 이런 움직임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지난 12월 22일 강화된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서해 공해상 밀수에 대해선 중국 당국의 협조 없이는 제동을 걸 현실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앞으로 북한의 추가도발로 송유관을 통한 대북 원유공급이 중단되더라도 이 같은 해상 밀수가 살아 있는 한 대북 제재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일각에선 중국 정부가 북한의 해상 밀수 차단에 끝내 소극적일 경우 미국이 해상차단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에 협조를 요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해의 지리적 특성상 미국이 일본과 연합작전을 펴기는 어렵고 우리나라밖에는 협조를 요청할 우방이 없는데 중국을 크게 의식하는 현 정부 정책노선상 미국과의 공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럴 경우 미국은 독자적으로 해상차단에 나서는 등 지금보다 강한 옵션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북한이 화성-15형 ICBM을 5000~6000㎞ 이상 날리는 등 추가도발에 나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초고강도 군사옵션 선택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북한이 우주개발의 합법적 권리를 부쩍 강조하며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도 악재가 될 수 있다.

반면 일각에선 막판 반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김정은이 2018년 1월 신년사에서 적극적인 대화 제스처를 보이고 평창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추가도발을 하지 않을 경우 대화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요구와 미국의 ‘북핵 폐기’ 입장에 변함이 없는 한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 한계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무릅쓴 초고강도 군사옵션을 택할지, 북한과 타협을 할지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오는 6월쯤까지 3개월가량이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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