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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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의’를, ‘민주라는 이름으로 민주’를, 그리고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성장 발판’을 죽이고 있다.”

차분한 성격으로 알려진 김병준(64)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만큼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격정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이 가라앉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비대위원장 취임 100일’을 계기로 주간조선과 인터뷰를 가진 김 위원장은 정의·민주·성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 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먼저 ‘정의’와 관련, 현 정부가 중점 추진 중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끄집어냈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 산하 서울교통공사의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은 공공기관 전체에 만연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한 뒤 “비정규직은 시험을 치르기보다 알음알음 채용한 경우가 많은데, 이른바 연줄과 정보에 빠른 사람들이 어느날 정규직이 되는 바람에 이를 모르고 있던 취업 희망자들은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밀어붙일 때 정책적으로 많은 문제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의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경고를 수많은 사람들이 했다. 그런데도 노조의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정부의 아마추어리즘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규직화를 밀어붙여 누군가에게는 정의롭지 않은 채용이 되고 말았다.”

김 위원장은 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특별재판부’ 구성 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사법부를 놔두고 국회가 특별재판부를 구성한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에 구멍이 뚫리고 만다. 삼권분립 정신에는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로부터 수백 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고 해서 어느 날 국회가 사법부보다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민주의 기초가 흔들린다. 여당은 사법농단을 단죄하라는 여론이 높다면서 이를 밀어붙이려 한다. 그럼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하라는 여론이 높으면 그걸 따를 건가. 사법부가 자정능력을 갖도록 입법부와 행정부가 압박하고 견제하는 게 먼저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고용과 투자 등의 지표가 이미 주저앉고 있고 최근 주가도 폭락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혁신은 말뿐이고 정부는 여전히 소득주도라는 사실상 실패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영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다. 나는 그가 엉뚱한 사람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도 소득주도를 옹호하는 게 과연 본인의 신념인지 의구심이 든다. 정책실장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는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관철할 수 없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

-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론이 상당함에도 문 대통령이 이 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상식적 경제관을 갖지 못하게 하는 집단이 있을 수 있다. 특정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에 포획되면 상식적 견해가 있어도 말하기 어렵고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청와대)가 그렇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출신, 노조, 그리고 전대협 등 운동권 세력에 의해 문 대통령이 정부 출범 때부터 포획된 게 아닌가 싶다. 현 정부에서 의미 있는 경제·산업정책이 나올 수 없다고 판단한 배경이다. 예컨대 노조를 건드리지 않고는 의미 있는 산업정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청와대는 혁신을 얘기하지만 현장에서 관련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재 기조로 가면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경제 상황은 나아지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경제 문제를 거론하는 대목에서 유달리 목소리가 커졌다. “작금의 대한민국 경제는 몇 세대에 걸쳐 일군 성과물이다. 그런데 현 정부에 경제를 맡길 경우 우리의 기반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현 정부는 역사 앞에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근 몇몇 장관과 군부대를 방문한 게 구설에 휘말렸다. “현 정부는 특이하다. 청와대 참모가 남북대화 같은 중요 사안에 있어서 장(長)을 맡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문 대통령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정책의 집행에 관한 업무는 소관 부처에 맡기는 게 맞다.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의 비서로서 보좌하는 업무에 준해야 한다.”

- 문 대통령과 함께 방북했던 기업 총수들이 북한 리선권(조평통 위원장)에게 면박을 당했다. “어떻게든 북한을 붙잡아두고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현 정부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 자존심을 버리면 올바른 협상이 될 수 없다. 문 대통령 주변에서 이복형을 암살한 김정은에 대해 ‘나쁘게만 보지 말라’고 하질 않나, 재벌 총수들에게 ‘목구멍으로 냉면이 넘어가느냐’는 이 따위 비아냥을 듣고도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경제가 일어서는 데 북한이 도움을 준 게 있나. 미사일 쏠 때마다 안보 불안으로 경제에 타격을 입히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돈이라도 맡긴 양 경협을 하라고 우리 기업인을 위협하고 있다. 북측은 그런 말을 할 권리나 자격이 없다. 남북협상은 (남측이) 항복문서를 쓰는 게 아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엔 관대하지만 야당에 대해서는 마치 적대국 대하듯 강경하다”고 꼬집었다. “야당이 경제에 대해 어드바이스(충고)를 하면 득달같이 면박을 주면서 김정은과 리선권에게는 왜 이리도 관대한지 의아하다. 북한이 미사일을 다시 쏴도 이해하자고 할 거냐.” 그는 남북 평양공동선언 비준 과정에서 국회를 ‘패싱’한 것에 대해 “정부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다”고도 했다. “적게는 100조원에서 많게는 400조원이 든다는 남북경협은 결국 국민이 돈을 내야 하는 문제다. 당연히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이걸 문 대통령 마음대로 결정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정부는 헌법에 기초해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 ‘평화’에 관해 자유한국당이 갖고 있는 생각은 뭔가. “집권당의 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방관자라거나 반(反)평화세력이라고 말하는 건 억지논리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평화를 생각한다. 평화를 위해서라도 굳건한 국방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단순히 북한만을 상정한 게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확장한 개념이다. 북한이 우리와 반하는 행동을 보일 때 이를 제어할 능력을 갖춘 상황에서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북한이 대화에 나선 건 우리의 단단한 국방력과 동맹국의 압박 때문이지,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말이 잘 통해서가 아니다. 김정은이 대화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메커니즘을 존중하고 유지해야 한다. 평화만 오면 잘살 수 있다고 하는 건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 비대위원장을 맡은 지 100일이 지났는데 당 혁신은 어디까지 와 있나. “지난 9월 말, 추석을 즈음한 시기에 당의 혁신에 대한 내용들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다. 조만간 이를 당 구성원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당의 꿈과 비전을 세우는 일, 이를 공유하고 체화하는 일이 앞으로 한 달가량 진행되고 나면 인적쇄신도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 한국당에 꿈과 비전을 심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당에 꿈과 비전을 심는 일이다. 그 다음 정책 패키지를 다듬어 대안정당이자 정책정당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한국당이 혁신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존 정당의 투쟁이라는 것은 권력만을 위한 싸움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승리해도 결국 제대로 국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되레 권력이 부메랑이 돼 자기를 때리는 일이 반복됐다. 대한민국 정치의 모든 권력이 실패한 원인은 여기에 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싸우고 싶으면 꿈을 가져라’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대한민국이 조금 더 역동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다. 어느 한 정당이라도 제대로 된 꿈을 만든다면 나머지 정당도 따라올 것이다.”

- 그 꿈과 비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 “기본적으로는 시장과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를 말한다. 각종 규제를 풀고 젊은이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국민을 규제하고, 감독하고, 교육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냈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세계에 전파하는 단계에 와 있다. 대한민국 구성원은 대단한 역량을 가진 국민이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대한민국이 침체의 늪에 빠졌다. 탈국가주의 기반의 정책을 만들고 정부가 내놓는 각종 규제를 혁파하는 데서 한국당의 가치를 마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대체로 자율성을 침해하는 게 많다”고 지적했다. “학교에 커피자판기를 설치할 것이냐를 두고 법을 만들어 정부가 규제한다. 대기업의 자회사 지분 보유 비율도 정해준다. 마치 정부와 공무원들이 정답을 갖고 있는 양 개입하며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이오, 블록체인, 벤처기업 등은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일할 수 없다. 이래서는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없다.”

- 그렇다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는 자율체제하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기회가 없는 사람, 힘이 없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도 기회를 균등하게 찾도록 해주는 일, 공정경쟁을 확보해주고 공정거래를 보장해주는 게 국가다. 여기에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배려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 인적쇄신처럼 단박에 눈길을 끌기 힘든 것이 혁신작업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우파진영에서조차 한국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운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한 건강한 정치집단이 대한민국에 존재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전체적으로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미래로 재도약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는 건 먼 얘기 같지만 우리에게 절실하다. 이를 뿌리내리게 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정치다. 당에서 사람을 들어내는 일은 후순위의 문제다. 사실 사람을 잘라낸다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과거 김종인씨가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사람 쫓아내고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건 엉터리다. 선거 임박해서 사람 몇 명 내보내는 건 간단한 일이다.”

한국당 내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지난 100일의 평가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최근 KBS가 한국당 국회의원 112명 전원을 상대로 김병준 비대위 체제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100점 만점에 평균 71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64명으로, 전체의 57%였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친박이나 비박이 비슷한 점수를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병준이 어느 특정 계파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비대위를 이끌어왔다고 당내 의원들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지난 100일의 소회를 묻자 “힘들다. 힘들다. 힘들다”고 답했다. 당 안팎에서 제기된 ‘인적청산’ 요구는 “그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이슈였다”고도 했다.

- 전원책 변호사에게 인적쇄신의 전권을 맡겼다. 비대위와 불협화음은 없나. “최근 야밤에 택시를 타고 전원책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할 얘기가 있으면 언제든 찾아가고 입장을 듣는다. 그동안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께서 여러 말씀을 하셨으나 최근 당에서 고려하는 일정대로 특위를 운영키로 결정했다. 당내에서 조강특위에 대해 이런저런 뒷말이 나오지만 나는 조강특위를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다.”

김 위원장은 인적쇄신 규모와 방법 등에 관한 구체적 내용에 대해 말을 아꼈다. “당은 253명의 당협위원장에게 일괄 사표를 받는 유례없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조강특위가 누구를 자를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인재를 영입하느냐가 핵심이다. 당세나 정치지형의 불리함 등을 고려할 때 인재영입의 어려움은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 범보수통합론에 대한 입장은 뭔가. “현대의 정당은 큰 그릇에 모든 것을 담겠다는 식으로 운영해선 곤란하다. 우파는 우파끼리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 전체가 연결되는 구조로 가는 게 맞다. 한국당은 그 중심성을 확보하면 된다. 우파 네트워크 안에는 태극기집회 참가자도 있고 탈당한 분도 있고 황교안 전 총리,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있다. 정치는 의회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사회 곳곳에 정치적 행위가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과거에 사람 중심의 정당구조였다면 이제는 꿈과 비전, 그리고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 우파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 나는 바른미래당과 합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당과 공유할 수 있는 꿈이 있다면 그 부분은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18일 제주도청에서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났다. 당시 “한국당에서 원희룡 지사의 입당을 권유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입당 관련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는 일은 대체로 파행이고, 국가는 가라앉고 있다는 우려를 원 지사와 공유했다.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했다. 우파 네트워크의 중심에 한국당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달라고도 했다.”

- 공공기관 채용비리 못지않게 사립유치원 운영비리 의혹도 여론의 주목을 받는데, 이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은 뭔가.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이 자율정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유치원에 국가 예산이 들어갔는데, 이 상황이 벌어질 때까지 광역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 그리고 교육부 수장은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채용비리에 이어 유치원 관련 사안도 국정조사를 할 수 있다.”

- 김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 꿈은 없나. “내 평생에 ‘국회의원이 되겠다’ ‘총리가 되겠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저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 한국당에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당에 오래 있는 것 또한 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권을 잡으려 한다는 식으로 얘기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한국당 비대위는 내년 2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까지 가동된다. 이 전당대회를 통해 한국당 새 당대표가 선출되면 지난해 대선과 지난 6월 지방선거 패배를 계기로 출범한 비상체제도 막을 내린다. 김 위원장은 “2020 총선에서 국회 과반 의석 확보가 가능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하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당은 앞으로 의회 권력을 확보하고 재집권 가능성이 확실한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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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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