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환 변호사는 “탄핵에 대한 기억을 덮고서는 현 정국을 타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조대환 변호사는 “탄핵에 대한 기억을 덮고서는 현 정국을 타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2016년 12월 9일 청와대 신임 민정수석이 발표됐다. 검사 출신인 조대환 변호사였다. 그는 이듬해 5월까지 반년간 민정수석 자리를 지키면서 ‘박근혜 청와대의 마지막 민정수석’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벼랑 끝으로 몰린 대통령이 민정수석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손길을 뿌리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지난 10월 7일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그때 왜 민정수석 자리를 수락했는지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2007년 대선 경선 시절부터 도왔다. 실질적으로 대선운동의 시작부터 함께한 거다. 어떤 사람을 한번 챙기기로 마음먹으면 그 사람이 죽은 후 3년상을 치를 때까지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때 박 대통령은 극한의 위기에 있지 않았나. 책임감, 의리랄까. 가족, 친구 모두 반대했다. ‘우병우 같은 간신 몰아내러 간다’며 설득했다.”

조 변호사와 황교안 당시 총리는 사법연수원 동기(13회)다.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도 마찬가지다. 오랜 친분이 없을 리 없다. 탄핵 정국의 한중간에서 연수원 동기 셋이 마주친 셈이다.

“공무원들 태업, 공단 감사 인사도 못 해”

탄핵 이후 한동안 우파 일각에선 황교안 책임론이 돌았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흔들리는 정국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제대로 했느냐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한 조 변호사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당시 ‘탄핵이 인용되면 박 대통령 측에서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다’는 음모론도 제기되지 않았나. 하지만 당시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설사 계엄령을 선포했다 한들 공무원들이 말을 들었을 것 같나? 민정수석이 되고 보니 업무 관련 보고가 올라와야 하는데 안 올라오는 거다. 독촉하면 못 들었다고 발뺌을 하더라. 청와대로는 안 올라오던 그 보고가 민주당 쪽으로 흘러가더라. 당시 공무원 사회 분위기가 이랬다. 자리가 비어도 공모절차 진행을 안 하고 공석으로 두더라.”

아무리 권한대행이지만 그래도 대통령 대신인데 황교안 총리라면 힘이 있지 않았을까. 조 변호사의 목소리가 커졌다. “대통령 권한대행 말이라고 통했을 것 같나? 당시 사학연금공단 상임감사 자리가 공석이었다. 여기에 모 인사를 임명하려 대통령 권한대행이 결재까지 마쳤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에서 최종 승인을 안 하더라. 결국 임명 못 했다. 공무원 사회가 조직적으로 태업, 저항했다고 보면 된다.”

당시를 돌아보면, 이제야 보이는 몇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보수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시점에 스스로 물러났으면 정국이 어떻게 됐을까 복기하기도 한다. 조 변호사의 생각이 궁금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물러나겠다고 공언했다. 한광옥 비서실장이 청와대로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민주당 측에서 이에 대해 뭐라 했나. 우상호 의원이 ‘탄핵가결 혹은 즉시하야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 자리는 한순간에 그만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법보다는 정치로 해결하는 게 나았는데, 상대가 안 받아준 것 아닌가. 그들 주장대로 대통령이 즉시하야했다면, 그것도 혼란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탄핵 재판을 앞두고 당시 청와대는 헌재와 어떤 식으로든 의사소통을 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그와 박한철 당시 헌재소장은 연수원 동기다. 조 변호사의 답이다.

“동기라도 판사와 검사로 각자의 길이 나뉘어지면 그 직분에 충실하게 된다. 박 소장을 만나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 건 사실이다. 내부 회의를 한 결과 ‘박 소장을 만나고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다 죽는다’ 이렇게 결론이 났다. 사실 박 소장은 당시 임기를 얼마 안 남긴 시점 아니었나.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퇴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정미 재판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재판을 결론 내자고 한 것 아닌가. 오히려 헌재와 민주당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다고 본다. 박 소장 입장에선 헌재와 헌재 재판관이 살고 보자는 식의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된 것 아닌가 싶다. 탄핵 사태 후 경조사 등에서 마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박 소장이 거의 그런 자리에 안 나타나더라.”

“법조계 탄핵 찬성했지만 논거가 없었다”

항간엔 박 전 대통령은 끝까지 헌재에서 탄핵 인용을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그는 ‘모르는 사람들의 입방아’라며 일축했다. “당시 법조계 여론을 수집했다. 법률적으로는 기각이 맞지만 여론에 헌재가 굴복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서초동이니 지방 법조계니 다 탄핵에 찬성이었다. 그런데 탄핵 찬성에 논거가 없더라. 결론을 일단 지어놓고 논리는 만들면 된다는 게 법조인들 시각이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한국 현대사법의 역사가 시작된 게 1895년이다. 120년 동안 제대로 된 법률문화, 법률제도, 법률가를 만들어내지 못했구나 싶었다.”

당시 대통령에게 민심이 제대로 전달된 걸까. 청와대 참모진들이 당시 무슨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론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항변하자면 이렇다. 첫째, 당시 청와대 직원들은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대통령을 위해 어떤 법률적인 행동을 직접 한다면 개인의 일에 사선변호사처럼 활동하는 게 된다. 둘째, 원래 청와대 참모는 입이 없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독자적인 권한이 없다. 문재인 청와대에선 참모들이 나서서 현안에 대해 여러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들이 월권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두 달 후인 2017년 7월 14일, 박수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건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그 문건엔 삼성 경영권 승계지원, 국민연금 의결권 문제 등 소위 전 정권이 ‘적폐’로 지목받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이런 문서들이 청와대 내 캐비닛에서 우연히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얘기다.

“그런 문서를 캐비닛에 무더기로 넣어놓고 떠나는 일이 가능할 것 같나? 누군가가 넘긴 거라 봐야 한다. 그 문서들이 생산된 시기에 청와대 주요 부서에서 근무한 인사일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 몸을 담았던 몇몇 인사들을 언급하며 조 변호사는 긴 탄식을 했다. 예를 들면 문화체육부의 유진룡 전 장관이나 노태강 현 문광부 제2차관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며 마치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듯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나. 이것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봐야 한다. 노태강 현 차관도 그렇다. 문체부 국장,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 단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곧바로 문체부 산하기관인 스포츠안전재단의 사무총장을 맡았다. 마치 핍박받아 공직생활을 완전히 접은 것처럼 알려졌지만 산하기관에서 사무총장으로 계속 일하고 있었던 거다. 이런 사실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헌재가 스스로 헌법을 유린한 이유”

‘우병우 그리고 윤석열’. 탄핵 정국부터 지금까지도 중대한 시점마다 검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조 변호사의 생각은 이렇다.

“정권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게 민정수석이다. 위험한 자리다. 자리를 걸고 임해야 하는 자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박근혜 정권 초창기에 민정수석으로 들어갔다면 세 달을 못 채웠을 것 같다. 그런데 우병우는 그렇지 않았다. ‘예스맨’이었다. 나올 때도 그렇다. 최서원(최순실) 문제를 정리해주고 나왔어야지 그냥 나오면 어떡하나.”

그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역시 불신을 드러냈다.

“윤 총장은 최서원 특검 당시 파견검사였다. 특검에 파견된 파견검사는 검사가 아니다. 수사보조자에 불과하다. 독자적으로 수사, 공소제기, 공소유지를 할 권한이 전혀 없다. 검사는 검찰청에 있을 때만 검사이며, 검사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에 파견된 검사는 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이 없다. 이런 이유로 역대 모든 특검에선 특검과 특검보가 수사와 공소유지를 했다. 그런데 최서원 특검에선 윤 총장이 검사로 행세하며 수사를 진행했고 특검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명백한 위법이다. 게다가 최서원 특검은 수사기간이 끝난 후에도 불법을 저질렀다. 수사기간 만료 전에 수사결과 발표를 해야 한다. 그런데 특검기간이 지난 후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헌재 결정에 최대한의 영향을 미치기 위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발표를 늦췄다고 확신한다.”

청와대에서 나온 직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행 같은 귀향이었다. 서울에서 경북 청송까지 걸어서 내려갔다고 한다. 꼬박 12박13일이 걸렸다. 그리고 이듬해 서울로 돌아왔다. 역시 걸어서였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11박12일이 걸렸다. 길 위에서 정리한 생각들을 묶어 책으로 냈다. 지난 8월 출간한 ‘남듬길’이다. 남(進)은 벼슬에 나아감, 듬(處)은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한다는 뜻이다.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확정하고 꼭 30개월이 지났다. 광화문광장엔 다시 ‘대통령 탄핵’이란 글귀가 등장했다. 조 변호사는 “탄핵이란 사건은 현 정국에도 여전히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이 국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탄핵을 거치며 보수가 궤멸됐다. 친박과 친이가 대결한 결과다. 둘째, 헌법재판소 스스로 헌법을 유린했다. 탄핵 재판 판결문을 보자. 누구나 헌법으로 보장받는 형사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고 판결한 게 헌재다. 청와대의 시설관리책임자는 법령상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이다. 그렇다면 압수수색을 거부한 주체 역시 경호실장과 비서실장이다. 그뿐 아니라 당시 대통령은 이미 권한이 정지되어 있었는데 ‘압수수색을 거부했으니 대통령에게 헌법수호 의지가 없다’고 헌재는 선언했다. 탄핵 문제를 기억 아래로 덮고 현 정국을 타개하는 게 불가능한 이유다.”

키워드

#인터뷰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