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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2565호] 2019.07.08

파탄 난 한·일 관계 독일·프랑스의 역사를 봐라!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empas.com

▲ 지난 6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오사카 G20 회의에서 아베 일본 총리 앞을 지나가고 있다. photo AP
베르됭전투(Bataille de Verdun)는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로 꼽힌다. 1916년 2월 11일부터 12월 18일까지 10개월간 프랑스군 37만7231명, 독일군 33만7000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양국 군은 이 기간 무려 4000만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탱크와 독가스가 사상 처음 전투에서 사용됐다. 1984년 9월 22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을 맞아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베르됭 두오몽국립묘지에서 서로 손을 잡고 양국 군 전몰자에 조의를 표하면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이곳에서 두 지도자가 화해의 손을 잡는 모습은 당시 양국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를 감동시켰다. 과거의 가슴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양국 지도자가 협력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역대 지도자들은 1차 대전 피해 당사국이었던 프랑스를 향해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사 관련 사죄를 해왔다. 특히 콜 전 총리는 프랑스와의 화해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지도자다. 콜 전 총리는 임기 16년 내내 프랑스를 무려 79번이나 방문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프랑스를 찾아간 셈이다. 콜 전 총리가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이후 동서독의 통일에 반대했던 미테랑 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평소 쌓아온 신뢰 덕분이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총칼을 마주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고 가까운 이웃이 된 것은 국가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교류와 화해 및 신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프랑스 79번 방문한 콜 전 서독 총리
   
   독일과 프랑스처럼 가까운 한국과 일본은 갈수록 먼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양국 지도자들이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지도자들은 독일과는 달리 한국을 식민 지배하면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분명하게 사죄한 적이 없다. 일본 지도자들이 그동안 식민 지배와 과거사에 대해 사죄의 뜻을 그나마 성의를 갖고 표시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50주년 기념일(1995년 8월 15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발표했던 담화를 들 수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면서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담화’는 식민 지배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죄한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군 위안부 문제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간 나오토 전 총리도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2010년 8월 10일)에서 “한국인들이 식민 지배로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서 식민 지배에 사죄했다. 하지만 ‘간 나오토 담화’도 강제병합의 불법성과 무효를 인정하지 않았고 강제징용 피해보상과 위안부 배상문제 등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미흡했었다.
   
   반면 현 아베 신조 총리의 경우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사실상 외면해왔다. 식민 지배, 침략 전쟁, 반인륜적 범죄, 위안부 등을 모조리 부정했다. 아베 총리는 패전 70주년 담화(2015년 8월 14일)에서 “우리나라는 앞선 대전에서의 행위에 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왔다”면서 과거형으로만 반성과 사죄를 언급했고, 무엇에 관한 반성과 사죄인지도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또 “사변, 침략, 전쟁, 어떤 무력의 위협과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두 번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식민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해 모든 민족의 자결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주체를 생략해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지 않았다.
   
   
▲ 일본 여학생들이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flickrs

   과거사 사죄 사실상 외면한 아베
   
   아베 총리는 그동안 전후체제의 대표적 상징인 평화헌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일본의 평화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1946년 만들어졌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비정상 국가가 됐다”면서 “다른 국가들처럼 일본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아베 총리가 의도하는 보통국가는 2차 대전 패전 이전의 일본을 의미한다. 2차 대전 이전의 일본은 주변국들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는 등 패권만을 추구한 군국주의 국가였다. 아베 총리의 개헌 추진은 일본 극우 세력의 주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주류 정치권에는 거대한 극우 세력이 포진하고 있다. 때문에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일본 주류 정치권이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한·일 관계는 개선되기 어렵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국 역대 지도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일(反日)감정을 보여왔다. 물론 귀책사유는 일본에 있지만 한국 지도자들에게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반일감정을 적절하게 국내 정치에 이용해왔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한·일 관계는 항상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그 이유는 문 대통령이 국민들의 반일정서를 최대한 자극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보수우파 세력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척결하려는 의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와 색깔론은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며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친일=보수, 반일=진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대놓고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진보 성향의 정치학계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조차 문 대통령의 기념사를 두고 “친일 잔재와 보수 세력을 은연중에 결부시키며, 이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역사를 굉장히 정치적인 좁은 각도로 해석하는 것으로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자 발상”이라면서 “정부가 일제 청산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그건 위선이며, 가능하지도 않은 걸 옳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기획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를 질타한 것이다.
   
   관제 민족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놓고 일본과 합의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을 들 수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 쟁점은 ‘법적 책임’으로, 한·일 양국은 지난 20여년간 이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됐다. 합의 내용을 보면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총리의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을 통한 화해치유재단 설립 등이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완강하게 거부해왔던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해왔고,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담화도 검증을 명목 삼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그런 아베 정부를 상대로 합의를 도출했던 것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진보학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일본 정부가 이제야 겨우 책임을 인정했다”면서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와 시민운동이 쟁취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 일본 혐한단체가 도쿄에서 반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문재인 정부의 관제 민족주의
   
   물론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팀이 당시 합의에는 ‘피해자 중심적 접근’과 ‘소통 부재’가 문제라고 지적한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1월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으로 설치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공식 발표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지금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이런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위안부 문제에 한국 편을 들었던 일본 언론과 학자들도 “어떤 국가의 정부가 한국과 안심하고 상대하겠느냐”면서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한·일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빠뜨린 것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사안이다. 현재까지 3건의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금액은 총 13억6000만원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수십만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승소가 보장되는’ 소송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0여개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할 금액은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2월 14일 한·일 의원연맹 소속 일본 국회의원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대법원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이 유효하지만 노동자 개인이 일본 기업들에 대해 청구한 손해배상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개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 절차인 중재위원회 개최를 요구하면서 한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이런 제의에 가타부타 말이 없던 문재인 정부는 지난 6월 19일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인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이를 강제징용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로 지급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즉각 거부했다. 일본 기업들이 위자료를 한국인 피해자에게 지급하면 개인 보상 사례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향후 북·일 수교 교섭에서 개인 보상권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는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북한과의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배려해 고의적으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며 “과거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왔던 강제징용 문제를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키워놓고 방치 또는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가 지난 6월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모든 회원국 정상들과 개별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문 대통령과는 아예 약식 만남조차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베 총리와 문 대통령은 회의장 입구에서 8초간 악수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게 전부였다. 이어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1일 한국 반도체와 스마트폰 제조에 필수적인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3개 품목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에 쓰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으로, 일본이 세계 시장의 70~90%를 점유하고 있는 필수 소재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 조치를 취해왔으나 앞으로 한국을 우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본 업체들은 해당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일일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출 허가 신청과 심사에는 통상 90일이 걸린다. 교도통신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 해결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태가 진전되지 않자 강경 조치를 단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기업들은 부품·소재·장비에 대한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자칫하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양국 왕래 사상 첫 1000만명 돌파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국가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54만명,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295만명으로 양국의 인적 왕래가 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했다. 양국은 동북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법치,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한다. 양국은 그동안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안보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때문에 양국 관계의 악화는 서로에게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면서 일본에 대한 비판만 해왔다.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과연 일본뿐인가. 꼬일 대로 꼬인 한·일 양국의 문제를 일본 탓으로만 돌리면 해법이 나올 리 없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일본을 단독으로 방문한 적이 없다. 지난해 5월 도쿄 한·중·일 정상회담과 이번 오사카 G20 회의에 참석했지만 다자간 회의 때문에 방문한 것이다. 한·일 관계를 고려했다면 현안도 별로 없는 북유럽 3개국 대신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와 만나 허심탄회하게 양국의 과거사 해법과 미래 관계를 논의했어야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 트위터에 올린 ‘오사카를 떠나며’라는 글에서 “콜 총리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0개월 동안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8번, 미테랑 대통령을 10번,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4번 만나 신뢰를 쌓았다”며 “한국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와 제대로 된 정상회담도 하지 못한 문 대통령이 이런 글을 올렸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렇다 할 해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과의 신뢰를 강조해온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신뢰를 쌓지 못할 이유는 없다.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는 반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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