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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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 만난 이혜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누가 나와도 이길 것 같았던 선거가 점점 이기기 어려운 선거로 변했다”면서 “자꾸 당에는 사람이 없다, 밖에서 모셔와야 한다는 패배의식을 내보이는데 이를 끊기 위해 경선이라는 레일 위에 올라탔다”고 했다. 그를 만난 서울 여의도 사무실은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며 마련한 16㎡(5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로는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그런 사건(박 전 시장의 성추행과 극단적 선택)으로 시장직이 공석이 된 이후 국민의힘에 기회가 열렸다. 누가 나가든 이길 수 있는 선거라고만 생각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 같았다. 그런데 당에 사람이 없다는 말이 계속 나오니 주변에서 ‘그냥 보고만 있으면 어떡하냐’고 연락이 왔다. 누군가가 이 패배주의적 발언이 계속되는 상황을 끊고 경선의 열차를 레일 위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 의원은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이슈를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심판’과 ‘부동산 문제 해결’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압축했다. 특히 부동산 정책에 대해 말할 때 목소리가 높아졌다.

“집값을 누가 올렸나. 자기들(여권)이 올렸다. 중위값이 6억원이던 집값이 3년 만에 10억원 됐다. 일반적으로 월급 모아서는 집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는, 더 늦으면 영영 집을 못 살 것 같아 빚이라도 내려고 하니 대출을 막아버린다. LTV(주택담보대출)·DTI(총부채상환비율)를 낮추더니 이제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까지 규제한다. 이건 빚내서도 집 사지 말고 임대주택에서 영원히 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주의라고 비판하던데 그보다 더 이전의 계몽군주 시대 같다. 자기들은 아파트 살면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임대주택도 좋다? 어디서 그런 말을 하고 있나.”

“박원순 시정은 재앙적”

박 전 시장이 성비위 논란으로 물러남에 따라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들은 대부분 여성 정치인이다. 여권에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차출설이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 전 의원을 비롯해 조은희 서초구청장,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아직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출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인 이 전 의원은 자신의 강점으로 ‘경제’를 꼽았다. ‘경제를 잘 아는 여성 정치인’이 그가 내세우는 경쟁력인 셈이다. 그의 서울시장 출마의 변은 “경제시장이 되겠다”로 모아진다. 이 전 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경선에서 정몽준 후보에게 자리를 내줬다. 2021년 4월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이 전 의원이 발표한 공약들은 대부분 그때부터 밑그림을 그려온 것들이라고 했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해본 이후 이 의원은 박원순 전 시장의 시정을 더 꼼꼼하게 챙겨 봤다고 한다. 이 전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시정을 보며 “재앙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당시 야권연대 후보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박 전 시장의 재임 10년 중 6년이 보수정부 시절이었지만 민주당 소속 시의원과 구청장을 비롯해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는 각종 시민단체가 그의 편에 서서 도왔다. 그러나 내년 보궐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상황은 박 시장 때와는 전혀 달라진다. 국회 180석의 거대 여당과 109명 중 101명, 25명 중 24명이 민주당 소속인 서울시의원과 구청장들 사이에서 시정을 이끌어야 한다. 자칫 매일 정쟁에 휘말리며 고립무원이 될 수 있는 처지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대권에 욕심이 없는 것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경제시장’이 되겠다는 거다. 그동안 서울시장 자리는 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디딤돌 정도로만 여겨졌다. 만약 1년 뒤 대권에 도전할 정치인이 서울시장으로 오면 시정은 그야말로 정치판이 될 것이다. 대권에 가지 못하게 사생결단으로 막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요 공약으로 내놓은 ‘서울블라썸’이나 ‘허니스카이’는 지역을 발전시키는 견인차가 될 사업인데, 내년에 선거 나갈 시의원, 구의원들이 반대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시민에게 필요한 걸 내놓으면 기초의회 의원들도 무작정 반대할 수는 없다.”

이 전 의원이 지난 11월 19일 공식 출마 선언을 하며 공약한 ‘서울블라썸’은 서울 강북과 강서를 4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별 시유지에 80층 규모의 복합시설을 지어서, 그중 50개층을 분양과 임대방식을 혼합해 청년 주거공간으로 만든다는 정책이다. 나머지 층에는 오피스 공간과 수영장, 병원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분양가와 임대료는 저렴한 수준을 유지하되 흑자를 낼 수 있는 사업이라고 이 전 의원은 강조했다. ‘허니스카이’란 한강변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덮개화’해 한강변과 바로 연결시키는 계획이다. 고속화도로에 천장을 덮어 산책로와 정원으로 쓰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시장 10년과 문 정부는 공범”

이 전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 공천 당시 당초 지역구였던 서울 서초갑에서 컷오프된 이후 동대문을에 도전장을 던졌다. 경선 승리 후 사전선거일까지 그에게 남은 시간은 24일이었다. 결국 43.81%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낙선했다. 서초갑에서만 12년 의원 생활을 한 그에게 ‘강북 도전’은 또 다른 공부가 됐다고 했다.

“동대문에서 느꼈다. ‘동대문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이 서울시장이구나.’ 곳곳에 쓰러져가는 재래식 주택들이 있었다. 거기 계신 분들도 재개발·재건축을 원하고 계셨다. 하지만 ‘보존’에 꽂혀 있는 박 전 시장은 주민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안중에 없었다. 도서관, 기념관 같은 브랜드 사업에만 치중했다. 박 전 시장은 ‘도시재생’을 항상 강조했는데, 그건 주민들이 동의할 때 그렇게 하면 된다. 편하게 아파트 짓고 살고 싶다는 분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나는 보존해야겠다’는 식이면… 무슨 왕정시대인가?”

이 전 의원은 박 전 시장이 393개의 정비구역을 해제했고, 이로 인해 지어질 수 있던 주택 26만호가 공급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전 의원은 “공급 부족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 집값, 전셋값이 폭등할 수밖에 없다. 기름을 깔아온 건 민주당 시장 10년, 거기에 불을 붙인 건 문재인 정부의 24번 대책이다. 둘은 공범”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최근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 책임당원 모바일 투표 20%, 일반 시민 여론조사 80%를 합산하는 방식의 경선룰을 확정했다. 이 전 의원은 스스로를 “룰을 가지고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돌쇠 스타일”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당은 후보를 발굴해서 키우고 당선시키는 주체여야 한다. 구경꾼이 아니다. 서울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일부 의원들이 팝콘 먹으며 관전하듯이 그냥 툭툭 말을 던진다. 그런 말 한두 마디가 이기는 선거를 지는 선거로 만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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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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