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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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8일 오후 3시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4층 사무실. 10여분 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테크앤로’ 구태언(50) 대표변호사였다. 이렇게 시작된 구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2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아이패드, 빔프로젝트, 노트북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설명을 이어갔다.

구 변호사는 1990년대 초반 검사 초년병 시절부터 검찰 내 최고의 ‘IT통’으로 불렸다. 그는 검찰 재직 당시 주로 컴퓨터수사부(현 첨단범죄수사부)에서 IT범죄를 담당했고, 오늘날 일반화된 디지털포렌식 수사기법 도입에도 일조했다. 검사와 김앤장 변호사를 거쳐 지금의 소형 로펌을 운영하기까지 ‘IT’와 ‘컴퓨터’라는 키워드는 그와 분리된 적이 없다.

구 변호사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건 1980년대 초반, 그가 중학생일 때였다. 당시 국내에는 컴퓨터 제조업체가 없었다. 그는 부모님을 조른 끝에 서울 세운상가에서 중고 애플Ⅱ 컴퓨터를 25만원에 구입했다. 컴퓨터를 다루려면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해야 했지만 그땐 관련 서적도 없을 때였다. 컴퓨터라는 고가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이 중학생은 대학진학 때 공대 대신 부모님이 추천한 법대에 입학했다. 구 변호사는 “만약 당시 인터넷이라는 게 있었다면 나는 그 세계에 빠져들어 공부할 틈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2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년 만에 사법시험(연수원 24기)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법촌’이라는 온라인 동호회 운영자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법촌은 법조인 ‘얼리어답터’들이 IT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모임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검찰 간부들은 검사 임용 당시 그를 컴퓨터수사부로 배치했다. 구 변호사는 국내 최대 온라인 업체에서 발생한 수백억원대 게임머니 해킹 사건 등을 처리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에게 올 초 특검까지 도입됐던 드루킹 댓글 사건에 대해 “부실수사 논란이 있다”고 하자, “그런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사는 디지털 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분석해 나온 증거를 토대로 수사한다. 모든 게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는 요즘, 휴대폰 등 관련 기기를 확보하는 건 가장 중요하다. 피의자가 자신의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지운다 해도 그 주변 인물의 디지털기기에는 관련 자료가 남게 마련이다. 최근 (재판거래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경우 검찰이 디지털기기를 복원해 증거를 수집한 것으로 안다.”

구 변호사는 2006년 김앤장으로 이직했다. 국내외 굴지의 IT 기업 송사를 주로 맡았다고 한다. 그러다 2012년 독립해 법률사무소 테크앤로를 만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IT벤처와 스타트업이었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스타트업 법률 자문을 내세운 테크앤로를 설립했다. 창업가를 돕는 일종의 ‘프로보노’(공공의 이익을 위한 봉사)가 되기로 했다.”

구 변호사는 테크앤로 대표 직함 이외에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이사 및 법률지원단장,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고문, 블록체인산업협회 자문위원,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회원사로는 전통적인 IT벤처뿐 아니라,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스타트업이 있다.

- 직접 창업을 하지 않은 이유는. “창업할 시기는 이미 놓쳤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적 지원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만약 내가 1987년에 공대를 갔다면 이해진(네이버 의장), 김범수(카카오 의장) 등과 함께 IT 창업 대열에 합류했을 것 같다. 이제는 창업가를 돕는 일이 더 보람 있다. 여러 단체에서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있다.”

- 주로 어떤 기업을, 어떻게 지원하나. “내 주변에 이를테면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이들이 1000명쯤 있다. 누군가 하던 일을 ‘카피’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존재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삶을 편안하게 만들고, 보다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특허에 관한 법률 자문과 함께 규제를 해소하는 데 함께 나선다. 지난해 카풀 규제 해소를 촉구하는 성명서도 함께 발표했다. 정부가 규제를 풀지 않거나 풀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래도 이 일은 내게 시대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 정부는 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제도화에 소극적인가. “작년 말부터 법무부와 금융위원회가 나서 자금세탁방지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에 따라 규제 아닌 규제가 발동됐다. 최근에도 금융위원장은 국회에서 ICO(암호화폐 공개)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정부가 반대하는 것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인해 국가 전체 운영에서 정부 권한이 축소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블록체인은 이념적으로 탈집중화이자, 자치의 기술이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 이 기술을 개발한 것도 금융권력 없이 가치를 이전하겠다는 취지였다. 예컨대 스마트도시 건설에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국가 예산이 아니라 일반인이 펀드를 조성하고 다중이 관리하는 게 가능해질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지금 정부는 오히려 강하고 큰 정부를 지향한다.”

- 블록체인은 인터넷과 무엇이 다른가. “청와대가 만든 온라인 국민청원의 경우 많게는 100만명 이상이 청원에 동참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3만~4만표를 얻으면 당선되는 것과 달리 온라인상에서 국민의 의사표시는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됐다. 문제는 중복방지가 어렵다는 점이다. 블록체인의 경우 동일한 두 개 이상의 가치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도록 중복을 방지한다. 그리고 결과의 진정성도 확보할 수 있다.”

구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 포털사이트에서 ‘정부는 뭐 하나’라는 키워드를 검색했다. 그 결과 총 36만개의 뉴스가 검색됐다. “모두 다른 사안에 대해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는 기사의 제목들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은 정부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권력으로 보는 정서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 블록체인 업계는 정부가 규제를 법제화하는 걸 우려하고 있다. “지금은 사실상 규제가 없는 상태다. 규제하겠다는 의지는 피력했으나 법을 만들지는 않았다. 법이 없으면 처벌 규정도 없다. ICO의 경우 해외에서 하고 국내에서 팔아도 처벌 규정이 없다. 정부가 이를 규제하기 위해 입법을 하려 해도, 국회는 오히려 규제를 풀어주자는 주장이 많다. 지난 1월 정부가 내놓은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자금세탁에 특정 은행이 연루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지, 법으로 정한 건 아니다.”

구 변호사는 “블록체인 업계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의 규제 공백 상태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ICO를 통해 몇백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얼마 전 블록체인 투자자로 알려진 인물이 술집에서 1억원의 돈다발을 뿌렸는데, 그를 처벌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블록체인의 본질인 자치를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율규정을 준수하면서 스스로 혁신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다.”

- 블록체인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이유는 뭔가. “나는 자치의 기술로 블록체인을 이해하고 있다. 인터넷 프로토콜이나 P2P의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 블록체인은 중복 없는 의사표시가 가능하다. 우리가 현금을 봉투에 담아 직접 전달하는 것을 디지털로 구현한 것이다. 기존 인터넷으로는 할 수 없었던 신뢰의 기술이다. 블록체인으로 전자투표를 한다면 결과의 진정성이 담보되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그 사용처는 무궁무진하다. 이런 걸 가능하게 만들고 싶다. 역사적으로도 변화를 이끌 기술의 등장과 이를 얼마나 빠르게 수용하느냐의 문제는 국가의 흥망과 직결되어 왔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암호화폐 관련 법률안은 10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 암호화폐거래소를 주로 취급하는 법률안은 총 4건. 구 변호사는 법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정부가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선 모든 법안에 암호화폐가 포함되는데, 그건 이 사안을 금융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등 해외 국가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우선 암호화폐를 지불형, 유틸리티형, 증권형으로 나눈다. 게임머니, 영화티켓 등은 모두 금융상품이 아니라 이용권 정도로 인식되는 상품, 즉 디지털 자산(유틸리티형)이다. 당연히 금융이 아니다. 지불형의 경우 정부가 일본처럼 인정해줄 생각이 없으니 논외로 하자. 미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등은 증권형 암호화폐를 금융의 시각에서 규제하고 있다. 디지털 토큰을 팔아 개발자금을 모집하는 단계를 증권형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도 법안을 만든다면 이 부분에 대해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 입법 논의와 별개로 블록체인 업계의 자율규제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구 변호사는 “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는 최신 트렌드로 부상한 IEO(Initial Exchange Offering)에 대해서도 자율규제안을 마련했다. 구매자 보호, 사업성 검토, 기술보안 등을 평가해 1000점 만점 체크리스트에서 700점 이상을 받아야 15억원 이상 모금이 가능하다는 권고사항을 만들었다. 민간이 만든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IPO(기업공개)처럼 까다롭게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현 정부가 규제혁파와 혁신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조선·해운·철강 그리고 자동차산업까지 위기에 직면한 지금 우리는 규제를 혁파하고 신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맞았다.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이 있다. 혁신하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번에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융합법, 지역특구법 등을 담은 ‘샌드박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보수적이고 규제 위주의 부처인 금융위조차 규제혁신TF를 만들어 기업 소액공모 상한선을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어 혁신성장을 추동한 바 있다. 위기가 닥치면 본질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금 대통령이 나서 규제혁신을 위해 호통을 치는 상황 아니냐. 한편으론, 청와대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을 도입하자는데 여당인 민주당이 반대하는 걸 보고 놀랐다.”

구 변호사는 “주변국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이 모바일 결제의 천국이 된 배경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은 ‘규제에 대해 신중하고 포괄적인 접근방식을 채택한 결과’라고 했다. 전형적인 ‘웨이트 앤드 시(wait and see)’ 전략이다. 미국 정부도 기술 발전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블록체인을 취급하고 있다. 온라인 시대에 갈라파고스는 존재할 수 없다. 과거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하는 걸 막기 위해 정부와 전자업계가 ‘위피’라는 플랫폼 탑재를 명분으로 2년간 지연전을 폈다. 당시 우리는 기업을 지켰다고 자평했을지 모르나, 그 결과 한국의 모바일산업은 미국과 적어도 2년 이상의 격차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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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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