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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34호] 2018.11.26

온라인 팬덤 정치의 덫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1월 19일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혜경궁 김씨’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고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절차를 앞두고 있다. 더디게 굴러가는 수사 과정을 제쳐놓고 장외 공방전은 격렬하게 전개되는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혜경궁 김씨’가 자신의 부인 김혜경씨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경찰이 ‘혜경궁 김씨’가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씨와 동일인임을 추론하게 하는 사실을 추가로 밝히자 이 지사 측은 네티즌들의 도움을 빌려 트위터 계정주와 김혜경씨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반박 자료를 모아 게시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지사 쪽은 사법부의 결론에 앞서 여론전 승패가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재명’이라는 범여권 유력 차기주자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로 이 사안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불리하게 끝난 온라인 투표 승부수
   
   ‘혜경궁 김씨’ 사건이라 불리는 논란의 트위터 계정주가 김혜경씨라고 판명될 경우 이재명 지사가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법원에서 ‘혜경궁 김씨’와 김혜경씨가 동일인이라는 결론과 함께 유죄 판결이 내려져도 이 지사가 도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정치인 이재명, 차기주자 이재명’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의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혜경궁 김씨’가 내뱉은 말들은 아무리 선거 전시(戰時)임을 감안해도 지나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재명 지사는 당시 ‘혜경궁 김씨’와 서로 멘션을 주고받는 등 트윗을 적극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 해당 트위터 계정주가 자신의 부인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혜경궁 김씨=김혜경씨’라는 결론이 날 경우 사법적 유·무죄 판단을 떠나 이 지사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혜경궁 김씨’가 김혜경씨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증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어떻게 될까. 이 상황을 가정할 때 전망은 엇갈리는 것 같다. 한쪽에선 이 지사 부부의 결백과 정치적 수사라는 게 입증되면서 차기주자로서 이 지사의 당내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이미 ‘당심이 이재명을 떠났다’는 점을 근거로 정반대의 전망도 나온다. 결국 여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여타 정치인과 뚜렷이 구분될 정도의 강력한 팬덤을 형성해왔다. 이 지사의 팬클럽은 ‘손가락 혁명군’이라는 이름 아래 소셜미디어를 주 무대로 두드러진 활동을 펼쳤다. 이런 힘이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성장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지금 ‘혜경궁 김씨’ 논란 역시 소셜미디어상에서 시작된 일이다. 이재명 지사는 기본적으로 소셜미디어, 온라인 생태계에 대해 자신감이 상당했던 것 같다. ‘혜경궁 김씨’가 김혜경씨라는 경찰의 발표 직후 이 지사는 경찰의 주장과 이에 맞서는 자신의 변호사의 주장을 대비시키며 직접 온라인 투표를 제안하기도 했다. ‘사진을 트위터에 공유하고 공유사진을 캡처해 카스(카카오스토리)에 올리기보다, 원본사진을 바로 공유하는 게 더 쉬우니 동일인 아님’(변호사 주장) vs ‘트위터 공유 직후 곧바로 캡처해 카스에 공유했으니 동일인’(경찰 주장)이라는 주장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네티즌들에게 직접 물은 것이다.
   
   이 지사가 직접 작성해 올린 트위터 투표 제안에 하루 사이에 3만6000여명이 참여했다. ‘김혜경 주장’ 공감 19%, ‘경찰 주장’ 공감 81%로 여론은 확연히 기울었다. 그동안 각종 루머와 정치적 공격에 대해 온라인상에서만은 강력한 지지층의 반격과 지지를 등에 업고 우호적 여론을 경험해왔던 이재명 지사 측에서 당혹해할 만한 결과다. 이 투표 이후 경찰은 ‘혜경궁 김씨’가 트위터에 등록했던 이메일 주소와 동일한 포털 메일 주소가 있고, 지금은 삭제된 이메일 계정의 마지막 접속 장소(탈퇴)가 이재명 지사의 자택이라는 점을 다시 밝혔다. 이런 경찰 발표 후 투표를 했다면 아마 여론의 기울기는 8 대 2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손가락 혁명군’들은 어디로?
   
   이 지사가 자신 있게 던진 온라인 투표 카드에 네티즌들은 왜 호응하지 않았을까. 상당한 규모로 추정되던 ‘손가락 혁명군’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지사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해 ‘그렇지 않다, 결백하다’는 입장표명으로 일관하면서도 의혹을 푸는 데 필요한 직접적인 문제들은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인 김혜경씨가 사용했던 휴대폰 제출, 트위터 본사에 @08_hkkim 계정주가 김혜경씨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시도 등 직접적인 의혹 해명 노력은 없이 ‘부인’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여론이 먼저 ‘유죄’ 평결을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수사 자체를 음모론 혹은 정치적 수사로 몰아가는 정치 프레임에 대해서도 여론의 반응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정치적 약자 코스프레’라는 반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정치인을 둘러싼 네거티브 이슈에 여론이 작동하는 방식은 팩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팩트 여부보다 문제를 대하는 정치인의 태도가 더 중요한 여론 평결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사법적 유죄 판결을 받고도 정치적으로는 생존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정치인에 대한 평결은 두 차원에서 존재하는 셈이다. 소위 국민정서법으로 불리는 ‘여론법’과 사법부의 잣대가 동일한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투표 참여자들이 전체 국민 여론을 대변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법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압도적 다수가 이재명 지사의 해명을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 지사의 홈그라운드라고 알려진 온라인상 여론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법부가 트위터 계정주와 김혜경씨가 동일인인지 여부를 확증할 수 없다고 판단하더라도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평가 기류는 쉽게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영역에서 이재명 지사의 내상이 깊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논란의 트위터 계정주가 김혜경씨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으로 명확히 밝혀지고 경찰 수사가 무리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여론의 기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부인 김혜경씨가 지난 11월 2일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수원 경기남부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팩트가 아닌 태도의 문제
   
   여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승패를 가리고 전쟁을 치르는 데 가장 익숙한 것이 정치인들이지만 그렇다고 여론의 속성을 꼭 잘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재명 지사는 해당 트위터의 글들이 문제가 되었을 때 이미 잘못된 선택을 했다. 공격적인 언사들이 지지층을 환호시키고 상대를 자극하는 데 이용되는 것에 대해 도덕적 경계 경보를 울리지 않은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주가 김혜경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식의 네거티브는 자제되어야 했다. 선거는 물론 정치 전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어야 했다. 백보 양보해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와중에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면 사후에라도 ‘네거티브를 자제하자’는 입장을 취했어야 했다.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트위터의 글들이 몇 차례 논란이 되었을 때 이재명 당시 후보가 취한 입장은 ‘나와 무관하고 내 아내와 무관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식의 정치는 자신을 지지하는 그룹에는 통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지만 냉정하게 정치인을 바라보는 일반 유권자의 눈에는 다르게 비쳐진다. ‘인물의 정치적 그릇, 도덕성, 됨됨이’를 바라보는 눈에 좋은 모습으로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유불리를 떠나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한 정치인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커질 때 그 정치인에 대한 불안감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혜경궁 김씨’에 대한 경찰의 발표 직전 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지사는 범여권 차기 대권주자군 중 2위를 기록했다. 이낙연 총리에 이어 2위로 도약한 여론조사 결과에 아마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트위터 사건 논란이 가열되고 경찰의 발표로 이재명 지사의 입지가 위축된 지금 다시 조사를 하면 이재명 지사의 지지율이 속절없이 무너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지사가 주도한 트위터 투표 결과를 보면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재명 지사의 강성 지지층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의 힘에 기반한 지지율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현상에 안도한다면 이재명 지사의 혜경궁 김씨 사건 대응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치열한 여론전에 매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수 국민, 유권자를 포괄하는 넓은 정치적 프레임을 구축하는 것도 정치의 한 방식이고, 소수의 강력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외연 확장을 꾀하는 것도 정치의 다른 방식이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 방식인가는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상황과 인물, 구도 등에 따라 전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의 강력한 팬덤에 기대는 정치는 그 팬들의 입장이 다수의 견해와 점점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들만의 세계’ 속에 갇히기 쉽다. 온라인상에서 ‘혜경궁 김씨’와 김혜경씨 연관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댓글 싸움을 보면 점점 이성적 판단의 틀을 넘어서는 감정대립이 격화되는 것 같다. 서로 자신의 입장을 정해놓고 무조건 다른 쪽을 공격하는 흐름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팬덤에 갇힌 정치
   
   이재명 지사든 다른 정치인이든 큰 정치를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이는 숙고해볼 문제다. 정치라는 과정과 방식의 속성상 어디에서든 잡음은 일어나고 예기치 못한 돌발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여러 사람이 관여하는 격렬한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는 일탈이 쉽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 그런 것들이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돌발상황이 벌어졌을 때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가느냐 하는 선택에 있다. 악재를 악재로 남겨두지 않으려면, 더 큰 악재를 작은 것으로 만들어 딛고 넘어서려면, 외면적 당당함이 아니라 (그건 어쩌면 뻔뻔함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합리적 태도를 갖고 대응을 해나가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유불리에 매달리지 않고 긴 호흡으로 국민 감정과 소통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 트위터에 쓴 글, 어쩌면 사소해 보였던 문제가 유력 정치인의 앞날을 좌우할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글의 농도와 위법성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문제를 키운 본질이 아닌가 싶다. 비운에 간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대왕의 어머니였던 혜경궁 홍씨에서 ‘혜경궁 김씨’라는 별명이 착안되었다고 한다. 네티즌들의 재기(才氣)에서 시작된 별칭이 참 공교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재명 지사는 정치적 운명을 건 이 여론전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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