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photo 조선일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모습. ⓒphoto 조선일보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 소유·운영과 허위공시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명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차명주식은 시가를 기준으로 827억원(지난해 11월 6일 기준)에 이른다. 신세계 9만1296주(0.92%), 이마트 25만8499주(0.93%), 신세계푸드 2만9938주(0.77%) 등 총 37만9733주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이 자본시장법과 금융실명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해온 것이다. 이 같은 이명희 회장에 대해 금융감독원은 가장 약한 제재 중 하나로 꼽히는 ‘경고’를 통보하는 것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며 이명희 회장을 향한 비난 여론이 다시 커지고 있다. 또 ‘대기업 총수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제재와 모르쇠식 대응을 한 것 아니냐’는 금감원을 향한 비판과 논란도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금감원은 차명주식을 운영하며 소유 지분을 허위공시하는 등의 위법 행위를 한 최대주주와 경영자·임원에 대해 법에 따른 조사와 제재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이명희 회장에 대해 ‘주요 주주의 주식 소유 상황 보고’에 대한 공시 의무를 위반했는지 금감원이 조사를 했다. 차명주식을 운영한 이명희 회장이 자신의 지분 현황을 사실과 다르게 허위로 공시한 것에 대한 내용을 살펴본 것이다. 공시 위반에 해당하는 허위공시는 불공정거래 행위 중 하나로 금융당국이 ‘주의 또는 경고-과징금 부과-수사기관 통보 또는 (검찰) 고발’ 등의 제재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827억원 규모의 차명주식을 몰래 소유하며, 지분 현황과 주요 주주 관련 사항을 허위공시해온 이명희 회장에게 금감원이 가장 약한 제재로 꼽히는 ‘경고’ 통보만 한 것이다. 이 회장의 불법 행위에 대해 수사기관 통보나 고발의뢰 등의 조치는 고사하고 과징금조차 부과하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금감원이 이 회장에게 한 ‘경고’는 경영권과 재산에 대한 불이익이 전혀 없다. 검찰과 경찰 수사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같은 위법 행위를 다음에 다시 하면 다른 제재가 있을 수 있다는, 말 그대로 ‘경고’일 뿐이다.

공시 위반에 대한 제재 중 검찰 고발 대상 등의 중요 사안으로 결정되면 금감원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안에 설치된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제재 수위를 ‘경고’처럼 매우 낮은 처분으로 처리해버리면 금융감독원 자체 심의만으로 끝낼 수 있다. 더구나 이를 외부에 공표할 의무도 없어진다. ‘경고’가 얼마나 약한 수준의 제재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세청 세무조사 중 두 번째 차명주식 발각

신세계 이명희 회장 ⓒphoto 신세계
신세계 이명희 회장 ⓒphoto 신세계

금감원은 이 회장의 차명주식 소유와 허위공시에 연루된 신세계 구학서 전 회장에 대해서도 ‘경고’ 통보를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명희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구학서씨와 함께, 이명희 회장이 차명주식을 운영할 수 있게 차명계좌를 내줬던 신세계백화점 석강 전 대표와 신세계이마트 부문 이경상 전 대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기자는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 운영과 공시 위반에 연루된 석강·이경상씨에 대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를 금감원에 물었다. 금감원 지분공시팀 관계자는 “이 회장과 구학서씨에게 ‘경고’를 했다”며 “석강씨 등에 대해서는 (법) 위반 시점이 오래됐기 때문에 조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그런 이 회장에게 제재를 했다며 ‘경고’ 통보만 한 금융감독원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이유가 있다. 이명희 회장이 불법 차명주식을 소유·운영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차명주식을 통해 자신의 소유 지분 등을 허위공시해 온 공시 위반 행위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6년에도 이 회장이 차명주식을 소유·운영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 회장을 향한 비난의 강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개혁연대 등 경제 관련 시민단체들은 금감원의 ‘경고’ 조치에 대해 “재벌 봐주기식 제재” “금융 감독기구로서 책임을 방기한 처사” 등의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 보유·운용과 이에 따른 허위공시 등 공시 위반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금감원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또 불법 행위를 확인하고도 ‘경고’ 통보만 하는 것으로 결정한 근거를 금감원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 역시 논란과 비판을 키우고 있다.

이명희 회장의 두 번째 차명주식과 차명계좌는 지난해 5월 국세청의 ㈜신세계와 이마트 세무조사로 드러났다. 당시 국세청은 ㈜신세계와 이마트 두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투입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국세청 정예 조직으로 주로 기업과 오너의 조세포탈, 비자금 조성 관련 특별 세무조사를 담당한다.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세무조사가 신세계 계열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로 확대되면서 이명희 회장이 숨겨뒀던 차명주식이 발견된 것 아니냐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금감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시장 건전성을 위해서라도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과 공시 위반을 금감원이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질의까지 나왔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명희 회장과 신세계그룹은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가 끝나던 시점인 11월 6일 움직였다. 이 회장이 돌연 “차명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했다”고 증권선물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털어놓은 것이다. 이어 신세계그룹은 “이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해온 신세계·이마트·신세계푸드 주식 총 37만9733주를 실명 전환했다”며 “이명희 회장은 이제 더 이상 차명주식을 갖고 있지 않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불법 차명주식을 소유·운영하며 허위공시를 해온 이명희 회장에 대해 ‘경고’를 통보한 금융감독원의 제재는 과연 적절한 것일까.

현행법은 차명주식은 물론 허위공시 등 공시 위반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불법 행위가 확인됐을 때 당사자에 대한 제재와 처벌 역시 엄하게 규정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147조와 ‘시행령’은 기업 지분 5% 이상을 소유한 주주에 대해 지분 현황을 일반 주주와 금융당국이 확인할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상세하게 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흔히 ‘5%룰(rule)’로 불리는 법이다.

심지어 보유한 지분이 5%에 못 미친다 해도 ‘동일인’의 가족 및 등기이사 등 특수관계인이라면 이들 역시 지분 변동이 있을 때마다 관련 내용을 반드시 공시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시장법은 동일인과 특수관계인 등 주요 주주들의 지분율(주식 수)에 변화가 없었다 해도 정기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사업보고서(1년)·분기(3개월) 및 반기보고서(6개월)’를 통해 이들 주요 주주들의 정확한 주식 소유 현황을 반드시 공개·공시하게끔 규정해 놓았다.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차명주식을 이유로 소유 지분 현황을 허위로 공개·공시하는 것 역시 불법이라는 의미다. 참고로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그룹의 동일인이다.

법은 ‘허위공시 엄하게 처벌하라’고 명시

법이 규정한 이 사항을 위반하면 각종 행정적 제재는 물론 사법처리도 가능하다. 자본시장법 429조 4항은 이를 어길 시 공시위반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444조는 사업보고서와 분기 및 반기보고서에 공개해야 하는 주요 주주 관련 내용을 거짓으로 기재하거나 허위로 표시하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주요 주주 관련 사항을 반드시 사실대로 정확히 기재하도록 자본시장법과 시행령이 못 박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445조는 5%룰이 정한 공시 의무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151조는 5%룰이 정한 주요 주주의 지분 변동과 소유 현황 등의 중요 정보를 거짓으로 기재 및 표시하거나 누락할 경우 해당 보고서의 정정도 명령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또 필요한 때에는 (관련 주식을) 거래 정지 또는 금지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이때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조치는 ‘임원에 대한 해임권고’나 ‘사법당국에 고발 또는 수사기관 통보’ ‘경고 또는 주의 조치’ 등이다. 이 중 금융당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약한 제재가 바로 ‘경고 또는 주의’다.

이명희 회장은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함께 사업보고서 등에 지분 변동과 주요 주주 관련 사항을 허위로 공시해 오며 ‘자본시장법’도 위반했다. 2006년에도 이와 같은 불법 행위가 적발됐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감원이 이 회장에 대해 고발의뢰나 수사기관 통보 같은 적극적 조치 대신 ‘경고’만 통보한 것이다.

금감원 지분공시팀 관계자는 “(금감원이) 조치를 함에 있어 위반 비율과 경영권 분쟁 관련성 여부, 불공정거래 관련성 여부, 위반 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조치를 한 것”이라며 “이렇게 해서 한 조치가 ‘경고’”라고 했다. 이 관계자에게 기자가 다시 “이명희 회장은 2006년에도 이번과 똑같은 차명주식 문제를 일으킨 전과가 있다. 두 번째 차명주식 사건인데 이 점도 감안해서 내린 조치가 ‘경고’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이 관계자는 “그건 국세청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희가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라며 “2006년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건 알고 있지만, 저희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 보유와 허위공시 등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경고’가 회사가 아닌, 이 회장 개인에게만 통보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회장에게 통보된 ‘경고’에 대해, 회사(신세계)가 확인할 수 있는 게 사실 거의 없다”고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신세계 입장은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이 실명전환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명희 회장은 불법 차명주식 문제를 반복적으로 일으켰다. 그런 이 회장에 대한 제재로 ‘경고’ 통보만 한 것에 대해 금감원이 “법에 있는 조치 중 하나를 부과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과 일반 주주들의 시선이 금감원과 이명희 회장에게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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