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일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순간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기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2일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 지은 순간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기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규 시즌 마감을 일주일 앞둔 9월 26일 현재, 양대 리그의 6개 지구 팀의 1위 팀은 거의 결정이 되었다. 6개월의 긴 장정을 달려와 1차 목표인 포스트시즌 진출을 코앞에 둔 것이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30개 팀 중 선택받은 팀만이 가능하다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이들은 2월부터 시작하는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담금질을 해왔다.

162경기의 마라톤을 1위로 통과한 이들이 우승까지 가는 길에는 아직 3가지 장애물이 남아 있다. 물론 1위 팀을 제외한 최고 승률 2개 팀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로 진출한 팀은 단판 승부로 벌어지는 와일드카드 게임이란 첫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4단계를 뛰어넘어야 승리의 왕관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와일드카드 게임을 이기면 5전3선승제의 디비전시리즈가 기다리고 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리그 챔피언을 가리는 7전4선승제의 리그 챔피언십시리즈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꿈의 무대인 월드시리즈에 오를 수 있고 여기서 다시 4승을 거두어야 진정한 왕좌에 오르는 것이다.

이런 플레이오프는 단기전이라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이미 페넌트레이스를 통해 최고의 성적을 거둔 팀들이라 실력은 기본이다. 그렇다 보니 실력 이외의 요소가 작용하게 된다. 큰 경기에 대한 경험, 대담성, 예기치 못한 영웅, 심지어 운까지 승부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요소 중 하나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스토리’다. 선수들로 하여금 주어진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하는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포스트시즌 진출팀들은 우승을 위해 필요한 제3의 요소인 스토리가 풍부한 팀들이 유난히 많다.

시카고 컵스 108년 만에 우승하나?

이미 주간조선(2421호)에 소개한 바 있는 시카고 컵스는 ‘염소의 저주’와 108년간의 우승 가뭄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1908년을 마지막으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컵스는 아예 신생팀으로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아 우승을 못해 본 팀을 제외하면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장기간 우승을 맛보지 못한 팀이다. 그 자체만으로 이들은 이번 포스트시즌에 가장 주목을 받는 팀이 되었다. 이미 4년 전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를 풀며 86년 만에 우승시킨 테오 엡스타인 단장을 사장으로 맞이하며 그가 컵스의 오랜 저주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엡스타인 사장은 차근차근 팀을 재건했고 가장 먼저 지구 1위를 확정하고 9월 26일 현재 99승으로 최다승을 기록해 홈필드 어드밴티지도 확보해 놓았다. 또한 1945년 월드시리즈 4차전에 애완용 염소를 데리고 왔다가 냄새가 심해 주변 팬들의 항의를 받고 퇴장당한 염소 주인 빌리 시아니스가 영원히 컵스가 우승 못할 것이란 저주를 풀어야 한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지막 우승은 1948년

워낙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컵스에 가려 있지만 아메리칸리그 중부 지구 1위가 확정적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1900년 아메리칸리그의 출발과 함께한 긴 역사의 팀이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은 단 2차례에 그쳤다. 그리고 마지막 우승은 컵스를 제외하고 가장 오래된 1948년이다. 우승과 인연을 맺은 지 무려 68년째다. 1948년 마지막 우승 후 3번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되며 고배를 마셨다.

특히 마지막 진출 시즌이었던 1997년에는 당시 플로리다 말린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다.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클리블랜드 선발투수 자렛 라이트의 7회 원아웃까지 1실점 역투로 9회 말에 접어드는 순간 1점 차의 리드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51년 만의 우승까지 아웃 카운트 단 3개가 남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원아웃 1사 1, 3루에서 크레이그 카운셀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허용했고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든다. 결국 11회 말 수비가 좋은 베테랑 2루수 토니 페르난데스의 실책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클리블랜드는 어이없이 우승의 영광을 창단 5년 차의 플로리다 말린스에 넘겨준 것이다. 또한 ‘밤비노의 저주’나 ‘염소의 저주’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와후 추장의 저주’가 존재한다. 인디언스의 로고는 ‘와후’라 불리는 귀여운 인디언 추장의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는 아메리칸 원주민을 희화화한 것이라며 이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과거 백인들에게 학살당한 수많은 원주민의 저주가 깃들였다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 클리블랜드를 프랜차이즈로 한 풋볼팀인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는 인디언스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팀이 볼티모어로 옮겨버렸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팬들이 기대를 거는 것은 역시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농구팀 카발리어스가 작년도 NBA 타이틀을 마침내 차지하며 이제 야구팀도 저주가 풀릴 것이라는 바람이다.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비드 오티즈.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비드 오티즈.

보스턴 레드삭스 오티즈 볼 수 있는 마지막 해

이미 베이브 루스 트레이드와 관련한 ‘밤비노의 저주’를 풀어낸 보스턴 레드삭스는 다른 의미의 우승을 향한 동기부여가 있다. 86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고 그 이후에도 두 번의 우승을 더하며 완전히 저주를 벗어났지만 이런 저주를 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간판타자 데이비드 오티즈가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에 그를 위한 우승이 필요한 것이다. 2004년 저주를 풀며 우승할 때 오티즈가 없었다면 보스턴의 저주는 한동안 더 지속됐을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오티즈의 활약은 눈부셨다. 당시 월드시리즈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4연승을 거두며 생각보다 쉽게 저주를 풀어냈지만 그해 포스트시즌의 백미는 숙적이자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시킨 팀인 뉴욕 양키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였다. 당시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양키스를 상대로 3연패를 당하며 다시 우승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기적은 이제부터였다. 4차전 1점 차로 뒤진 경기에서 9회 말 최고의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대로 동점을 만들고 연장 12회 말 터진 오티즈의 투런홈런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5차전에서도 2점 차로 뒤진 경기를 8회 오티즈의 솔로홈런을 시작으로 동점을 만들고 연장 14회 역시 오티즈의 적시타로 다시 승리한다. 6차전을 4 대 2로 다시 승리하고 운명의 7차전에 돌입한다.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도 오티즈는 양키스 선발 케빈 브라운을 무너뜨리는 1회 투런홈런으로 메이저리그 플레이오프 역사상 유일하게 7차전 시리즈에서 3연패 하고 4연승을 거두는 기적의 선봉장이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니 오티즈를 위해서라도 보스턴은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기고 싶어한다.

LA 다저스 빈 스컬리에 우승 선물을

시즌 90승을 거두며 역시 지구 우승을 굳힌 LA 다저스도 1988년 이후 우승을 향한 확실한 이유가 있다. 역시 주간조선 2404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다저스의 목소리’ 빈 스컬리 캐스터가 67년의 방송 커리어를 뒤로하고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6일 다저스의 홈경기에서 마지막 방송을 했고 그 전날 LA 시장, 영화배우 케빈 코스트너, 과거의 전설 샌디 코팩스 등이 참석한 화려한 은퇴식도 거행했다. 1950년 다저스가 아직 뉴욕에 프랜차이즈를 두고 있을 때부터 다저스 경기를 중계했던 빈 스컬리는 현재 다저스의 고문이자 전 감독인 타미 라소다와 함께 다저스의 전설이자 상징이다. 이런 존재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세인들의 시선에서 사라질 때 가장 좋은 은퇴 선물은 무엇일까. 두말 필요 없이 우승일 것이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다저스 선수들은 88살의 캐스터를 위해 뛸 것이다.

워싱턴 내셔널스 창단 첫 우승할까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우승팀 텍사스 레인저스와 내셔널리그 동부 지구 우승팀 워싱턴 내셔널스는 위의 팀들과 사연이 사뭇 다르기도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일단 두 팀은 우승 경력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처녀 우승을 노리는 의미가 있다. 텍사스의 역사는 1972년 창단으로 다른 팀에 비해 역사가 길지 않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전신은 워싱턴 세내터스란 팀으로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존재했고 그 당시에도 역시 우승 경험이 없다. 2010년과 2011년 연속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두 번 모두 패배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만큼 첫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크다.

한편 워싱턴 내셔널스는 1969년 창단됐던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전신이다. 2005년 프랜차이즈를 미국의 수도 워싱턴으로 옮겼지만 몬트리올 시절부터 역시 우승과 친하지 못했다. 또한 워싱턴을 프랜차이즈로 했던 과거 메이저리그 팀들 중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는 1924년이다. 워싱턴의 야구 팬들은 자신들의 도시에서 81년간 우승 헹가래를 구경하지 못한 주변인이었던 것이다. 이 두 팀의 첫 우승의 바람이 풀릴지도 볼거리이다. 그 밖에 지난 5년간 짝수해만 3번 우승하고 다시 짝수해 우승을 노리는 ‘짝수 깡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올라갈지도 볼거리가 된다.

긴 역사만큼 스토리도 다양하고 의미가 깊다. 이런 얘기들은 엑스트라 파워가 필요한 선수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과연 어느 팀의 스토리가 가장 강력하여 우승의 도우미가 될지는 야구의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