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제
[2473호]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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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할린에 사람들이 몰려가는 이유

▲ 지난 8월 11일 아이누족 등 러시아 원주민들이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내 광장에서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사할린의 여름은 짧다. 5월과 10월에도 밤이 되면 기온은 영하로 떨어진다. 러시아 내륙 시베리아에서 부는 겨울바람은 사할린섬 주변 바다마저 얼려버린다. 그래서 이곳을 러시아 동쪽 끝에 있는 얼어붙은 땅, 즉 ‘동토(凍土)’라 불렀다.
   
   제정러시아는 19세기 말 이곳에 감옥을 짓고 죄수를 수감하는 일종의 유배지로 사용했다. 그 이전에는 주로 니브흐족, 아이누족 등 원주민이 터를 잡고 살았다. 1890년대 초 러시아의 유명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1860~1904)는 극동(極東)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모스크바에서 배를 타고 사할린을 찾았다. 오가는 데만 몇 달이 걸렸던 시절이다. 그리고 나서 1895년 모스크바로 돌아온 체호프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책 ‘사할린’을 발표했다. 사할린주(州)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市) 시내에 가면 안톤 체호프가 사할린에서 보낸 발자취와 그의 작품을 전시한 기념관이 있다. 사할린을 찾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찾는 명소이다.
   
   사할린의 여름은 곰과 연어의 계절이다. 매년 7~8월이 되면 태평양으로 떠났던 연어가 산란을 위해 사할린섬의 작은 하천으로 돌아온다. 혹자는 산란을 위해 사할린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수를 알래스카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물론이고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연어의 귀향’은 여름철 여행의 ‘백미(白眉)’다. 주민들은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연안에서 주로 연어를 잡는데, 성인의 팔 길이만 한 연어의 현지 가격은 우리 돈으로 6000원. 현지인들은 3~4m 길이의 그물을 하천과 연결되는 얕은 바다에 설치하고 30여분 뒤 그물에 걸린 연어를 손으로 건져올린다.
   
   최근 사할린에서는 초대형 곰이 민가에 자주 출몰한다. 과거보다 연어가 줄어든 탓이다. 산란을 위해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남획(濫獲)으로 인해 여름철 먹이 사냥에 어려움을 겪는 곰이 적지 않다. 사할린에서도 연어알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빵 위에 연어알을 발라 먹는 간단한 요리도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으려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안톤 체호프가 사할린에 간 까닭은
   
   러시아 연방정부와 사할린 주정부가 수산업을 도외시하는 바람에 수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러시아 연방정부는 사할린에서 주로 원유와 가스를 채취한다. 관광객들에게는 연어, 명태, 대게 등 냉대성 어종을 잡는 낚시와 곰을 자연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관광의 매력으로 손꼽힌다. 그래서인지 매년 여름이 되면 한국~사할린 직항 노선은 빈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인천에서 유즈노사할린스크시를 주 3회 오가는 아시아나항공의 여름 티켓은 6월이면 동이 난다. 러시아항공을 이용할 경우 북한을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 비행시간이 단축됨에도 이용객은 상대적으로 적다. 최근에는 겨울에도 얼음낚시와 자연설을 즐기려는 스키어(Skier)들이 사할린을 많이 찾아온다.
   
   러시아 정부는 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에 주력하고 있다. 사할린주의 경우 농업법인을 설립할 경우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 불하해준다. 투자와 생산성 향상이 5년간 이어지면 해당 토지의 소유권은 농업법인에 귀속된다. 투자만 하면 별도 비용 없이 땅을 얻을 수 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 대규모 첨단 하우스단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러시아 정부의 노력 덕분이다.
   
   사할린주 전체 인구는 약 70만명 수준이지만, 그중 절반 이상이 유즈노사할린스크시와 코르사코프시에 살고 있다. 두 도시는 모두 사할린섬의 남단에 위치한다. 양 도시의 거리는 약 35㎞ 정도.
   
   사할린 최대 항구인 코르사코프항은 한국인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제강점기 석탄채굴을 위해 강제로 징용됐던 한인들이 1945년 광복 후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코르사코프 항구를 찾았으나 그들을 고향까지 데려다줄 배가 없었다. 저 멀리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한국인들이 고향을 그리며 서성였던 ‘망향의 언덕’이 있다. 배를 기다리다 일부는 굶어죽고 일부는 동사(凍死)했다. 당시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은 6만여명. 이들은 매일 12시간 이상을 수백미터 지하의 갱도에서 일했다.
   
▲ 사할린 현지인 여성이 오호츠크해에서 갓 잡은 연어를 팔고 있다.

   쓰라린 역사의 현장은 7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치돼 점차 그 흔적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지난 8월 10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20분을 달려 도착한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 ‘브이코프’ 탄광에선 조선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피와 땀을 흘렸다는 어떤 표식도 보이지 않았다. 갱도 입구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사할린은 요즘 건설붐이 한창이다. 2014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상대로 경제제재를 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한층 더 뿌리내렸을 것이라고 현지 사업가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3~4년간 루블화 가치가 절반으로 추락하면서 해외 수입에 의존해온 산업 전반이 크게 주저앉았다. 물론 여기에는 석유와 가스 가격 하락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정부는 이후 농산물의 자급자족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원유와 가스 이외의 제품과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해온 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 내부에는 아파트와 상가 건설로 도시 전체가 건설 현장을 방불케 했다. 이 도시는 과거 20여년 동안 개발이 멈춰 있었다. 푸틴 체제 이후 사회주의 시스템 위에 자본주의가 접목되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자본을 축적하는 사업가들이 속속 등장했다.
   
   사할린한인회 현덕수 회장도 현지에서 성공한 사업가 중 한 명이다. 현덕수 회장의 말이다. “러시아 국민들은 여전히 푸틴 정부에 70% 이상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그 이유는 만 55세만 되면 일하지 않아도 연금을 주는 식의 사회주의 보장시스템을 유지한 채 자본주의의 좋은 점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 사할린은 생각보다 춥지 않고 개발여건이 많은 곳이라서 미국 등 해외 자본이 꾸준하게 유입되고 있다.”
   
   사할린은 관광업에 대한 기대치 또한 높아졌다. 자작나무 등을 이용한 휴양지 개발과 꽃사슴 방목, 바이오농법 개발 등에 따른 외국인 유입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전 개발을 확대하는 정책도 서구 선진국을 유혹한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는 대형 쇼핑몰이 속속 개장하고 최근에는 초대형 실내 워터파크도 오픈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섬과 약 40㎞ 거리에 있는 사할린에는 일본인 관광객도 적지 않다. 과거 1900년대 초반 일본이 사할린섬의 절반인 남쪽을 지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일본인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현지서 여행업을 하는 녹산원 이희영씨는 “사할린 하면 얼어붙은 땅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기 쉬운데,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날씨는 정말 좋다. 녹산원의 경우 사할린에서는 처음으로 자고,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복합리조트 조성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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