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 불황을 견디지 못한 이스타항공은 한 달간 모든 운항을 중단했다. ⓒphoto 연합
지난 3월 24일 불황을 견디지 못한 이스타항공은 한 달간 모든 운항을 중단했다. ⓒphoto 연합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항공업계가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책은행들이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M&A 인수자금 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스타항공이 현 정권과 여러 경로로 얽혀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데다,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그룹이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굳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7곳에 대해 긴급 경영지원금 총 3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제주항공에 책정된 지원금은 이 중 400억원. 그런데 제주항공은 여기에 더해 이스타항공 인수와 이후 유상증자에 필요한 총액 2000억원 역시 따로 지원받게 됐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을 545억원에 인수하기로 했고, 인수 후에는 약 1500억원에 달하는 이스타항공의 유상증자를 계획 중이다.

산은·수출입은, 계약금과 유상증자 자금 2000억 지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추진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저비용항공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인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항공의 구원투수를 자처한 것은 다름아닌 국책은행들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자금 총 2000억원(계약금 545억원+유상증자 자금 1500억원)을 각각 1000억원씩 나눠 타 은행들과 함께 공동 대출해주는 신디케이트론 방식 지원에 합의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모양새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거래의 최대 수혜자는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스타항공의 대주주는 이스타홀딩스로 전체 지분의 약 40%를 보유 중인데, 이스타홀딩스는 이상직 전 이사장의 두 자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사실상 이 전 이사장의 개인 회사나 다름없다. 민주당 소속 19대 의원(전주시을)을 지낸 이 전 이사장은 이번 총선에도 민주당 후보로 전주시을에 출마했다.

이 전 이사장은 더 이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일임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이스타항공 주요 보직을 맡은 인사들은 대부분 이 전 이사장의 가족이거나 19대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을 맡았던 이들이다. 최근 제주항공 협력TFT 총괄단장을 맡은 이스타항공 김유상 전무는 19대 국회 당시 이 전 이사장의 보좌관을 맡았고,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낙민 이사는 민주당 의원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제주항공 협력TFT 총괄이자 재무담당인 이혁희 부장은 이상직 전 이사장의 조카다. 이스타홀딩스 대표이자 이스타항공 상무를 맡고 있는 이수지(31)씨는 이 전 이사장의 딸로,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스타항공의 전 대주주 측은 이번 매각으로 인해 수혜를 입지만, 새로운 대주주인 제주항공 내에서는 애물단지를 떠안았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자금을 지원받긴 하지만, 산은의 LCC 긴급 지원 대상에 이스타항공이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경영난은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2월 임직원들에게 급여 40%만 지급한 것에 이어 3월에는 수습 부기장 80여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지난 4월 1일에는 현재 1683명인 직원을 930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사실상 절반 가까운 750여명의 직원을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24일부터는 아예 항공 운항 전체를 중단하는 ‘셧다운’ 결정까지 내렸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말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 전 대주주는 혜택, 제주항공은 우려

이런 상황을 우려해 지난해 말부터 제주항공 내부에서는 막판까지 이스타항공 인수를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제주항공 모회사인 애경그룹은 지난해 12월 18일 이스타항공과의 인수합병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수 마무리 시점을 2월까지 두 차례 연기했다. 결국 기존 인수대금보다 150억원 깎인 545억원에 인수 계약이 맺어졌다. 하지만 제주항공과 애경그룹 내에서는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더라도 제주항공과의 흡수 합병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는 공식적으로 애경그룹의 지주회사인 AK홀딩스가 매입하는 방식인데, 이때 이스타항공은 그대로 별도 법인으로 놔두면서 이스타항공의 부채를 떠안지 않으려는 의도다. 다만 제주항공-이스타항공 간의 제휴협정을 체결해 운임과 항공 노선만 공유하겠다는 속셈이다.

그럼에도 제주항공에 대한 국책은행의 거액 지원은 특혜성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그룹이 인수대금을 마련할 수 있는 유동성이 충분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애경그룹은 지난해 인수자금이 1조원에 달했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도 뛰어들어 HDC현대산업개발과 막판까지 경쟁하기도 했다. 1조원짜리 인수전에 참여했던 기업이 유상증자 금액인 1500억원도 아닌 545억원에 불과한 인수 자금을 국책은행으로부터 지원받는다는 것은 납득이 어려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은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과 최근 코로나19의 여파가 심각해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특혜 시비의 배경에는 이스타항공 측이 현 정권과 가깝다는 정치적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이스타항공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위 서모(40)씨가 태국의 저비용항공사 ‘타이이스타젯’에 이메일 한 통으로 취업했다고 알려져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이스타항공과 청와대·정부 측 인사들은 “취업에 특혜나 불법은 없었다”면서 “이스타와 타이이스타젯은 별개의 회사”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당시 타이이스타젯은 이스타항공과 기업 로고까지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어 ‘사실상 이스타의 자회사’라는 의혹이 가시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 1월 주간조선의 보도로 이스타항공이 타이이스타젯의 항공기 B737-800 1대의 월 리스요금 29만달러에 대해 지급 보증을 선 것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타이이스타젯과의 관계를 부인해왔던 이스타 측의 해명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의원은 현 정권에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됐고 대표적 친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사위까지 얽혀 있는 정치적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측에 타이이스타젯과의 불분명한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측에 인수 거래 종결일 전까지 타이이스타젯과의 보증 계약 및 보증 수수료 계약 해지를 M&A 조건 중 하나로 걸었다고 전해졌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현재 타이이스타젯은 사실상 ‘행방불명’ 상태다. 지난해 12월 태국 현지 언론은 타이이스타젯이 곧 방콕~가오슝 등의 운항을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 타이이스타젯은 홈페이지 접속조차 되지 않는다. 타이이스타젯의 태국 사무실로 알려진 곳은 현재 전화 연결도 되지 않는다. 태국 사무실이 입주한 것으로 알려진 빌딩 측 역시 “타이이스타젯은 입주해 있지 않다”고 밝혔다. 타이이스타젯의 한국인 대표이사 박모씨는 이미 해산한 태국 항공사 ‘스카이스타항공’에서 일했으며, 항공사 영업대리점 격인 GSA(General Sales Agent) 업계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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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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