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FA 자격을 얻게 된 SK 김광현과 KIA 양현종, 삼성 차우찬·최형우(왼쪽부터). ⓒphoto 뉴시스
올해 FA 자격을 얻게 된 SK 김광현과 KIA 양현종, 삼성 차우찬·최형우(왼쪽부터). ⓒphoto 뉴시스

프로야구 스토브리그는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 각 팀이 벌이는 이적 시장과 연봉 협상을 일컫는 단어다. 그중에서도 FA(자유계약선수)는 매년 천문학적 선수 몸값으로 스토브리그의 단연 화제가 되고 있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막을 내린 올해는 KBO리그 최고 수준의 왼손 선발 삼총사인 SK 김광현, KIA 양현종, 삼성 차우찬을 비롯해 거물급 타자인 삼성 최형우 등이 FA 자격을 얻었다. 이들 중 사상 첫 몸값 100억원 시대를 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FA는 오랜 기간 프로야구에 몸담은 선수 중 일정 자격조건(1군 등록일수 또는 경기 수 충족)을 갖춘 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자유 이적 권리다. 대졸 선수로 입단할 경우 8년, 고졸의 경우 9년 동안 성실하게 뛰면 팀을 선택할 권리를 선수가 가지게 된다. 이른바 FA 권리행사다.

올해 FA시장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앞서 말한 빅4로 불리는 선수들 때문이다. 손꼽히는 한국인 좌완 선발투수인 SK 김광현과 KIA 양현종, 삼성 차우찬, 또 삼성의 4번타자 최형우가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속팀이 잔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점과 다른 구단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 역대 최고액(지난해 박석민 4년간 96억원) FA 이적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김광현·양현종·차우찬·최형우

김광현과 양현종은 2년 전 포스팅시스템(입찰의 형태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미국 메이저리그를 노크했지만 쓴맛을 봤다. 포스팅비(메이저리그 구단이 선수들의 원 소속팀에 지불하는 비용)로 150만달러 이하를 제시받고 포기했다. 포스팅비는 향후 연봉 협상의 잣대가 된다. 적은 연봉을 받고 미국에 진출할 경우 출전 기회를 제대로 얻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이들이 올겨울 메이저리그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올해 김광현과 양현종을 보기 위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지속적으로 한국의 야구장을 찾았다. 김광현의 경우 6팀 이상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찾기도 했다.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진출 의지가 양현종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김광현은 올 시즌 11승8패에 평균자책점 3.88을 기록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지만 시즌 중 부상으로 한 달여를 쉬었다. 최고구속은 150㎞ 안팎이다. 양현종은 승운이 따르지 않으며 10승12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 시즌 200⅓이닝을 소화하며 KIA 마운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차우찬의 경우 사타구니 부상으로 올해 두 달 가까이 쉬었지만 시즌 막판까지 삼성의 선발로테이션을 지켜줬다. 12승6패, 평균자책점 4.73. 차우찬은 미국보다는 일본 프로야구 진출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즌을 앞두고 일본 쪽 에이전시와 에이전트 계약을 하기도 했다. 좌타자 최형우는 타율 0.376(타율 1위), 144타점(타점1위), 31홈런, 195안타(최다안타 1위)를 기록했다. FA를 앞두고 생애 최고 성적을 올렸다. 1년 전 스프링캠프에서 FA가 되면 120억원에 도전하겠다는 호기로운 발언을 해 팬들로부터 적잖은 비난을 받았기도 했다.

이들 네 명은 장점이 확실한 FA다. 물론 이들 외에도 정규리그 1위 팀 두산의 주전 유격수 김재호와 마무리투수 이현승, 롯데의 내야수 황재균, LG 투수 우규민, KIA의 나지완 등이 FA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현재 소속 팀은 일단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 이외에 LG 봉중근과 정성훈, KT 이진영 등 베테랑 선수들도 FA 자격을 얻게 된다. NC 이호준은 세 번째 FA를 노리고 있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은 4년 대신 계약기간은 2년으로 줄여 계약할 가능성이 크다.

FA는 선수들로서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인 ‘로또’로 통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FA 직전 해에는 아파도 웬만하면 참고 뛴다. 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FA로이드(FA와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를 합한 말)’라는 신조어가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일부 선수의 경우 FA 직전에 무리를 해가며 뛴다. 그러다가 막상 FA가 돼 거액을 손에 쥐게 되면 다음 해 시즌에는 정상적인 경기를 하지 않는다. 흔히 ‘먹튀(먹고 튄다는 뜻)’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FA로이드’ 신조어까지 등장

FA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연봉이 최대 10배 이상 수직상승하는 FA는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9년을 채우기 위해선 꾸준히 기량과 몸을 관리해야 한다. 최근 들어 선수들의 현역 수명이 크게 늘어났다. 예전보다 술과 담배를 하는 선수들이 확연히 줄었다. 스스로 개인트레이너를 고용해 몸을 만들고, 비시즌에도 개인 훈련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린 선수들과 유망주들도 큰 목표를 갖게 된다. 재능이 많은 어린 선수들을 야구라는 종목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도 된다. 프로야구 흥행과 전체적인 규모를 키우는 활력소 역할도 한다.

하지만 마이너스 측면도 있다. 첫 번째 터무니없이 치솟는 선수들의 몸값이다. 2000년 첫 FA제도 시행 당시 이강철과 김동수, 송진우는 3년 계약에 8억원 내외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큰 액수여서 세간의 화제였다. 이듬해 김기태가 4년간 18억원, 홍현우가 4년간 18억원을 받았다. 2002년엔 양준혁이 4년간 27억2000만원에 LG에서 삼성으로 이적했다. 이후 2005년 현대 소속이던 심정수는 60억원을 받고 삼성으로 옮겼고, 2013년 말 SK 정근우는 한화에 70억원을 받기로 하고 팀을 옮겼다. 2014년 말에는 장원준이 84억원을 받고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했다. 지난해는 96억원을 받고 NC로 옮긴 박석민과, 한화의 정우람과 김태균이 각각 84억원을 받았다. FA 21명에게 766억2000만원이라는 역대 최고 몸값이 지불된 해가 됐다.

구단 살림살이에서 특정 고액선수에게만 돈이 집중되는 부분은 큰 문제다. 선수 연봉의 빈익빈 부익부는 차치하고라도 통합 마케팅, 팬서비스 강화 등에 사용할 재원이 부족해지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FA시장은 기형적이다. 구단 수입 증가 속도는 FA 몸값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구단들은 겨울만 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내부 FA 단속과 외부 FA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부터는 이 같은 구단 간 경쟁이 더 격화될 전망이다. KBO가 올해부터 탬퍼링(사전접촉 금지) 규정을 없앴다. 지난해까지는 FA 공시 이후 일정기간 원소속 구단과의 우선교섭 기간이 있었다. 많은 대어급 FA들이 이 규정을 어기고 다른 팀들과 비밀 접촉해 물의를 빚었다. 일부 선수의 경우 시즌 중간에 이미 밀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런 점 때문에 시장을 공개한 셈이다. 선수들은 협상 초반부터 자유롭게 각 팀에 자신의 몸값을 문의할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10구단으로 팀이 늘면서 선수난, 특히 투수난을 보이고 있다. 올 시즌 벌어진 타고투저 현상은 10승 정도 올릴 수 있는 투수가 태부족한 상황이 불러온 이상 현상이다. FA는 검증된 자원이다. 목돈이 들더라도 단기간에 확실한 성적 향상을 꾀할 수 있다. 각 구단이 출혈을 감수하는 가장 큰 이유다. 최근 들어 FA 선수들은 몸관리를 철저히 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FA 기회를 노리기도 한다. 어차피 A급 선수는 정해져 있다. 올 시즌 스토브리그는 전에 없던 FA 광풍이 몰아칠 조짐이다.

박재호 스포츠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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