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00대 수퍼컴퓨터 조사에서 72위를 차지한 한국 기상청 수퍼컴퓨터 ‘크레이 X1E’. 현재는 단종된 모델. ⓒphoto 크레이
세계 500대 수퍼컴퓨터 조사에서 72위를 차지한 한국 기상청 수퍼컴퓨터 ‘크레이 X1E’. 현재는 단종된 모델. ⓒphoto 크레이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한 달째 이어지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유례없던 이번 더위 속에 사람들을 더 짜증나게 한 건 기상청의 이른바 ‘희망 고문’이었다. 기상청은 번번이 오보를 날리면서 날씨 예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사람들을 더 지치게 만들었다. 예컨대 기상청은 지난 7월 ‘일주일 내내 장맛비가 내리겠다’는 예보를 했지만 비는 오지 않고 무더위만 이어지는 날씨가 여러 번 반복됐다. 8월에는 폭염 종료 시점이 열흘 새 네 차례나 번복돼 ‘양치기 소년 예보’로 빈축을 샀다. 낮 기온도 8월 21일을 기점으로 30도를 밑돌며 한풀 꺾일 것이라고 예보했지만 그마저 빗나갔다.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는 왜 100%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일까.

사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를 예측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산맥이 많은 지형은 날씨 변화가 심해 일기예보가 다른 나라보다도 어려운 실정이다. 요즘은 통신과 관측 기술, 장비의 발달로 예보가 많이 정확해졌지만 날씨의 변덕은 여전하다. 예보와 다른 갑작스러운 폭우나 폭염, 폭설 등을 만나는 일도 다반사. 더구나 여름철은 대기 불안정으로 짧은 시간 동안 좁은 지역마다 날씨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예보 정확도가 더 떨어진다. 때문에 날씨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변덕스러운 날씨를 대신해 구박받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간다.

기상예보가 나오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먼저 현재의 대기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기상 상태부터 관측한다. 기상관측의 기본은 지상 관측. 자동 기상관측 장비를 통해 전국의 기상관측소에서 기온, 습도, 강수량, 바람, 기압 등을 1분 간격으로 모니터링한다. 일기도에 나오는 지역별 날씨는 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집계하는 것. 다음으론 바다 날씨를 예보하기 위해 ‘해양 기상관측’이 이뤄진다. 대표적인 관측 장비인 ‘부이’와 등표탑재, 기상관측선을 이용해 풍향·풍속, 기온, 수온, 기압, 파고 등을 살핀다.

수치예측모델이 제일 중요

여기에 우리나라와 외국의 기상위성이 관측한 입체적 영상자료 등을 통해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확보한다. 기상청은 외국의 정지궤도 기상위성과 극궤도 기상위성의 자료를 직접 수신받아 예보에 사용한다. 기상관측만 하면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국내외에서 수집한 관측 자료(세계 관측소의 1만여개의 기상관측 값과 수십 대의 위성에서 관측한 수억 개의 관측 값)는 대기의 흐름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인 수치예측모델에 입력된다. 현재의 대기 상태를 이용하여 앞으로의 불규칙한 대기 상태를 예측하기 위함이다.

수치예측모델은 엄청난 자료를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고성능 수퍼컴퓨터가 활용된다. 수퍼컴퓨터의 역할은 빠른 연산을 통해 일기예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관측 자료가 입력되면 방정식에 적용해 예보 모델을 풀어낸다. 우리나라는 1999년 16만7000명이 1년간 계산할 양을 1초 만에 계산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수퍼컴퓨터 1호기를 도입했고, 이후 5년마다 더 좋은 성능의 컴퓨터로 바꿨다. 그 결과 현재는 48억명이 1년 동안 계산할 양의 데이터를 단 1초 만에 계산하는 수퍼컴퓨터 4호기가 ‘예상 일기도’를 생산해내고 있다. 수퍼컴퓨터가 아니면 필요한 시간 내 수행이 어려운 작업이다.

수퍼컴퓨터가 ‘예상 일기도’를 생산해 내면 그 자료를 바탕으로 기상청의 예보관들이 협의를 거쳐 날씨를 분석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단기·중기·장기로 구분된 일기예보와 폭염·폭설 등의 특보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예보관의 과학적 지식과 경험 등의 노하우가 예보 정확도를 좌우하기도 한다. 장비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전문성 높은 예보관을 양성하는 것이 필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의 수준은 그리 낮은 편이 아니다. 대부분 국가는 주요 도시 위주로 예보를 생산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동네 예보를 도입한 국가도 있고, 또 국가별로 예보 기간 단위가 다르고, 미국과 영국과 같이 예보 정확도를 공개하지 않는 나라도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가까운 일본과 비교할 경우 우리가 약간 높은 수준(2009∼2015년 평균 한국 91.5%, 일본 85.1%)이다.

북한 자료 없다는 것이 치명적

흔히 사람들은 수퍼컴퓨터만 있으면 100% 정확한 일기예보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국내외에서 수집한 관측 자료의 품질(32%), 수치예측모델의 성능(40%), 예보관의 노하우(28%) 세 가지에 의해 좌우된다.

기상 예측의 기본은 자료 축적이다. 각 지역별로 오랜 기간 상세하게 연구된 기상관측 자료가 수퍼컴퓨터에 입력돼야 정확한 예보 자료도 나올 수 있다. 기본 정보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기상 자료가 없다면 지금의 수퍼컴퓨터보다 100배 이상 우수한 기기가 들어오더라도 예보 적중률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것은 1904년. 그러나 이때 만들어진 5곳의 기상관측소는 러일전쟁을 위한 일본의 임시관측소였고, 현재 50년 이상 축적된 기상 자료를 보존하고 있는 곳은 전국 14곳에 불과하다. 예보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300개 이상의 지점에 기상관측 시설이 설치돼 최소 10년 이상 축적된 정확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북한의 기상 정보를 일본을 통해 얻고 있는 상황. 그나마도 기상 시설이 낙후된 북한이 기상 정보 전송을 자주 하지 않아 일본을 통해서도 기상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날이 허다하다. 같은 반도인 북한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은 날씨 예보에 치명적이다.

또한 정확한 일기예보를 제공하려면 수치예측모델도 완벽해야 한다. 만약 현재의 대기 상태를 100% 알 수 있다면 모델로 예측한 일기예보도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는 관측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바다나 사막, 산악 등이 존재해 자료가 고르지 않다. 따라서 오차가 포함된 관측 자료를 사용할 경우 완벽한 예측 모델이 있다고 하더라도 미래 예측이 100% 정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수치예측모델의 분해능력이 킬로미터(㎞) 단위의 수준이다. 대기현상을 모두 분석해 내려면 미터(m) 단위의 분해능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이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기상 현상을 실제와 똑같이 만들 수는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사람의 능력인 예보관의 노하우도 불확실성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일기예보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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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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