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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60호] 2019.06.03

스텝 꼬인 문대통령의 복심

▲ 지난 5월 27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2012년 대선부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왔던 인물이다. 양 원장은 틈만 나면 자신이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은 ‘사인(私人)’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신이 공인(公人)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7년 대선 후 해외로 떠난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양 원장은 2017년 대선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내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비정상적인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그럼 대통령이 힘들어진다.”
   
   양 원장은 자신이 대선 후 해외로 떠나면 다른 한편으로는 비난이 쏟아질 것도 알고 있었다. 양 원장은 올해 1월 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 대통령 도왔던 분들이 대가를 바란 건 아니어도 부채는 부채다. 부채를 다 갚다 보면 끝이 없다. 역대 정권이 하던 일(보은인사)을 반복해야 한다. 부채를 갚을 길이 없어 정치적으로 ‘파산신청’을 한 거다. 먹튀하는 수밖에 없잖나.”
   
   실제로 양 원장이 외유를 떠난 후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민주당 안팎에 많았다. 대부분 선거에서 그를 도왔던 인물들이다. 중량감 있는 역할을 했던 인사들은 인사들대로, 청와대 입성을 노렸던 실무자들은 실무자들대로 양 원장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청와대에 넣는 이력서까지 양 원장에게 전달했다가 이게 청와대 측에 전달이 안 됐다고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선 공신들에게 자리를 챙겨주는 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보은인사일 수도, 의리를 지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를 비난했던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양 원장은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 됐다. 지인들의 불만과 달리 외부에서는 양 원장의 퇴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대통령의 측근이 주변에 남아서 권력을 휘두르는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의리까지 저버리는 결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 원장이 최근 서훈 국정원장을 만난 사진이 ‘더팩트’라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공개됐을 때 양 원장은 ‘의리’를 내세웠다. 그는 기자들에게 보낸 해명자료를 통해 “정치행위가 아니라 저의 사람 도리, 인간적 예의에 해당하는 일”이라며 “정치 위에 도리가 있고 의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 해명을 접한 한 여권 인사는 “어찌됐든 부적절한 처신이었고, 양 원장이 ‘의리’를 내세운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본다”며 “그의 (정권 초반) 퇴장이 빛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어떤 자리도 맡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여권 인사는 “본의 아니게 국정원장과 만난 사진까지 공개되고,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의리’까지 언급한 것을 보면 이번 보도로 어지간히 스텝이 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 퇴임까지 공직 맡지 말았어야”
   
   양 원장은 서훈 원장과의 만남이 사적인 만남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양 원장은 총선 때문에 민주연구원장직에 앉은 사람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나 양 원장 모두 민주연구원이 총선의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공언해온 바 있다. 양 원장은 “내년 총선까지 승리로 이끌어야 정권교체의 완성”이라고도 했다. 당연히 그의 모든 행보는 내년 총선과 연관해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미 당에서도 사람과 돈을 그에게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양 원장 밑에 세 명의 현역의원들이 부원장으로 있다는 것은 민주연구원장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는 김영진·이재정·이철희 의원과 백원우 전 의원,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당연직 부원장)을 인선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이 받는 국고보조금의 30%를 사용하고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엔 예산이 두 배다. 민주당은 1년에 150억원 가까운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그가 만나는 인사들의 중량감은 현역 중진 의원들을 압도한다. 양 원장은 국정원장을 만나기 5일 전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을 독대하기도 했다.
   
   양 원장과 서훈 국정원장과의 만남을 내년 총선과 연결시켜 보는 것은 야당만이 아니다. 사실 이번 보도의 파장은 여당 내에서 더욱 크게 일고 있다. 이미 당내 비문(非文) 인사들 사이에서는 양 원장의 복귀로 청와대의 총선 개입 여지가 많아졌다는 시각이 퍼져 있는데, 서훈 원장과의 만남은 여기에 대한 확신을 더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이번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면면이나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출마의사를 밝히는 것을 보면 결국 내년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선거 전략을 짜고 여기에 따른 룰을 만드는 연구원의 원장이 국정원장까지 만나고 다니는 것은 그 자체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국내 파트를 없앴다고 하지만 국정원의 인력운용이 공개된 적이 없고 여전히 지역 조직은 가동 중”이라며 “국정원의 방대한 정보가 어떻게 활용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재수회’의 재결합
   
   두 사람의 만남을 단순히 사적인 자리가 아닌 ‘친문계 핵심인사들의 재결합’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속한 모임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여권 내부에서는 두 사람이 ‘재수회’ 소속 회원이었다는 말이 파다하다. ‘재수회’는 2012년 대선 이후 ‘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이란 취지로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2012년 낙선한 문 대통령이 다시 정치에 나서기 전 가장 가까이에서 지원한 그룹이기도 하다. 현 정부에는 재수회 소속 ‘실세’가 적지 않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조윤제 주미 대사,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 신현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등이다. 결과적으로 야인으로 지내오던 양 원장의 복귀는 재수회로 알려진 측근모임의 화룡점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양 원장의 부적절한 처신은 결국 여권 내부의 계파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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