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익THK 진영환 회장(왼쪽 세 번째)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삼익THK 진영환 회장(왼쪽 세 번째)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4일 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대구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삼익THK 본사를 찾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장 옥상에 주차공간을 조성하는 등 친환경적 기업이라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근 업체에 비해 삼익THK 본사와 공장 주변은 깨끗하고 쾌적했다. 처음 연락했을 때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던 삼익THK 진영환(67) 회장은 필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진 회장 사무실에는 ‘투자 귀재’이자 자선사업가인 미국 기업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진 회장은 꿈이 컸다. 그는 “기계 자동화 설비의 직선운동을 담당하는 핵심부품인 ‘LM(Linear Motion)가이드’를 기반으로 자동화부품 종합 메이커로 도약하는 게 목표다. 2020년에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LM가이드는 작은 기계 및 베어링 부품이다. 수십 톤의 기계를 싣고도 끄떡없이 자유자재로 직선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동화설비의 핵심기술이다. 삼익THK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이 주요 고객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제조설비, 디스플레이 제조 및 검사 장비, 산업용 로봇, 공작 기계, CNC(수치제어) 선반 등 여러 분야에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삼성과 LG가 삼익THK의 LM가이드를 선호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삼익THK의 LM가이드를 사용하면 전기 사용량이 급감하는 장점이 있다. 다른 하나는 나노시대 초정밀 기계와 부품 생산에 활용할 수 있다. 최근 기후변화 등 화석연료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에서 제품의 경쟁력은 친환경, 즉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제품 정밀도는 기본이다. 초정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자동화 및 신기술에 필요하고, 이를 삼익THK는 선도하고 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퇴비 같은 유기비료로 짓는 농업을 유기농(有機農)이라고 한다. 이에 비교하면 삼익THK는 전력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초정밀 기계제작을 선도하는 ‘유기공(有機工) 기업’으로 부를 수 있다. 삼익THK가 생산하는 자동화설비 제품 단가는 비싸지만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이다.

삼익THK는 1960년에 창업한 중견기업이다. 트렌드 변화에 맞춰 혁신과 변신을 거듭해 진화해 왔다. 진 회장은 “1960년대는 산업화라는 흐름에 맞추어 공업공구인 ‘줄’을 생산했다. 1970년대는 경제발전으로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쌀 소비가 급증하자 ‘쌀통’을 공급해서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줄’과 ‘쌀통’ 이후에는 자동화시대를 이끄는 자동화설비 신기술로 앞서가고 있었다. 주력생산품을 어떤 계기로 줄과 쌀통에서 ‘LM가이드’로 과감히 바꿨을까. 그는 “1990년대 한국산업은행의 초청으로 일본 노무라증권을 방문했다”며 “그때 일본에서 자동화설비 제품 생산에 앞서가던 일본THK 데라마치 사장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화시대를 넘어 ‘기술집약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간파해 산업설비 자동화시대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

“한국에 함께 공장을 세우자”는 진 회장의 제의를 처음에 일본THK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8년 동안 일본THK의 LM 제품을 수입해 판매했다. 삼익THK의 성실성과 노력을 지켜본 일본THK는 합작투자를 결정했다. 국내 처음으로 LM가이드 자체 생산을 위한 공장을 설립하는 데 일본THK도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회사명을 삼익공업사에서 삼익THK로 바꿨다. 이 과정에 경영 위기를 겪기도 했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자금난, 초기 판매부진에다가 일본 엔고(円高)가 불어닥쳤다. 하지만 임원 축소와 급여 삭감 등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 탈출에 성공했고, 이듬해 흑자로 전환했다.

삼익THK의 매출은 한때 3000억원이 넘었으나, 최근 투자가 저조해지면서 매출액이 조금 줄었다. 하지만 2006년 379명이던 종업원은 663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대구에 본사를 두고 경기도 안성과 수원 등 6곳에서 공장을 가동한다. 연구개발(R&D)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기업연구소를 설립해 회사 매출액의 3%를 투자한다.

삼익THK는 또 한 번 도약을 준비 중이다. 진 회장은 “산업설비 자동화가 더욱 경쟁력을 갖기 위해 기계와 전자·소프트웨어의 융합기술인 메카트로닉스(MC)와 로봇시스템 등 관련 분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선 ‘혁신’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리스크가 큰 기업의 주력제품을 전환해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세상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새벽에 여러 신문을 읽고, 주말에는 시사지와 전문지를 탐독한다”며 “국내외 주요 특강이나 세미나에도 참석해 경영인들과 정보교류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직책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구 지역 기업인의 공부 모임인 대구달서경제포럼 회장, 한·독교류협회 회장, 최근 법정기구로 출범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대구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일한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국빈 방문 때 중견기업대표로 동행했다.

진 회장은 기업의 경영철학으로 ‘3정(正·精·情)’을 강조했다. 먼저 기업의 정(正)도경영을 말한다. 또한 세계화 시대 초정(精)밀 기술만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사람 중심의 인간경영을 통해 임직원의 열정(情)과 도전정신을 불러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원복지에도 앞서간다. 고용노동부 선정 ‘노사문화 우수기업’에 선정되었다. 삼익THK 전영배 사장은 “직원들에게 우리사주 주식을 갖도록 매칭펀드로 지원한다”고 말한다. “우리사주가 보유 중인 주식은 전체의 4%”라고 귀띔했다. 사원 주식의 지분규모는 446억원에 달한다. 또 학자금 지원은 물론 사원아파트까지 제공한다. 박기호 삼익THK 노조위원장은 “노사 갈등과 대립보다는 공생문화가 예전부터 정착됐다”고 평가했다.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2004년부터 ‘삼익장학회’를 운영하면서 영남대와 계명대에 거액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 지역 문화공헌에 기여한 공로로 대구시로부터 ‘메세나상’도 받았다. 진 회장은 “기업은 이윤을 창출해 종업원의 복지에 힘쓰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돈벌이에만 매몰될 경우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익THK는 독일과도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이미 50년 전 독일 에슬링겐에 있는 업체 딕(Dick)에 제품을 수출했다. 지난해 11월 대구상공회의소 회장단의 일원으로 독일 일류장수기업을 탐방했다. 그는 뉘른베르크에 있는 250년 된 세계적 필기구 기업 회사 파버카스텔과 슈투트가르트의 메르세데스-벤츠 본사와 공장을 방문한 직후 “독일에서 연필 공장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브랜드 파워”라면서 “벤츠의 기계설비는 현대자동차와 별 차이가 없지만 역시 브랜드 파워가 앞선다”고 지적했다.

김택환

경기대 교수·독일 본대학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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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환 경기대 교수·독일 본대학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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