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2506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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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 ‘죽음의 북한 여행’ 탑승객은 마오 신봉 사이트의 좌파 인사들

최유식  조선일보 중국전문기자  

▲ 지난 3월 9일부터 북한 여행단 모집에 들어간 중국 싱훠여행사 홈페이지.
지난 3월 전격적인 중국 방문으로 국제 무대에 데뷔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로부터 한 달 뒤 다시 한 번 묘한 행태로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지난 4월 22일 밤 황해북도 봉산군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한 중국 단체관광객 34명을 전용열차를 편성해 중국으로 후송하고, 평양역까지 나와 직접 전송한 것이다. 리진쥔 주북 중국대사와 함께 후송 열차 앞에 선 김정은은 시종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김정은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사고 다음날인 4월 23일 새벽 평양 주북 중국대사관을 방문해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했고 이날 저녁에는 치료 중인 부상자를 찾아 위로했다. 4월 25일에는 빠른 본국 후송을 원하는 중국 측의 뜻을 받아들여 전용열차 편성을 지시했다. 김정은은 이날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상무위원장에게 공동으로 보낸 위로 전문에서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사망한 것과 관련하여 중국공산당과 정부, 전체 중국 인민과 유가족들에게 가장 심심한 애도와 사고의 뜻을 표한다”면서 “나와 우리 당과 정부는 이번 사고를 놓고 책임을 통절히 느낀다”고 했다. 또 “중국 동지들에게 그 어떤 말과 위로나 보상으로도 가실 수 없는 아픔을 준 데 대하여 깊이 속죄한다”고도 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런 김정은의 행보를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동안 중국 관광객이 북한 내에서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하거나 북·중 국경지대 거주 중국인이 탈북 북한 병사에 의해 살해당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적잖았지만 북·중 양국은 일절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해왔다. 2011년 중국 단체관광객 27명과 17명의 상무시찰단이 탄 두 대의 대형버스가 평양 인근 도로 결빙 구간에서 미끄러져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을 때도 양국 관영 매체들은 사고 사실만 간단하게 보도했다. 북측은 실무 책임자들이 병원을 방문해 위로하는 정도의 성의를 보였다. 이런 전례에 비춰 보면 김정은이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보인 공개적인 사과 행보는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이런 북한과 달리 중국 관영 매체는 이번 사고에 대해 철저하게 로키(low-key)로 일관하고 있다. 사고 직후인 4월 23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4월 22일 오후 6시경 북한 황해북도에서 34명의 중국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해 3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면서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고 원인이나 사상자 명단 등 추가 보도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도 정례 브리핑에서 외신기자들의 질문이 나오면 ‘응급조치를 취했고, 북한과 협조해서 사고를 잘 수습하고 있다’는 정도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미·북 회담 앞두고 북·중 관계 다지기?
   
   김정은의 이런 행보에 대해 단순히 인도주의로 해석할 수 없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이번 사고로 어렵게 회복된 북·중 관계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북 회담이 예상과 달리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북한은 제재로 인한 경제난를 이겨내기 위해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시사평론가 덩위원은 BBC 인터뷰에서 “중국 민간에서 북한을 원망하는 여론이 일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이 북·중 관계 해빙과 함께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 북한 방문에 악재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고려일 수도 있다. 북핵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 북한은 연간 4400만달러의 관광 수입을 올려왔으며, 북한을 찾는 관광객의 80%는 중국인이다. 중국 여행사들은 최근 새로운 북한 관광상품을 내놓고 모객을 시작하는 등 북핵 압박 속에 중단됐던 북한 관광을 재개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김정은이 ‘통절한 책임’ ‘속죄’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이번 사고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은 과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북·중 양국이 내놓고 말을 하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항미원조 65주년 기념 6박7일 여행
   
   이번 사고를 당한 중국인 단체관광객은 일반 관광객이 아니었다. 마오쩌둥과 레닌 등을 신봉하는 중국 좌파 인터넷 사이트 우여우즈샹(烏有之鄕) 산하에 있는 싱훠(星火)여행사가 항미원조(抗美援朝·6·25 참전을 부르는 중국식 명칭) 65주년을 기념해 이번 여행단을 꾸렸다. 여행단 정식 이름도 ‘항미원조 전쟁 승리 65주년 기념 중국 인민 북한 방문 문화교류 참방단’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3년 베이징에서 만들어진 우여우즈샹은 마오쩌둥을 신봉하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반대하는 좌파 성향의 인터넷 매체이다. 그 산하에 있는 싱훠여행사는 여전히 공산주의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과 쿠바를 비롯해 러시아의 레닌 유적, 유럽 마르크스 유적 등을 탐방하는 여행상품을 팔고 있다.
   
   참가자 중 확인된 인물은 우여우즈샹 편집장이자 싱훠여행사 사장인 댜오웨이밍과 마오쩌둥 관련 다큐멘터리영화 등을 감독한 중국 관영 CCTV 아이신 감독의 부친 등이다. 이외에 중국홍가(紅歌)회 회원, 6·25 참전 중국 장군들의 자녀 등 좌파 성향 인사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싱훠여행사는 지난 3월 9일부터 이번 여행단 모집에 들어갔다. 이 여행사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올린 모집 글에서 ‘올해는 항미원조전쟁 승리 65주년’이라면서 ‘항미원조의 위대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지원군 선열의 휘황한 업적을 회고하기 위해 북한 여행단을 모집한다’고 썼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번 여행 일정은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6박7일로, 관광상품 가격은 1인당 5900위안(약 100만원)이다. 북·중 국경지대인 단둥에서 집결해 열차 편으로 평양으로 간 여행단은 첫 이틀 동안 평양 시내와 남포 등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돼 있다. 평양에서는 만수대와 천리마동상·인민대회당·김일성광장·주체사상탑 등을 찾고, 남포에서는 서해갑문·고구려 고분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사흘째 일정은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원을 방문해 마오쩌둥의 아들로 6·25 당시 사망한 마오안잉(毛岸英) 묘소를 참배하는 코스로 돼 있다. 나흘째는 개성을 당일로 방문하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잡혀 있다.
   
   
   돈줄 급한 북, 상감령전투 지구도 개방
   
   사고가 난 닷새째 일정은 원산을 방문해 둘러보고, 오후에 상감령 지구를 방문해 원거리에서 상감령의 크고 낮은 봉우리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돼 있다. 여행단은 상감령을 방문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에 봉산군 지역에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싱훠여행사는 북한 전역에 걸쳐 다양한 코스의 여행 상품을 갖고 있지만 상감령 방문을 일정에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당국도 처음으로 중국 여행객에 이 코스를 개방했다고 한다.
   
   상감령전투는 6·25 후반기인 1952년 10월 14일부터 40여일간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북방 저격능선과 삼각고지 일대 인근에서 우리 군과 미군,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고지전이었다. 미군 7사단과 한국군 2사단, 중공군 45사단과 29사단 등 총 10만병력이 참전했다. 중국 측에 따르면 59차례나 서로 고지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으며, 양측을 합쳐 3만명 이상이 전사했다. 중국 측은 막강한 미군을 상대로 이 전투를 승리하면서 오성산 방향으로 향하던 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기념관을 짓는 등 대대적인 선전도 해왔다.
   
   우리 군에서는 이 전투를 ‘저격능선 전투’로 부르는데, 중국군이 점령하고 있던 저격능선을 확보하면서 연합군이 승리한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서로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단의 방문지에 상감령이 포함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7년간 냉각됐던 북·중 관계가 회복되는 시점에 혈맹의 역사가 담긴 상감령까지 중국 관광객에게 개방해 양국 관계 회복 분위기를 고조시키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렇게 계획한 행사가 대형 교통사고로 얼룩져버린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다리 아래로 추락한 버스가 폭발하지 않았는데도 탑승자 38명 중 36명(중국인 32명, 북한인 4명)이 사망할 정도로 피해가 컸던 점을 들어, 음주운전 등 북측에 귀책 사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하고 있다.
   
   
   마오쩌둥 손자 포함설
   
   중국 당국이 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고 있는 데 대해서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여행단에 참여한 인사들이 좌파인사들이라는 사실은 사고 이틀 뒤인 4월 24일 밤 중국의 대표적인 좌파 논객인 쿵칭둥 베이징대 교수가 올린 웨이보 글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글은 하루 뒤 삭제됐다. 쿵 교수는 이후 BBC 방송의 확인 요청도 거절했다고 한다.
   
   사상자 명단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의문이다. 중국은 최근 해외에서 발생하는 대형 교통사고와 관련해 피해 사실과 피해자 명단을 속속 공개해왔다. 국민들에게 해외여행 시 안전에 주의할 것을 환기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2년 전인 2016년 대만 관광버스 화재사고로 중국인 관광객 26명이 사망했을 때도 사고 당일 명단이 나왔다. 반면 이번에는 사고가 발생한 지 1주일이 지난 시점에도 명단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여행객 중에 거물 인사가 포함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 해외 반중 언론에서는 그 인물이 마오쩌둥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毛辛宇·48)라는 미확인 보도까지 나왔다. 이런 인물이 들어 있어서 김정은이 전용열차까지 편성하고 직접 평양역까지 배웅을 나간 것 아니겠느냐는 추산이다.
   
   중국 입장에서 찝찝한 구석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국 당국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 요청에 따라 지난해 북한 관광을 중단했다. 그런데도 싱훠여행사는 작년 7월 북한 관광 여행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한 관광 상품을 계속 팔아왔다. 북한 관광 자체가 제재 대상인지 여부는 논란이 있지만, 강도 높게 북한 관광을 통제해온 중국 당국으로서는 스스로 구멍이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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