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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497호] 2018.03.05

남북관계 들러리 된 통일부

이동훈  기자 

▲ 조명균 통일부 장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부터). photo 연합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2월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방한한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강원도 평창 모처에서 1시간가량 비공개로 만났다.
   
   이 자리에 배석한 우리 측 관계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대북정책 주무장관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는 김영철의 2박3일 방한 중 이뤄진 가장 중요한 자리였다. 북측에서는 이 자리에 김영철 통전부장을 비롯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나왔지만, 통일부는 조명균 장관은 물론 천해성 차관도 배석을 못 했다. 김영철 방남에 앞선 지난 2월 22일“통일전선부장의 지위는 우리 쪽의 국정원장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서훈 국정원장이 카운터파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란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언급이 확인된 순간이다.
   
   하지만 이는 역대 정권의 관행과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정권에서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상대해온 조직은 통일부였다. 당국가 체제인 북한에서 남북회담 등 대남업무를 관장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우리 정부에서 대북업무를 관장하는 통일부와 손발을 맞춰왔다. 소위 ‘통통(통일부-통일전선부)라인’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통일부는 한때 부총리가 관할하는 ‘통일원(院)’이었던 적도 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원에서 ‘부(部)’로 격하된 다음에도 대외적으로 차지하는 위상은 높았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이명박 정부 초기 인수위가 밝힌 ‘통일부 폐지론’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통일부 장관은 정부조직법상 행정부 의전서열에서 총리, 부총리, 외교부 장관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통일부 장관의 위상을 보면 예전 같지 않다. 개막을 앞둔 지난 1월 9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마주 앉은 상대는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조평통은 1961년 조직된 노동당 산하 외곽단체에 불과하다. 우리로 치면 정부의 외곽기구로 있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정도다. 민주평통은 실질적 리더인 수석부의장(김덕룡)이 장관급 대우를 받는 조직이지만 ‘민주평통’이 정부를 대표한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통전부의 산하 기관인 조평통의 위상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1월 조명균 장관과 마주 앉았던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폐막식 때 북한 측 대표로 내려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수행하는 위치에 불과했다.
   
   통일부 장관의 추락한 위상은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도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9일 개막식 참석차 북측 대표단장으로 내려온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일행을 인천공항까지 달려나가 직접 마중한 사람은 통일부 조명균 장관과 천해성 차관이었다. 국빈도 아닌 외빈에 불과한 김영남 위원장을 맞아하기 위해 장·차관이 총출동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김영남 위원장은 인천공항까지 마중 나온 조명균 장관에게 반말로 하대(下待)했고, 조명균 장관은 꼬박꼬박 존대(尊待)했다. 조명균 장관은 남북 간 만남 전 과정에서 ‘접대역’에 그쳤다. 조 장관은 개막식에 김영남 일행이 왔을 때는 2월 10일 공동만찬, 폐막식에 김영철 일행이 왔을 때는 2월 25일 공동만찬, 방한 마지막 날인 2월 27일 공동조찬을 주재했다.
   
   ‘접대역’으로 추락한 통일부 장관의 위상은 과거 정부와 비교해 보면 더욱 명확하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노무현 대통령 좌측에 앉았던 인사는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현 경기도 교육감)이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우측에 앉아 이재정 장관과 마주 보고 앉은 인사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였다. 김양건 통전부장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시 북측 조문사절 대표로 내려왔을 때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마주 앉았다. 사실상 이명박 정부 때 ‘통통라인’ 간에 이뤄진 첫 남북 고위급회담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맞춰 황병서 당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대표로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내려왔을 때는 우리 쪽에서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이 상대했다. 앞서 2013년 6월에는 6년 만에 성사될 뻔한 남북 당국 회담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상대는 김양건 통전부장”이라는 수석대표의 격을 놓고 벌인 양측의 기싸움 끝에 무산된 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까지는 적어도 북한 통전부장의 맞수는 통일부 장관이었던 셈이다.
   
   
   통전부장에 맞는 카운터파트는
   
   북한과 중국 등 공산권 국가에서는 ‘통일전선(Unified front)’이란 말을 흔히 쓴다. 강력한 주적을 앞에 두고 회담 등 평화적 방법으로 세력 간 결집을 시도할 때 쓰는 전술이다. 레닌이 1921년 코민테른대회에서 처음 제시한 용어로, 중국에서도 1·2차 국공(國共)합작 때 구체화됐다. 중국공산당은 일제라는 주적을 앞에 두고 국민당과 ‘통일전선’을 결성해 일본을 꺾고 결국 국민당마저 대만으로 내쫓았다. 중국은 지금도 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에 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를 두고 있다.
   
   북한의 통전부는 1978년 설립된 이래 남북회담을 비롯해 대남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핵심 기관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조선기독교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천도교청우당 등 종교단체와 민주당파(조선사회민주당), 조평통,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을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의 평화공세 때면 으레 양복을 입은 온화한 미소의 통전부장이 등장한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김용순 통전부장,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김양건 통전부장이 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김양건 통전부장이 2015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후, 인민군 정찰총국장 출신 김영철이 통전부를 접수하면서 성격이 모호해진 것이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김영철은 2016년 5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 보임된 것으로 돼있다.
   
   인민군 대장(별 넷) 출신의 통전부장을 상대하기에 조명균 장관은 중량감에서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초기 통일부 장관 하마평에 올랐던 인사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4선)과 우상호 의원(3선) 등이었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뒷줄에서 기록을 담당했던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낙점됐다. 조명균 장관은 첫 행시 출신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회담 실무경험이 풍부하다고는 하나, 역대 정권의 초대 통일부 장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인 류길재 전 장관과 달리 대선 캠프 출신도 아니다. 김영철 통전부장의 2박3일 나들이는 카운터파트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도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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