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으로 지난 4월 23일 전격 사퇴한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photo 뉴시스
성추문으로 지난 4월 23일 전격 사퇴한 오거돈 부산광역시장. ⓒphoto 뉴시스

오거돈 부산광역시장이 성추행 추문으로 지난 4월 23일 전격 사퇴하면서 오거돈표 ‘부산 대개조’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오 전 시장은 2018년 3전4기 끝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첫 부산광역시장에 당선되면서 ‘부산 대개조’를 공언해왔다. ‘부산 대개조’를 내걸고 전임 서병수 시장 때 결정된 부산시의 주요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부산식 적폐청산’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부산 사상공단에서 ‘부산 대개조 비전선포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유재수 전 경제부시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오 전 시장까지 자진사퇴하면서 사실상 시정이 마비된 상태다. 오 전 시장과 임기를 같이하는 정무직 공무원들도 일괄사퇴했다. 부산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004년 안상영 시장 유고(有故) 때와 비슷한 시정 공백 상황”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사람이 오거돈 당시 행정부시장이었는데, 당사자만 바뀐 채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차기 부산시장 재보궐선거는 내년 4월 치러질 예정이다.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력 상실

오거돈 전 시장이 재임 중 가장 공을 들였던 ‘동남권 관문공항’은 수면 아래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지난해 12월 부산시가 밝힌 ‘부산 대개조’ 10대 핵심 프로젝트 중 첫 번째 사업이다. 오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 때부터 지난 박근혜 정부 때 국제용역을 통해 결정된 김해신공항(김해공항 확장)을 백지화하고, 동남권 관문공항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장소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과거부터 추진해오던 부산 강서구 가덕도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이후 오 전 시장은 같은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인 송철호 울산광역시장, 김경수 경남지사와 함께 ‘부울경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을 결성해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국무총리실로 이관시키기도 했다.

반면 오 전 시장이 성추문에 휘말려 낙마하고, 송철호 울산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가 각각 지난 지방선거 때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지난 대선 때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휘말려 검찰에 기소되면서 동남권 관문공항은 사실상 추진력을 상실한 상태다.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은 지난 4·15 총선에서 민주당이 내놓은 ‘지역별 핵심공약’에서도 통째로 빠졌다.

자연히 오거돈 전 시장의 낙마로 지난해 6월 ‘뜨거운 감자’인 동남권 관문공항 재검증을 넘겨받은 국무총리실은 되레 부담을 덜게 됐다는 평가다. 당시 부울경 단체장들의 공동 압박에 국토교통부가 강력 반발하면서 국무총리실은 그간 난처한 입장이었다.

코로나19로 항공수요가 급감하면서 현재는 관문공항은커녕 기존 김해공항만으로도 여유가 충분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국제선이 막힌 에어부산 등 지방항공사 연쇄도산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변성완 부산시 행정부시장은 지난 4월 24일 시장 권한대행 취임 기자회견에서 “6월 중이면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산 대개조’의 두 번째 핵심 프로젝트인 ‘경부선 철로 지하화’ 역시 당분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경부선 철로 지하화는 부산 도심을 단절하는 경부선 부산 도심구간 철로를 지하화하는 사업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대상 사업 선정 때 경부선 철로 지하화를 올렸다가 막판에 예타면제가 아닌 재정사업으로 전환한 바 있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경부선 철로 지하화 대신 약 8000억원의 사업비가 드는 ‘부산신항~김해 간 고속도로’를 예타면제사업으로 선정했다. ‘부산신항~김해 간 고속도로’도 부산 대개조 10대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다.

약 1조5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경부선 철로 지하화는 지난해 10월에야 1단계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범천철도차량기지(일반철도) 이전이 공공기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돼 겨우 첫걸음을 내디딘 상태다. 예타를 통과하면 1904년부터 부산 시내 한복판을 100년 넘게 차지하고 있는 범천철도차량기지는 오는 2027년까지 부산신항역 인근으로 이전해갈 예정이었다. 부산시는 지난 2월 한국교통연구원에 경부선 철도 지하화 시설효율화 연구용역까지 의뢰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거돈 전 시장의 전격 사퇴로 부산시는 사업추진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오 전 시장의 ‘우군(友軍)’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시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 역시 지난 4·15 총선을 거치며 반토막 난 상태다. 20대 국회 때 부산시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역대 최다인 6명에 달했다. 그 결과 부산시는 오 전 시장 재임 중인 지난해 사상 최대인 7조원대 국비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4·15 총선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민주당 소속 의원은 3명(박재호·전재수·최인호)에 불과하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수정 가능성

그나마 ‘부산 대개조’ 10대 핵심 프로젝트 중 세 번째로 언급된 ‘2030 부산 월드엑스포 유치’는 지난해 5월 국가사업으로 이관됐고, 아직 시기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부산시가 주축이 된 범(汎)정부 유치기획단(단장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꾸려졌다.

하지만 2030 부산(등록)엑스포의 최초 제안자라고 할 수 있는 서병수 전 시장(부산진구갑)이 4·15 총선에서 민주당 부산시 최다선(3선)이자 문재인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김영춘 의원을 꺾고 복귀하면서 일부 수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실 2030 부산엑스포는 서병수 전 시장이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오거돈 전 시장과 붙었을 때 공약으로 최초 제안한 사업이다. 엄밀히 따져 저작권은 오거돈 전 시장이 아닌 서병수 전 시장에게 있는 셈이다. 서 전 시장은 부산 강서구 낙동강 맥도 일원에서 국내 첫 등록엑스포를 개최하려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서병수 전 시장은 “부산시장으로 있을 때 원래 낙동강 둔치도를 생각했는데, BIE(국제박람회기구) 측에서 둔치도가 약 180만㎡(55만평) 정도로 너무 협소하니 330만㎡(100만평) 이상 되는 맥도가 좋겠다고 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거돈 전 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 때 서병수 전 시장과의 리턴매치에서 승리한 직후 전임 시장 때 결정된 맥도 개최를 백지화하고 유치예정지를 부산 원도심인 북항 일대로 바꾸는 무리수를 뒀다. 이제는 2030 부산엑스포 개최 예정지를 맥도에서 북항 일대로 바꾼 오거돈 전 시장이 낙마하면서 중앙정부와의 원활한 협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재정여력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엑스포 부지에 포함될 예정인 자성대·우암·신감만을 비롯한 기존 북항부두의 부산신항 이전도 걸림돌이다. 당초 엑스포 개최지로 포함했던 북항 8부두와 55보급창도 빠졌다. 부산시 2030엑스포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당초 309만㎡(93만평)로 엑스포 부지를 잡았는데 국방부 반대로 8부두와 55보급창이 빠지면서 266만㎡(80만평)로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다.

서병수 전 시장은 “북항은 330만㎡(100만평)는커녕 165만㎡(50만평)도 제대로 나오기가 힘들다”며 “2030 부산엑스포가 성사되도록 만들겠지만, 북항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맥도로 수정 변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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