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2443호] 2017.02.06

프로야구 선수들의 은퇴 공식

박수 받고 떠나는 선수 vs 소리 없이 사라지는 선수

▲ 2017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왼쪽)과 이호준. photo 뉴시스
눈발이 흩날리는 2월이지만 프로야구판은 벌써부터 뜨겁다. 기아 최형우는 실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KBO리그 사상 최초로 몸값 총액 100억원이 넘는 초대형 FA계약을 맺으며 한순간에 돈벼락을 맞았다. 또 두산 니퍼트는 1년 몸값 210만달러라는 메이저리그급 잭팟을 터뜨린 첫 외국인 선수가 됐다.
   
   이렇게 화려한 돈잔치가 벌어진 스토브리그 동안 10년 이상 KBO리그를 누볐던 몇몇 베테랑들의 상황만큼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돌아오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다”라며 아쉽지만 미리부터 화려한 은퇴를 예고한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더 뛰고 쉽지만…”을 외쳤지만 자의 반 타의 반 등 떠밀리듯 초라하고 갑작스럽게 그라운드를 떠나거나 떠나야 하는 선수들도 있다.
   
   종목을 떠나 상당수 운동선수들의 공통된 목표 중 하나가 가능하면 오랜 기간 현역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으며 화려한 선수 생활을 이어온 스타급 선수들은 물론이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팀을 위해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켜온 돌쇠형 선수들까지 스포츠 선수들에게 오랜 현역 생활은 축복이다. ‘현역=돈벌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프로선수들의 경우 현역 생활 연장에 대한 갈망이 특히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오랜 현역 생활과 함께 운동선수들의 또 다른 꿈이자 목표가 있다. 바로 선수 생활 마지막을 팬들의 환호 속에 화려하게 마치는 것이다.
   
   프로야구판에서 이런 목표와 꿈을 이룰 수 있는 선수들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16년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2017년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있는 지금, 화려한 은퇴를 예고한 선수들과 조용히 사라져야 함을 받아들여야 할 선수들의 상황을 살펴봤다.
   
   
   “2017년이 마지막이다”
   
   2017년 프로야구 정규 시즌 전이지만 벌써 이번 시즌이 마지막임을 예고한 선수들이 있다. 이들의 마지막은 언론을 통해 벌써부터 ‘화려한 은퇴’나 ‘아름다운 은퇴’로 포장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41)과 NC 다이노스의 이호준(41)이 대표적이다. 이승엽 선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프로야구 선수로서는 2017년 시즌이 마지막”임을 예고해왔다. 그래서 그의 은퇴는 오래 준비된 은퇴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승엽보다 1년 먼저 프로야구에 뛰어든 이호준 선수 역시 2017년 1월 16일 NC 다이노스 구단 시무식에 앞서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말로 공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선언이 세상에 알려지는 방식과 시기는 조금 달랐지만 이승엽과 이호준 모두 화려한 예고 은퇴가 준비되고 있다.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이승엽. 1997년 홈런왕을 시작으로 5번의 홈런왕과 MVP, 4번의 타점왕, 1번의 최다안타 1위, 또 2012년 한국시리즈 MVP와 총 10번의 골든글러브 수상 등 한국에서 뛴 14년 동안 KBO에서 가장 화려한 스타로 인정받아왔다. 2003년에는 정규 시즌 중 5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아시아의 거포로 변신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4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기도 했다. 일본 무대에서 뛴 2005년 30개의 홈런을 날리며 존재감을 키웠고, 2006년에는 41개 홈런과 169개 안타, 타율 3할2푼3리로 일본 최고 인기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2012년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와 팀의 리더로 2010년대 초 삼성 라이온즈 전성기 질주에 한몫을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22년 동안 프로야구 선수로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이승엽이다. 그가 2015년 말 자신의 은퇴를 이야기했다. 당시 2년간 총 36억원 계약 후 “2년 계약이 끝나는 2017년 시즌 후 은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마흔 살이 넘었지만 그의 기록은 나이와 무관하게 몇 년 더 현역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승엽은 2년 전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이승엽의 모습에 팬들은 안타깝지만 더 큰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호준 역시 기록과 팀에서의 역할만 보면 2~3년 더 현역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3년 서른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SK에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며, 이적 첫해 홈런 20개를 쳐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홈런 20개 이상을 기록할 만큼 여전히 강타자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있다. 특히 신생팀이던 NC 다이노스로 이적해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할 만큼 안정적인 팀 리더로서 이호준의 모습은 해태와 SK 시절 때보다 더 높은 평가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팬들 역시 화려한 스타이기보다 꾸준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 이호준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런 이호준이 지난 1월 NC 다이노스 시무식을 통해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매듭지을 것임을 선언했다. 올해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입에서 공식적인 은퇴가 예고될 것으로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이호준이 이승엽이 그랬던 것처럼 201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약속했다. “늘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다”는 이유를 밝혔듯 이호준은 가장 화려한 순간만을 팬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 지난해 11월 은퇴한 이병규와 홍성흔. photo 뉴시스

   선택권이 없는 은퇴
   
   이런 이승엽과 이호준의 화려한 예고된 은퇴와 달리 2017년 그라운드에서 조용히 사라질 선수들도 수두룩하다. 2016년 시즌이 끝난 후부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이 슬그머니 유니폼을 벗고 있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던 스타였지만 누군가는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며 기량저하로, 또 누군가는 팀의 세대교체와 체질 변화의 대상으로 지목돼 떠밀리듯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이들에게 화려한 마지막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상 설 곳을 잃은 채 은퇴를 선택한 대표적 스타는 두산의 홍성흔(41)과 고영민(32), LG의 이병규(43), NC의 용덕한(36) 선수 등이다. 40대 노장 홍성흔과 이병규는 팀과의 계약기간이 2016년 시즌까지였다. 홍성흔은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체력과 기량저하가 뚜렷해지며 지명타자 역할조차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2016년 시즌 거의 대부분을 2군에서 보내며, 일찌감치 사실상 전력 외로 치부됐다. 그렇게 두산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다른 팀이 데려가기도 쉽지 않은 처지였다. 그는 FA 잭팟을 터뜨리며 4억원이라는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로 알려졌다. 고액 연봉은 두산 이외에 그를 데려갈 수 있는 팀을 없게 했다. 몸값은 비싼데 수비를 내보내기 힘든 반쪽 선수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2016년 시즌 후 은퇴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LG의 상징으로 불리던 이병규는 팀의 세대교체와 체질 변화의 대상으로 지목돼 2016년 시즌을 2군에서 보내야 했다. 지난해 1군 무대에 선 것이라곤 시즌 마지막 경기 딱 한 타석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 등장한 이병규의 한 타석은 단지 LG 양상문 감독과 팀이 선택한 고참 선수에 대한 배려였을 뿐이다. 그를 LG의 1군 선수로 다시 쓰겠다는 의사가 아니었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다. LG가 사실상 이병규를 전력 외 선수로 빼놓은 것이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이병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LG라는 팀에서 더 이상 그의 자리를 찾기란 힘들었다. 그렇게 이병규는 지난해 11월 전격 은퇴했다. 1997년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20년을 누볐던 그라운드를 갑자기 떠난 것이다.
   
   이병규가 몇몇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운했다. 아쉬웠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은퇴 결정은 이병규가 했지만, 그 결정까지 본인의 의사보다 외부적인 요인과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한 셈이다.
   
   
▲ 지난 시즌이 끝나고 뛸 수 있는 팀을 찾지 못해 은퇴한 용덕한과 고영민(오른쪽). photo 뉴시스

   은퇴 경기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다
   
   홍성흔과 이병규의 갑작스러운 은퇴는 그나마 팬들의 주목을 받은 경우다. 두산 고영민과 NC 용덕한의 선수 생활 은퇴는 조금은 초라했다. 2002년 데뷔해 14년 동안 KBO 무대를 누빈 고영민. 2008년 베이징올림픽 주전 2루수이자 금메달 주역으로 각광받았지만, 정작 소속팀인 두산에서는 설 자리가 좁아졌다. 2012년 불과 58경기에 나서며 출전 경기 수가 급격히 줄었고, 지난해에는 8경기밖에 못 나갔다. 2016년 팀은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며 환호를 올렸지만, 고영민은 사실상 전력 외 판정을 받았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그는 팬들에게도 잊혀진 선수가 됐고,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팀 역시 그를 품고 갈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두산은 ‘고영민은 전력 외 자원’임을 통보했다. 고영민의 현역 생활 연장 의지는 컸지만 다른 팀들 역시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그를 데려가는 데는 회의적이었다. 결국 올 1월 초 조용히 은퇴했고, KT에서 코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5년을 두산 베어스 단 한 팀에서만 뛰었지만 그는 은퇴 경기는 물론 은퇴식조차 갖지 못했다.
   
   화려한 스타는 아니었지만 꾸준한 선수였던 용덕한도 마찬가지다. 2004년 프로야구판에 뛰어들어 지난 시즌이 끝나고 무려 13년 만에 FA 자격을 얻었다. FA 신청 후 단 한 차례 팀과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NC 다이노스는 그를 품고 가겠다는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FA 미아 조짐이 보였고,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실력과 무관하게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의 돈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FA 광풍 속에서 용덕한은 사람들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지며 조용히 은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용덕한의 씁쓸한 은퇴는 특정 선수에게 비상식적인 초고액 FA 계약이 벌어지면서 발생한 FA제도의 폐해와 피해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역 선수=돈’으로 연결되는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오랜 선수 생활은 축복이다. 하지만 누구도 은퇴를 피해갈 수는 없다. 모든 선수들이 “좋은 모습으로, 박수 칠 때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처럼 화려하게 은퇴하는 선수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은퇴는 쓸쓸할 뿐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양준혁과 이종범조차 2010년과 2012년 팀의 세대교체와 체질변화라는 명분에 떠밀리듯 갑작스럽게 유니폼을 벗었을 정도니 말이다. 때로는 감독과의 갈등 속에 은퇴가 결정되기도 하고, FA처럼 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밀려나듯 떠나는 경우도 많다. 이유야 어떻든 은퇴를 결정한 모든 선수들에게 좀 더 큰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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