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강타한 이슈메이커 3인.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명박 전 대통령. ⓒphoto 뉴시스
대한민국을 강타한 이슈메이커 3인.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이명박 전 대통령. ⓒphoto 뉴시스

6·13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정치권에 불어닥친 3개의 초대형 이슈가 정국을 강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남북정상회담, 유력 정치인의 무덤이 된 ‘미투(#MeToo)운동’, 그리고 3월 14일로 예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까지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역대급 이슈가 맞물려 돌아가는 형국이다. 여야 정치권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응과정에 자칫 실수라도 나오면 지방선거에서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올 초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 메시지로 촉발된 남북 화해무드는 급기야 제3차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평창올림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이후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정은의 친동생 김여정 등 북측 고위 인사들의 방남이 현실화됐다.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며 평양으로 초대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3월 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하는 특사단을 북한에 파견하고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문 대통령의 의지대로 남북 평화무드가 전개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우선 동맹인 미국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비핵화 대화를 어느 단계부터 시작할지를 두고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최근까지 미국은 “비핵화 없는 미북 대화는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려면 일정 정도 미국의 양해와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의용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핵심 인사들이 3월 8일 곧장 미국으로 향한 것도 미국의 협조를 구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북한과 관계를 유지해온 한 시민단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신뢰감을 갖고 있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갈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 보면 북한과 미국이 한발씩 물러나게 함으로써 협상 여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미국 방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4월 말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성과를 도출해내지 못할 경우 보수진영에서는 다시 “청와대가 북한에 끌려다녔다” “북의 시간 벌기용 협상에 이용당했다”는 식의 비난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반면 남북이 정상회담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 대화에 비판적 입장을 고수해온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평화’와 ‘통일’ 공세에 밀려 불리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다.

방북 특사단이 들고온 남북정상회담 카드가 큰 이슈이긴 했지만 사실 국내 정치권은 더 큰 태풍에 출렁였다. 이른바 ‘안희정 쇼크’다. 미투운동의 불똥이 정치권으로 옮겨붙으면서 유력 차기 대선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실이 언론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3월 5일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의 여비서는 한 방송사에 출연해 그동안 안 지사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고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 지사는 즉각 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그를 정무적으로 보좌했던 10여명의 측근도 전화를 받지 않고 법적대응책 마련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틀 뒤인 지난 3월 7일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또 다른 여성의 폭로가 이어졌다. 날짜와 시간, 장소 등 구체적 정황까지 공개돼 그동안 안 전 지사를 지지했던 시민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마저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는 식의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이날 서울시장 출마선언이 예정돼 있던 정봉주 전 의원도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출마선언을 돌연 연기하는 일도 발생했다.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선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감과 함께 “다음은 정치인 A씨, L씨 차례”라는 식의 루머까지 확산됐다.

안희정 전 지사와 정봉주 전 의원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1차 파장은 여당을 향하고 있다. 안 전 지사의 최측근인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충남지사 출마를 위한 출판기념회를 연 다음날 ‘안희정 쇼크’로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충남지역 민심이 여당을 떠나는 거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으나 야당의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민심은 ‘정중동’이다. 한국당에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완구 전 국무총리와 이인제 전 의원 등이 차기 충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충청발 민심 이반이 아직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붙지 않았지만 안 전 지사에 대한 성폭행 폭로와 수사가 이어지면 그를 당의 간판 정치인으로 내세웠던 민주당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이번 파문의 반대급부가 적어도 자유한국당으로 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홍준표 대표의 언행이 유권자들에게 비호감을 주고 있어서다. 홍 대표는 안 전 지사 성폭행 사건이 불거진 뒤 “(미투운동을) 좀 더 가열차게 해서 좌파들이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또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 정당 대표 간 회동에 앞서 임종석 비서실장을 만나 “안희정 지사 사건을 임종석 실장이 기획했다더라”는 농담을 던져 빈축을 샀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홍 대표가) 저렇게 말하고 다닐 때가 아니다. 혹여 우리당 정치인의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 어쩌려고 저러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미래당은 대안정당 띄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MB 구속 여부에 촉각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문제도 폭발력이 만만치 않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측에 오는 3월 14일 검찰에 출두할 것을 통보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이날 검찰 포토라인에 설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검찰이 과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여부가 핵심 사안 중 하나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형과 처남이 운영해온 현대차 납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자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상당 부분 진척됐고, 그 결과에 따라 영장청구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또 국정원 특수활동비 17억원과 인사청탁이나 공천 대가로 26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삼성이 다스의 소송비용을 대납한 것까지 포함하면 뇌물로 간주되는 액수는 100억원이 넘는다. 이 전 대통령을 도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측근들은 줄줄이 구속됐고, 다스 운영에 관여한 친인척은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렸다.

만약 이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지난 10년 보수진영을 대표해온 정치지도자가 모두 구속될지 모른다는 위기를 맞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진 보수진영이 다시 한 번 낙담할 수밖에 없고, 이는 지방선거에서 ‘사표(死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하는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와 각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보수층의 응답률은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1 야당이자, 보수의 정통성을 주장해온 자유한국당에 대한 지지율은 10% 전후에 불과하다. 홍 대표는 이를 여론조사기관 탓으로 돌리지만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홍준표 대표의 임기는 사실상 6월 지방선거까지라고 보고 있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현 상황은 이어질 거고, 그렇게 되면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입지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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