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의 세계는 복잡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일단 소액이라도 직접 투자해 보기로 했다. 투자 대상은 대표적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먼저 인터넷에 올라온 비트코인 투자자들의 후기(後記)부터 읽어 봤다. “비트코인에 1500만원을 투자했는데 하루 만에 400만원으로 내려앉았습니다.” “비트코인이 며칠간 상당히 올라서… 7800만원에 시작해 8300만원에 팔았습니다.” 대충 읽어 보니 단기 투자자들은 거의 손해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난 9월 16일 비트코인 투자 경험이 있는 지인의 소개로, 국내 비트코인 투자거래소 중 가장 거래량이 많다는 ‘빗썸’에 가입했다. 가상계좌를 트고, 20만원을 송금했다. 가입부터 코인 구매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해당 거래소의 비트코인 최소 구매 가능 수량은 0.0001개였다.(비트코인은 10-8개가 최소단위라고 함) 20만원을 투자했을 때 환산비율은 20만원≒0.046487개였다. 20만원으로 0.046487개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을 구매한 셈이다. 비트코인 시세는 주식과 달리 초(秒) 단위로 변한다. 유심히 시세를 관찰해 보았다. 9월 16일 15:00 19만8641원, 9월 17일 15:00 18만7711원, 9월 17일 22:00 17만1640원…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

덩치와 가치가 커진 이유

가상화폐 투자 부문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박모씨로부터 비트코인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비트코인의 원리는. “비트코인 거래는 암호화된 코드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P2P(개인 대 개인) 거래다. 비트코인의 핵심은 ‘블록체인 기술’인데, 한마디로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모든 사람의 컴퓨터에 거래 내역이 저장되는 기술이다. 이더리움 등 몇몇 가상화폐도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자체적으로 오류를 검증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암호화, 오류 검증 시스템 덕분에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 비트코인이 수익을 볼 수 있는 구조인가. “지난 3월에 비트코인을 120만원어치를 샀다. 그렇게 산 게 지금 500만원 선까지 올랐다. 6개월 만에 400%가 넘는 수익이 난 것이다. 이런 시장이 어디 있나. 욕심 안 부리고 상승세만 잘 타면 비트코인 기대수익이 1년에 30%는 된다고 생각한다. 시기를 잘 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장은 날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은 가상화폐의 세계 시장 규모(시가총액 기준)가 1668억달러(약 188조9844억원)라고 밝혔다.(9월 15일 기준) 지난 8월 19일 하루 국내 거래량만 2조6018억원에 달해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액(8월 18일 기준, 2조4300억원)보다 많았다고 했다.

세계에서 통용되는 코인의 수만도 800여개다. 국내에선 가상화폐의 ‘기축통화’ 격인 비트코인을 비롯해 이더리움(ETH), 리플(xrp)에 많은 사람들이 투자하고 있다.(비트코인 이외의 코인은 ‘알트코인’이라고 통칭함) 규모만 큰 게 아니다. 가상화폐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핀테크 기술에 폭넓게 응용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제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라는 말도 했다.

가상화폐 시장의 덩치가 이렇게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상화폐 컨설팅업체에서 고객자문 업무를 담당하는 이종석 팀장은 접근성이 편리하다는 점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 팀장은 주식 투자와 비교해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계좌를 만들려면 개인인감, 신용검증 등 까다로운 절차가 많다고 했다. 과거 증권계좌를 트는 데 일주일이 걸린 적도 있다. 반면 비트코인의 경우 계좌를 트고 돈을 송금해 코인을 구매하는 데 10분이 채 안 걸린다. 이종석 팀장은 “주식시장에는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하면, 일시적으로 주식매매를 정지하는 제도(서킷 브레이커)가 있지만 가상화폐 시장엔 그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

범죄에 악용

‘고수익’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가상화폐 시장에도 그늘은 존재했다. 단순히 시세 하락으로 인한 원금 손실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상화폐 투자 과정에서 피해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모임인 겟백코인(get back coin)’이란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여기엔 특정 가상화폐 거래소가 해킹을 당해 투자금을 날렸다는 사람부터, ‘시세보다 더 높은 배당금을 주겠다’는 가상화폐 투자대행사에 속아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도 있다. 피해자 159명은 지난 8월 말 소송단을 구성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임에서 피해 사례를 취합정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오모씨를 만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생명보험사에서 근무하는 오씨는 다양한 가상화폐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법이 미비한 틈을 노려 불법·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ICO 투자, 거래소 운영방식의 문제, 투자대행사 사기로 인한 피해 등 크게 세 가지다.”

- ICO가 뭔가. “ICO(Initial Coin Offering·신규 가상화폐 공개)는 주식으로 치면 ‘장외주’ 같은 개념이다. 신규 코인을 발행할 회사(주로 벤처회사)가 기존의 가상화폐로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인데, 주로 다단계 형태를 띠고 있다. ICO가 문제인 이유는, 일반인도 꾸며내기만 하면 ICO 관련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인이 영업을 하고 주식을 발행하기 위해선 금융당국의 엄격한 심사와 허가가 필요하지만, ICO는 IT 전문가만 있으면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만들 수 있다. 또 일정 비용을 내고 코인을 거래소에 상장하기만 하면 바로 판매도 가능해 무분별한 ICO 관련 회사가 등장하기 쉽다. 이렇게 허술하게 설립된 회사는 나중에 제대로 된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사업주가 ‘나 몰라라’ 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거래소 운영방식의 문제란 뭔가. “거래소 서버 보안 취약이 가장 큰 문제다. 거래소가 해킹당해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자기도 모르게 코인을 다 날린 경우다. 거래소가 해킹에 대비해 들어놓은 손해보험이 만료되었음에도 이를 갱신하지 않고 있었다. 매도매수 시 갑자기 서버가 느려지거나 먹통이 돼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매도 시 홈페이지상에 뜨는 ‘호가(呼價)창’에도 문제가 있었다. 가령 2만원에 매도를 하려고 했는데 호가창에 1만8000원이 떠 손해를 본 피해자도 있다. 2만원 매도를 클릭했으니 투자자 입장에선 당연히 2만원으로 알았겠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던 거다. 얼마 전 한 거래소는 신입사원 공채 지원서를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바이러스에 감염된 파일이었다.”

- 투자대행사 사기란 뭔가. “투자대행사를 차려 투자자를 모집한 뒤 가상화폐의 시중가보다 몇 %를 더 얹어주겠다는 식으로 유혹한다. 그후 투자금만 받고 ‘먹튀’하는 수법이다. 시장의 상황에 따라 수익이 떨어질 수 있는데, 투자대행사는 ‘고수익 배당’ 운운하며 투자자를 기만한다.”

비트코인에 대해 설명해준 박모씨도 투자대행 사기수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박씨는 ‘사기 투자대행사’로 의심되는 한 업체의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었다. 홈페이지 초기화면에는 “일정 분량의 비트코인을 해당 업체에 지불할 시, 매일 적게는 7%에서 많게는 13%까지 시중가보다 높은 프리미엄을 얹어준다”는 식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이 홈페이지를 이종석 팀장에게 보여준 뒤 ‘투자대행 사기’가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이 팀장은 “정식으로 허가받은 업체가 아닌 것 같다”며 “원금을 보장한다면서 고수익을 약속한다면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사이트들은 초기화면이 매우 화려하고, 접근 방식이 거래소 사이트보다 더 간편하게 설계돼 있어 투자자들이 쉽게 현혹될 수 있다. 박씨는 “신생 코인 중에 가짜가 많아 ‘초보 투자가’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채굴장’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최근 인터넷을 보면, 비트코인 채굴장이나 다량의 컴퓨터 그래픽카드를 부르는 소위 ‘채굴기’를 매매한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은 강했다’의 저자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 연구소장은 “쉽게 말해 특정 자릿수만큼의 비밀번호(해시함수)를 풀기 위해 컴퓨터가 수많은 숫자를 대입하는 작업이 채굴”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를 대입해 푸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비트코인을 더 많이 캘 수 있다. 대신 한 번 풀면, 자릿수가 늘어나는 식으로 난도(難度)가 올라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산속도가 빠른 컴퓨터 그래픽카드를 다량 설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오 소장은 “컴퓨터 그래픽카드를 끊임없이 돌려야 해 채굴장 운영에는 전기소모가 많다”고 했다. 그는 “많은 채굴 업자들이 값이 싼 산업용·농업용 전기를 몰래 끌어와 쓴다”며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단언했다. 채굴장 사기 수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저성능의 그래픽카드를 고성능이라 속여 판매하는 경우와 채굴장 가격을 뻥튀기해 되파는 경우였다. 이에 대한 단속도 전무하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채굴장의 수가 점점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트코인은 2100만개만 발행하도록 설계된 한정 화폐다. 현재 전체 비트코인의 약 78%(약 1650만개)가 발행되어 채굴장의 효용성이 줄어들 거라는 얘기다.

가상화폐 시장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난 9월 3일 금융위원회(위원장 최종구)는 “가상화폐 거래 시, 가상계좌를 운영하는 은행이 반드시 실명 인증을 하도록 하는 방안을 오는 12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9월 7일, 금융위 등 10여개 관계부처는 가상화폐를 악용한 불법거래와 유사수신행위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집중단속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투자 전, 투자할 코인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인마켓캡(coinmarketcap.com)에 접속해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코인의 수, 거래량, 가격 차트를 사전에 살피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가상화폐 자체가 악(惡)이 아니란 점을 염두에 두고,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성호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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