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즌부터 사용할 EPL 공식 로고. 바클레이즈가 빠져 있다.
다음 시즌부터 사용할 EPL 공식 로고. 바클레이즈가 빠져 있다.

유럽 최대 스포츠 비즈니스 시장인 EPL이 다음 시즌(2016 ~2017)부터 홀로서기를 한다. EPL 전체를 대표하는 ‘리그 메인 타이틀 스폰서(이하 메인 스폰서)’였던 영국의 대형 금융사 바클레이즈(Barclays)가 더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EPL 측도 다른 메인 스폰서 기업을 구하기보다 홀로서기를 결정했다. 흔히 EPL로 알려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공식 명칭은 사실 바클레이즈 프리미어리그(Barclays Premier League), 즉 BPL이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 EPL의 공식 명칭에서 그동안 메인 스폰서였던 바클레이즈가 사라진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EPL 공식 로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EPL 공식 로고.

바클레이즈·EPL 15년 동거 청산

바클레이즈와 EPL의 인연은 2001~2002년 시즌부터다. 당시 바클레이즈의 계열사인 바클레이즈카드가 2003~2004년 시즌까지, 2004~2005년 시즌부터는 바클레이즈가 직접 EPL의 메인 스폰서를 맡았다. 바클레이즈는 EPL의 메인 스폰서를 맡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2001~2002년 시즌부터 세 시즌 동안 바클레이즈카드는 EPL에 메인 스폰서 비용으로 4800만파운드(약 836억1000만원)를 지불했다. 2004~2005년 시즌부터 바클레이즈은행이 세 시즌 동안 5700만파운드를 지불했고, 마지막 계약이던 2012~2013년 시즌 이후 세 시즌 동안 EPL 메인 스폰서 비용으로 바클레이즈가 쓴 돈이 무려 1억2000만파운드(약 2090억2600만원)다.

바클레이즈 입장에서 바클레이즈카드를 포함해 15년 동안 메인 스폰서로서 마케팅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출한 비용 대비 효과, 즉 효율성 면에서는 매력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2016년 이후 시즌에도 EPL의 메인 스폰서를 맡게 되면 적어도 연간 5000만~6000만파운드 이상을 지불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 상황이 바클레이즈가 더 이상의 메인 스폰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됐다. 더구나 현재 바클레이즈의 좋지 못한 상황 역시 2015~2016년 시즌을 끝으로 EPL 메인 스폰서를 종료하게 된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다.

스포츠 비즈니스를 떠나 대형 글로벌 금융사로서 바클레이즈의 현재 경영 상황은 좋지 않다.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가) 위기가 이어지며 유럽 주요 은행들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유럽 위기의 도화선이 된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적의 은행들은 물론 독일의 도이치뱅크와 영국의 바클레이즈 등도 투자손실이 커지고 있다.

바클레이즈의 경우 2012년 리보금리 조작 사건에 연루돼 미국 법무부 등으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피해자들에게 집단 민사 소송까지 당했다. 투자손실 확대와 실적 악화, 과징금과 소송비용까지 더해지며 지난해 신용등급이 ‘A-’로 하락했다. 이 같은 악재 속에 주가가 폭락하는 등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바클레이즈는 이미 2014년부터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고 있다. 2014년 말부터 인원감축, 투자 및 사업축소 등을 본격화하고 있다.

1977년 한국에 진출해 투자와 은행 업무를 해왔던 바클레이즈가, 한국 진출 39년 만인 최근 철수를 결정했다. 한국만이 아니다. 올 1월 일본과 말레이시아, 호주 등 해외 지점과 법인의 대규모 철수 결정도 확인됐다. 바클레이즈의 인력 감축, 사업 축소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본거지인 영국 런던과 유럽 지역, 또 미국 뉴욕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실적 악화와 과징금,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소송비용 등으로 인해 재무 건전성마저 우려를 키우고 있다. 대규모 비용 축소와 몸집 줄이기에 실패하면 자칫 심각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바클레이즈를 따라다니고 있다.

지난해 5월 2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가 우승한 모습 사이로 EPL의 메인 스폰서인 바클레이즈 타이틀이 보인다. ⓒphoto AP·뉴시스
지난해 5월 2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가 우승한 모습 사이로 EPL의 메인 스폰서인 바클레이즈 타이틀이 보인다. ⓒphoto AP·뉴시스

EPL의 바클레이즈 지우기

바클레이즈의 EPL 메인 스폰서 철수 역시 사실 이 구조조정 과정의 한 부분이다. 바클레이즈와 메인 스폰서 계약연장 실패 이후 EPL 측은 “다음 시즌부터 메인 스폰서 없는 EPL을 운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EPL이 리그 전체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난 2월 9일 EPL의 리처드 마스터즈 이사는 “다음 시즌부터 타이틀 스폰서에서 벗어나 프리미어리그로서 자체적인 경쟁을 펼칠 것”이라며 “자생력을 고민해 볼 시기”라고 했다.

사실 EPL은 지난해 6월 이미, 바클레이즈와의 메인 스폰서 계약 연장에 실패하게 되면 메인 스폰서 없이 EPL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사를 공개했었다. 당시 EPL은 이미 “미국 NBA(프로농구리그)와 NFL(미식축구리그)처럼 EPL이 브랜드로 정착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의 비즈니스를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NFL과 NBA는 리그의 명칭까지 바꿔야 하는 메인 스폰서를 도입하지 않는다. 광고와 중계권, 국내외 이벤트 등 리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리그가 하나의 기업이다. EPL 역시 이탈리아 세리에A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유럽의 경쟁 리그와 달리 오히려 미국 프로스포츠 리그의 이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하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바클레이즈가 2016년 이후 EPL의 메인 스폰서 계약을 더는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2015년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5년 6월부터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 등 주요 언론들이 바클레이즈 측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했음을 기정사실화했다. 사실 당시 EPL은 계약 연장 의사가 없는 바클레이즈를 대신해 다른 메인 스폰서를 찾기도 했다. 2006년 이후 EPL의 메인 스폰서를 하겠다고 나선 기업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네스 맥주와 위스키 조니워커 등으로 유명한 주류기업 디오지아가 4500만파운드를 메인 스폰서 비용으로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베팅 등 사행성 기업들도 EPL 메인 스폰서에 관심이 컸다. 하지만 EPL은 바클레이즈 같은 무게감을 원했고, 그런 파트너를 찾지 못하면서 결국 메인 스폰서 없는 EPL을 선언했다.

메인 스폰서 없이 리그를 운영할 수 있다는 EPL의 자신감은 사실 풍족한 돈에 있다. 특히 영국과 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중계권료’ 덕이 크다. 2013~2014 시즌부터 3년 동안 영국 내 EPL 중계권료가 30억파운드(약 5조2257억원)였다. 그리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앞으로 벌어질 세 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 영국 내 중계권료는 51억3600만파운드(약 8조9463억원)다. 또 있다. 지난 시즌인 2014~2015년 EPL은 축구 장사로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무려 6억1400만파운드(딜로이트 추산)나 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경쟁 리그에 비해 시장 규모가 1.5~2배 이상 크다.

이 같은 엄청난 자금을 확보한 EPL이 굳이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메인 스폰서를 구할 명분이 적었던 것이다. 2016~2017년 시즌부터 EPL은 메인 스폰서가 사라지고 ‘더 프리미어리그’라는 새로운 공식 명칭을 갖게 됐다. 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난 2월 10일 EPL은 ‘바클레이즈’ 명칭을 지운 EPL의 새 로고를 공개했다. 시즌이 끝나기도 전인데 EPL은 벌써 바클레이즈 지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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