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9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 들어서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6월 19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 들어서고 있다. ⓒphoto 연합

“앞으로는 (황교안 대표의) 백브리핑을 줄이겠습니다.”

지난 6월 24일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백브리핑은 백그라운드 브리핑(Background Briefing)을 줄인 말로, 정치인이나 관료 등 주요 직위에 있는 이들이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전제로 사안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가리킨다. 앞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없다. 산술적으로 (내국인과 외국인이) 똑같이 임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발언을 했고 다음 날 숙명여대 특강에서는 아들 스펙 논란에 휩싸였다. 여야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황 대표의 외국인 노동자 관련 발언이 ‘혐오스럽다’는 비판이 커지자 황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바로잡자는 선의였다”고 해명했다.

사실 황 대표가 부산상의에서 한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 경제에 보탠 게 없다”는 발언은 보수 진영에서 정색하고 제기해볼 문제라는 평이 많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지급 문제에 대해 “보수에서는 이슈화를 해볼 만한 문제인데 후속조치가 별로 없었고 팩트도 틀린 게 있다 보니 그냥 무너지게 된 것”이라며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해서 현 정권의 약한 고리를 공략해야 하는데 준비가 덜 돼 있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말하는 외국인은 백인이나 선진국에서 온 이들을 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난민을 뜻한다. 황 대표의 외국인 노동자 발언을 두고는 진보 진영에서도 “경제가 어려워진 틈을 타 정치적으로는 결코 어리석지 않은, 표를 얻기 위한 계산된 말처럼 들린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정치평론가들은 황 대표의 ‘외국인 노동자 발언’이 ‘트럼프 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말실수가 아니라 나름대로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난번 동성애에 대한 발언도 계산된 행동이라면 트럼프처럼 극우 전략을 쓴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계산된 발언… 해명이 문제”

하지만 한국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 발언이 정치적으로 계산된 발언이라면 해명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이런 비판을 했다.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지급은 논의해볼 만한 문제가 맞다. 최저임금을 같게 지급한다면 지금 외국인에게는 숙식까지 제공돼 있기 때문에 사실상 내국인보다 더 주는 셈이다. 업종별로 외국인 노동자 임금에 차등을 두는 등 다같이 생각해볼 만한 문제였다. 비판이 가해져도 ‘뭐가 문제냐’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어야 하는데 해명을 해서 우왕좌왕하는 모양새가 돼 안타깝다.”

실제 황 대표는 자신의 발언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자 혐오라는 비판이 커지자 다음날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바로잡자는 선의였다”면서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황 대표의 이번 외국인 노동자 발언을 두고 계산된 발언일지 모른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이유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내국인들의 반감 자극이 정치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효과를 거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2016년 대선 당시 진보 정권의 다원주의와 기성 정치·언론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업고 당선됐다. 백인 우월주의자와 보수 기독교계, 저학력 노동자 백인 남성이 주로 지지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유증에 시달리던 유럽에서도 2015년 중동에서 넘어온 난민들이 증가하면서 반난민·반세계화를 내건 극우세력이 정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헝가리 등에서는 극우로 분류되는 세력이 집권했고, 독일·스웨덴에서도 극우로 분류되는 정당들이 제3당으로 올라서면서 중도 정당들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내국인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차등’이라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언어 소통능력이 내국인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외국인에게 숙식까지 포함한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실제로는 내국인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라는 불만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미국, 싱가포르 등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는 나라라고 해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만큼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고민해볼 만한 문제”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둘러싼 국내 여론은 사실 복잡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근처, 경기 성남시 수진리고개 인근은 이미 조선족 노동자들이 국내 노동자들을 밀어내고 주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을 두고 일부 국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외국인들을 차별한다면 우리도 외국에서 차별받았을 때 항의할 근거가 없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현행 국내법에 따르면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노동자 간 차별대우는 금지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도 사용자가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해 처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111호 ‘차별금지협약’도 국적 등을 이유로 한 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황교안 대표의 발언은 표를 노리고 계산한 것임은 분명한데 정교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라며 “대표적으로 일본이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나라인데 이런 나라들이 ILO와 관계설정을 어떻게 하는지 등을 미리 알고 얘기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만일 법을 개정해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할 경우 도리어 내국인 근로자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사용자들이 임금이 싼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황 대표의 이번 발언이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인 만큼 사용자들에게 인건비 절감 효과를 기대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사용자들의 표를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황 대표의 발언은 상대적으로 표가 더 많은 내국인 근로자들 입장에서도 따져봐야 할 측면이 많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을 차별할 경우 내국인 노동자의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질 뿐 아니라 내국인 노동자라고 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무조건 지지하는 게 아닌 만큼 실제 여론 지형은 좀 더 복잡하다.

‘정치신인 리스크’ 현실화 관측도

황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 발언 후유증으로 백브리핑을 줄이기로 한 뒤에도 지난 6월 26일 열린 ‘2019 한국당 우먼 페스타’ 행사장에서 엉덩이춤을 춘 여성 당원들에게 박수를 치며 칭찬하는 모습이 비판을 받는 등 끊임없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를 두고 황 대표 취임 당시 제기됐던 ‘정치신인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황 대표가 총선 체제에 들어갈 한국당을 맡게 되면서 좌충우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이어지면서 백브리핑 자체를 줄이겠다는 대응 역시 현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적절하냐는 반응이 나온다. 백브리핑이라는 소통 방식이 아니라 발언 내용들이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는데 처방을 잘못 내렸다는 설명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백브리핑의 문제가 아니라 황교안 대표가 정치적으로 어떤 주관과 생각으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도 “소통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문젠데 엉뚱하게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최근 많이 보인다”며 “전술만 있고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 대표라면 큰 전략을 세우고 그 안에서 주도면밀하게 전술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자꾸 발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대표를 보좌하는 사람들이 준비가 덜 된 사람들이거나 혹은 너무 강경한 사람들로 구성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일단 지르고 나서 수습하자는 식으로 나오는 방식이 일부 당내 강경파들의 방식과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여당 대표도 백브리핑을 이렇게 하냐”고 황 대표가 물어본 것 역시 스스로를 이해찬 대표와 비교하면서 체급을 낮추는 효과를 낳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황 대표가 원외에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정상화 합의안이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무산되면서 황 대표의 행보가 원내에 있는 일부 의원들과는 충돌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야권의 미래권력으로 꼽히는 황 대표와 한국당 원내 구심점인 나 원내대표의 갈등설도 제기한다. 김형준 교수는 “황 대표가 혼자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하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책위의장, 대변인, 여의도연구원장 등 주요 자리에 있는 이들이 돌아가면서 국민에 사안을 설명해야지 대표 혼자 너무 많은 주목을 받으려 하다 보니 탈이 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형준 교수는 “잘못되기 시작하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3주 만에 분위기가 반전돼 차기 주자에서 낙마한 것처럼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시영 부대표 역시 “황교안 대표는 본인의 이미지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시민들의 삶을 황 대표 본인이 모두 겪은 게 아닌 만큼 그들의 어려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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