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8월 4일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정치권으로 인도한 인사 중 한 명이다. 19대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정 전 의장은 지난 6월 “처음 만났던 6개월 전을 오전 9시, 대권 도전 결단의 시각을 오후 3시라고 한다면, 지금 정오쯤 온 것 같다”는 발언으로 최 전 원장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5선(選) 국회의원에 국회의장까지 지낸 정의화 전 의장은 대통령만 3명(김영삼·노무현·문재인)을 배출한 부산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원로 중 한 명이다. 지난 4·7 재보궐선거 때는 국회의장 시절 국회사무총장을 맡겼던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에도 기여한 바 있다. 다음은 최재형 전 원장의 출마선언 하루 전인 지난 8월 3일 부산 동구 초량동의 ‘19대 국회의장 정의화기념관’에서 만난 정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 최재형 공개지지를 선언한 까닭은. “사실 나라 걱정을 많이 했다. 사회기본이 공정, 정의인데 이것이 무너졌다. 시장경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데, 자유를 빼고 독일식 사회주의도 아닌 사회주의화되는 것을 보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던 차에 최재형 감사원장이 김오수 감사위원(현 검찰총장) 임명건에 대해 ‘노(NO)’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박근혜(전 대통령)에게 그랬던 것 이후에 실로 4년 만에 보는 장면이었다. 최고권력자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필(feel)’이 꽂혔다. 그 직후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와 관련해 국회 법사위에서 질의응답하는 장면을 봤는데, 굉장히 의연하고 무게감이 있더라. 몸 안에 바위가 하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 최 전 원장과 여의도에 있을 때부터 인연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차성수라고 서울 금천구청장을 지낸 친구가 있다. 지금 노무현재단 봉하기념사업단장을 하고 있는데, 부산 동아대 교수로 있으면서 내가 초·재선할 때 브레인 역할을 했다. 한번은 차성수가 ‘한 달 전쯤 최재형 부부와 같이 식사를 했다’고 하더라. 입양자 보호자 모임에서 만났다는데, 같은 1956년생이기도 하다면서. 그래서 내가 감사원에 전화를 했다. 지난해 11월 중순쯤 차성수랑 셋이서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하게 된 것이 첫 만남이다.”

- 첫 만남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그냥 편안한 사람이다. 특별히 강한 인상을 준다거나, 호랑이상이니 무슨 상이니 하는 것은 전혀 없는 평범한 상이었다. 만났을 때도 주로 부친(고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얘기를 했다. 내 지역구(부산 중·동구)에 민주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 맨 꼭대기에 가면 ‘대한해협 전승비’가 있다. 그 비가 고인이 전역한 직후 당시 해군참모총장에게 부탁해 만든 것이다.”

- 첫 만남부터 정치 권유를 했나. “초면에 정치 얘기를 할 수 있나. 사실 나는 감(感)을 갖고 갔지만 본인에게 내색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감사원장 해보시니까 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가 많은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라고 에둘러서 물어봤다. 그러니까 자기도 ‘그런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더라.”

- 동향(경남 진해)이라서 지지하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그것을 몰랐다. 그래서 첫 만남 때 물어보니 진해에서 태어나 핏덩어리 때 서울로 올라간 뒤 또 한 번 아버지를 따라 진해로 내려온 적이 있다고 하더라. 진해 통제부(진해해군기지) 근처에서 태어났는데, 진해에서 유치원을 다녔다고 했다. 그 뒤로는 서울에서 줄곧 있었고.”

- 최 전 원장이 야권 후보적합도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뒤지는데. “대한민국이 국운(國運)이 있는 나라라면 최 전 원장이 대통령을 할 것이라고 본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윤석열과 최재형을 비교하자면. “우선 윤석열은 상당히 성격이 좋다. 소탈하고 정치인들이 필요로 하는 친화력이 있다. 걸음걸이나 말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보스형이다. 최재형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교회에서 장로로 있을 때 주변 사람들과의 일,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 어려운 친구를 업어주는 일 등을 보면 이 양반은 대외적인 쇼맨십은 부족하지만, 내면의 세계가 굉장히 소탈하다고 본다.”

- 최재형만의 강점이라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산업화, 민주화 다음은 선진화다. 선진화는 나라의 GDP만 좀 올라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졸부’밖에 안되니까. 진정한 선진화는 국민들이 정직해야 하고 사회가 공정해야 한다. 신뢰사회가 안 되면 선진국이 될 수가 없다. 신뢰사회가 되려면 대통령부터 리더가 보여주는 모습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재형이 가장 이상적이다.”

-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윤 전 총장이 됐다고 치자. 지금 국회 171석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171명은 아마 콘크리트처럼 뭉쳐서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청개구리 같은 짓을 할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회는 2년 이상 더 가니까 완전한 식물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최재형이 되면 링컨과 같이 탕평책을 쓸 수 있다. 그가 가진 인품으로 171명의 최소한 반 이상을 만나서 설득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감사원장의 정치중립을 훼손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노(NO). 감사원장이고 검찰총장이고 대통령이 임명했다고 해서 대통령의 수하가 아니다. 행정적으로는 조직체계에서 수하일지는 몰라도, 대통령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얼마든지 사표 내고 나갈 수 있다. 임기가 보장됐다고 해서 봉급받기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최재형이란 인격체가 사퇴하고 나올 때는 우리가 아는 것 모르는 것을 포함해 엄청난 압력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압력을 당해봤고, 당사자라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 분권형 개헌(改憲)을 주장해왔는데, 개헌 얘기를 해봤나. “개헌 얘기는 전혀 없었다. 개헌은 국회의장 때부터 소신이다. 대한민국의 ‘87체제’를 바꿔서 권력구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러나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하느냐면, 잘못하면 정권교체라는 엄중한 대의가 희석될 수 있는 어젠다가 될 수 있어서다. 지금은 정권교체에 ‘올인’하고, 그다음에 본인도 개헌에 대해 고심하지 않겠나.”

- 최 전 원장은 국정 난맥상의 원인을 제도(헌법)보다는 사람(대통령)에서 찾는 듯하다. “정치를 해본 사람 입장으로, 87체제 이후 7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제대로 못한 것을 보면 사람의 문제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 본인도 한때 대권 꿈을 꾼 것으로 아는데. “진즉 포기했다.(웃음) 국회의장 끝날 때쯤 당시 집권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많이 흔들렸고,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기 시작했다. 총선 공천에서부터 ‘진박(眞朴) 감별사’니 어쩌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 내가 갖고 있는 정의감에서 내가 대통령이 돼서 한번 바꿔볼까란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나한테 ‘당신이 나서지 왜 최재형을 미느냐’는 사람이 있다. 그때 나는 공자님이 하신 ‘지불가만(志不可滿)’이란 말을 떠올렸다. 쉽게 말해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다 채우려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없으니까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을 세우는 것이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나라에 마지막으로 헌신하는 것이라고 본다.”

키워드

#인터뷰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