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리그 챔피언 광저우 에버그란데 소속으로 지난해 피파클럽월드컵에 출전한 김영권(오른쪽). ⓒphoto EPA·연합
중국 리그 챔피언 광저우 에버그란데 소속으로 지난해 피파클럽월드컵에 출전한 김영권(오른쪽). ⓒphoto EPA·연합

중국이 한국을 빨아들이고 있다. 최근 한·중 축구판을 빗댄 말이다. 축구 굴기(倔起)를 선언한 중국 축구가 최근 한국 축구계 스타급 선수와 감독을 싹쓸이 스카우트하고 있다. 한국 팀들이 엄두를 내기 힘들 만큼 많은 연봉을 내걸고 전·현직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와 감독·코치는 물론 K리그 스타급 선수를 데려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중국 프로축구 1부 리그(이하 수퍼리그)팀 항저우 그린타운 감독을 맡으며 중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중국 수퍼리그에서 감독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감독은 홍명보 외에 박태하 옌볜FC 감독과 장외룡 충칭 리판 감독까지 총 3명이다. 또 김상호 전 강원FC 감독 역시 지난해 12월, 중국 프로축구 2부 리그 상하이 선신 감독을 맡았다.

감독만이 아니다. 선수에 대한 러브콜 역시 뜨겁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국가대표였던 하대성(베이징 궈안)과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을 포함해 김주영(상하이 둥야), 박주성(구이저우 런허), 장현수(광저우 푸리), 정인환(허난 젠예), 최현연(하얼빈 이텅), 하태균(옌볜FC) 등이 중국 수퍼리그 무대를 누비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 오범석(전 수원 삼성)이 항저우 그린타운과, 김승대(전 포항스틸러스)와 윤빛가람(전 제주유나이티드) 역시 지난해 12월 옌볜FC와 계약했다. 이 외에도 몇몇 선수의 실명까지 언급되며 ‘중국 수퍼리그 팀들이 한국인 선수를 더 데려갈 것’이라는 말이 축구판에 무성하다. 올해 중국 수퍼리그를 누빌 선수만 어림잡아 10명 이상이다.

중국 수퍼리그 팀들이 한국인 감독과 선수 영입에 적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우리도 축구 좀 잘해 보자’는 중국인의 ‘축구 굴기’ 열망 때문이다. 중국인에게 축구는 ‘애증(愛憎)’의 스포츠다. 중국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다. 탁구, 배드민턴, 다이빙 등은 세계 최고다. 수영, 육상, 체조 등 기초 종목과 농구와 배구 등 인기 구기 종목 역시 아시아 최상위 실력을 자랑한다.

유럽·남미보다 가성비 좋아

그런데 하나,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종종 국가적 자부심에까지 비견되는 축구만큼은 예외다. 중국 축구는 민망할 만큼 수준이 낮다. 세계 수준은 고사하고 아시아권에서마저 ‘헛발질’ ‘뻥 축구’로 불릴 만큼 낮다. 떠들기 좋아하는 중국인을 조용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주제가 바로 ‘축구 얘기’라고 해도 될 만큼 축구는 중국인의 속을 태우는 스포츠다.

이 중국 축구를 키우겠다며 시진핑 국가주석 등 정치인들까지 나서 축구 투자를 강하게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에 2000년대 중반부터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워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던 니콜라 아넬카(프랑스)와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뎀바 바(프랑스), 아사모아 기안(가나), 팀 케이힐(호주) 등은 물론 브라질 국가대표팀 주요 선수인 호비뉴, 파울리뉴, 굴라트 등을 수퍼리그로 끌어모았다. 이뿐 아니다. 이탈리아의 마르첼로 리피와 파비오 칸나바로 등 스타 감독도 거액에 영입했었다. 지금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시킨 펠리페 스콜라리(광저우 에버그란데)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출신 스벤 에릭손(상하이 상강)이 수퍼리그 팀을 이끌고 있다.

세계적인 스타 스카우트에 목을 매던 중국 축구가 최근 한국 감독과 선수들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효율성과 팀 적응력, 자국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파트너로 한국 감독·선수만 한 선택이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은 아시아 최상위 수준의 경기력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연봉 등 몸값이 유럽과 남미 선수보다 훨씬 싸다. 프로축구연맹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북현대 이동국이 한국 K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 중 연봉이 가장 높다. 11억1256만원이다. 전체 선수 평균 연봉은 1억4840만9000원이다. 팀의 주전급 선수 연봉은 3억~6억원 정도다. 물론 스타급은 이보다 좀 더 비싸다.

중국 수퍼리그의 상당수 팀이 모(母)기업으로부터 적게는 1000억원대에서 많게는 수천억원대의 축구팀 운영재원을 지원 받는다. 한국 선수들의 몸값은 유럽과 남미 스타급 선수는 물론 주전급 선수와 비교해도 이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특히 한국에서 받는 연봉의 2~3배쯤 지급해 주면, 자존심을 중시 여기는 유럽과 남미 선수를 데려오는 것보다 쉽게 한국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중국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 중 김영권이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액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 언론과 독일 축구 정보기업 트랜스퍼마켓 등은 그의 연봉을 약 24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2014년 수퍼리그로 건너간 하대성의 연봉도 12억~13억원 정도다. 이들은 한국에서 이 몸값을 절대 받을 수 없다. 반대로 중국 프로팀 입장에선 월드컵 대표 경력을 가진 유럽·남미 선수나, 비슷한 수준의 주전급 선수라면 김영권이나 하대성에게 준 연봉보다 훨씬 비싼 몸값을 지불해야 한다. 결국 이 같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한국 선수의 중국행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감독도 비슷하다. 지난해 FC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시즌 중에 중국 수퍼리그 장쑤 순텐으로부터 “현재 연봉의 3배 이상 줄 테니 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유럽·남미 선수와 감독에 비해 한국인 감독·선수가 ‘팀’에 대한 헌신도가 크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축구 굴기, 성적, 축구 수준 향상이 비싼 몸값을 지불하며 외국인 감독·선수를 데려오는 이유다. 이 문제들은 결국 외국인 선수들이 팀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제공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단체생활에 익숙하고 팀에 대한 소속감이 강한 한국인 선수들이 이 부분에서 높은 평을 받고 있다. 물론 유럽과 남미 선수들 중에도 팀에 헌신적인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연봉과 적응력 등 다양한 요소까지 종합하면 한국인 감독·선수의 효율성 더 크다. 쉽게 말해 중국 팀들 입장에서 유럽·남미 선수보다 한국 선수의 가성비가 더 좋다는 말이다.

체력·조직력에 정신력 강조 원해

중국 축구는 선수의 개인 기술이나 고도의 전술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강한 체력과 조직력을 중시한다.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일본 선수보다 한국 선수를 더 선호하는 이유다. 아시아 상위 수준의 개인기가 있고 특히 체력과 조직력을 매우 강조하는 것이 한국 축구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스타일이 비슷하지만 수준은 좀 더 높다는 의미다. 이 점이 작용하며 한국 선수와 감독들이 중국 무대에 빠르게 적응해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중국 팀들은 강한 정신력을 주문하는 한국인 감독들의 스타일도 높게 평가한다. 중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게 선수들의 정신력 부분이다. 중국 축구에 대해 쉽게 경기를 포기하거나, 선수들의 감정적 경기 운영이 오랫동안 지적돼 왔다. 강한 리더십을 가진 한국 감독들은 뿌리 깊게 이어지고 있는 중국 선수들의 이 같은 의식과 성향, 축구 문화를 가능한 빨리 고쳐줄 최적의 선택으로 꼽히고 있다. 2부 리그 약팀이던 옌볜FC를 2015년부터 맡아 2부 리그 우승(16승10무2패)과 1부 리그로 승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준 박태하 감독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중국 수퍼리그 팀들은 한국 감독·선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 같은 모습이, 중국 축구 실력을 빠르게 끌어올려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축구 굴기를 꿈꾸는 중국. 그들은 일단 아시아 최상위 수준인 한국 축구의 강점들이 중국 축구 속으로 이식되길 원한다. 이를 위해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 축구에 한국 축구는 부러움이자 도전해야 할 상대다. 한국 축구를 자신들의 무대로 모셔가고 있는 중국 축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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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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