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임동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상임감사. ⓒphoto 뉴시스
(왼쪽부터)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임동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상임감사. ⓒphoto 뉴시스

송철호 울산광역시장과 울산 토박이 임동호·임동욱 형제의 질긴 악연이 울산 정가의 화제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논란으로 최근 검찰 소환조사와 가택 압수수색을 당한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018년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송철호 현 시장과 당내 공천 경쟁을 벌인 바 있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동생 임동욱씨 역시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 공천을 받아 울산 남구을에서 출마해 당시 무소속으로 나온 송철호 현 시장과 국회의원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이들 울산 3인방이 지난 지방선거 때 송철호 시장 당선을 위한 청와대 선거개입 논란의 중심에 서며 얽히고설킨 악연이 재차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사이의 악연은 송철호 시장의 최측근으로 지난 지방선거 때 송철호 캠프의 정책을 총괄했던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수첩에 기록된 메모를 통해 뿌리 깊은 감정의 골까지 낱낱이 까발려지는 양상이다. 송병기 부시장의 수첩에는 ‘중앙당과 BH(청와대), 임동호 제거→송 장관(송철호) 체제로 정리’ ‘VIP(문재인 대통령), 임동호·임동욱은 용서할 수 없는 자들’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총선 때 결정적으로 틀어져”

울산 정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울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송철호 시장과 임동호·임동욱 형제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것은 2016년 20대 총선을 전후해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송철호 시장은 당시 울산 남구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2만8216표(40.64%)를 얻으며 나름 선전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서 2만9838표(42.97%)를 획득한 박맹우 의원(재선·울산 남구을)에게 1600여표 차로 석패했다.

패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3선 울산시장을 지내 인지도가 높은 박맹우 의원 앞에서 표가 분산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실제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동생 임동욱씨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울산 남구을에 출마한 뒤 완주를 강행하면서 1만1369표(16.37%)를 가져갔다. 당시 후보단일화만 됐어도 송철호 현 시장의 운명이 바뀌었을 한판이었다.

이에 인지도가 앞서는 송철호 후보 측은 당시 표 분산에 대한 우려로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임동욱씨에게 거듭 단일화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임동욱씨가 완주를 강행하고, 아홉 살 터울 형인 임동호 전 최고위원조차 이를 수수방관하자 세 사람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졌다는 것이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울산의 전직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해보니 누가 나와도 박맹우 의원과 1 대 1로 붙으면 4%가량 뒤지는 것으로 나와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울산에 내려와 임동호 전 최고위원을 통해 동생 임동욱한테 당을 위해 양보하라고 한 것으로 안다”며 “한데 송철호가 대뜸 문재인 대통령한테 전화해 ‘내가 합의 봤다’며 먼저 치고 나오는 바람에 임동욱이 틀어져서 나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임동호 전 최고위원이 동생(임동욱)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한테 찍힌 것으로 안다”고 했다.

중앙 정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송철호 시장을 비롯 임동호·임동욱 형제 3인방은 선거만 되면 이름이 거명되는 울산 정가의 ‘상수(常數)’ 같은 존재였다. 울산 민주당계에서 전통의 대표주자는 송철호 현 시장이었다. 1949년생인 송철호 시장은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울산 중구에서 국회의원에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15대 총선(울산 중구),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울산시장), 2000년 16대 총선(울산 중구),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울산시장) 등 줄곧 울산 정치권의 문을 두드려왔으나 결과는 별로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선거법 위반에 연루돼 2004년 17대 총선 출마가 불가능해지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친구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배려로 국민고충처리위원장(현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돼 한동안 울산 정가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당시 송철호 시장을 임명한 직후 차관급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은 장관급으로 격상되고, 소속은 총리실에서 대통령직속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송철호 시장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장관급’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지방선거 때 송철호 후보 캠프에서 송철호 시장을 ‘송 장관’이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 선거에 입후보한 민주당 예비후보들. (왼쪽 두 번째부터) 송철호·심규명·임동호. ⓒphoto 뉴시스
2018년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 선거에 입후보한 민주당 예비후보들. (왼쪽 두 번째부터) 송철호·심규명·임동호. ⓒphoto 뉴시스

송철호 공백기에 급성장한 임동호

임동호·임동욱 형제의 이름이 울산 정가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대략 이 시기와 겹친다.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1968년생으로, 송철호 시장(1949년생)과는 거의 20살 차이다. 1998년 울산 남구 구의원 선거에 도전해 낙선한 뒤, 2002년부터는 민주당계(열린우리당 포함) 소속으로 제3회 지방선거(울산 남구청장),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울산 남구청장), 2008년 18대 총선(울산 중구),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울산 중구청장), 2011년 재보궐선거(울산 중구청장), 2014년 지방선거(울산 중구청장) 등에 거듭 도전했으나 역시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울산 태화강을 끼고 위아래로 있는 중구와 남구는 울산의 중심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이다. 송철호 시장이나 임동호 전 최고위원이 민주당계 간판으로 아무리 두드려도 쉽게 열릴 리가 없었다. 다만 이때 주목을 받은 것은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지역기반이었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울산 토박이로 울산 중구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남구에 있는 고등학교(학성고)를 졸업했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동생 임동욱씨가 지난 20대 총선 선거공보에 밝힌 바에 따르면, 임씨 형제는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한 아버지와 포장마차를 운영한 어머니 아래서 자라났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울산에서 ‘하나베스트산업’이란 산업안전용품 업체를 운영하면서 포스코 등 대기업 납품을 통해 나름의 재력도 축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임동호 전 최고위원이 일본 오사카에서도 업체를 운영했고, 오사카에 집도 하나 얻어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 ‘오사카 총영사’ 얘기가 흘러나온 것은 이 같은 사정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임씨는 일본말도 제법 하고 오사카상공회의소 회장과도 친분이 있어 지금도 오사카를 종종 찾는다고 했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월 24일 검찰에 자택 압수수색을 당한 날 밤에도 배편으로 일본 후쿠오카를 거쳐 오사카를 찾았다. 임 전 최고위원은 “일본 후원모임 및 송년식에 참석하려고 오사카에 왔다”고 국내 언론에 밝혔다.

반면 송철호 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영남 인권변호사 3인방’으로 불렸고, 김대중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낸 송정호 전 장관의 동생이란 배경은 좋았지만, 울산 토박이가 아니라는 결정적 흠이 있었다. 송철호 시장은 부산 출신으로 일찍이 모친이 작고해 유년기 때는 전북 익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고를 졸업했다. 송철호 시장과 울산과의 초창기 인연은 울산 함월산 백양사에서 고시공부를 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부산 정가의 한 관계자는 “송철호 시장도 처음에는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신통치 않아서 울산으로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임동호 “중앙당에서 힘이 있었다”

또한 송철호 시장은 1992년 울산에서 첫 선거에 도전한 이후 민주당, 민주노동당, 무소속 등으로 수시로 당적을 옮겨가며 출마했다. 반면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줄곧 민주당 당적을 달고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것은 정당 공천이 불가능한 1998년 울산 남구에서 도전한 첫 구의원 선거가 유일했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이 지난 7월 낸 자서전의 제목이 ‘민주당, 임동호입니다’인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울산 민주당의 전직 관계자는 “처음에 임동호를 민주당에 내가 데리고 갔는데, 지금도 임동호가 민주당 중앙당에 가면 힘이 있다”며 “임동호는 임종석, 우상호 등 당내에 자기 편이 많다”고 했다. 실제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2017년 6월, 추미애 전 대표 아래서 권역별로 돌아가면서 맡는 민주당 최고위원에 임명되기도 했다. 송철호 시장의 최측근 송병기 부시장의 수첩에 적혀 있었다는 “임동호와 임종석 차단 필요”란 언급은 송철호 캠프의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사태를 통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 지난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 후보 양보에 따른 거취를 협의한 것으로 드러난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그간 친노(親盧) 진영과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다. 2011년 울산 중구청장 재보궐선거 때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고(故) 김근태 의원을 비롯해, 한명숙(전 국무총리), 정세균(현 국무총리 지명자), 임종석(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상호 의원, 유시민(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영화배우)씨 등이 모두 울산에 내려와 지원사격을 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당적이 바뀐 손학규(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민주평화당 대표)까지 울산에 내려왔었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과 친노계 인사들과의 각별한 관계는 임씨가 ‘울산 우리병원’ 이사장을 맡았던 사실로도 잘 드러난다. 임씨가 이사장을 지낸 울산 우리병원은 울산 남구 대현동에 있는 노인요양병원으로 현재 ‘국민요양병원’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단 상태다. 과거 임동호씨와 함께 우리병원 운영에도 관여했던 한 인사는 “우리병원의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창당한 열린우리당에서 따온 말”이라며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부인이 부산대 출신 마취의사였는데 지금은 병원 운영이 잘 안돼서 노인요양병원으로 바꿔 운영 중”이라고 했다.

반면 송철호 시장은 친구인 노무현 전 대통령 덕분에 ‘장관급’으로 한 단계 체급을 높인 다음에도 울산에서 치른 각종 선거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울산 중구에서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했고,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는 울산 남구을로 지역구를 옮겨 국회의원에 재도전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거듭된 낙선에 울산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의 송철호 시장의 당선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회의론이 흘러나왔다.

이는 지난 20대 총선 때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동생 임동욱씨가 끝까지 완주를 강행하며 갈라서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 역시 2018년 지방선거 때 송철호 시장 대신 자신이 민주당 공천을 받아 울산시장에 도전하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당시 송철호 캠프에서 정책을 총괄한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수첩에서 언급됐다는 “당내 경선에서는 송철호가 임동호보다 불리하다”는 내용은 이 같은 일련의 사정을 반영한다.

이 같은 우려는 송철호 시장의 친구가 대통령으로 있는 청와대에도 전달됐고, 교통정리가 이뤄진 끝에 송철호 시장은 당시 민주당으로부터 단수 전략공천을 받았다. 결국 송철호 시장은 본선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누르고 ‘8전9기’ 만에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2011년 울산 중구청장 재보궐선거 때 임동호 당시 후보(가운데)를 지원하는 정세균 현 국무총리 지명자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photo 뉴시스
2011년 울산 중구청장 재보궐선거 때 임동호 당시 후보(가운데)를 지원하는 정세균 현 국무총리 지명자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photo 뉴시스

임동욱, 지방선거 직후 공기업 감사

결과적으로 송철호 시장의 울산시장 당선에는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상당한 희생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민주당 후보 자리 양보에 대한 대가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 ‘오사카 총영사’ ‘고베 총영사’ ‘울산항만공사 사장’ ‘한국동서발전 사장’ 같은 자리 얘기가 오갔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성사된 것은 없다.

다만 임동호 전 최고위원의 동생 임동욱씨는 지난 지방선거 직후인 2018년 6월, 울산 중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상임감사로 임명됐다. 임동욱씨의 경우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때 울산 남구 시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것과, 2016년 20대 총선에 출마한 뒤 낙선한 것 외에는 공직 경력이 사실상 전무하다.

자신의 선거를 치른 20대 총선(2016년) 직후가 아닌 형인 임동호씨가 출마를 타진했던 2018년 지방선거 직후 공기업 상임감사 자리를 받은 것도 공교롭다. 당시 1977년생, 41세에 불과했던 임동욱씨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상임감사로 임명되자 울산 정가에서는 ‘낙하산’이란 설이 파다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사이트인 ‘알리오’에 따르면, 임씨의 관련 경력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안전용품·의료기기 업체 세현상사 대표와 형인 임동호 전 최고위원이 대표로 있던 하나베스트산업 총괄본부장이 전부다. 현재 공단 상임감사로 있는 임씨의 연봉은 1억1200만원이고, 임기는 2020년 6월까지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울산 민주당 내 신구(新舊) 세대 간 충돌 양상으로 전개된 측면도 있다. 임씨 형제는 2020년 총선 출마도 거론되는데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지난 7월 자서전 ‘민주당, 임동호입니다’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지난 11월 울산 중구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임동욱씨 역시 자천타천 울산 남구을 재도전이 거론된다.

다만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자서전에 기록한 “2005년 울산 북구 재보궐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모씨가 정치브로커에게 3억원의 돈을 건넸다”는 내용이 명예훼손 등으로 문제가 돼서 민주당 울산시당 윤리심판원로부터 제명처분을 받은 것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당시 제명을 결정한 울산시당 윤리심판원장이 2014년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 송철호 시장의 선거캠프를 총괄했던 류석호씨라서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울산시당이 임씨에게 제명을 통보한 날도 임동호 전 최고위원이 2020년 총선 출마를 선언한 당일이었다.

이에 임동호 전 최고위원은 중앙당 윤리심판원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로, 민주당 간판을 걸고 과연 총선에 나와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동호 전 최고위원과 최근 통화한 한 인사는 “민주당에서 제명도 당했는데 검찰에서 속시원히 얘기하지 그랬냐고 물어보니 ‘당을 먼저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자기도 속이 터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송철호 울산시장 역시 2018년 지방선거 청와대 선거개입건으로 송병기 부시장에 이어 검찰소환이 임박한 상태다. 8전9기의 신화 송철호 시장과 울산 임씨 형제의 파란만장한 정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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