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2474호] 2017.09.11

이 빠진 한국 축구를 위한 충고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jordantic@chosun.com 

▲ 지난 9월 5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한국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photo 연합
세계 축구의 최강을 가리는 월드컵 본선은 ‘아시아 호랑이’를 자부한 한국 축구라도 늘 쉽게 오를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짧은 순간 천당과 지옥을 오간 ‘도하의 기적’이다.
   
   한국은 1993년 10월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카타르 도하)에서 북한과 최종전을 벌였다. 당시 최종예선은 6개 팀이 풀리그를 치러 1·2위가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방식이었다. 북한을 상대로 3 대 0 대승을 거뒀지만,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동시에 진행 중이던 일본-이라크전에서 일본이 2-1로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일본이 2위로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상황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라크의 자파르가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려 2 대 2로 경기가 끝난 것이다. 덕분에 한국은 일본을 골 득실차로 제치고 간신히 본선행 티켓을 쥐었다. 당시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던 한국 선수들이 이라크의 동점골 소식을 접한 뒤 벤치로 달려와 코칭 스태프와 얼싸안고 기뻐하는 장면은 한국 축구사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동점골의 주인공 자파르는 졸지에 ‘국민 영웅’이 되어 한국에 초청되기도 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 때는 씁쓸한 월드컵 진출 확정 순간이 연출됐다. 한국은 예선 마지막 경기인 이란전에서 졸전 끝에 0 대 1로 패했다. 같은 시각 열린 경기에서 우즈베키스탄은 골 폭풍을 일으키며 카타르를 5 대 1로 제압했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함께 승점 14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에 골 득실에서 겨우 한 골이 앞서 조 2위로 본선에 올랐다.
   
   그리고 4년 뒤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 예선. 이번만큼은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고 시원하게 본선행 티켓을 따내길 바랐던 축구 팬들은 또 한 번 TV 앞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지난 9월 6일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월드컵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골대를 세 번이나 맞혔지만 결국은 소득 없이 0 대 0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도 팬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같은 시각 킥오프했던 이란-시리아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시리아는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2-2 원점으로 돌렸다.
   
   만약 시리아가 한 골을 또 넣어 이란을 이기게 되면 승점이 ‘15’로 한국과 같아지고 골 득실에선 +2로 한국(+1)을 앞서기 때문에 조 2위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이 경우 한국은 조 3위로 밀려 ‘본선 직행’에 실패하고 플레이오프를 준비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플레이오프 여정은 험난하다. B조 3위 호주와 홈-어웨이로 2연전을 벌이고, 여기서 승리하면 다시 북중미 4위 팀과 대륙간 플레이오프(홈-어웨이) 2경기를 펼쳐 본선행 티켓을 가려야 한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시리아의 동점골 소식을 듣지 못한 듯 신태용 감독이 중계방송사의 요청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 소감을 밝히면서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이란-시리아전은 신 감독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약 2분간 진행됐다. 다행히 이 경기가 2 대 2로 그대로 끝나면서 천신만고 끝에 한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됐다.
   
   
   “최약체 본선진출팀”
   
   러시아행이 확정되며 한국은 브라질·독일·이탈리아·아르헨티나·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로 ‘9회 이상 연속 월드컵 본선에 나간 국가’가 됐다. 기록상으로 내로라하는 축구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력이 아닌 이란의 도움으로 겨우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 축구를 향한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란 덕분에 월드컵 진출을 ‘당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랑해요 케이로스(이란 감독)!” “이란 감독을 헹가래하라” “강남 테헤란로에 이란 공격수 아즈문(시리아전 2골 기록) 동상을 세우자” 등의 자조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지난 8월 31일 숙적 이란을 이번에도 꺾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팬들은 1주일 만에 이란을 응원해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해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축구의 수준이 세계 레벨과는 한참 동떨어졌다고 진단한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고 지난 7월 ‘소방수’로 긴급 투입된 신태용 감독이 치른 두 경기에서 한국 축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한국은 이란과의 최종 예선 9차전(0 대 0 무승부)에선 유효슈팅(골문 안으로 향하는 슈팅) 0개라는 수모를 당했다. 작년 이란 원정까지 감안하면 이란전 두 경기 연속 ‘유효슈팅 0’이었다. 대부분 선수들이 볼 터치부터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을 뺏길까 봐 동료에게 떠넘기기 바빴다.
   
   우즈베크전에서도 한국은 무기력했다.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 수비 불안은 여전했다. 이란전처럼 기본적인 볼 터치 실수로 아찔한 상황을 여러 차례 맞았다. 후방에선 어이없는 패스 미스가 속출하며 상대에 역습 빌미를 내줬다. 유럽이나 남미 강호가 아닌 우즈베크에 축구 기본기가 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후반 들어 우즈베크의 압박이 느슨해지며 한국은 좋은 찬스를 여러 차례 잡았지만 결정력 부족으로 골망을 가르지 못했다. 결국 한국은 이번 최종 예선 원정 5경기에서 2무3패로 ‘집을 떠나면 이기지 못하는 팀’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이제 아무도 한국 축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아시아 최강자였다는 지위를 잊고, 우리가 약하다고 하는 전제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 32개국 본선 진출국 중 현재 한국 대표팀이 ‘최약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며 “이대로라면 본선에서도 답이 없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팀을 본선에 올려놓은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본선에선 달라진 축구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축구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나는 성이 신(申)이지 진짜 신(神)은 아니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년 러시아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9개월 남짓. 2002 한·일월드컵 영웅이자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코치를 지낸 김태영 수원삼성 코치는 “이제부턴 1분1초를 금(金)같이 여겨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2년 내가 비에리, 피구, 모리엔테스 같은 세계적 선수들을 수비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준비가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지금부터 본선 체제로 전환해 혹독하게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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