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2468호] 2017.07.31

US오픈의 깜짝스타 최혜진의 4가지 꿈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haksoo@chosun.com 

▲ 지난 7월 5일 오후 만난 최혜진은 18세가 되는 오는 8월 23일 이후 KLPGA 입회 신청이 가능하다. 장타자인 그는 골프 클럽에 스윙 웨이트 링을 걸고 매일 1시간씩 빈 스윙하는 걸 장타 비결로 꼽았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객원기자
그가 드라이버를 잡자 조금 전까지 수줍음 잘 타던 천진난만한 여고 3년생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혜진(18·학산여고)이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무슨 말이냐는 듯 자신 있게 힘껏 친 드라이버샷이 날아가는 모습에 “와” 하는 감탄사가 쏟아진다. 지난 7월 한 달간 골프 팬들은 한국이 또다시 배출한 ‘골프계의 신데렐라’가 펼치는 대담무쌍한 플레이에 더위를 식혔다. 박소영 대표팀 코치는 “공격적인 플레이에 아이언샷의 정확성을 보면 어린 시절 박세리를 떠올리게 한다”며 “확실한 것은 박세리, 박인비에 견줄 만한 대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고 했다. 최혜진도 “KLPGA, LPGA를 거쳐 박세리·박인비 선배님처럼 명예의전당에 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최혜진의 장기는 260~270야드에 이르는 드라이버샷. 코스가 길면서도 페어웨이는 개미허리처럼 좁기로 악명 높은 US여자오픈에서도 그의 드라이버샷은 고성능 미사일처럼 원하는 곳을 공략했다.
   
   최혜진은 “지난해까지는 페어웨이가 좁으면 살살 달래 쳤는데, 오히려 거리도 안 나고 방향성도 안 좋았다. 그래서 올해는 두려워 않고 힘껏 치니까 방향성까지 좋아지더라”고 했다. 최혜진의 드라이버샷 스윙 스피드는 시속 161㎞ 안팎이다. 국내 여자프로 평균인 150㎞를 훌쩍 넘는다. 어려서부터 스윙 스피드를 높이는 훈련을 많이 한 덕분이다. 얼마 전까지 대표팀 공식 프로필에 165㎝로 돼 있던 키는 최근 167㎝까지 자랐다고 한다. 점점 좋아지는 체격과 함께 비거리도 더 늘 것이다.
   
   최혜진은 멀리 똑바로 날아가는 명품 드라이버샷을 앞세워 최근 두 개의 프로대회에서 한국과 세계의 쟁쟁한 프로 언니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지난 7월 2일 강원도 평창 버치힐골프장(파 72)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 오픈은 많은 사람들이 최혜진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대회였다.
   
   한때 경기가 중단될 정도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열린 마지막 라운드에서 최혜진은 두 개의 이글을 잡아내며 9타를 줄이고 대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아마추어 선수가 KLPGA 투어에서 우승한 것은 2012년 4월 김효주의 롯데마트 여자오픈 우승 이후 5년2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불과 2주 후인 7월 17일 최혜진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여자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박성현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트리지만 않았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다 ‘아마추어 선수가 공동 선두를 달리는데 몇십 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대단히 흥미롭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최혜진이 우승했다면 US여자오픈에서 50년 만에 아마추어가 우승하는 대기록이 작성될 뻔 했다.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 기자는 “최근 10대와 20대 초반 선수들의 활약이 트렌드가 됐지만 최혜진은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며 격찬했다.
   
   그가 아마추어라서 받지 못한 상금 액수에도 관심이 쏠렸다. US여자오픈 준우승 상금이 6억원(54만달러)이었고,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 오픈 우승 상금이 1억원이었다. 아마추어는 프로대회에 출전해도 상금은 받을 수 없다. 3주 동안 무려 7억원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최혜진은 “솔직히 아쉽기는 했지만 워낙 값진 경험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만 18세가 되는 8월 23일 프로로 전향할 예정인 최혜진은 초대형 신인으로서 엄청난 액수의 스폰서 계약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김효주가 프로에 데뷔할 때 롯데와 2년간 총액 10억원(인센티브 별도)에 맺었던 계약 규모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의류 업체들은 한 달 전보다 세 배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고 한다.
   
   US여자오픈이 끝나고 최혜진의 아버지 최길호씨에게 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최씨는 베스트 스코어가 69타일 정도로 골프를 좋아했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골프를 시켜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습장에 데려가 보니 3살 위 오빠는 9번 아이언으로 공을 한 번도 못 맞혔다. 그런데 피칭 웨지를 잡은 최혜진은 자세는 엉망이었지만 공을 다 맞히며 재미있어했다. 최혜진은 어릴 때부터 태권도장을 열심히 다녀 결국 검은띠를 맨 유단자다. 아버지가 “골프 해볼래?” 하자 “좋아요”라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최길호씨는 “혜진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골프 안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세 뭐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했다. 그건 아버지 성격을 닮은 것 같았다.
   
   
   초등 4학년의 ‘나의 목표’
   
   최혜진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는 딸에게 ‘나의 목표’를 만들어 주었다. 천장과 책상, 잠자리 등 늘 잘 보이는 3곳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나의 목표’는 ‘국가대표, 세계 1위, 올림픽 금메달, LPGA 진출’이다. 최혜진에게 “올림픽 금메달 딸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으면 고민하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최혜진이 처음 공식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는 90대 타수를 쳤다. 요즘엔 워낙 일찍 골프를 시작하는 추세여서 또래들은 언더파를 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처음 태극마크를 단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박결·이소영과 함께 여자 골프 단체전 은메달을 땄다. 2015년 강민구배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2016년엔 세계아마추어 팀선수권에서 2관왕에 올랐다. 일찌감치 프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2016년 유럽여자프로골프 투어 뉴질랜드 여자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엔 KLPGA투어 E1채리티오픈에서 준우승, 한국여자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올랐다. 지난 3년간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에서 지도했던 박소영 대표팀 코치는 최혜진의 모습을 이렇게 압축했다.
   
   “혜진이는 순하게 생긴 데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장난치는 장난꾸러기죠. 골프 티로 사람 간지럽히는 것도 좋아하고 아기같이 순진한 구석이 많아요. 하지만 휴대폰 알람소리 없이도 새벽 훈련에 한 번도 늦어 본 적이 없어요. 한번 하체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자 그날부터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을 시작하더니 하루도 거르지를 않았어요. 골프가 안 되는 날엔 눈물을 터뜨리면서 한두 시간씩 상담을 하고요.”
   
   최혜진은 8월 31일 K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한화클래식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를 예정이다. 현재 세계랭킹 27위인 최혜진은 9월 14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도 출전이 유력하다.
   
   최혜진이 아마추어이고 잃을 게 없기 때문에 겁없는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프로에 가면 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혜진은 “공격적인 플레이가 스코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프로 대회에서도 그렇게 하니 통했다”고 했다.
   
   갑자기 그가 금메달에 도전한다는 도쿄올림픽이 불과 3년 뒤면 펼쳐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2연패에 도전하는 박인비와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유소연, 전인지, 김세영, LPGA 첫승을 US여자오픈에서 거둔 박성현, 미국의 장타자 렉시 톰프슨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 얼굴이 떠올랐다. 이 겁없는 소녀는 어마어마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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